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사냥꾼
* * *
"지랄 났네, 진짜."
그렇게 뒷문으로 걸음을 옮기자, 어느 정도 예상했던 풍경이 거기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달밤 아래에선 유달리 눈에 밟히는 흰색 봉고차.
그 근처에, 마치 기숙사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담배 피는 불량아들처럼 삼삼오오 모인 녀석들이 있었다.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꼬마들이었다.
각각 머리카락 색깔도 다른 대가리들이 하나같이 모여있는 광경은, 어쩐지 퍽 우스꽝스럽다.
아니, 그 이상으로 내게는 퍽 달갑지 않은 광경인 게 사실이었다.
"어, 선생님!!"
어쩌면 그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평소처럼 태연자약한 태도로 달라붙는 대신,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과연 밤의 종족이라 해야 할까.
퍽 쾌활한 태도로 그리 말하는 지희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로서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적어도 평소처럼 다가가서 훠이훠이 해산하라며 손을 휘젓긴 늦었다.
덕분에, 나는 떨떠름한 태도로 그 근처까지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너희들, 제정신이냐?"
뻔뻔하게 나설 수 없는 만큼, 솔직하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아니, 얘들은 전부 제정신인가?
이준구 그 놈이 내 앞을 가로막았던 걸 생각하면, 내가 무슨 생각인지도 미리 들어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여기에 모여있다는 건, 나로서는 도저히 탐탁치 않았다.
심지어 다른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희들은 또 뭐야?"
"그게……."
어색한 어조로 얼굴을 돌리는 서아.
마찬가지로, 입을 비죽 내밀고 시선을 피하는 티아마트.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한숨만 나올 따름이었다.
그래도 꼴에 어른이고 교사라는 년들이, 애들을 돌려보내기는커녕 같이 작당모의나 하고 있을 줄이야.
그런 생각에 무심코 한숨이 나온다.
"딱히 이 분들 잘못은 아니에요. 저희 오빠 잘못은 더더욱 아니구요."
허나.
아무래도 이 아가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푸른 하늘을 닮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이예은은 그렇게 단언했다.
"앞으로 1년만 있으면 저희도 성인이니까요."
"설마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자기한테 의사 결정권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은아."
"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겠죠. 저희 오빠는 다르지만요."
그 말에 나도 모르는 사이 침음성이 나왔다.
확실히, 이준구는 그런 녀석이었다.
여동생을 아끼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끼겠지.
만에 하나 이번 일로 여동생이 죽음을 맞이하면, 눈이 돌아가 미쳐 날뛸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는 누구보다 슬퍼할 테고, 어쩌면 복수를 천명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여동생의 행동을 가로막을 녀석은 아니었다.
여동생이 뜻대로 행동하게 하되, 거기에 책임과 결과가 따른다.
놈은 언제나 일관적인 태도로 자신의 여동생을 대했으니까.
그리고.
"저는 저 스스로 선생님을 따라가겠다고 생각한 거에요."
물론 말이야 저래도 실제로는 다르겠지.
어쩌면 이 오밤중에 이준구를 움직인 게 이 맹랑한 아가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턱 하고 이마에 손을 짚는다.
"왜?"
나로서는 그 사실이 의문이었다.
물론 하연이는 이 녀석들과 친구처럼 지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건 아니니.
내게는 실로 당연한 의문이었다.
"글쎄요. 뭐,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요."
다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이예은은 바로 그 얼마 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스타 헌터의 재능이라는 건, 바로 그런 점에서부터 나오는 거니까.
"실패한 임무의 뒤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건 내키지 않는다는 점도 있구요."
"그리고?"
"친구 한 명만 있어도 목숨을 걸기엔 충분한 일인데,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생을 배팅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갸웃.
조용히 고개를 기울이는 그 모습엔, 나를 놀리기 위한 마음 따위는 어디에도 눈에 밟히지 않았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부끄러운 마음만 들었을 뿐.
그 탓에, 잠시 헛기침을 터트리던 나는 이윽고 다음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 옥상에서 나눴던 말, 기억하시죠?"
"어, 으음."
"그럼 간단하네요. 저,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자살할 거라서요."
단지.
시선을 돌린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응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짐짓 쾌활한 어조로, 지희는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
자신이 엇나가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설령 자신이 엇나가더라도 괜찮다며 받아줄 사람들 뿐이다.
때문에.
방황하던 그녀는, 나를 향해 그리 부탁했다.
만에 하나 자신이 엇나간다면.
작금의 류지희가 바라지 않는 일을 손수 자행하는 날이 온다면, 그 목을 베어달라고.
일찍이 나는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기에 지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약속했잖아요?'
말 그대로 발밑부터 무너지려던 그녀를, 나는 그 말 한 마디로 간신히 붙들어놓았다.
이후 몽마들이 얽힌 일을 통해 어찌저찌 그 문제를 해결한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다시 한 번 거론했다.
아직도 자신이 몽마로 전락할 위협이 있다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위로하려던 마음을 한 꺼풀 감추려 들었던 건지.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달리 반박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딱히 그 정도로 각오가 되어있진 않아요."
거기에 비하면, 윤하의 말은 차라리 솔직할 정도였다.
그래. 이게 윤하지.
나도 모르게 안심할 정도로.
허면, 그녀는 어째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윤하는 짐짓 두려움이 깃든 눈동자로 씨익 하며 웃어보였다.
"그러니까, 고용 안 할래요?"
"고용?"
"우리 동생들 앞으로 각각 10억. 그거면 나도 갈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가 맡으려는 건 고작해야 그 정도 보수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윤하가 제안한 건, 말 그대로 그녀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확실히, 황윤하는 강하지 않다.
어쩌다 보니.
혹은, 돈이 필요해서.
고작해야 그런 마음으로 사냥꾼이 되고자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발을 들인 업계에서, 이런 자살 행위에 동참하는 게 두려울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반대로, 황윤하는 강하지 않다.
강하지 않기 때문에, 눈 앞에서 납치당한 친구와 죽으러 가는 담임을 외면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녀가 부탁한 선수금은 딱 그 정도 의미였다.
황윤하는 아는 사람의 죽음도, 만약 자신이 죽으면 홀로 남겨질 동생들도 외면할 수 없다.
때문에.
그녀가 판돈으로 걸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뚱아리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사실엔 한숨이 나왔다.
"윤하야, 선생님은 네가 걱정이다."
"아니, 왜요?!"
"너무 싸잖아."
자기 몸값 못 챙기는 헌터는 이리저리 눈칫밥을 먹기 마련인데.
나도 모르게 그런 감상을 삼키며, 인터넷 뱅킹을 켰다.
아직까진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헌터 협회 경유 계좌를 조작하기 위해서.
혹은, 그 시선을 외면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나 참.'
내가 좋은 담임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큰 걸까.
끄응, 멋쩍은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니 그런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녀석이 있었다.
"엉?"
"내가 좋은 스승은 아니었을 텐데, 같은 표정이나 하고 있길래."
"뭐가 어때서."
"아니, 그냥."
후후, 하고 장난치듯 서아는 짧게 웃었다.
거기에 맞추어, 녹색으로 땋아내린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사실이 무언가 멋쩍어, 나는 그 머리칼을 붙잡고 장난치듯 조금 잡아당겼다.
"아악!!"
"시끄러워.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들 데리고 작당모의나 하고 있던 게 무슨."
"훨씬은 아니거든?!"
"아니, 그게 중요하냐……?"
"애초에, 사부는 그렇게 나쁜 스승이 아니라구."
적어도 나한테는 좋은 스승이었어, 그렇게 말하며 서아는 입꼬리를 비죽 내밀었다.
그 말에 다시 한 번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대로 짧게 고개를 돌렸다.
……뭐,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서아는 내게도 훌륭한 제자 중 한 명이다.
무엇보다, 그 전법은 내게 맞춰 사냥하기 위해 쌓아올린 기술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른 애들은 몰라도 서아에게는 한 번 동행을 제안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그런 말을 꺼내기엔 너무나도 멋없는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허면, 남은 건 한 명 뿐이지만…….
"넌 됐다."
"아니, 왜?!"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아니, 얘는 진짜로 왜 여기 있는 거냐?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가 몬스터만 만나면 미쳐 날뛰는 감각이 없었다 해도 이 평가는 변하지 않았으리라.
우리 쪽 플랜에 따르면 이 녀석은 이후 헌터 협회를 이끌고 대응에 나서야 할 텐데.
"상황이 변했다."
"그러냐."
"음. 더 이상 내 전력을 아끼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아하."
즉, 더 이상 티아마트라는 전력을 놀리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여신 티아마트가 그 힘과 정체를 드러낼 경우.
헌터 협회 자체가 종교 집단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지.
당연히 정부로서는 내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부 쪽 이야기.
이 녀석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닐 텐데, 라고 생각하던 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단순한 짐승 새끼들 특유의 무리 의식이나 영역 표시 때문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티아마트의 영역을 침범한 건 놈들이 처음이니까.
심지어 그 영역 자체를 뒤엎으려 하고 있다면 그야 화도 나겠지.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말이 아니었다.
"그래. 고맙다."
"뭣이라?!"
"이 새끼는 진짜."
기껏 각오하고 그리 말했더니, 펄쩍 하고 뛰어오르는 모습이 영 내키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답다고 평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하며,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보다 떠들썩한 여행이 될 법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