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 증오의 마신
* * *
솔직히 말하자면, 마신의 노림수를 눈치채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른 점은 둘째치더라도, 일단 바다가 무대였으니까.
즉.
'질식인가……!'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준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하간, 작금의 이준구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가장 먼저 그 전의를 꺾어야 할 필요가 있다.
허나, 벼락의 힘을 역으로 이용한 카운터에 직격해도 멀쩡하게 반격을 시도할 정도니.
도대체 무슨 수로 쓰러뜨릴 수 있는 건지 마신조차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바야흐로 인류 최강의 영웅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지.
무엇보다, 저 증오의 마신조차 스스로의 승산을 얼추 5할 남짓이라 추산한 건 농담이 아니다.
허면?
자연스레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즉,이준구의 의식을 끊는다.
불사에 가까운 이준구의 재생력은 어디까지나 그 정신에서 나오는 힘이다.
다시 말해, 의식만 끊을 수 있다면 이준구를 쓰러뜨리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다만.
이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턱을 노리는 공격 따위로 승부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뭐,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
문제는 육체에 남은 반응 쪽이다.
대다수 생물들은 머리가 잘려도 곧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어느 정도 육체적 반응이 남아있기 마련이니.
그리고 이준구는 고작해야 그 정도 반응만으로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방금 전 공방 도중 머리를 날려버리며 확인한 점이니 틀림없는 이야기였다.
저래서야 근성 운운하기 이전에 오히려 징그러울 정도다.
반사적으로 저런 기술을 구사할 수 있을 만큼 연습을 거듭했다는 뜻이니까.
애시당초 연습이 가능할 법한 기술도 아니건만.
증오의 마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차고 말았다.
때문에.
다음으로 증오의 마신이 고른 수단은 보다 노골적인 방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장기적으로 의식을 끊는다.
설령 한 순간 남은 의식을 붙잡아 회복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도록.
요컨대, 호흡기 압박.
말 그대로 질식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준구의 시그니처가 문제였다.
막말로, 지금 이준구의 목을 조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이준구의 힘을 뛰어넘는 근력.
전격 계통 능력 보유자인 본인의 내성조차 뛰어넘는 벼락을 견딜 수 있는 육체.
거기에, 우레의 뒤를 점할 수 있는 속도.
다시 말해, 이준구보다 명백히 강하지 않는 한 시도할 수조차 없다는 소리였다.
마신이 바다를 무대로 선택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헌터 또한 생물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일반적인 생명체보다는 강인하다 해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요한 법.
요컨대, 물에 빠진 이상 머잖아 익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마력의 힘을 빌리면 전문 잠수부 이상으로 긴 시간을 버틸 수도 있겠지.
아니, 그 전에 어지간하면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고.
다만.
헌터들의 마력 또한 무한한 건 아니다.
마신의 노림수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첨벙!!
이준구의 시야 너머.
점차 멀어지던 해수면이 일렁거리며, 마신이 바다로 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등 뒤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던 그림자 날개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그 대신이라는 듯 팔다리에 돋아난 지느러미는 숫제 상어를 닮았다.
거기에, 목덜미 근처에서 꿀럭이는 바닷물까지.
십중팔구 아가미를 재현하고 있으리라.
'편리하기도 하지.'
한 걸음 앞서 바다 밑에 쳐박힌 이준구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신의 노림수는 불을 보듯 뻔했다.
번개는 매질에 따라 그 속도가 달라지는 법.
즉, 물에 빠진 지금 이준구는 인류 최속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헌터들이 반응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문제는 상대 또한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리라.
증오의 마신, 케셈.
단순한 힘만으로도 여타 마신들 이상, 추정 S랭크에 가까운 몬스터.
여기에 실질적으로 쓰러뜨릴 방법이 없는 불사 능력까지.
말마따나 인류 최강인 이준구조차 고전을 면하기 힘든 상대였다.
진짜배기 뇌속에 맞추어 카운터를 날리는 괴물이니까.
당연히 바다 속에서 싸움을 벌이면 이준구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마신의 노림수도 거기에 있겠지.
즉, 이준구를 바다 밑에 쳐박고 탈출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셈이다.
별도로 호흡 수단을 마련한 지금, 장기전은 마신에게 유리할 뿐이니.
……주먹이 부딪힌다.
수면 밑에서 오가는 난타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준구가 명백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던 전황이, 점차 기울기 시작한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해저의 압력 따위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보다 무거운 몸 또한 마찬가지.
적어도 이준구에게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초인들 사이의 싸움이라면 그조차 치명적인 빈틈이 되기 마련이다.
깊은 바다.
햇볕조차 들지 않는 물 밑에서, 소리 없는 격돌이 이어진다.
주먹. 발. 박치기.
말 그대로 먹잇감을 찾은 상어처럼, 마신은 해수면을 향해 솟구치려는 이준구를 붙들고자 사지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런 마신의 공세는 점차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준구의 몸에 상처가 새겨지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눈에 밟힐 정도였다.
'이대로 제압한다!'
이긴다.
불사와 불굴 사이에 벌어진 이 싸움은, 자신의 승리로 끝을 맺겠다!
물론 이번 작전에서 그들의 승리는 필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구태여 패배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허면 이기겠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친 전사와의 싸움을, 흔들림 없는 승리로 장식하리라!
'젠장.'
평소 이상으로 답답한 상황 속에서, 이준구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이 닥친 이유를 되짚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마신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 순간.
이준구는 망설이고 말았다.
너무나도 손쉽게 상대를 바다까지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신 또한 바다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머뭇거린 점도 있겠지.
마신이 주도권을 쥐게 된 건 바로 그 탓이었다.
이준구와 달리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야 마신 쪽에서도 이준구의 목적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구보다 먼저 승기를 붙잡고자 강수를 둔 셈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은 실로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콰득!!
해수면 밑으로 마신의 핏물이 흩날렸다.
'흠?!'
당연히 이런 결말 또한 자명한 흐름이었다.
이준구는 마신의 수를 경계했다.
마신은 그 대신 이준구를 제압하는 걸 우선으로 삼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마신은 이준구의 수를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즉, 바다 밑에서 튀어나와 마신의 팔을 물어뜯은 해룡이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짐작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떨어져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떨어질 리도 없고.
결국 마신은 주먹을 휘둘러 바다뱀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다음 순간, 재생이 시작되었다.
'불사, 인가?!'
전율이 달린다.
그래.
마신은 몰랐다.
증오의 마신, 케셈의 노림수는 바다 그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마신은 바다라면 어디든 좋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서해에 당도하기 전 동해 쪽에서 승부를 볼 수도 있었겠지.
이준구는 달랐다.
사냥꾼이 무대로 선택한 건 서해안.
그리고 당연히 동해에서 굳이 서해까지 마신을 날려버린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노림수가 바로 저 몬스터였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략법이 난해한 불사신 몬스터는 드문 게 아니다.
물론 증오의 마신 수준으로 강력한 녀석은 이준구도 난생 처음이었지만.
제압할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다.
그런 몬스터들은 대침공 초기부터 적잖게 존재했다.
서해의 이 장소는 바로 그런 몬스터들을 제압하기 위해 준비된 장소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국이 분열되기 전 몰래 그런 몬스터들을 매립하던 장소라고 해야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또한 그런 장소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대한민국은 중국이 남긴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불사 능력 또한 마법적인 규칙 아래 존재하는 현상.
즉, 마력을 소비한다는 뜻이다.
요컨대, 불사 능력을 공략하지 못하더라도 해결책은 있다.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두들겨패고, 바다나 화산 속에 쳐넣는다.
허면, 불사 능력을 유지할 최소한의 마력조차 잃은 몬스터는 가사 상태에 빠진다.
휴식을 취하며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회복한 마력도 바다의 압력이나 용암의 열기를 견디기 위해 소진당하는 판국이니.
말하자면 지금 이 장소는 몬스터들을 위해 준비된 감옥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형기는 이 밑에 있는 몬스터들을 참살할 수 있는 헌터가 준비될 때까지.
요컨대, 지금 이 바다에 잠든 몬스터들은 자그마치 3년 전.
신세계 질서가 잠적한 박우찬을 끌어내기 전까지 꾸준히 퇴적된 녀석들이었다.
여하간, 박우찬이 서해안까지방문해 시그니처를 사용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여유가 없었으니까.
당연히 그 이유 또한 신세계 질서를 상대하기 위해서였고.
즉, 지금 저 밑에 있는 몬스터들이 목숨줄을 부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신세계 질서 때문이었다.
그 탓에 신세계 질서 최후의 마신이 발목을 붙들리고 만 지금.
이준구는 인과응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몬스터들이 가장 먼저 마신을 노리는 이유 또한 명백했다.
몬스터들은 회복에 마력이 필요할 테니까.
헌데, 가까운 장소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자신과 몬스터 뿐이니.
상대의 강함을 따질 여유 하나 없는 상황에선 눈에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이준구는 몸에서 전기를 내뿜고 있었다.
대다수 포식자들은 정전기를 피하는 습성이 있다던가.
일찍이 박우찬 쪽에서 지나가듯 언급했던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이준구는 발을 굴렀다.
더 이상 이준구를 붙잡는 마신의 손아귀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준구의 마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달라붙었던 탓이겠지.
마신에게는 몬스터들의 마력을 감지할 여유가 없었고, 덕분에 너무나도 절묘한 기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물론 마신이 그 정도로 쓰러지지는 않겠지.
다만, 이준구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마신의 생각과 달리, 이준구는 전사가 아니다.
비록 박우찬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할지언정, 틀림없는 사냥꾼이다.
즉.
자신의 손으로 승부를 내는 일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부터 이준구는 해수면 위를 점거할 생각이었다.
마신이 몬스터를 박살내고 튀어나올 때마다 바다 밑바닥에 쳐박기 위해서.
그렇게 마력을 소진시키며 박우찬을 기다리면 그만.
여태까지 서로가 나눈 공격을 고려할 경우, 마력에 여유가 있는 건 자신 쪽이겠지.
어쩌면 여기가 서해안이 아닌 페르시아만 따위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준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좁혔다.
동시에.
"푸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다.
어느 쪽이든, 지금으로서는 대세가 정해진 바.
이대로 교착 상태만 유지하고 있으면 충분하다.
천천히 자세를 추스르며, 이준구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싸워 이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모든 헌터들이 알고 있는 구문을 새삼스레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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