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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7화 (337/371)

〈 337화 〉 쳐맞기 전까지는

* * *

조로아스터 교의 두 번째 마왕, 쿠쉬에 대해서.

전설에 이르길, 마왕의 형제이며 페르시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중국을 통치하는 제왕.

마왕의 명 한 마디에 족히 3000년 동안 전쟁을 모르던 섬을 정벌하고, 정령들을 몰살한 대악마.

잔혹한 쿠쉬의 전설 중에서도 유달리 눈에 띄는 건 바로 그 추악한 외견에 대한 서술이다.

물론 특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여하간, 고대라는 말조차 부족할 신화 시대의이야기니까.

마음 속의 선량함이 외모를 통해 드러난다는 편견 정도야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쿠쉬의 추악함을 구태여 언급하는 건, 두 번째 마왕은 그 중에서도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말마따나, 악마라면 끔찍한 외견이 당연하다 여겨지던 시대.

다시 말해, 대다수 악마들이추악한 외견을 지니고 있던 그 시대에서도 쿠쉬의 외모는 특이했기 때문이다.

지나칠 정도로 뒤틀린 외모.

이목구비가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형상.

반인반수 따위가 아닌, 그 추악함 탓에 인간과 짐승을 뒤섞은 게 아닐까 일컬어졌다는 얼굴.

뻐드렁니 쿠쉬.

어금니의 왕 쿠쉬Kush the Tusked라는 이름은 바로 그런 외견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눈 앞에 있는 마왕의 모습은 바야흐로 전설에서 묘사된 그대로였다.

마치 코끼리의 상아처럼 솟아오른 이빨은 숫제 뿔처럼 보일 정도.

추욱 늘어진 얼굴의 살가죽은 거의 코끼리의 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 눈에 알 수 있는 추악함을, 얼굴의 절반까지 감춘 가면 너머로 늘어뜨린 사내.

품이 넉넉한 옷인데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뒤틀린 좌반신은, 멀쩡한 우반신과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다.

마치 촛불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육체로 삼은 듯한 위태로움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단지.

"그래서, 소문으로 듣던 사냥꾼인가."

의외로 박우찬은 눈 앞의 대악마에게서 마왕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난폭함을 느끼지 못했다.

뭐, 그야 그렇겠지.

마왕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다.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악마들을 거느리고 군림하는 왕.

동시에, 정말로 하나의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름.

즉, 눈 앞의 대악마는 신화 속 국가를 통치한 군주인 셈이었다.

물론 박우찬이 몬스터의 신분 따위에 연연할 성격은 아니었다.

애시당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먹힐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다만.

제멋대로인 악마들을 통솔하며 집단을유지할 수 있는 존재라면, 얼굴에 철면피를 까는 건 어렵지도 않겠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박우찬은 코웃음을 쳤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별개로, 상대는 몬스터.

개중에서도 악마라는 데에 의식이 미친 탓이었다.

"뭐, 이제 와서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도 아니겠지."

마찬가지로, 마왕은 코웃음을 쳤다.

말마따나 아쉬움 따위는전혀 느껴지지 않는 어조였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말 한 마디 없이 작별을 고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이야기 아니겠나."

너를 죽이겠다.

차라리 대놓고 그렇게 말했다면 웃음이라도 나왔으리라.

적어도 살려둘 생각은 없다 생각하는 게 노골적으로 눈에 밟혔다.

동시에.

"그래서, 가벼운 여흥을 준비했다만……."

다음 순간, 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대기가 일렁거린다.

갑작스러운 마력 반응.

협회 최상층으로 통하는 계단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학생들조차 당황한 얼굴로 돌아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선생님?!"

말마따나, 수많은 몬스터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 권한.

일개 종족의 정점에 군림하는 우두머리들이나 보유하고 있을 법한 능력을 피로한다.

휘하 권속들의 연속 소환.

서양 쪽 악마들 중에서도 군단장 운운하는 별명이 붙은 놈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힘이었다.

자신의 마력을 소비해, 게이트 밖에서도 몬스터를 불러낸다.

그 모습에 학생들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 그녀들이 여기에 있는 건 박우찬이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난입하는 몬스터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헌데, 저렇게 대놓고 몬스터를 불러낼 수 있다면 그조차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런 고민도 찰나.

단 한 번의 호령으로 허공에서 몬스터들을 말 그대로 뽑아낸 마왕은, 짧은 웃음과 함께 고했다.

"허면, 실력을 보도록 할까."

하지만.

마왕이 혀를 놀릴수 있었던 건 딱 거기까지였다.

애시당초 두 번째 마왕이몬스터를 불러낼 수 있다는 건 딱히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도시 전역을 점거한 몬스터 무리를 발견했을 때부터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획을 세운 이유는 단 하나.

이만한 힘의 충돌을 앞둔 상황에선 고작해야 몬스터 몇 마리 따위는 방해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몇백 마리 단위로 준비한 몬스터 부대라면 또 모르겠지만.

서걱!

허공에 휘두른 칼날과 함께, 마왕의 호령을 듣고 나타난몬스터들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터덕, 터덕.

섬뜩한 소리와 함께 육편이 바닥에 부딪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울음을 터트리려던 흑마들의 최후는 이토록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일찍이 작전을 구상할 적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호."

과연 그 모습에 대해선 마왕이라 해도 감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방금 전 부르려던 녀석들은 사전에 공을 들여준비한 수하들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겠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 시대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B랭크 수준은 넉넉할 터.

'그런 녀석들을 단칼에, 인가?'

쿠쉬는 그제서야 눈 앞의 사냥꾼이 지금과 같은 계획을 세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하간, 방금 전 기술도 마냥 편리한 건 아니다.

말마따나 전투 중 급하게 불러낸 녀석들 따위는 방패로도 쓰기 힘들겠지.

충분한 시간과 마력을 동원해 불러낸 쪽이라면 또 모를까.

눈 앞의 사냥꾼이라면 그 정도는 예상했을 테고.

허면?

이제는 어떻게 할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구태여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마왕은 자신의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 반쪽짜리 가면을 쓰고 다녔다.

만약 그렇다면, 눈 앞의 사냥꾼은 어떨까?

조로아스터 교 내에서도 가장 추악하다 일컬어지는 그조차 얼굴의 반을 가리는 수준으로 만족하고 있건만.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이라.

아니, 방독면이라는 물건이었던가?

어느 쪽이든, 그토록 두터운 물건으로 얼굴을 감추어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그 해답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표정 없는 가면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살의.

말 한 마디 없이 자신의 부하들을 도륙하고도, 여전히 침묵으로 다음 행동을 재촉하는 모습.

일찍이 마왕으로서 신화 시대에 군림했던 쿠쉬는 알고 있었다.

수하들을 보낼 때마다 도리어 그 습격을 물리치고, 싸움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는 자들을.

소위 말하는 용사, 선신의 대전사들이다.

실제로 쿠쉬 또한 그런 자들과 몸소 검을 맞댄 적 또한 없잖아 있었다.

동시에, 그럴 때마다 내심 각기 다른 감상을 느끼고는 했다.

그 솜씨에 감탄한 적도 있고,소문 이상으로 부풀려진 실력에 실망을 토한 적도 있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선신의 대전사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끈질기다는 점이다.

마음 속의 신념이라고 해야 할까.

설령 자신이 패주하더라도 선신이 그 넋을 돌보리라 믿기에, 망설임 없이 스스로를 희생하던 모습.

쿠쉬에게 있어선 망집에 지나지 않는 교의를, 놈들은 진심으로 신앙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최후에는 선이 악을 이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들이었다.

허나.

눈 앞에 있는 이 사냥꾼은 어떠할까?

적어도 무언가 뚜렷한 신념 탓에 싸우러 나온 듯 보이지는 않았다.

마음 속에 흔들리지 않는 긍지가 있는 듯 보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선신 따위를 믿을 리도 없겠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이 땅은 그들의 고국에서 보기엔 아득히 먼 장소.

일찍이 마왕 쿠쉬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머나먼 동쪽 끝반도국이다.

조로아스터 교가 더 이상 종교가 아닌 신화로 전락한 이래.

더 이상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선신의 신자 따위가 이제 와서 발견될 리 없지.

즉, 선신이 자신의 혼을 보듬으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권선징악 따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두터운 가면 너머에서 느껴지는 적의의 근간은 무엇인가.

마왕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살심.

선과 악의 대립. 신과 마의 싸움.

그런 세세한 사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눈 앞에 있는 마왕을 죽이고 싶다.

저 사냥꾼이 품고 있는 감정은 오로지 그 뿐이었다.

하다못해 몬스터들이 점거한 도시를 되찾겠다는 열의조차 없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그런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지.

다만, 저토록 농밀한 살의 속에서 한 조각이나 되면 다행일 감정의 파편을 건져올리는 건 마왕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 놈, 아무리 보아도 마왕의 목을 따러 온 용사 따위가 아니지 않나.

오히려 이 쪽 세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살생에 미친 부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왕은 그렇게 품평했다.

동시에.

"성급한 녀석들이로고."

더 이상 싸움을 미룰 수 없다는 사실도.

도시 바깥.

저 멀리서 들리는 우렛소리와 함께,충돌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벌써부터 저 쪽은 싸움을 시작한 거겠지.

허면, 이 쪽도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비록 눈 앞의 사냥꾼이 지닌 본질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칫.'

지금은 흉중의 아쉬움으로 담아둘 뿐.

만에 하나, 전설처럼.

혹은, 마왕 쿠쉬가 경험했듯이.

먼저 이 땅에 선신의 무리가 찾아오고, 자신들이 그 뒤를 쫓았다면?

놈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기 위해 손을 잡자고 제안했다면, 이 사내는 그대로 선신들을 도륙하지 않았을까.

그 사실에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마왕은 다시 한 번 손을 움직였다.

"허면, 오래 기다리게 했군."

마왕의 육체가 준동한다.

방금 전과 달리 명확한 의지가 담긴 움직임에 사냥꾼은 눈을 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왕과 사냥꾼은 주인 없는 헌터 협회 최상층에서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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