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어금니의 왕
* * *
'염병.'
다시 한 번 벌어진 간격을 살피며,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효과는 있었다.
사전에 준비한 참마의 즙.
어렵게 구한 성스러운 불꽃의 불씨.
어느 쪽이든, 조로아스터 교의 악마가 상대라면 충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으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대검을 휘감은 수액과 마력이 마왕의 육체를 분해하고, 깊은 상흔을 아로새긴다.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였다.
별다른 문제 없이 마력을 퍼부어 상처를 재생하는 마왕.
그 모습을 보며, 박우찬은 미간을 좁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왕이 너무 강했던 탓에 구비한 물건들도 효과를 못 봤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애초에 종족 단위의 약점이라는 건 그리 손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예를 들어, 용살의 단검은 보다 격 높은 용이 상대일수록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
몬스터 내부에 잠재된 용이라는 성질이 한층 더 강하게 발현된 탓이다.
뭐, 마력을 소비해 재생하거나 방어력을 앞세우면 피해를 최대한 완화할 수는 있겠지.
다만.
어느 쪽이든, 겉으로 보기에 멀쩡할 뿐 실제로는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질 좋은 성수 등을 구해 쓰는 셈이고.
눈 앞의 마왕은 달랐다.
단순히 마력으로 뭉개고 들어갔을 뿐이라면 오히려 눈에 밟혔겠지.
따로 준비한 물건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효력이 없지는 않지만, 성능 자체가 저하된 느낌.
박우찬의 예상대로였다.
'역시 그런 쪽이군.'
쿠쉬의 서에 이르길, 첫 번째 마왕을 봉인한 영웅은 마저 두 번째 마왕을 쓰러뜨리고자 군을 일으켰다.
하지만.
마왕의 본래 모습을 상대로도 효력을 발휘했던 선신의 가호가 이번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마왕을 봉인한 영웅조차 쿠쉬와의 전투에서 패주.
이후 자신의 휘하에 속한 또 다른 영웅과 함께 힘을 합쳐 쿠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놈이 다루는 권능도 필시 그 일환이겠지.
최후의 마신이 지닌 권능과 마찬가지로, 선신의 예언 앞에선 무색한 힘.
첫 번째 마왕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실제로는 악신이 빚은 회심의 결과물.
즉.
'뒤틀기인가.'
권선징악.
선인선과. 악인악과.
혹은, 인과응보.
조로아스터 교의 근간에 깔린 개념을 뒤흔드는 힘.
악신 진영에 속한 존재가 지닌 근본적인 약점을 부정하는 권능이다.
예를 들면,악마는 성신들의 힘에 약하다.
여기에 더해,마신이 발휘하는 공격은 천사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개념을 뒤집어, 성스러운 힘에 내성을.
나아가서는, 성스러운 존재를 대상으로 우위를 점하는 능력.
페르시아의 신화관을 생각하면 바야흐로 절대적인 성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니.'
그 이상이다.
박우찬은 슬쩍 자신의 손에 들린 애병을 내려다보았다.
대검이라기보다는 거검.
차라리 철괴에 가까운 강철 덩어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박우찬이 취한 행동이라고는 공격을 몇 번 받아넘긴 게 전부.
그조차 무기를 부러뜨릴 정도는 아니었거늘.
허면?
결론을 내리는 건 빨랐다.
'권능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가.'
박우찬이 마왕의 공격을 무사히 받아넘겼다.
그 사실 자체를 비튼다.
결과적으로, 마왕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넘겼다는 결과에 흠결이 생긴다.
이로 인해 발생한 충격.
말하자면 권능의 여파가 무기에 축적된 탓이리라.
공방일체라고 할까.
어느 쪽이든, 상대하기 버거운 능력이다.
만에 하나 공격을 완전히 방어하는 데에 성공한다 해도, 그 결과 자체에 뒤틀림이 생긴다.
즉, 어느 정도 데미지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겠지.
썩 귀찮은 일이었다.
'눈치챘나.'
반대로 마왕은 그런 박우찬의 모습에 혀를 차고 싶은 기분이었다.
본격적으로 권능을 사용한 건 고작해야 두 합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사냥꾼은 벌써부터 계산을 마친 듯 별다른 동요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 무기의 일그러짐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닐 테고.
즉, 자신에 대한 사전 조사도 완벽했다는 뜻이겠지.
설령 이 권능을 직접 목도한 건 처음이더라도, 그 내용을 추론하기 위해선 정보가 있어야 할 테니.
문득 마왕은 언젠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예. 두 번째 마왕님께서 나서야만 할 강적이라고, 그리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자신을 소환했던 최후의 마신.
어쩌면세 번째 마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일컬어진 대악마는 마왕의 물음에 그리 답했다.
인간 협력자 따위의 부탁을 들어 자신을 걸음하도록 했다는 방자함.
지나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터트리던 쿠쉬를 향해, 마신은 감히 그렇게 단언한 적이 있었다.
'확실히.'
그리고.
마왕은 혀를 내둘렀다.
실감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
증오의 마신, 케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눈 앞의 사냥꾼은 자신이 전력으로 상대해야 할 존재였으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조차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조로아스터 교의 천칭을 기울이는 권능을 지닌 마왕은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의 전력은 거의 평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반대로 말하자면, 아주 조금이나마 차이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차이만큼, 전장의 균형은 사냥꾼 쪽을 향해 기울어진 상태였다.
눈 앞의 사냥꾼은, 조로아스터 교의 두 번째 마왕보다 강하다.
세 번째 마왕이 될 수 있었을 최후의 마신보다도 더.
정말로 미세하지만 확실한 차이.
그 사실을 눈치챈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고소를 머금고 말았다.
……전설에서도 언급되듯, 쿠쉬는 지독히도 오만한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악마들의 왕이 될 수 있을 만큼 그 오만함에 어울리는 힘 또한 지니고 있었으니.
실제로, 최후에 그를 파멸시킨 건 위대한 선신의 대전사들 따위가 아니었다.
전하기를, 폭군으로 군림하며 스스로를 신이라 자칭하던 어금니의 왕을 무릎꿇린 건 이름 하나 없는 현자라고 하던가.
때문에.
쿠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눈 앞의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면 대다수 몬스터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기 마련이다.
짐승이기에 더더욱.
그러나.
마왕이라 불리던 사내는 그 사실에 호승심을 느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눈 앞에 두고도, 스스로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
바야흐로 마왕에 어울리는 기개를 두르고서, 쿠쉬는 다시 한 번 히죽 하고 웃었다.
지나칠 정도로 난폭하던 쿠쉬를 제압하고자 나선 현자의 앞에서 그랬듯이.
다음 순간.
대기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왕이 달려들었다.
분명히 전장의 천칭은 미세하게 박우찬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다만.
사냥꾼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고작해야 그 정도 차이는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쿠쉬는 사고를 바꿨다.
물러선다. 퇴각한다. 후퇴한다.
그런 술수는 고려할 필요도 없다.
방금 전처럼 물러서려 한들 단순한 자충수가 될 뿐이겠지.
마왕인 쿠쉬가 전력을 다해도 눈 앞의 사냥꾼보다 조금 열세.
허면, 보다 조금이라도 차이를 좁히고자 달려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 앞으로.
단신으로 일개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
그조차 넉넉하게 능가하는 힘이, 박우찬을 향해 해방되었다.
목표는 단 하나.
저 목을 물어뜯는다!!
'새끼.'
당연한 이야기지만, 쿠쉬의 생각과 달리 박우찬도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박우찬의 감각은 눈 앞의 마왕이 지닌 권능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박우찬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그마한 우위도,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 그보다 이미 뒤집혔고.
여하간, 지금 이 상황이라면 시그니처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도대체 누구야?부작용이 있어도 상관 없으니까 무조건 일격필살이 좋다고 생각한 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불평을 삼키며, 박우찬은 대검을 쥔 채 마주 달려들었다.
충돌.
지나칠 정도로 팽팽한 힘의 격돌이었기 때문일까.
둘 사이에는어떠한 굉음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맞부딪혀 격돌한 힘이,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주변에 남김없이 힘을 흩뿌리는 초보들.
자그마한 힘조차 갈무리해 사용하는 고수들.
그조차 능가해, 서로의 힘이 완전한 길항을 이루는 지금 이 순간.
협회 최상층에한 순간이나마 힘의 진공 상태가 찾아왔다.
물론 실로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검을 찌르며 마왕의 돌진을 저지한 박우찬이, 그대로 손목을 튕긴다.
팅!
너무나도 가벼운 소리.
마치 동전을 튕기는 듯한 동작과 함께, 솟구친 칼날이 마왕의 육체를 튕겨냈다.
동시에.
그 반동을 살려 대검을 거꾸로 쥔 박우찬은 그대로 칼등을 휘둘렀다.
당연히 칼등엔 날을 세우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칼끝에 가까운 부분.
마치 초승달처럼 휜 부분엔 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차수.
한 번 공방을 나눈 직후.
박우찬은 곧바로 마왕의 목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뒤틀린 마왕의 육체가 허우적거리는 사이, 달빛을 닮은 칼날이 그 목덜미를 노린다.
마치 고대의 처형인처럼 대검의 날이 맞닿은 순간.
콰드득!!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정답이었다.
마왕의 뒤틀린 육체를 꿰뚫고 솟구친 말뚝.
아니, 뼈가 마치 창날처럼 박우찬을 향해 작렬했기 때문이다.
"너무 뻔한 수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긴."
지나칠 정도로 짙은 살의에 한 바퀴 돌아 침착해지기라도 한 걸까.
박우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마왕의 지적을 수긍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대검의 무게중심을 고려하면, 찌르기를 오래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
설령 헌터의 근력을 앞세운다 한들 비효율적인 동작이 될 뿐이다.
허면, 마왕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무언가 수작을 부리겠구나 예측할 수 있었으리라.
역시 날빌은 한 번이나 먹히면 다행이지, 두세 번 연거푸 시도할 건 아닌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삼키며, 박우찬은 대검을 고쳐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리에 앞서 박우찬 쪽이 먼저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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