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 어금니의 왕
* * *
그 시각.
박우찬은 두 번째 마왕을 상대로 싸움을 거듭하고 있었다.
무대는 여전히 협회 건물 최상층.
다시 말해, 티아마트의 거처다.
방 하나 없이 탁 트인 최상층은 상당히 넓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득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적어도 무기를 휘두르다 벽에 부딪힐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한민국의 국토조차 비좁을 힘의 격류는, 그러나끊임없이 최상층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때문에.
'호.'
마왕도 내심 탄복을 금치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대와 달리 그에게 이 최상층을 고집할 까닭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몬스터들의 지원을 고려하면 건물을 벗어나는 게 유리하겠지.
즉, 지금 이 자리에 마왕을 붙들어놓고자 하는 건 어디까지나 박우찬 쪽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외부에서 창가를 통해 진입하려는 몬스터들은 신서아에게 맡긴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몬스터는 학생들에게 맡긴다.
만약 건물 자체를 뒤엎으려는 녀석들이 나온다면 최승준이 제압한다.
지금 이 균형이 무너지면 제일 위험한 건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으니까.
제자들이 맡은 역할은 어디까지나 박우찬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방해하는 일.
그조차 한계는 명확했다.
입구가 계단 하나뿐인 지금도버거운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만에 하나 상황이 엇나갈 경우, 최승준이 손을 움직여야겠지.
헌데, 여기서 무대가 허허벌판으로 바뀐다면?
당연히 제자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즉, 박우찬으로선 여기에 마왕을 묶어두고 싶을 따름이리라.
문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고.
마왕이 감탄한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토록 어려운 일을 박우찬은 여태까지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흥미를 느낀 마왕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른다.
쿠쉬가 발산한 힘.
방치하면 말 그대로 건물을 두동강내고 도시를 무너뜨릴 일격이, 맥없이 와해된다.
미친 듯이 날뛰는 힘을 앞두고 한 걸음 전진한 박우찬 때문이었다.
널찍한 가로 베기.
협회 건물 최상층은 물론이요, 가만히 있었다면 학생들의 목도 하늘을 수놓게 될 일격.
거기에 맞서, 박우찬은 손에 쥔 애병을 휘둘렀다.
눈 앞의 공세를 정면으로 받아낼 생각은 아니었다.
헌터 협회 기준으로도 S랭크.
솔직히 말하자면 그조차 뛰어넘는 영역에 발을 들인 둘의 싸움은 단순한 여파만으로도 지나치게 강렬했다.
평범하게 맞서다간 이 나라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기게 되겠지.
때문에.
힘을 겨루는 대신, 오히려 순응한다.
온전히 사용하려면 따로 회전을 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바로 대검이다.
그토록 우악스러운 무기를 억지로 공세 사이에 끼워 넣는다.
동시에.
핑그르르르!!
다음 순간, 마왕이 목격한 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대검의 날이었다.
쿠쉬의 일격을 받아넘기고, 역으로 이용한다.
대검에 필요한 회전을 대신하기 위해서.
장대하기 짝이 없던 마왕의 힘이 흩어지고, 그 기세를 타 곧바로 목을 노리는 칼날.
당연히 마왕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잔뜩 뒤틀린 팔을 휘두르며 대검의 회전에 항거한다.
그리고.
우두둑, 섬찟한 소리가 들렸다.
"흠?!"
마왕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기성이 튀어나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역겨운 좌반신.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밑에서 꿈틀대던 육체를 통해 공격을 받아낸 직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날을 들이밀던 대검이 부드럽게 회전한 탓이다.
그 밑에서 느껴지는 감각 때문이었다.
'뼈인가!'
넉넉한 옷감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은 단순한 살덩어리가 아니었다.
딱딱하기 짝이 없는 골격.
피부 밑으로 흉측한 뼈다귀가 튀어나온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때문에.
빙글, 하고 우악스러운 뼈를 중심으로 대검이 뒤집힌다.
단번에 뼈를 꺾기 어렵다 깨달은 탓일까?
공교롭게도,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우드득!!
숫제 짐승이 물어뜯는 듯했다.
마력을 머금은 마왕의 뼈는, 박우찬의 애병이 할퀴어도 잔금 하나 내는 게 고작.
허나.
정면으로 베어버릴 수 없다면, 깎아 부술 뿐이다.
어느덧 칼등에 부착된 톱날과 맞물린 마왕의 육체가 섬뜩한 비명을 내지른다.
물론 톱질이란 한두 번 삐걱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단지.
헌터인 박우찬에겐 상관 없는 일이었다.
막말로, 박우찬이 애병에 톱날을 단 건 무언가 무기에 대한 고집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이 배운 기술을 허비하는 게 아까웠을 뿐.
그리고.
실로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물질은 없다.
날붙이에 강하고 타격엔 무적이며 꿰뚫는 공격도 아랑곳하지 않는, 꿈의 신물질?
만약 그런 물건이 있었다면 당장 자신부터 장비에 사용했겠지.
아니, 어쩌면 인류가 대침공을 극복하지 못했을지도.
반대로 말하자면, 대다수 몬스터들의 외피는 으레 장단점이 공존하는 법이었다.
예를 들어, 전신의 회전까지 더한 대검을 별다른 문제 없이 막아낼 수 있다면?
십중팔구 톱날엔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한 강도 내지 경도 문제다.
허면, 남은 건 실로 간단한 일.
헌터 특유의 근력을 앞세워 억지로 톱날을 켠다.
때문에.
"흡!!"
다음 순간, 마왕은 자신의 좌반신이 단번에 깎여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 차라리 그 정도면 귀여운 축이겠지.
마치 금속을 손으로 쥐어 뜯어낸 듯한 단면이었다.
순수한 악력으로 금속을 찢어버린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은 섬찟함과 함께, 마왕의 육체가 피를 토한다.
지나칠 정도로 난폭한 공격에, 마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후퇴?
설마.
단순히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물론 박우찬은 그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한 걸음.
마왕이 왼쪽 발을 물린 순간, 정확히 오른쪽 발을 내딛는다.
덕분에 마왕은 한 순간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걸음이 맞물린다.
쿠쉬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걸음 물러섰는데도 오히려 거리가 좁혀진 듯 느껴질 따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마왕 또한 이런 잔재주에는 잔뼈가 굵은 몸.
벌 수 있는 시간은 실로 찰나에 지나지 않겠지.
충분했다.
이처럼 소소한 잔재주는 본디 하나하나쌓아올려야 하는 법이니까.
마왕의 망설임을 딛고, 박우찬이 거리를 좁힌다.
이윽고, 시야의 사각에서 충격이 작렬했다.
뻐억!!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왕의 시야가 흔들린다.
'턱……!!'
마왕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방금 전까지 대검을 휘두르던 사냥꾼의 자세를 고려하면, 지금 가할 수 있는 공격은 딱 그 정도겠지.
십중팔구 어퍼컷.
마왕은 그렇게 추론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회전이 멎은 대검을 뒤로 늘어뜨린 박우찬.
여기에 맞추어 시소처럼 솟구친 손잡이 끝의 무게추가 정확히 마왕의 턱을 가격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우찬으로선 몬스터 따위와 접촉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동시에.
내딛지 않은 왼쪽 발에 힘을 주며 땅을 박찬다.
마왕을 밀어붙이기 위한 동작, 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마왕은 자신의 눈 앞에서 번뜩이는 강철의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방금 전, 박우찬이 취한 동작은 압박을 위한 공세 따위가 아니었다.
죽여버리기 위한 일격이다.
대지를 박차며 솟구친 왼쪽 발꿈치로 칼끝을 차올린다.
거기에 맞추어 다시 한 번 튀어오르는 대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 늘어졌던 대검이, 다시 한 번 하늘을 겨눈다.
여기에 맞추어, 박우찬은 복잡하게 손을 놀렸다.
한 순간 하늘을 겨누었던 대검이, 마치 단두대처럼 추락한다.
노리는 건 마왕의 정수리.
발꿈치의 힘을 싣고, 손목의 회전을 더한 급조 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대로 허용한다면 마왕의 목숨을 취하기에 부족함 없는 위력이 담겨 있었다.
"이런."
물론 마왕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던 바.
때문에.
마왕은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도시를 노린다거나, 저 멀리 있는 학생들의 목을 취하려 한다거나.
눈 앞의 사냥꾼은 그런 식으로 농락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지부진하게 다른 쪽을 노리면서 싸우는 건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겠지.
마왕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화려한 필살기 따위는 없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포지션일 시그니처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지금.
박우찬의 전법은 평소 이상으로 세밀해진 상태였다.
애시당초 시그니처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처럼 천천히 이점을 쌓아올리면 충분하다.
그렇게 벌어들인 점수가 점점 두드러지기 시작할 때.
상대는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목이 날아가리라.
전투라기보단 차라리 젠가에 가까운 전법.
지나치게 우악스러운 무기를 다루는 주제에 꽤나 섬세한 방식이라 평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마왕은 확신할 수 있었다.
쿠쉬는 틀림없이 강하다.
설령 S랭크 헌터라 해도 감히 그 힘을 넘볼 수는 없겠지.
그리고.
눈 앞의 사냥꾼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한 S랭크 몬스터 따위는 저 앞에서 뼈도 추스리지 못하리라.
망설임 없이 뒤로 몸을 던진다.
방금 전에 비하면 한층 노골적인 후퇴.
이어, 양 팔로 머리를 감싸고 마력을 두른다.
팔과 다리.
어느 쪽이든 남김없이 사용한 지금, 박우찬으로서도 마왕의 움직임을 봉할 수는 없었다.
콰드득!!
결과적으로, 공격은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검이 마왕의 팔을 내려친다.
하지만.
거기에 맞추어 뒤로 물러선 움직임과 함께, 그 위력이 분산당한 대검.
이윽고 허무하게 미끄러지는 강철의 감촉과 함께,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혀를 차고 말았다.
한 순간.
실로 한 순간 사이에 이루어진 공방 끝에, 둘 사이에는 다시금 처음과 같은거리가 생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