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뒤집기
* * *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하연이 기억하고 있는 건 흐릿하기 짝이 없는 풍경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박우찬이 두 번째 마왕을 쓰러뜨린 직후.
슬쩍 친구들 쪽을 훑어본 자하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이리저리 다치긴 했지만, 심각한 부상은 없음.
심지어 제일 크게 다친 박우찬도 이대로 귀환하면 별다른 문제 없이 치료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윽고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그녀를 덮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안하기도 했다.
물론 여태까지 신세계 질서가 거듭했던 공격도 만만친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대담하게 행동하는 신세계 질서를 보고 불안감을 느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치 이런 행동을 저지르고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전횡하던 신세계 질서의 움직임.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신세계 질서가 최후에 내민 카드, 두 번째 마왕조차 박우찬의 앞에선 볼품없이 쓰러질 뿐이었으니까.
뭐, 쿠쉬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소 억울한 평가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자하연 입장에서 보기엔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신세계 질서의 술수를 경계할 필요도 없다.
이제 신세계 질서가 뒤쫓는 일도, 그 탓에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을 테니까.
박우찬 또한 다칠 필요는 없겠지.
그런 생각 끝에 느껴진 안도감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박우찬과 연이 끊기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다.
허나.
일찍이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다.
조만간 대답을 주겠다고.
너희의 마음을 외면하지는 않겠다고.
그런 말을 들은 이상 초조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자하연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안심하고 마음을 놓은직후.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솟구친 순간,자하연은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한 건지 조금도 깨달을 수 없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건, 주변이 시끄러웠다는 점.
창문이 깨지는 소리. 총성이 작렬하는 소리. 화살이 날아드는 소리.
다양한 소음들이 한 순간 뒤섞이며, 자하연은 마지막에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시야가 멀었다.
새파란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친구들은 쓰러진 상태였고, 오빠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힘이 쭉 빠진 게, 아무래도 달리 손을 쓴 듯 싶었다.
어쩌면 가스에 무언가 탔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남의 일처럼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자하연과 박우찬의 시선이 마주쳤다.
불가능하다.
지금 이 상황을 뒤엎는 건 불가능하다.
자하연은 그렇게 판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때.
자하연에게는 한 순간 여유가 주어졌다.
태시영이 창 밖으로 몸을 던지기 직전.
박우찬을 중심으로 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떠밀려,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도, 뭘?
아니, 어떻게?
애초에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납치당해서 죄송해요?
정신을 빼놓고 있어서 미안해요?
방심했던 모양이에요?
어느 쪽이든, 별달리 의미는 없으리라.
하물며, 다른 말들은 더더욱 마찬가지였다.
도와주세요?
말했다시피, 지금 이 상황을 뒤엎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별다른 의미 하나 없는 공허한 말이 되고 말겠지.
다른 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느려진 시간 속에서, 불현듯 자하연은 깨달았다.
생각하기 싫은 일.
정말로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어쩌면 지금 이게 자신과 오빠 사이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하연은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고민하던 게 바보같을 정도로, 마지막 말은 너무나도 손쉽게 입 밖까지 나왔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박우찬에게 닿은 직후, 자하연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신도시 공략전.
전직 S랭크 헌터만 세 명이 동원된 이 작전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
순전한 결과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 작전을 성공이라 부르는 데에 이견 있는 사람들이 있을 리 없었다.
실제로,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도시나 군부의 피해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으로 억누를 수 있었으니까.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제일 큰 목적이 불만 하나 없이 완벽한 결과였으니까.
두 번째 마왕은 죽음을 맞이했다.
최후의 마신은 바다 밑에 억류당한 상태였고, 이후 그 목을 베어 쓰러뜨릴 수 있었다.
거기에 신도심까지 무사히 탈환.
설령 S랭크 몬스터가 상대라 해도 국운을 걸어야 하는 게 현실.
심지어 상대는 S랭크조차 뛰어넘는 괴물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확실히 이만한 결과는 전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역사서에 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주요 전력인 이준구와 박우찬 또한 머잖아 전선에 복귀할 수 있을 테고.
자연스레 대한민국 언론도 유사 이래 최대의 승전이라며 입방아를 찧고 있을 법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달랐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신도시 공략대 5인.
미귀환자 1인.
평소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가벼운 피해라 여겨도 과언이 아닐 저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제 3차 대침공이 시작된다.
바로 이 나라에서.
그 사실에 사정을 아는 사람들 전원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신세계 질서와 아카데미 사이의 전력 싸움은, 결국 대침공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귀결된다.
만에 하나 대침공이 시작될 경우, 여태까지 그들이 취했던 교전비 따위는 단번에 뒤집히겠지.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이 공중분해당할 가능성이 컸다.
여태까지 대침공이 시작된 나라는 전부 멸망을 면치 못했으니까.
오히려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신세계 질서의 계획에 있어, 자하연은 제물이자 마왕과 한 쌍을 이루는 존재.
모든 독사들과 악마들을 낳았다는 신화 속 존재다.
허면?
자하연을 제대로 '활용'할 경우, 여태까지 신세계 질서가 잃어버린 전력…….
마왕의 일곱 권속이나 두 번째 마왕까지 모조리 부활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아니, 나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날 이후 자하연을 납치한 태시영이 조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탓이다.
몬스터들의 비호를 잃고, 마침내 그 정체가 드러난 신세계 질서가 속속들이 나포당하는 가운데.
태시영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행방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제압에 들어간 신세계 질서 쪽 세력 일부에게서 그들의 계획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시영을 필두로 한 신세계 질서 측 인원들은, 본디 자하연의 신병을 확보하면 게이트 너머로 넘어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단순히 게이트 안에서 도사리고 있겠다는 뜻이 아니다.
정말로 게이트 너머.
게이트라는 관문 너머에 있는몬스터들의 세상으로.
허면, 태시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또한 이해가 갔다.
말 그대로, 태시영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추적이 굼뜬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현실적인 문제다.
두 번의 대침공을 거치며, 인류는 틀림없이 몬스터들의 침공을 저지한 바 있었다.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퇴치하고, 게이트 근처나 너머에 있는 둥지를 공략해 문을 닫는다.
허나.
어느 나라도 게이트 바깥에 있는 몬스터들의 세상에 발을 들인 적은 없었다.
그럴 만한 여유도 이유도 없었던 탓이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태시영의 추적은 걸어두었지만, 그 결과는 기대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 정부는 태시영을 필두로 한 몬스터들이 대한민국 국토 중 어딘가에서 대침공과 관련된 의식을 주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신세계 질서의 본색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과 협력해 방비를 굳히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물론 그조차 대대적으로 드러날 때가 오겠지.
일이 이 지경까지 온 이상, 더는 덮어둘 수 없다.
언젠가 적당한 때를 잡아 대침공의 가능성을 만천하에 공표하게 되리라.
뭐, 다행스럽게도 신세계 질서의 제압 또한 끝을 바라보고 있다.
만약 제 3차 대침공에 대해 발표하게 된다면 그 허물은 신세계 질서가 뒤집어 써야 하겠지.
이번 작전과 관련해 일부 기업을 수사한 결과, 제 3차 대침공을 획책한 자들이 있다는 식으로.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아카데미 쪽에서 잡아둔 전향자들, 달리 말해 증인도 있다.
적어도 이번 전투의 승리자들이 대침공을 막지 못한 역적이 되는 사태는 방지할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때문에.
사회의 겉면에선 화려하기 짝이 없는 승리에 감탄하고, 뒤에선 패배를 전제로 대책을 준비하는 가운데.
이번 승리의 주역인 박우찬이 부상으로 인한 혼절 끝에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 건,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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