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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9화 (339/371)

〈 339화 〉 증오의 마신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준구도 별다른 대책 하나 없이 싸우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여하간, 눈 앞의 마신이 불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작년 즈음엔 직접 격돌하기도 했고.

다만.

"그 새끼한테는 약점이 없어."

일찍이 박우찬이 언급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설마 그조차 사실이었을 줄이야.

약점 없는 생물은 없다.

사냥꾼으로서 박우찬이 가진 철칙마저 부정하는 괴물.

최후의 마신은 틀림없이 그만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

당장 눈 앞에서 느껴지는 마력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들은 A+랭크 몬스터.

여기에 마왕이 내린 은총을 더하면 S랭크조차 위협할 수 있는 칼날이 되리라.

박우찬을 비롯한 이들은 모두 그렇게 증언했다.

허나.

거기에도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눈 앞의 대악마.

조로아스터 교 내에서 증오를 관장한다 일컬어지는 마왕의 권속.

최후의 마신.

'증오의 마신인가.'

증오의 마신,케셈Xeshm.

눈 앞의 몬스터가 지닌 힘은 고작해야 그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치렀던 정초전 당시를 명백하게 상회하는 존재감.

다른 마신들은커녕 저 멀리서 느껴지는 두 번째 마왕과 필적할 정도였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겠지.

여하간, 눈 앞의 마신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었으니까.

특별하기 짝이 없는 마신들 사이에서도 한층 두드러지는 존재.

마신들의 장자.

전설에 이르길,세 번째 마왕이 될 수도 있었다 일컬어지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일부 경전에 따르면, 첫 번째 마왕을 봉인할 당시.

선신 측의 천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만에 하나, 증오의 마신이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면 이런 식으로 싸움을 끝내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그 말대로.

최후의 마신은 일부 영역에 있어선 첫 번째 마왕조차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발휘하고 있는 불사의 권능.

만약 증오의 마신이 왕위에 올랐다면 봉인할 수조차 없었으리라 일컬어지는 끈질김 또한 바로 그런 능력 중 하나였다.

허면, 저 불사 능력에 약점은 없는 걸까?

물론 그런 건 아니겠지.

애시당초 저 능력이 정말로 완전무결한 불사라면 일찍이 악신 쪽에서 패배할 리는 없었을 터.

즉, 타개책은 있다.

다만.

지금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방도를 마련할 수 없을 뿐.

제일 대표적인 수단은 역시 선신의 예언이겠지.

여하간, 일찍이 마왕은 저런 힘을 지니고도 선신 진영에게 패주한 적이 있다.

선신들의 승리가 예언으로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개 수하에게 저런 힘을 하사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

처음부터 패배가 결정되어 있는 전장이라면, 저런 힘도 쓸모가 없으니.

마왕으로서는 차라리 수하들에게 내려주는 편이 효율적이리라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선신의 예언이라면 저 힘을 충분히 타도할 수 있으리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론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였다.

허면, 두 번째 수단.

애시당초 저 마신이 지닌 권능의 근간을 공략하는 방법이다.

다행스럽게도, 증오의 마신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은 고대의 경전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현대적으로 보았을 때, 증오 혹은 분노의 마신이라 일컬어지는 대악마와 맞수를 이루는 건 바로 순종의 성신.

정의에 헌신하고 올바른 신앙에 몸을 맡기라 권유하는 천사의 반대항이다.

즉, 증오라는 이름은 조로아스터 교의 선신에 대한 미움.

작금의 시대에 걸맞게 그 이름을 번역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

'무신론의 악마.'

증오라는 이름을 걸머지고 있는데도 묘하게 친밀한 태도인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이 나라 사람들 중에 조로아스터 교의 선신을 섬기는 신관 따위가 존재할 리 없으니까.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저 불사 능력의 근간이 되는 건 바로 불신종.

선신을 믿지 않는 마음이리라.

요컨대, 놈의 불사 능력을 정면에서 타도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현 이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전원을 조로아스터 교로 개종시키는 법 뿐이리라.

'미친.'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이준구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렸겠지.

허면,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저 능력을 돌파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역시 박우찬의 시그니처 뿐이겠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종의 가호나 불사 따위의 유무에 연연하지 않는 공격법.

그리고 이준구에게 그런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 어떻게 나올 테냐!!'

마신 또한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합을 나눈 바, 눈 앞의 전사에게 자신을 공략할 수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과 마주치는 게 눈 앞의 전사가 아닐 확률.

마왕과 마주치는 게 눈 앞의 전사일 확률.

설마 50% 따위의 가능성에 걸고 도박을 시도한 건 아니겠지.

당연히 타개책도 준비되어 있을 터.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은 마신의 입장에서 보아도 그렇게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여하간, 그는 타인을 마음부터 굴복시키는 데에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인간들은 강력한 힘 앞에 무릎 꿇는 법.

설령 마신과 검을 맞댈 수 있는 전사라 하더라도, 쓰러뜨릴 수 없는 적 앞에서 절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는 자를 상대한 경험 따위, 마신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증오의 마신이 전사의 마음을 꺾는 게 빠를까, 전사 쪽이 모종의 방책을 제시하는 게 빠를까.

이 승부의 행방은 바로 거기에 달린 셈이었다.

동시에.

승산은 50%.

증오의 마신은 현 상황을 그렇게 추산하고 있었다.

별다른 타개책이 없는 한 절대로 죽일 수 없는 불사와, 마음을 꺾지 못하면 쓰러뜨릴 수 없는 불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단순한 근성으로 여기까지 밀어붙일 줄이야.

마신이 보기엔눈 앞의 전사 또한 악마 이상으로 지독한 작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자연스레 둘의 싸움은 지나칠 정도로 요란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힘을 철저히 제어한 공격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인가.

당연히 그 위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보다 상대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도록.

보다 상대를 철저하게 쓰러뜨릴 수 있도록.

제압력. 살상력.

조금이라도 더 힘이 필요한 상황을 앞두었기에 사용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다르다.

위력은 충분하다.

힘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만약 평범한 상대였다면 그 몸을 부수고도 남았을 일격.

아니, 설령 작금의 상대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공격이 초당 수십 발 가까이 난무한다.

여기서 더 위력을 높인다 한들 상대가 정말로 죽지는 않겠지.

때문에.

둘 사이의 싸움은 한층 더 조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 힘을 흘리는 미숙자들의 싸움.

절제된 힘을 발휘하는 숙련자들의 싸움.

그조차 넘어, 천지조차 뒤흔드는 힘을 망설임 없이 흩뿌리는 싸움.

신화 속의 풍경이 이러할까 싶은 전투.

바야흐로 개인 단위의 전쟁이었다.

실제로 그 여파 또한 전쟁이라는 이름이 부족하지 않았다.

"하앗!!"

무심코 튀어나온 기합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섬광이 질주한다.

동시에.

시야 너머로 뭉개진 풍경이 지체 없이 흐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산골짜기를 비추고 있던 안구가 어느덧 새파란 하늘에 닿는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벼락이 마신의 턱을 쳐올리며 성층권 너머까지 날려버린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을 볼 수는 없었다.

당연히 두 명 또한 알고 있었다.

뒤이은 반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턱을 갈긴 순간 작렬한 마신의 발끝이 이준구의 어깨를 박살낸다.

자신의 피해를 돌보지 않는 카운터.

불사의 힘을 빌리고 있다지만,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주먹과 동시에 날아든 반격 앞에서, 이준구의 육체가 한 순간 정지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정도 싸움에서 한 순간이란 곧 영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었다.

두두두두두!!

생물의 움직임보다 차라리 총화기에 가까운 격발음.

동시에, 이준구의 전신이 남김없이 꿰뚫린다.

머리가 날아가고 양 팔이 무너지며 다리가 분쇄당하는 참상.

물론 그 모든 상처는 한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사라질 뿐이었다.

시그니처, 뇌신.

자신의 내부에서 순환하는 전격을 공격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절초.

설령 박우찬이라 해도 감당할 수 없다 토로한 시그니처를, 한층 더 정신 나간 방법으로 사용한 덕분이었다.

벼락과 인간의 육체를 오가며 순식간에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하는 이준구.

뒤이어.

"흡!!"

반격이 이어진 건 정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찰나가 지난 직후.

벼락이라면 그 찰나조차 꿰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이준구가 움직였다.

투쾅!!

반격을 위한 잽.

인체가 취할 수 있는 최속의 공격이 마신의 안면을 포착한다.

마치 철추를 내려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그림자로 이루어진 마신의 육체가 추락하기 시작한다.

바다. 항구. 강. 계곡. 절벽. 산골짜기.

방금 전 지나쳤던 풍경을 순차적으로 되감으며, 마신이 대지에 상흔을 남긴다.

위성 궤도에서도 관측할 수 있을 법한 여파.

동해의 상공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이준구는, 다시금 벼락이 되어 창천 아래를 질주했다.

자칫 잘못하면 일본 공군이 출격할지도 모르는 사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구는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금 중요한 건 국제 외교 운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었으니까.

"뒈져!!"

그러므로.

이준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친구를 닮은 말버릇일까?

다시 한 번 산골짜기로 접어든 이준구는 그대로 마신의 관자놀이를 걷어찼다.

절대로 가볍지 않은 일격과 함께, 벼락이 작렬한다.

하늘의 구름이 찢어지며, 다시 한 번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마치 그림자로 이루어진 마신의 육체가 주욱 하고 늘어지는 듯한 착시가 들 정도였다.

산골짜기. 농지. 도시.

하는 김에 고층 건물의 창문을 꿰뚫으며, 다시 한 번 하늘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소리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우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그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겠군."

헌데, 눈 앞에서 공격을 주고받던 상대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는 건 어째서일까.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이준구가 추가로 내지른 일격을 마신이 화려하게 붙잡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억지로 붙들었다 해야 하겠지.

신체의 절반이 무너질 데미지를 불사의 가호로 무시한다.

마신의 육체를 타격할 때.

혹은,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

벼락으로 변한 몸이 되돌아오는 순간, 마신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흠!!"

빙글 하고 허공에서 회전한 마신의 육체가, 이준구의 팔을 붙잡고 내던진다.

숫제 씨름의 메치기나 다름없는 동작이었다.

이준구의 시야가 순식간에 뒤집힌다.

벼락의 속도를 그대로 역이용한 일격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준구는 시선을 흘려 그 너머를 확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의도대로라고 해야 할지.

그 밑에 있는 건 땅이나 도시 따위가 아니었다.

바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 순간의 공방으로 한반도를 동서 횡단한 자들이 서로를 노려본다.

'역시.'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인가!'

하필이면 이 순간, 서해 바다가 눈 앞에 나타난 걸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물론 이준구는 처음부터 서해를 무대로 삼을 생각이었다.

여하간, 전장을 선택한 건 바로 그였으니까.

단지.

이토록 순순히 바다에서 싸우게 된 지금.

무엇보다 마신 쪽도 바다를 향해 이준구를 내던진 지금, 한 가지 확신이 서로의 등 뒤를 알싸하게 훑었다.

'상대는 바다를 노리고 있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했다.

불사와 불굴.

상대방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단으로서, 양자는 동시에 바다를 택한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알싸한 오한을 느끼며, 음속의 벽을 꿰뚫은 이준구의 육체가 수면과 격돌했다.

양자의 승부수는 바다.

허면, 승산을 거머쥐는 건 누구일까.

수면 밑에서 마침내 결착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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