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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44화 (344/371)

〈 344화 〉 뒤집기

* * *

정적이 내려앉은 협회 본사 최상층.

쿠쉬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목덜미를 더듬고 있었다.

……이겼다.

승리했다.

틀림없이 이 싸움에서 승기를 쥔 건 자신이건만, 도저히 그런 실감이 들질 않았던 탓이다.

'죽었다.'

방금 전, 알싸하게 등 뒤까지 다가왔던 죽음의 기척을 상기한다.

확실히 방금 전 자신은 죽음을 맞이했다.

거기에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놈의 시그니처를 대비해 받아두었던 부적 덕분.

다시 말해, 고작해야 인간이라고 얕보았던 조직의 힘이 없었다면 패배하는 건 자신이었으리라는 뜻이었다.

물론 평범한 몬스터라면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았겠지.

애초에, 죽음을 실감하면서도 곧바로 몸을 움직인 쿠쉬의 행동력은 박우찬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바.

부적을 사용한 뒤 곧바로 반격을 가한 건 틀림없이 쿠쉬라는 몬스터의 힘이었다.

단지.

죽음이 주는 오싹함을 손수 털어버렸듯이, 쿠쉬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도 없었다.

……먼 옛날.

악신의 세력이 선신에게 한 번 패주했을 당시에도, 쿠쉬는 죽지 않았다.

힘을 잃거나 패배하고 봉인당했을지언정, 죽음을 실감한 적 따위는 없었단 소리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선신의 대전사들로는 두 번째 마왕이 지닌 권능을 돌파하지 못했으니까.

때문에.

지금 쿠쉬가 실감하고 있는 건, 살면서 처음으로 실감한 생사의 경계선.

나면서 마왕으로 태어난 존재가 처음으로 겪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자각이었다.

따라서, 쿠쉬는 자연스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물이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강력한 생명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선 더더욱 선명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만에 하나 박우찬에게도 비슷한 부적이 있었다면?

물론 알고 있다.

이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부적은 괜히 흑마술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누군가 피해를 대신 분담할 사람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니.

즉, 박우찬이 이 부적을 사용하려면 누군가 대신 한 명 죽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박우찬은 이런 부적만큼은 사용하지 않았다.

헌터로서의 전력이라던가, 생명의 가치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운운하기 이전에 단순히 기분이 나빴던 탓이다.

허면?

만약 박우찬이 그조차 감수하고 부적을 사용했다면?

승패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마왕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으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흉한 몰골이로군."

두 번째 마왕, 쿠쉬가 구태여 쓰러진 박우찬 앞까지 걸음을 옮긴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패배의 상흔.

자신에게 새겨진 죽음의 감촉을, 온전한 승리로 씻어내리기 위해서.

여하간, 쿠쉬는 알고 있었다.

대다수 마신들은 조직 운영에 별다른 자질이 없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무작정 날뛰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

허나, 왕의 이름을 얻은 쿠쉬는 달랐다.

여하간, 만에 하나 정말로 첫 번째 마왕이 왕림하사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다면?

대다수 악마들은 그저 수많은 파괴와 살육을 자행할 뿐이겠지.

하지만.

쿠쉬는 알고 있었다.

대침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중간 단계.

혹은,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마왕에 의한 치세를 반석으로 다지기 위해선, 그 기초부터 튼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마왕의 치세를 보좌할 자신에게 패배의 흔적이 남는다는 건 용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의 기분만 따져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왕의 치세에 남은 한 줌의 흠집.

그 흠집은 곧 마왕에 대한 적의와 희망의 등불이 되리라.

마왕은 그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그마한 불씨 하나만으로도 끝없이 타오르는, 선신들의 진영과 싸움을 거듭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쉽게 생각하지는 말거라."

고대의 전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싸움에 나섰다.

현대의 사냥꾼들은 애초부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고 싸움에 나선다.

어느 쪽이든, 이 사냥꾼 또한 죽을 각오는 충분히 다졌겠지.

쿠쉬 또한 마찬가지였다.

막말로, 자신이 졌다면?

눈 앞의 사냥꾼이 자신을 살려두었을까?

설마.

차라리 넝마가 낫겠다 싶은 눈 앞의 모습보다 더욱 비참한 꼴이 되었으리라.

마찬가지였다.

호적수에 대한 찬사는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전서에 대한 경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의를 품고서, 마왕은 검을 휘두르는 존재였다.

"최소한 편하게 보내주마."

때문에.

마왕은 망설임 없이 수복된 왼팔을 들어올렸다.

방심하지는 않았다.

알고 있었다.

눈 앞의 존재가 지닌 시그니처.

인간 측 협력자들이 그토록 닦달하며 부적을 지니게 한 이유.

사냥꾼의 실력을 직접 실감한 지금은, 방심 따위 하지 않으리라.

시그니처를 사용하게 둘 생각은 없다.

지금 저런 몸 상태라면, 애초에 사용하려 한들 이 쪽이 먼저 눈치챌 수 있으리라.

그대로 목을 꺾어버리는 일 또한 간단하겠지.

때문에.

어떠한 방심도 없이, 마왕은 팔을 들어올렸다.

눈 앞의 사냥꾼을 완전히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다음 순간, 폭음이 메아리쳤다.

둘 사이의 전투를 살필 여유 하나 없던 박우찬의 제자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볼 정도로.

그렇게 시선을 돌린 배후.

박우찬의 제자들은, 상반신이 말 그대로 증발한 채 뒤로 쓰러지는 마왕의 모습을 보았다.

*

'뭐라는 거야, 이 병신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박우찬이 눈 앞의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 만한 수단은 실로 한정되어 있었다.

여하간, 놈이 시그니처에 대항해 부적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허면?

막말로, 놈이 부적을 고작해야 하나만 지니고 있다는 확증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도 없다.

저번과 달리, 모든 몬스터에게 부적을 배급할 리는 없으니까.

만에 하나 눈 앞의 마왕이 두 개 이상의 부적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

박우찬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도시 전체에 몬스터가 범람하고 있는 이 상황, 박우찬의 시그니처로는 품 안의 부적을 함께 노릴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왕 한 명을 노렸을 때에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조차 너무나도 선명한 마왕의 기척을 고려하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팔릴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로 강맹한 기척을 내뿜는 몬스터는 박우찬이 보기에도 난생 처음이다.

그리고 처음이라는 건 확증이 없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런 도박에 제자들의 목숨까지 걸고 배팅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번에 필요한 건 실로 단순했다.

즉, 부적의 위치를 간파해 사전에 제거하거나.

혹은,부적 채로 적을 날려버릴 수 있는 초화력.

평소 박우찬의 전법과는 한없이 거리가 있는 요소였다.

박우찬이 창고를 가급적 할애하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막말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니까.

실제로도 정확한 판단이었다.

눈 앞에서 마주한 마왕은, 적어도 품 안에서 부적을 훔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답은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마왕이 인간형이었다는 점.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지나칠 정도로 넓은 공격 범위를 요구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뭐, 협회 건물 최상층을 점거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야 그렇겠지만.

혹시 진짜 모습 운운하며 거체를 드러낼 경우엔 조금 곤란했겠지.

허면, 그 이후는 간단하다.

어디선가 화력을 벌충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있었다.

즉, 박우찬 본인의 애병이다.

애초에 마왕의 권능에 노출되면서 이리저리 뒤틀린 탓일까.

어쩌면 조금만 더 싸움이 지속되었을 경우 통째로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대검.

박우찬은 거기에 집중했다.

평상시라면 무기 자체의 내구성 때문에 시도하기도 힘든 전법.

그렇지만 지금은 마왕의 권능이 무기를 이리저리 뒤틀어 다소 여유도 있었다.

즉.

즉석 연금술에 의한 무기 폭파.

S랭크 몬스터조차 정면에서는 견딜 수 있을 리 없는, 박우찬의 애병을 통째로 사용한 폭탄이다.

할당된 재료를 생각하면, S랭크 몬스터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대검의 크기를 생각하면, 인간형 몬스터에겐 충분히 유효한 공격 수단이 되리라.

심지어 공격의 방아쇠가 되는 건 어디까지나 즉석 연금술.

그렇게 티가 나지도 않겠지.

완벽한 기습이 될 수 있다.

박우찬은 그렇게 판단했다.

때문에, 전투 중에도 소마법으로 자잘한 복선을 깔았다.

저 규모의 소마법 따위는 어디까지나 보조.

마왕에게 그런 인식을 쌓기 위해서.

애초에 이런 소마법 따위는 제대로 된 정보도 없겠지.

박우찬도 신세계 질서를 상대론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그 이자를 징수할 때가 된 셈이었다.

무엇보다.

마왕은 고대의 존재다.

선신의 대전사들과 합을 겨뤘던, 진짜배기 신화 속 대악마.

허면?

당연히 무기를 폭파시킨다는 개념 따위에 익숙할 리도 없다.

신화 속 영웅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십중팔구 양산품이 아니라 전설의 무기일 테니까.

신에게 받은 성검을 폭파시키는 미치광이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나.

그러므로.

기습은 완벽했다.

다소 엉성한 면은 있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무엇보다, 그 엉성함이 이번엔 무기가 된다.

애시당초 마왕의 권능은 박우찬의 예상 이상이었다.

거기에 맞추어 즉석으로 짠 계획이니, 읽힐 리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요소들을 짜맞추어 공략법으로 삼는다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박이었지만…….

사냥꾼에겐 그래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공략 방법이 없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한 가지 염려된 건, 이 공격은 정말로 뒤가 없다는 점.

때문에, 정확하게 직격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마왕이 품 안에 넣어두었을 여타 부적들까지 한번에 날려버릴 수 있도록.

과연 그런 기회가 올까 싶어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던 박우찬이지만…….

"뭐 하는 새끼야?"

갑자기 쓰러진 자기 앞에서 주절주절.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길래 기회를 잡기는 했지만, 도대체 왜 저런 짓거리를 저지른 건지는 의문일 따름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냥꾼인 박우찬에게 고대의 의식이나 왕국 운영의 정통성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덕분에 자신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할 뿐.

단박에 폭발해 손잡이밖에 남지 않은 애병을 옆으로 내던진다.

멋대로 지껄이던 놈이 공격을 위해 왼팔을 들어올린 직후.

박우찬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방패가 될 수 있는 좌반신을 들어올린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또 올 리도 없었으니까.

갑자기 열을 발하는 대검을 보면서, 마왕은 최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박우찬으로선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단지.

슬쩍, 앞으로 시선을 돌린다.

바닥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지막 공격에 앞서, 박우찬이 사용한 소마법.

지형 파괴를 이용한 구멍.

마지막에 계획을 눈치채고 방어 태세를 취하지는 않을까 염려한 마왕에게, 박우찬이 던진 마지막 선물이었다.

마왕으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겠지.

방어를 위해 허겁지겁 팔을 내리던 순간.

갑작스레 오른쪽 발이 밟고 있던 자리가 푹 하고 꺼질 줄이야.

자연스레 마왕의 몸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왼팔을 좌측으로 꺾었다.

당연히 몸은 훤히 드러나게 됐고.

마왕의 상반신이 깔끔하게 날아간 건 바로 그 덕분이었다.

조로아스터 교에 군림하는 두 번째 마왕.

마지막으로 그 목숨을 끊은 건,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일격이 아니라 상대의 발을 자빠뜨리는 소마법이었던 셈이다.

그 사실에 모종의 아이러니를 느끼는 대신, 박우찬은 앓는 소리를 냈다.

무대가 협회 본사였던 탓일까.

주변에 빨아들일 용맥도 없고, 부상도 만만치 않고.

"존나 아프네."

어느덧 삼십줄인 박우찬의 입에선 죽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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