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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48화 (348/371)

〈 348화 〉 사냥꾼

* * *

이런저런 준비를 끝마치니 세상에는 밤이 찾아왔다.

외투를 걸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담당 의사에게 허락을 받은 건 아니었다.

지금부터 정식으로 퇴원 절차를 밟기엔 너무 시간을 잡아먹힐 테니까.

여하간, 내가 기절한 사이 벌써부터 3일이나 되는 시간이 지났다.

흑마술에 동원되는 제물의 가공법.

혹은, 의식을 벌이기 위한 최적의 시간.

여타 조건을 고려할 때, 만에 하나 정말 운이 좋았다 해도 이 쪽에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내외겠지.

마법이란 월령, 달의 기울기에 따라 시기를 잡는 게 보편적이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의 최소 10%가 증발한 셈이다.

더 이상 여유를 부려 좋을 일은 무엇 하나 없으리라.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도시 탈환의 영웅이랍시고 이래저래 영약을 챙겨주기라도 한 걸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절한 상태였던 것 치곤 퍽 괜찮았다.

뭐, 그럭저럭 심각한 부상이었고.

역시 개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포션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정문으로 마저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아, 염병."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 앞.

병원 정문 앞에서, 나는 바로 직전에 보았던 얼굴을 발견했다.

이준구.

오늘 내 병문안을 와 이리저리 들쑤시던 녀석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장 앞에 단 금뱃지가 허망하게 번쩍거렸다.

"국회의원이라는 새끼가 이런 데에 있어도 되는 거냐?"

"응. 지금 너는 중요 인물이니까."

뭐, 그렇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내 전력은 헌터 협회에게도 아쉬운 물건일 테니까.

보호 등의 구실로 사람을 붙인다 한들 이상할 건 하나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한 판 뜰 거냐?"

다만.

문제는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이다.

당연히 협회 쪽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겠지.

놈들로서는 가망 없는 일에 매달리는 대신 내 전력을 유효 활용하고 싶을 테니까.

아니,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 없다.

박우찬이라는 전력이 다수를 상대하는 데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없는 쪽보단 낫다.

적어도 몬스터들의 세상 운운하는 허황된 소리에 투자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물론 내가 알아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만약 놈이 헌터들의 전력 유출을 막을 수 없다 운운하며 덤벼들면 직접 손을 써야 할 테니까.

'승산은, 높진 않겠지.'

무기도 없다.

방어구도 너덜너덜해졌다.

거기에, 상대는 인간.

내가 유리할 요소라고는 무엇 하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준구도 격전 끝에 마력 대다수를 허비했다는 모양이지만…….

반대로, 나는 알고 있다.

이 놈의 확실하게 맛이 간 근성을.

단순히 내 발목만 붙잡고 늘어져도 떨쳐내기는 힘이 들겠지.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그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나.

상관 없었다.

상대는 인간.

다시 말해, 수렵처럼 승산이나 가능성을 재고 덤벼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므로.

"설마."

다음 순간.

녀석이 그렇게 말하며 양 팔을 들어올렸을 때,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한 기분을 삼켰다.

엥, 뭐라고?

"나는 바보가 아니야. 헌터 협회도 마찬가지고."

"허어."

"지금 내가 여기서 너를 막겠다고 하면, 너는 순순히 네 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우리 말에 따를까?"

"설마."

"그렇지?"

그리고 그 경우, 현재 대한민국 최고 전력인 두 명이 정면에서 격돌하게 된다.

헌터 협회 내지 정부로서는 그런 전력 손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단지.

놈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 나는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저렇게 말하는 녀석의 표정엔, 별다른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내 병실에 찾아와 새삼스레 이리저리 못을 박던 녀석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왜?"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챈 듯, 녀석은 능청스레 그리 입을 열었다.

동시에.

침묵으로 답하는 나를 보며, 녀석은 쓰게 웃었다.

"……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알겠지만."

"그러냐."

"응. 그런 식으로 예외를 허락해도 되는 거냐, 애초에 미래를 고려하면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지?"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나 또한 어깨를 좁힐 따름이었다.

물론 사태를 무마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녀석이 적당히 보고를 올리면 정부나 협회는 박우찬이라는 이름 석 자 뒤에 비밀 임무 운운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붙일 수 있으리라.

허나.

지금 녀석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느냐 묻는다면, 나로서는 알기 힘들었다.

단지.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게 있긴 했다.

여하간, 이 놈은 정치가였다.

동시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영웅이기도 했다.

일찍이 한 명의 헌터로서 전선을 쏘다니던 영웅.

누구에게도 늦지 않게 손을 뻗고자 벼락이 되었던 인류 최속의 헌터는, 어느덧 그 몸에 복잡한 쇠사슬을 감고 있었다.

설령 대한민국 정부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납치당한 여학생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 분노가 들끓는다 해도.

놈이 지켜야 할 이름과 사람은, 고작해야 한 명이 아니었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놈을 향해, 나는 시선을 던졌다.

'그걸로 좋냐?'

……대한민국의 헌터들을 위해 정계에 투신한 헌터.

대한민국 사람들의 영웅.

불굴의 사냥꾼은, 그런 내 시선에 마주 답했다.

'이게 좋아.'

그걸로도 좋은 게 아니라, 이게 좋다.

자신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구속을 두고서, 놈은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구속. 누군가에게는 갑갑함. 누군가에게는 현실의 무게.

그렇게 불릴 만한 무언가는, 그러나 녀석에게 있어선 언젠가 사람을 구한 적이 있다는 긍지요 증거였다.

때문에.

영웅은 움직일 수 없다.

마침내 코앞까지 닥친 제 3차 대침공의 위협을 두고, 국민들의 목숨으로 도박을 할 수는 없으니까.

허면?

영웅 아닌 사냥꾼은, 과연 어떨까.

여태까지 쌓아올린 입지.

어쩌면 이제서야 손에 넣은 명성.

안정적이고 목가적인 살육이 가능할 사냥터.

박우찬이라는 사냥꾼은, 그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가.

그런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턱밑을 쓰다듬고 말았다.

'거 참.'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 외투 위로 어느덧 많은 게 쌓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의 홍진처럼 두텁게 쌓인 그것을 털고자 어깨로 손을 올리니, 문득 무언가가 잡혔다.

자연스레 내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 끝에는, 일종의 사원증처럼 내 사진이 찍힌 카드가 달려 있었다.

S랭크 헌터.

헌터 아카데미 교사, 박우찬.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마저 손을 털었다.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헌터 협회에서 발급한 신분증이 목걸이에서 떨어져나왔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어깨는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자, 환불."

휙, 하고 녀석에게 신분증을 던졌다.

녀석은 별다른 말 없이 그 카드를 받아들고, 천천히 거기에 새겨진 글귀를 읽었다.

마저 목걸이를 벗은 나는, 그대로 손에 들린 물건을 적당히 바닥에 내던졌다.

"뒷수습이나 좀 해 줘. 의사 양반, 이런 걸로 면허 취소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냐."

대답은 없었다.

단지.

문득, 밤공기 아래로 무거운 한숨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예전에, 기억해?"

"엉?"

"네가 의뢰 안 받고 날뛴다고 아저씨들한테 혼났던 날."

아니, 그런데 저 새끼는 갑자기 왜 또 그 날 얘기를 하고 지랄이야?

존나 뜬금없는 소리에, 나도 모르는 사이 어처구니없는 기분이 들고 말았다.

설마 그 때처럼 민폐나 끼칠 생각이냐고 쪼아댈 생각은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녀석은 정말로 별 말 아니었다는 듯 짧게 어깨를 으쓱였다.

동시에, 홍소.

일찍이 저 이야기를 꺼냈던 예은이 관련 사건 당시처럼, 녀석은 실실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래, 가라. 협회 출신 헌터가 아니면 잡을 만한 명분도 없지."

"비 인가 헌터는 전부 협회에 잡아 쳐넣는 게 정부 목적 아니었던가?"

"그러려면 신분 확인해야 하고, 신분 확인하려면 영장 떼야 해."

"그러냐. 존나 귀찮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개 야인인 내가 고려할 문제는 아니었다.

마저 걸음을 옮긴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혼자 가려고?"

"엉?"

"아무리 그래도 죽는 길 떠나보내는 건 조금 그러니까. 후문 쪽으로 가 봐."

녀석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어깨를 좁혔다.

퍽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래."

마지막 교환을 마치고, 나는 적당히 걸음의 방향을 바꿨다.

밤하늘 아래로 울리는 발소리가 가볍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발등을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탁, 탁.

하늘에 종이 울리듯, 구둣굽으로 바닥을 찬다.

점차 가벼워지는 발소리.

허나, 병원의 담벼락을 돌아 정문이 시야 내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뒤에서 멀어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의 손으로 땅에 묶인 벼락은, 추레하기 짝이 없는 야인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발소리는커녕 천둥소리 하나 울리지 않은 채.

무엇이 그리도 부럽고, 무엇이 그리도 그리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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