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6화 (336/371)

〈 336화 〉 쳐맞기 전까지는

* * *

마침내 시작된 도시 탈환전.

도시 외곽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을 수놓는 신호탄의 모습에 본격적인 전투를 예감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순식간에 캠프를 뒤흔드는 소음.

부산스럽기 짝이 없는 분위기.

거기에 맞추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

때 아닌 어수선함이 캠프를 어루만진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신호탄이 터졌다는 건 곧 토벌대가 목적지까지 접근했다는 뜻.

허면, 몬스터들 쪽에서도 움직임이 있겠지.

협회 본사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은 최상층의 토벌대를 향해 달려들 테고.

머잖아 도시 전역의 몬스터들도 날뛰기 시작할 터.

게다가, 일찍이 예상한 바에 따르면 우두머리들 중 한 마리는 후방을 습격할 가능성이 높겠지.

자연스레 바빠질 수밖에.

시가전이 될까, 아니면 도시 바깥으로솟구치는 몬스터들을 소탕하게 될까.

어느 쪽이든, 뒤이어 싸움이 발생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군인들은 열과 성을 다해 하급자를 타박했다.

다른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호탄에 맞춰 끊임없이 화살을 겨누는 신서아.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마력을 예열하는 최승준.

마찬가지로 다른 대표들 또한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온다."

뒤늦게 캠프에 합류한 이준구가, 문득 그렇게 중얼거린다.

여하간, 이준구는 알고 있었다.

여신 티아마트가 그 힘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도시를 장악한 우두머리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단 두 명.

다시 말해, 자신과 박우찬 뿐이라는 사실을.

만약을 대비해 예비대로 빠진 최승준의 보조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

즉, 지금 이 순간.

하늘에 뜬 별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이준구 뿐이었다.

때문에.

이준구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막대한 병력. 헌터 협회가 끌어모은 전력.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의료반.

어느 쪽이든, 우두머리를 상대할 만한 여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사람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다른 몬스터들의 발을 묶는 일.

그러므로.

도심 한 가운데에서 솟아오른 섬광이 신호탄과 교대하듯 상공을 불사르던 바로 그 순간.

이준구는 망설임 없이 도약했다.

쿠르릉!!

헌터들 특유의 초상적인 신체 능력 탓에 발생한 땅울림 따위가 아니었다.

단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는 섬광과 함께, 벼락이 창공을 찢어갈랐다.

뇌신.

시그니처를 해금해 스스로를 벼락으로 뒤바꾼 이준구가, 하늘을 향해 질주한다.

노리는 건 수평선 근처.

아득히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별빛을, 지상에서 천둥을 떨친 우레가 요격했다.

쩌어엉!!

머리 위에서 울려퍼지는 충격파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젖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구름이 속살을 드러내고, 마른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충돌이 있었다.

어째서?

무언가를 요격했기 때문이다.

누가?

이준구가.

무엇을?

적을.

즉,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눈치챌 수조차 없었지만.

만약 이준구가 방금 전 가해진 공격을 받아내는 데에 실패했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무슨 일인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패주했으리라.

방금 전, 상공에서 발생한 폭음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요격하지 않았더라면, 이 대악마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지상의 병력들을 소거할 생각이었겠지.

그 방법 또한 실로 간단했다.

하늘로 도약해, 지상으로 추락한다.

문자 그대로 몸통 박치기.

눈 앞의 대악마는, 스스로의 육체를 포탄으로 삼아 이 도시가 놓인 지반을 통째로 뒤엎고자 한 셈이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승부수를 던졌다고 할 수 있겠지.

방금 전, 이준구가 받아친 공격엔 그만한 위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 사실에 내심 한숨을 돌리며, 이준구는 벼락에서 다시금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다.

"오, 이거 구면이로군."

눈 앞에서 나타난 이준구의 모습에, 대악마는 짐짓 유쾌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인간들을 도살하려 한 주제에.

다만,그저 입 발린 소리는 아니겠지.

틀림없는 본심이리라.

'뭐, 어느 쪽이든 상관 없나.'

손을 쥐락펴락한다.

이준구로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악마들의 습성 따위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박우찬에게 영향을 받아 업계에 발을 들이길 몇 년.

아이러니하게도, 이준구가 박우찬과 제일 비슷한 부분은 바로 몬스터들을 대하는 태도 쪽이었다.

……투명하기 짝이 없는 살의.

전신을 찌르는 매서운 감각에, 일찍이 이준구와 마주한 적 있던 그림자 괴인은 민망하다는 듯 어깨를 좁혔다.

마치 너스레를 떠는 듯한 그 동작엔 조금도 지장이 없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을 점하고, 공기를 걷어차 지표면을 뒤엎으려 했던 그 몸엔 자그마한 상처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모종의 불사 능력.

일찍이 겪었던 충돌 끝에, 박우찬은 눈 앞의 마신이 지닌 권능을 그렇게 추론했다.

그리고.

추측 운운하기 이전에, 남은 마신은 단 하나.

박우찬에게 들었던 최후의 마신에 대한 정보를 되새기며, 이준구는 천천히 전의를다졌다.

*

도시 바깥의 사람들과 달리, 악마들이 가장 먼저 느낀 건 매섭기 짝이 없는 돌풍이었다.

물론 악마들도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치 구도를 유지하고 있으면 언젠가 인간들 쪽에서 토벌대를 보낼 수밖에 없다.

현대의 전략 운운하는 개념에 따르면 분명히 그런 결론이 나온다고 했던가.

언뜻 들으면 수비를 굳히는 몬스터 쪽이 유리한 상황이다.

실제로도 틀린 말은 아닐 테지.

다만.

토벌대 쪽에도 이점은 있다.

습격하는 장소나 타이밍, 나아가서는 그 수단까지.

선택권을 쥔 건 어디까지나 토벌대 쪽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습격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어도, 습격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한 완벽히 대처할 수는 없기 마련.

때문에.

몬스터들이 토벌대의 진입을 눈치챈 순간, 그들은 이미 목표의 지척까지 발을 들이고 있었다.

단번에 해방한 마력 결정으로부터, 돌풍이 메아리친다.

압도적인 상승기류 속.

당황한 비행형 몬스터들의 날개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

그 뒤로는 실로 간단한 이야기였다.

헌터 협회의 강화 유리도 현직 S랭크 헌터에게 걸리면 순식간일 뿐.

휘두른 검섬과 함께, 유리창이 깔끔하게 동강난다.

동시에.

마치 구르듯 최상층 안으로 미끄러지듯 진입한 박우찬이, 그대로 낙법을 취하며 재빨리 일어선다.

손에는 방금 전 꺼내들었던 연장.

갑자스러운 사태에 몬스터들도 경직된 지금이라면, 충분히 우두머리를 견제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도 그리 되었다.

정말로 한 순간, 대다수 몬스터들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찰나.

박우찬은 다른 학생들을 뒤로 물리고 거리를 잡을 수 있었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덕분일까.

아래층이 돌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던 몬스터들이 불현듯 정신을 차린 탓이겠지.

방독면 너머로 들쑤시듯 솟구치는 몬스터들의 기척에 도리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낙법을 취한 학생들이 입구 쪽을 경계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전에 역할을 분담한 그대로였다.

신호탄을 던지고 2초 내외.

실로 그 잠깐 사이에, 박우찬은 우두머리의 지척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유롭게 시간을 들이며 공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더욱.

물론 박우찬의 제자들은 강하다.

틀림없이 도시 탈환을 위해 모인 헌터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겠지.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는 법.

적어도 이 도시 전역을 점거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기는 힘들다.

즉, 빨리 끝낼 수 있으면 보다 좋은 일도 없다는 뜻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곧바로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는

'역시.'

새삼스레 실감한 탓이다.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던 마신들은 최소 A+랭크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더해진 권능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능력은 S랭크조차 방심할 수 없겠지.

허면?

페르시아 신화에 전해지는 두 번째 마왕은 과연 얼마나 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여태까지는 얼추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를 눈 앞에 둔 지금, 박우찬은 그 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순한 본인의 능력만 셈해도 최저 S랭크.

여기에 더해, 마왕의 권능까지 더해진 지금.

'끝이 안 보이는군.'

작금의 실력을 손에 넣은 이후 처음으로, 박우찬은 그런 감상을 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A랭크 몬스터를 목격했을 때.

혹은, S랭크 몬스터가 저지른 참사를 눈에 담았을 적.

말 그대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 당시와 엇비슷한 예감.

미쳐 날뛰는 감각 속에서도, 박우찬의 전신이 멋대로 반응한다.

승산은?

있다.

이길 수 있나?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허면?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었다.

설령 S랭크 몬스터를 눈 앞에 두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박우찬에겐 참으로 낯선 감각이었다.

그래.

지금 눈 앞에 있는 건 조로아스터 교의 두 번째 마왕.

박우찬이라 해도 승리를 약속할 수 없는 상대이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냥감이었다.

그 사실에, 박우찬은 억지로 호흡을 가라앉혔다.

다른 이들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버는 사이 우두머리의 목을 쳐야 하는 지금.

때 아닌 기쁨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웃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정답은 이 쪽이었나."

다음 순간.

마치 옥좌에 앉은 듯 여유를 부리던 마왕이 몸을 일으킬 때까지, 박우찬은 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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