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51화 (351/371)

〈 351화 〉 성산을 향하여

* * *

몬스터들의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손에 넣은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게이트 그 자체였다.

일찍이 신화가 역사의 일부였던 시절.

페르시아에선 마왕과 악마들이 날뛰고, 그리스에선 신들이 군림하던 때.

조로아스터 교의 대악마들은 선신 진영에게 패한 걸 계기로, 그리스에선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로 말미암아.

신화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몸을 감추고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이르러 다시금 세상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몬스터들은 그 시절의 잔재라 하니.

중국에서 산해경에 적힌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대한민국에서 구미호가 날뛰는 건 바로 그 탓이었다.

즉.

만에 하나 게이트 너머 세상으로 건너갈 방법을 발견했다 한들, 그 세상 너머에 하연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대다수 게이트는 그렇겠지.

막말로, 대한민국에 있는 게이트 중 페르시아 신화관과 연결된 물건이 몇 개나 있겠는가.

있기는 해도 십중팔구 소수일 테지.

남은 건 대개 대한민국 신화의 천국 따위와 통하는 물건일 터.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서천꽃밭 따위에서 하하호호 뛰놀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요컨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실로 간단하다.

대한민국 내에 열린 게이트 중에서 페르시아 신화와 연결된 게이트를 찾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헌터 협회 소속 신분을 반납한 지금.

우리들이 당당하게 돌아볼 수 있는 게이트 또한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선 얼마 되지 않는 페르시아 신화 쪽 게이트 중 우리들이 이용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찾아야 했다.

당연히 그런 물건이 형편 좋게 굴러다닐 리는 없겠지.

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없지는 않았다.

진짜로.

그게 바로 내가 헌터 협회 남해 지부까지 내려온 이유였다.

일찍이 남해 지부는 신세계 질서에게 반쯤 점거당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 남해 지부를 장악한 건 신세계 질서 하면 생각나는 악마들이 아닌 구미호 쪽이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일개 끄나풀 수준에서 협회 지부를 건드는 간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리도 없다.

즉, 당시 우리들이 퇴치한 구미호들은 신세계 질서 소속 몬스터들 중에서도 꽤 큰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하간, 학기 초에 퇴치한 악마나 두 번째 마왕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S랭크 몬스터였고.

당연히 신세계 질서의 우두머리인 마왕 쪽과 직통 채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지.

그리고.

있었다.

여력을 회복한 남해 지부가 아직까지 공략하지 못한 게이트 중 하나.

거기에서 신세계 질서 특유의 페르시아풍 악마들의 기척이 옅게 느껴졌던 탓이다.

남은 건 허가 문제였지만, 그 또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여하간, 남해 지부에는 일찍이 빚을 지워둔 적이 있었으니까.

지부 하나가 통째로 몬스터들 손아귀에 굴러떨어질 뻔했던 녀석들이다.

안타깝다면 안타깝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실책을 말 없이 덮어줄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당시 그런 실책을 만회할 수 있도록 나는 이 지부에서 구미호 소재를 매각한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남해 지부 입장에선 자신들을 장악하고 있던 몬스터들의 수급을 확보.

이후 S랭크 소재 거의 전부를 남김없이 유통시키는 데에 성공한 실적을 획득한 셈이다.

현역 헌터들 중에선 협회와 소재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는 녀석들도 적잖게 있고.

심지어, S랭크 몬스터의 소재라 하면 더더욱 욕심이 생기는 녀석들도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 내단 따위가 나오지는 않을까 생각해 빼돌리는 녀석도 있을 테고.

협회가 수수료를 떼가는 문제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해 지부가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소재를 전량 매각했다.

미안, 거짓말이다.

사실 기분 나빠서 적당히 가까운 데에 팔았을 뿐이지만.

그거야 어쨌든, 남해 지부는 당시의 실적으로 본인들의 위치를 방어하는 데에 성공한 바가 있었다.

즉.

어느 정도 강짜를 부려도 먹힌다는 뜻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남해 지부 사람들은 내 부탁 한 마디에 게이트 근처까지 우리를 들여보내줬으니까.

……덕분에 편의를 본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긴 조금 그렇지만, 어느 정도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뭐, S랭크 소재라고 하면 일개 지부 단위에서 처리하기엔 지나치게 비범한 물건이고.

그만한 물건을 통째로 넘겼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몬스터 소재의 가치를 실감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그런 판단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 다음.

다시 말해, 게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향하는 방법 쪽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한 가지 비책이 있었다.

여하간, E랭크 몬스터들도 게이트를 통해 멀쩡히 세상을 왕복하고 있지 않나?

허면, 대한민국 정부엔 관련된 기술이 없을 뿐 세상을 왕복하는 일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별다른 시설 하나 남지 않은 신세계 질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취를 감춘 태시영 또한 마찬가지.

이런 결론이 나온 이상, 내가 선택할 방법도 정해져 있었다.

애시당초 내 직감은 미국의 최고 정밀 기계조차 넉넉히 두 배 이상 능가하고 있다.

적당한 노하우가 있다면, 세상을 오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즉.

"이게 되네."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페르시아 신화에 속한 악마들 특유의 자취가 남은 게이트 안에서, 나는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세상의 경계.

어렴풋이 느껴지는 악마의 기척이 끊긴 세상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그 앞에는 마치 이 게이트의 입구처럼 다시 한 번 성큼 하고 입을 벌린 세상의 아가리가 보였다.

*

하루.

신도시 근처에서 남해 지부까지 내려와, 장비를 정비하고 제자들이 눈을 뜰 때까지.

우리들이 소비한 시간은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남해 지부에 간략한 사정을 설명하고, 약식으로 그려진 지도를 따라 슥 훑은 끝에 선정한 게이트.

그 안에서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세상의 경계는 너무나도 손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잘 풀려서 당황할 정도로.

처음엔 안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하나만 쪽팔리면 그만이니까.

물론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 중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나 또한 어느 정도 실패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대답을 손에 넣은 셈이니, 다소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당도한 세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멀쩡하네."

사방에서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척 때문에 쩔쩔매며 바닥을 구를까 싶어 준비한 방독면이 무안할 정도였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여하간, 신세계 질서는 여태까지 어마어마한 병력을 소비했으니까.

비단 마신들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예를 들어, 몬스터들의 남하 당시.

혹은, 신도시 탈환 당시.

신세계 질서는 인간 쪽의 힘을 빌려 아낌없이 부적을 사용했다.

즉, 누군가는 그만한 피해를 대신 부담했다는 뜻이다.

그 경우, 당연히 피해를 부담한 건 저급하기 짝이 없는 몬스터.

다시 말해, 병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저랭크 몬스터들이었겠지.

사실상 싹이 마른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목표지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다른 녀석들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내가 바라보는 장소를 향해 꽂혔다.

험준하기 짝이 없는 산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봉우리.

맥동하는 듯한 힘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능선.

무엇보다, 영엄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까지.

도저히 악마들의 본거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저 산이야말로 일찍이 첫 번째 마왕이 봉인된 성산.

동시에, 그 이후 페르시아 신화의 악마들이 점거했을 그들의 거점이었다.

중동에서 가장 높은 산.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화산.

마치 복제되기라도 한 듯, 지금도 중동에 남아있는 산을 찍은 사진과 지나칠 정도로 흡사한 외견.

조로아스터 교의 성산,데마반드 산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고생 좀 빡세게 하겠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에 묶여있는 마왕의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그 위치도 느껴지지 않고.

그 사실에 자그마한 긴장이 달린다.

지금부터 우리들이 시도하는 건 던전 공략도, 게이트 답사도 아니다.

인류를 배신하고 몬스터에게 붙은 헌터 자식을 찾아 두들겨 팬다.

첫 번째 마왕을 상대로 쓰러뜨리거나, 도주한다.

마지막으로, 하연이를 찾아 다시금 돌아온다.

말 그대로, 신화 속의 성지.

게이트나 던전 등으로 쌓아올린 일시적인 둥지가 아닌, 악의 본거지.

마왕의 거성에서, 우리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 사실에 주눅이 들기도 잠시.

"가자."

마지막으로 각오를 다지고 나서, 나는 먼저 걸음을 떼었다.

팍팍하기 짝이 없는 모래가 신발 밑창까지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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