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화 〉 증오의 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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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왕이 말했듯이, 마신과 이준구는 충돌을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마신 또한 알고 있었다.
여기에 그들의 목표였던 자하연, 마왕의 반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애시당초 여기에서 인간들의 발을 묶고 있는 지금 이 시점, 그의 역할은 절반 가까이 달성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 앞의 전사는 바보가 아니다.
이대로 빠져서 마왕의 반려를 강습할 수는 없겠지.
적어도 그런 틈새를 쉽게 내주지는 않으리라.
하늘이었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마신의 육체가 다시 한 번 그 형상을 뒤바꾼다.
얇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날개.
자유로운 비행 능력을 획득한 마신은,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정전기 튀는 소리와 함께 작렬한 일격 때문이다.
……일전에도 말한 바 있듯이, 공중전에서 유리한 건 무조건 날개가 달린 쪽이다.
그야 마력을 방출하기만 해도 비행 흉내를 낼 수야 있겠지.
허나.
제대로 된 비행 능력 하나 없이 무작정 하늘로 뛰어든다 한들, 그 결말은 비참할 뿐이다.
매 순간마다 마력을 퍼붓던 끝에, 직선적인 움직임이라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먹이가 될 따름.
때문에, 사냥꾼으로선 이 나라의 누구보다 우수하다 자부할 박우찬도 가급적 공중전을 피하려 드는 게 현실이었다.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날고 있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똑같이 하늘로 뛰어드는 건 단순한 자살행위다.
내려오길 기다리며 요격하거나, 혹은 투척 무기를 동원하거나.
어느 쪽이든, 비행 중인 몬스터를 상대할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니까.
날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바닥까지 쳐박을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하지만.
거기에도 예외는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개나 비행 능력 자체의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비행 자체의 난이도다.
단단한 땅을 박차고 달려들면 그만인 지상의 싸움과 달리, 비행을 유지하려면 온갖 노고가 필요하니까.
날개를 움직이는 각도. 바람의 방향.
온갖 수고를 마력이나 마법 따위로 생략할 수 있다고 한들, 상대도 마법을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
즉, 필연적으로 신경을 쏟아야 할 부분이 많은 비행자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비행 능력이 갖춘 압도적인 이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의미한 이야기나 다름없는 건 사실이다.
애초에 그 정도 차이는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으니까.
막말로, 비행 능력이 없는 적을 상대로 하늘 위에서 마법을 구사한다면?
차라리 마법의 틈새를 노리고 적의 비수가 날아드는 시간 쪽이 더 길겠지.
이래서야 의미가 없다.
비행 능력의 빈틈을 찌르는 전술 따위, 지나칠정도로 비현실적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마신은 자신이 보유한 비행 능력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래.
애시당초 비행 능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
비행 능력의 약점을 정면에서 꿰뚫을 수 있는 상대.
즉,벼락이 상대라면.
쿠르르르릉!!
천둥이 친다. 뇌운이 감돈다.
다시 한 번 질주하는 섬광을 따라, 창천이 찢어진다.
실로 직선적인 움직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잡을 수 없다.
이 쪽의 비행 능력이 지닌 약점을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만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할 수 없다.
비행 능력자 이상으로 공중전에 특화된 헌터.
우레의 신이라 불리는 인류 최강의 시그니처는, 바야흐로 그런 기술이었다.
첫 번째 기습이 요격당한 이래, 마신은 줄곧 그런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인류 최강이자 최속.
상대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실감하기조차 어렵다.
마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 앞이 번쩍인다 생각했을 즈음엔 어느덧 S랭크 몬스터조차 즉사시킬 위력이 전신에 작렬한다.
그게 벌써 여덟 번째.
스트레이트. 어퍼컷. 훅. 내려찍기. 장법. 박치기. 팔꿈치. 무릎차기.
총 여덟 번의 공격을 맞아, 마신의 육체가 허공에 나부낀다.
몬스터의 육체로 허공에 팔망성을 그리는 듯한 광경.
아니, 그조차 느리다.
떠어엉!!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훅 꺼지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신은 뒤늦게 깨달았다.
'턱. 올려차기. 다시 어퍼컷.'
파편화된 단어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순식간에 추가로 6연격.
이래서야 인정할 수밖에.
인류 최강의 이름은, 틀림없이 허언이 아니다.
그보다 이만한 전사가 몇 명이나 더 있다면 차라리 그 쪽이 더 놀랍겠지.
때문에.
다음 순간, 마신은 주먹을 쥐었다.
투우웅!!
충돌하는 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마신을 상공으로 날려버린 즉시, 다시 한 번 그 위를 점한 이준구.
벼락의 형상으로 내지른 스매시가 마신의 뺨을 강타했다.
대지를 할퀴며 미끄러지던 마신의 육체가, 돌연 중심을 잡고 일어선다.
시골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야 한구석에 남았던 도시의 풍경조차 온데간데없는 산골짜기 속.
갑작스레 내방한 손님들 모습에 참새들 놀라 날아오르는데, 누구 하나 개의치 않고 대치를 유지한다.
주변에 달리 보는 사람 한 명 없으니, 방금 전 나누었던 공방 또한 알아볼 수 있는 건 오로지 서로 뿐이라.
물론 누군가 달리 몇 명 더 있었다 한들 방금 전 그들의 공세를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건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았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신세계 질서와 대한민국 양 쪽을 통틀어 세 명이나 되면 다행이 아닐까.
"괴물 같은 친구일세."
"누가 할 소리를."
마신은 투덜거렸고, 이준구는 반박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방금 전, 이준구의 공세를 받아내던 마신은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자신으로서는 저 사냥꾼의 시그니처를 도저히 대처할 수 없다.
허면?
대답은 간단했다.
대응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포기할 뿐.
단순한 자포자기는 아니었다.
애시당초 S랭크 몬스터조차 견디기 힘든 이준구의 공격을 마신이 몇 번이나 받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박우찬이 모종의 불사 능력이라 추측했던 권능 덕분이다.
그리고.
이번 습격을 통해, 최후의 마신은 확인할 수 있었다.
눈 앞의 사냥꾼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비록 이리저리 꼴사나운 몰골로 나뒹굴긴 했지만, 축적된 데미지는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신화 속에서도 약점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일컬어지던 능력이다.
이제 와서 파훼할 방법을 구하기는 어렵겠지.
그러므로.
마신이 취한 대책 또한 실로 간단했다.
자신의 몸이 박살나는 순간, 그대로 주먹을 뻗는다.
설령 벼락으로 몸을 바꾸었다 한들 공격이 닿는 순간엔 어느 정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약점 운운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신은 바로 그 타이밍을 노리고 카운터를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연히 자신 또한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거야 처음부터 마찬가지고.
충돌하는 순간 내지른 마신의 주먹은 틀림없이 이준구의 좌반신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마신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그 탓이었다.
불사의 힘으로 데미지를 무시한 자신과 달리, 눈 앞의 전사는 반신을 잃고 쓰러져야 했으니까.
벼락의 힘을 역으로 이용한 카운터.
설령 S랭크 헌터의 갑옷이라 해도 버틸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전사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마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한 허세는 아니다.
왜냐하면 방금 전 뜯겨져나간 왼팔도 어느덧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신은 보았다.
방금 전, 눈 앞의 전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벼락으로 전신을 뒤바꾼 상황에서 받은 일격.
마신의 카운터로 인해 왼팔을 잃고 만 이준구는, 놀란 듯 그 눈을 크게 흡뜨고 말았다.
뭐, 정말로 잠깐 뿐이었지만.
그리고.
다음 순간, 추락하던 왼팔은 곧 벼락으로 변하여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이준구는 그 팔을 포함한 자신의 육체를 재구성.
잃어버린 왼팔까지 포함해 벼락이 되었던 자신의 몸을 멀쩡한 상태로 복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다.
자신의 몸이 박살나는 고통 사이에서 부스러진 육체를 모조리 인지해, 다시금 흡수하고 빚는다.
무엇 하나 실수가 있다면 날아간 팔을 그대로 태워버리거나, 역으로 남은 몸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행동이었다.
제정신이라면 시도할 리 없을 만큼 지나치게 리스크가 큰 전법.
그런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한다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피륙이 튀는 전장 속에서?
'제정신이 아니군.'
마신조차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박우찬부터 그렇게 평하지 않았던가.
뇌신.
이준구의 시그니처는 단순한 정신병자 놀음일 뿐이라고.
위력은 1, 반동은 100인 능력을 어떻게든 사용하기 위해 억지로 온 몸을 비틀고 있을 뿐이라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방금 전 고통 또한 신경을 벼락으로 지진 경험이 아니었다면 견딜 수 없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준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때문에.
인류 최강이며 최속이라 일컬어지는 그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이준구를 구태여 그렇게 부른다.
영웅.
말하자면, 이 시그니처는 오로지 그 이름에 부족함 없도록 개발한 기술이었다.
힘이 부족해서 누군가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강.
늦어버린 탓에 누군가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속.
동시에.
설령 누가 상대라 해도 그 의지가 다하지 않는다면 무릎을 굽히는 일 없도록 불굴.
그제서야 불사의 마신은 깨달았다.
일찍이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승부는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여하간, 인간들이 마신의 약점 없는 불사를 타도할 수 있을 만한 수단은 오로지 단 하나.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베어넘기는 게 가능한박우찬의 시그니처 뿐이다.
때문에.
마신과 이준구가 맞부딪힌 시점에서 절반은 이기고 들어간 셈이라 할 수 있겠지.
악마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준구에겐 마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마신은 이준구를 쓰러뜨릴 수 있다.
확실한 승리가 눈 앞에 있었으니까.
다만.
이제서야 깨달았다. 깨달을 수 있었다.
속 편한 승리 따위, 실제로는 단순한 착각이었다는 걸.
이번 싸움은, 불사의 힘 뒤에 숨어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는 작업 따위가 아니었다.
불사와 불굴.
불굴이 준비한 모종의 대책이 불사에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혹은, 불굴이무언가 수를 쓰기 전에 불사가 그 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 싸움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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