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 사냥꾼
* * *
"뭐, 그렇게 됐다."
아무래도 내가 뻗어있던 사이에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전투 후의 탈력감 때문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변고 때문인지.
거의 쓰러질 듯 귀환한 나는 그대로 혼절했고, 이윽고 병원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그런 나를 맞이한 건 의사나 간호사 따위가 아닌 이준구 자식이었다.
놈은 퍽 태연자약한 태도로 설명을 거듭했다.
다른 학생들도 무사히 귀환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
다들 내 병문안을 오려다가 의사들에게 잡혀갔다는 점.
나를 제외하면 진즉에 회복되긴 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입원시켰다는 점.
도시의 탈환도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는 점.
신세계 질서에 대한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는 점…….
거기까지 이야기한 녀석은, 곧 입을 닫았다.
때문에.
나는 짤막하게 감상평을 토했다.
"과연."
"……그래. 안타깝지만, 자하연 그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
뭐, 그렇겠지.
애초에 손을 쓸 방법도 없을 테니.
녀석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신세계 질서의 계획은 일종의 게릴라.
다시 말해, 하연이의 신병을 확보하고 나서 게이트를 통해 몬스터들의 세계로 도주.
이후 적절한 때를 잡고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소환 의식을 벌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기까지 가면 아무래도 손을 쓰기 힘든 법.
하연이의 행방을 쫓을 방법도, 그럴 만한 여력도 없다.
여하간, 하연이를 탈환당한 지금.
대한민국은 제 3차 대침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대처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나는 만에 하나 그 아가씨를 탈환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경우, 전력으로 방지할 거야."
"허어."
"알고 있겠지만, 지금 이 나라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으니까."
"아니, 누가 뭐랬냐?"
나도 모르게 어처구니없는 반응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막말로, 지금 이준구가 이야기하는 건 실로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지금 이 대한민국엔 게이트 바깥 세상을 탐사할 만한 기술이 없다.
아니, 어느 나라라 해도 마찬가지겠지.
세상 모든 나라는 두 번의 대침공을 견디는 데에도 국력을 총동원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세 번째 대침공의 가능성이 눈 앞까지 다가온 지금.
남은 국력을 쏟아 게이트 탐사에 진력하자는 건단순한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일국의 운명과 시민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내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박.
승산 하나 없는 요행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신세계 질서의 의식이 방해받길 바라는 마음과 얼마나 다를까.
정치가로서는 실로 당연한 판단이었다.
당연히 나로서는 구태여 녀석을 타박할 이유도 없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거듭한 뒤, 손을 휘휘 젓는다.
"할 말 끝났냐? 끝났으면 가라, 나 좀 자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던 녀석은, 곧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섰다.
몸조리 잘 하라는 말과 함께 병실을 떠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 감자를 날린다.
'나 참.'
동시에, 생각한다.
정말로 끝났군.
하연이는 납치당했다.
신세계 질서는 해체되었다.
몬스터들은 뒈졌고, 태시영은 그대로 도주.
이 세상에 남은 재벌이나 정치가들을 돌봐줄 놈 누구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하연이가 납치당한 건 내게 그리 나쁜 일도 아니었다.
여하간, 충분히 실감하지 않았던가.
박우찬은 평화의 시대에 빌붙어 살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대침공이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또 모를까, 헌터와 몬스터라는 개념이 사회 전반까지 침투한 지금.
내게 있어서 세 번째 대침공이 일어나는 건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딱히 내가 모진 마음을 먹고 대침공을 일으킨 게 아니지 않나.
노력했다.
최대한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으레 자주 있는 일처럼.
고작해야 그 뿐이다.
열심히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그가 제 3차 대침공을 막아서는 데에 주력한들, 무어라 탓할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오히려 칭찬하겠지.
자신의 실수를 되갚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십중팔구 그럴듯한 이야기를 주절거리리라.
실제로는 단순히 몬스터를 죽이고 싶을 뿐이라는 걸 모르고.
바보같은 놈들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곧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로 바보같은 건 누군지, 원.'
마치 누구 들으라는 듯, 방금 전부터 반복해 스스로를 달래는 말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정말로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이 떳떳하다면, 어째서 스스로에게 그런 변명을 주워섬기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몬스터들이 점거한 신도시.
개중에서도 한 가운데에 위치한, 협회 본사 최상층.
쨍그랑 하고 산산조각나 흩날리는 창가 너머로, 새파랗게 질린 하늘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하다.
백열하는 태양.
거기에 맞추어 수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던 하늘색은, 어느 순간 새벽 하늘처럼 쪽빛으로 젖었다.
그 색깔을 따라 시선을 흘리면, 눈에 밟히는 건 이미 익숙해진 푸른 머리칼.
구불구불 굽이치는 그 머리칼 너머에서, 선분홍빛 눈동자는 크게 흡뜬 채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한 순간, 시선이 마주친다.
도대체 그녀는 무어라 할까.
이런 상황.
말도 안 되는 막판 뒤집기.
지독히도 무력하게 자신을 빼앗긴 멍청한 담임을 향해, 그녀는 살짝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듯 어떠한 말 하나 자아내지 못하던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였다.
살짝 오므린 입술이 조용히 옆으로 호선을 그리고, 뒤이어 살짝 벌어진 입가에 맞추어 휘파람을 불듯 숨소리가 샌다.
그렇게.
온갖 요란스러운 소리가 회오리치는 가운데.
제 3차 대침공.
신세계 질서의 흉수.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지 못한 어리석은 보호자.
모든 사실을 눈 앞에 두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좋아해요."
……그리고.
그 모습이 고개를 넘어 사라지는 건 바야흐로 순식간이었다.
때문에.
박우찬은 묻지 못했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수많은 소음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을 남길 수 있는 기회.
어쩌면 자신이 그 입모양을 읽지 못했을 경우, 한낱 휘파람이 되어 흩날릴 마지막 말.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도와달라는 말 대신,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남긴 이유가 무엇인지.
그 눈동자 안에 깃든 비장함은 무엇이었는지.
도대체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생각을 한 탓에, 그런 말을 남기게 된 건지.
아니.
'젠장.'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계집애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 마지막 순간에 그런 말을 남긴 걸까.
신세계 질서가 자신을 잡아가면 좋은 대우는 받기 힘들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솟구치는 불안감을 억누른 채.
도와달라는 말 대신 그런 말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작별을 고하듯, 그런 처연한 각오가 배어나왔던 이유는.
……내뱉은 한숨은, 길고 무겁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 계집애가 마지막 순간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여하간, 그 상황에서 자신들과 태시영이 맞부딪히면 그 결과도 뻔할 따름이다.
잔뜩 지친 제자들 몇 명이 있다고 해서 뒤엎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만약 우리들이 태시영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한들, 그 결과는 뻔했겠지.
최소 절반은 죽는다.
그리고 그 절반 안에 나는 십중팔구 들어갔을 테고.
태시영이 붙잡히는 건 그 다음이 되리라.
때문에.
그 계집애는 그리 결론을 내렸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자신의 불안감을 토로하는 대신,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은 뒤 끌려간 것이다.
거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정말로 수도 없이 많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나.
태시영과 부딪히면 십중팔구 뒈져버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할 만큼.
박우찬이라는 사냥꾼은 그토록 못 미더웠나.
내심 스스로에게 그리 중얼거린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냐.'
사실은, 정 반대이리라.
그 계집애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죽음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그 순간.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자신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태시영에게 달려들고 말 거라고.
스스로의 몸상태도 돌보지 않고, 태시영을 억지로 물어뜯을 거라고.
그리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염려했으니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거다.
……하잘것없는 사냥꾼.
단순한 몬스터포비아.
사실대로 말하자면, 별다른 사정 하나 없는 몬스터 알러지.
이 순간에도 지금 이 결과는 내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려 한, 뻔뻔하고도 미련스러운 새끼를.
자하연 그 계집애는, 흔들림 없이 믿고 있었다.
그 사실이, 어쩐지 화가 났다.
지나칠 정도로 끓어오른 뇌수가 척추를 타고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뭐냐.
도대체 나같이 글러먹은 무뢰한, 나 하나만 좋으면 된다는 뻔뻔스러운 개자식의 어딜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거냐.
나는 그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에라이, 씨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병실 옷걸이에 걸린 외투를 집어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