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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45화 (345/371)

〈 345화 〉 뒤집기

* * *

"선생님!!"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여태까지 시그니처를 아껴두었던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초부터 시그니처를 사용하지 않았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부적을 지참한 마왕에겐 십중팔구 효과를 보기도 힘들거니와, 돌아가는 길도 문제가 된다.

이번에 우리들이 준비한 작전은 어디까지나 적진까지 파고드는 쪽 뿐.

안 그래도 마왕의 부하들 태반을 상대해야 할 군대에게 헬기라도 띄워달라 부탁할 수는 없었다.

비행형 몬스터들도 있으니.

결국 돌아오기 위해선 우리 쪽에서 길을 뚫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구조를 기다리는 쪽도 방법이겠지만…….

학생들의 피로도.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군의 소모.

이런저런 계산을 거듭하다 귀찮아진 나는, 그대로 허공에 손을 휘적였다.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애병을 잃은 상황에서 발해진 일격이, 도시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몬스터들을 모조리 양단한다.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지금도 그 위력은 변함없음.

도시 전역을 남김없이 장악하고 있던 감각 너머로, 몬스터들의 피륙이 흩날리는 게 느껴졌다.

뭐, 따로 부적을 지참하고 있는 놈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막말로, 우두머리인 마왕까지 당한 판국에 누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겠나.

목숨 하나 건사한 셈 치고 도망칠 게 뻔했다.

온갖 서브컬처 속에서 등장하는 악의 조직이 파국을 맞이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였다.

다들 자기 안위나 챙기는 게 먼저인데 누가 조직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리오.

실제로 뒤늦게 일어선 기척들 또한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밟힐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던 최상층을 노리고 달려들던 몬스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박에 도시 전역의 몬스터들이 참수당하는 상황 속.

부적의 힘을 빌어 부활한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비웠다.

마치 썰물을 앞둔 갯벌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그 뒤를 쫓아 목을 베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었다.

때문에.

몬스터들의 기척이 점차 흐릿해지는 가운데, 나는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몬스터들을 저지하던 탓일까.

녀석들도 꼴이 말은 아니었다.

머리가 부산스럽게 뜬 예은이.

이리저리 긁힌 상처가 남은 지희.

힘이 쭉 빠진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윤하.

마찬가지로, 멋쩍은 듯 조심스레 미소를 짓고 있는 하연이까지.

다들 하나같이 정신을 놓기 직전처럼 보였다.

나름 단기결전을 냈는데도 말이지.

실제로, 학생들의 실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과제였을 테고.

역시 정신적인 부담이 컸던 걸까.

뭐, 그럴 법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들 어깨에 도시의 운명이 걸린 사태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수학여행 당시, 몬스터들의 남하를 저지해야 했을 때는 주변에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자신의 책임을 의식하기 힘들었겠지.

거기에 비해, 지금은 다르다.

자칫 잘못하면 그녀들 네 명의 실수로 인해 도시가 무너지고 내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야 긴장이 될 수밖에.

다행스럽게도, 상황은 끝났다.

허겁지겁 달려오던 학생들은 내 상태를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안심한 듯 삼삼오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괜찮으세요?"

"야, 우리 쓸모없는 질문은 하지 말자. 네 눈엔 이게 지금 괜찮아 보이냐?"

"에이, 이럴 때는 태연한 척 해야죠. 마음아프게시리."

"뻔뻔한 년들."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이윽고 그 뒤를 이어 짤막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사실에 다들 내심 안도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뭐, 말마따나 지금 내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지만.

슬쩍 손을 쥐락펴락하자, 온 몸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통증이 달렸다.

당연한 이야기다.

마왕의 오른팔을 받아내느라 박살이 난 어깨.

그 이후 좌반신을 앞세운 일격은, 솔직히 기절하지 않은 게 나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역겹기도 했고.

다만,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겠지.

주변에 용맥이라도 있었다면 포션이라도 한 병 깠겠지만, 지금은 부작용 쪽이 더 무섭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돌아가는 길엔 녀석들의 신세를 지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슬쩍 하연이 쪽을 돌아보았다.

신세계 질서 최후의 공습.

두 번째 마왕.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엔 여러모로 불안했던 게 사실이지만, 결국 어떻게든 이겨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탓이다.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무어라 입을 열려던 다음 순간.

"엉?"

시야를 이상한 안개가 감쌌다.

*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카데미 측의 주요 전력인 이준구와 박우찬을 무력화하는 일이다.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인 최승준 또한 상당한 전력인 건 사실이지만, 1대 1보다 다수의 상대에 특화되어 있는 바.

결국 두 번째 마왕 내지 최후의 마신과 교전하는 건 저 둘이 되겠지.

개중에서도, 목표인 자하연이 마왕을 치는 자리에 합석한 지금.

쿠쉬의 역할은 박우찬의 힘을 빼는 정도로 충분했다.

물론 이길 수 있다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전투의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상황은 목적대로 흘러갔다.

최후의 반격에 마왕이 돌연 죽음을 맞이했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더더욱 안심할 수 있었다.

이로서 박우찬은 최후의 수단을 잃었다.

허면, 남은 건 정산 뿐이다.

때문에.

사내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구태여 과장스레 행동할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건 찰나.

시간으로 따지면 족히 3초도 되지 않는 시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박우찬이 상대라면, 그 정도는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여하간, 박우찬은 사냥꾼이다.

만일 쿠쉬와 박우찬 사이의 승부를 가린 게 서로의 성격.

다시 말해, 전사와 사냥꾼의 차이라면.

지금 이 순간, 둘 사이의 승부를 가린 건 단 하나.

사냥꾼과 군인의 차이였다.

태시영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헌터라는 인종은 으레 그런 법이었으니까.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생물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

사전에 공략법을 준비하고, 타개할 방법을 즉석에서 찾아낸다.

때문에.

사냥의 쾌감.

목표였던 몬스터의 목을 따고 흥분이 가라앉는 그 시점.

모든 사냥꾼은 더할 나위 없이 무방비해지고 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봐, 이렇게.'

애들 목을 비틀듯 간단한 이야기였다.

발소리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발소리를 낼 필요도 없었다.

여하간, 태시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협회 최상층 안에서 둘 사이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사냥꾼의 단점이다.

상대하는 건 몬스터.

그렇기에.

몬스터에 의한 난입은 경계할지언정, 인간에 의한 난입은 아무래도 의식 밖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물론 거기에는 몇 가지 양념을 쳐둔 게 특히나 유효한 효과를 발휘했다.

예를 들어, 강원도에서 격돌한 이후부터 줄곧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그의 인내심이라거나.

이제 와선 더 이상 아카데미의 누구도 태시영을 경계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이번 움직임은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된다.

학생들과 박우찬이 합류한 그 시점.

태시영은 한 손으로 권총을 뽑아 겨눴다.

반대쪽 손에는 마력 차단용 연막탄.

그가 권총을 애용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명중률이 불안하긴 해도, 반대쪽 손으로 다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메리트가 되고도 남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연막탄이 터지는 시간에 맞추어 태시영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

박우찬과 학생들은 갑자기 눈 앞에 솟구친 안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엉거주춤하게 일어서고 말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태시영이 보기엔 불을 보듯 뻔한 동작이었다.

그러므로.

타앙!!

연막과 동시에 작렬한 총성은, 정확하게 박우찬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애미!!"

그 상황에서도 밑동만 남은 대검을 들어올려 탄환을 막아낸 건 확실히 훌륭한 성과였지만, 딱 거기까지.

태시영은 바보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날아드는 기습이라 하더라도, 만에 하나 실패할 가능성은 있는 법.

허나.

애석하게도, 이번 기습의 목적은 박우찬의 목숨이 아니었다.

노리는 건 머리.

다만, 기습을 방어하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시그니처.'

일사필중一?必中.

태시영의 시그니처는 그런 물건이었으니까.

"뭔, 씹……?!"

박우찬도 그런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안개 너머로 날아드는 총탄을 받아낸 바로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전신의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효과를 알고 있던 태시영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총을 쏘며 연막탄을 던진 직후.

그는 이미 박우찬의 반응조차 확인하지 않고 학생들 사이로 쇄도한 상태였으니까.

후속 처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창 밖에서 날아드는 몬스터들을 저격하던 저격수도, 보조하던 최승준도.

안개에 의해 한 순간 시야가 가린 지금은 곧바로 행동할 수 없을 테니까.

투시를 사용해도 화살이 날아들기엔 시간이 있다.

체온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기예를 부리기엔 자신 또한 인간인 건 마찬가지.

최승준의 능력으로 자신을 순식간에 구분할 방법은 없다.

학생들에게 공격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하려면 화력을 억제할 수밖에 없겠지.

그 정도는 사전에 준비한 한파 방지용 조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남은 건 학생들 뿐.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친 학생들 따위는 이 순간 전혀 방해도 되지 않는다.

한 명 한명이 고랭크 헌터급 실력자?

그렇다 한들, 선수를 빼앗기고 시야를 차단당한 지금.

"꺗?!"

"컥……?!"

재빠르게 후려갈긴 다리가, 단번에 여학생들을 걷어찬다.

동시에.

사전에 확인했던 자하연의 신병을 확보.

당황하는 사이 크게 뒤로 뛴다.

이윽고 자하연 또한 저항하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억누를 수 있다.

무엇보다.

준비한 탈출로를 생각하면, 저항할 때 즈음엔 이미 모든 일이 끝났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던 태시영의 앞머리를, 갑작스레 불어닥친 돌풍이 휘감았다.

'휘유.'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는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다.

물론 태시영도 알고 있었다.

박우찬 일행이 난입할 때 사용했던 폭풍의 마력 결정.

만일 그 물건이 있다면 지금의 안개 정도는 충분히 거둘 수 있겠지.

때문에.

태시영은 가장 먼저 박우찬을 노렸다.

박우찬을 제압할 필요도 있었거니와, 마력 결정을 가진 건 창고가 있는 그 뿐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전에 미리 하나 챙겨뒀었나?!'

만약을 대비해 윤하가 마력 결정을 따로 하나 챙겨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단박에 안개가 걷힌다.

그리고.

"잡아!!"

그제서야 일행들은 상황을 깨달았다.

자하연을 옆구리에 낀 채 뒤로 물러서고 있는 남자.

그 모습이 드러나며, 첨예한 살의가 그를 향한다.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는 태시영.

하지만.

시야 확보로부터 1초.

자하연의 신병은 이미 확보했다.

딱히 천리안 능력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최승준의 간섭은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음 순간, 저 멀리서부터 날아든 건 한 발의 강철 화살이었다.

갑작스레 안개가 발생한 직후.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허둥지둥하는 대신 시위를 당기고 있었던 거겠지.

담긴 마력 또한 농밀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피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시 한 번 더 발을 구르며, 태시영은 날아드는 화살을 어깨 너머로 흘려넘겼다.

당연히 그 정도는 신서아 또한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설령 빗나가더라도 두 번째 화살을 준비하고 있을 테고.

다만.

이번에는 태시영의 준비가 앞섰다.

두 번째 화살 따위는, 날아들 시간조차 없을 테니까.

쨍그랑!!

두 번째 화살이 착탄하기도 전.

태시영의 등이 마침내 반대쪽 창가에 닿았다.

……그래.

방금 전까지 신서아가 몬스터들을 격추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반대쪽.

박우찬과 일행들이 진입한 창가 반대편으로.

당연히, 태시영의 몸은 자유 낙하하기 시작한다.

협회 본사 건물을 사이에 두고, 중력과 바람에 따라서.

허면?

'자,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 테냐, 저격수?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리안 하나만 믿고서.

중력과 바람의 영향까지 모조리 계산해, 건물을 꿰뚫으며 방향이 엇나간 화살로 나를 노릴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설령 가능하다 해도 상관 없다.

진짜배기 저격수라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한 번 멈칫하기 마련이니까.

"아……."

그 정도면 충분했다.

바람이 느껴지는 뒤쪽을 향해, 태시영은 그대로 몸을 던졌다.

한 순간의 망설임을 찢으며, 자유 낙하.

동시에.

무언가 장치를 해두었던 걸까.

그렇게 자유 낙하하던 태시영의 몸이, 쭈우욱 하고 연결된 와이어를 따라 다른 건물 너머로 사라진다.

만에 하나 비행형 몬스터를 동원했을 경우, 저격당할 가능성을 안배한 거겠지.

……모든 사건이 끝났다 생각하고 나서, 3초.

고작해야 3초 사이, 그들은 신세계 질서에게 자하연의 신병을 빼앗기고 말았다.

바야흐로 막판 뒤집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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