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 누구나 작전은 있다
* * *
우리들의 사정과 별개로, 시간은 매정하게 흐를 뿐이었다.
처음엔 너덜너덜하던 피난민 캠프도 어느덧 퍽 그럴싸한 형체를 갖추고 있는 가운데.
침묵 속에서 유지되던 대치를 깨트리고자 우리들은 승부수를 던졌다.
즉, 본격적으로 도시 탈환 작전에 시동을 건 셈이었다.
"다들 이해했지?"
당연히 그 책임자인 나 또한 마지막으로 점검을 다하고 있었다.
방독면 너머로 비치는 풍경 속,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뭇 엄격한 표정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신변잡기에 소일하고 있었다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뭐,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점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영 마음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대신, 전의는 높았다.
작전을 충분히 곱씹을 만한 여유가 있었던 덕분일까?
아니면 몬스터에 대한 적개심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는 한 썩 나쁜 흐름은 아니리라.
무엇보다 지금은 보험도 있고.
내가 방독면을 쓰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그 탓이었다.
출발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티아마트가 녀석들에게 은총을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로서는 평범한 강화 쪽이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뿐이다.
은총에서 느껴지는 몬스터 특유의 기척 탓이다.
뭐,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에 군소리나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티아마트 수준의 보조를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를 뒤져도 한 명이나 있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실제로, 견디기 힘든 수준까지도 아니었다.
방독면이 있다면 접촉 시 발작하는 정도가 고작이겠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도 이득이 더 크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니.
무엇보다, 티아마트 본인이 전선에 합류하지 않는 이상 구태여 의식할 필요도 없다.
도시 안에선 다른 몬스터들의 기척 쪽이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올 테니까.
그러므로.
굳이 문제를 꼽자면, 실질적으로 첫 실전인 지금.
우리 꼬마들이 전장의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아니, 주기적으로 비슷한 훈련 정도는 몇 번 치른 적 있지만.
'던전 답사라던가.'
문제는 오히려 저 열의.
다시 말해 책임감 쪽이다.
여하간, 실제로 도시의 탈환 비슷한 임무를 떠맡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헌터가 도망치면 뒤에 있는 도시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무릇 사냥꾼이란 그런 무게를 짊어지고 싸워야 하는 법.
학생들도 머잖아 실감하게 되겠지.
다만.
설령 그 사실을 실감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냐는 건완전히 별개의 문제일 테니.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상황이 닥친 이상 학생이라고 무작정 물러서는 건 어렵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움직인다.
"……."
시선 끝엔 여전히 알기 힘든 표정으로 땅만 바라보고 있는 하연이가 있었다.
쉽사리 말을 걸기도 어려운 그 분위기에, 무심코 입가를 달싹인다.
허나, 이런 상황 속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겁게 깔린 침묵을 앞두고,결국 나 또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 2차 대침공 종식으로부터 5년.
개중에서도 늦봄과 초여름 사이.
신도심 탈환 작전이 막을 올리기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
야생에서무리를 이루는 최소 단위란 으레 셋이라 여겨진다.
한 마리라면 개체. 두 마리라면 짝.
그러나 세 마리부터는 집단으로 판단하는 게 짐승들의 사고방식이다.
헌터들의 편제 또한 그런 점과 연관이 있었다.
던전이나 게이트 등, 몬스터의 영역을 공략해야 할 시 파티를 세 명 이하로 유지하는 게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업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철칙이다.
세 명 이상이 동행할 경우, 야생에서는 하나의 무리로 여겨지기 마련.
몬스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설령 대규모 인원이 공략에 참여한다 하더라도세 명 단위로 인원을 나누는 게 보통이었다.
그 이상의 인원은 탐사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세 명 이상의 인원이 동시에 움직일 경우 몬스터에게 발각당할 확률이 현격하게 상승한다는 뜻이다.
탐사의 효율. 헌터들의 전력. 발각당할 가능성.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궁리한 끝에 산출한 인원이 바로 세 명이다.
이번 작전 또한 그런 점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어지간한 몬스터들의 눈을 피해 숨는 게 가능한 나.
마찬가지로, 은밀 행동에 적성이 있는 지희.
우리 둘이 몸을 숨기고, 남은 세 명이 함께 움직인다.
마지막까지 하연이 대신 다른 학생들을 멤버로 고려하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와 지희가 빠질 경우, 남는 건 세 명.
전위를 담당할 윤하와 후열을 맡게 될 예은이.
그리고 하연이가 허리를 담당하게 된다.
이 경우, 하연이 대신 다른 학생들이 끼게 되면 아무래도 조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필연이가 하연이 대신 끼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전위 쪽에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손이 부족한 탓에 학생들의 조력까지 받고 있는 지금.
그런 자그마한 오차도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뭐, 우리 애들끼리는 따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는 메리트도 있고.
다만.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신속한 판단이다.
만약을 대비해 진형을 갖추기는 했지만, 구태여 싸움을 걸 필요는 없겠지.
아니, 오히려 싸움을 피하는 게 최선이리라.
비유하자면, 지금 우리들의 역할은 동굴 속에 있는 용의 멱을 따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퍽 그럴듯한 동화 속 모험담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하는 건암살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들키지 않는 게 제일이지.'
그리고.
사전에 루트 확보를 게을리하지 않은 보람이 있었던 걸까?
우리들은 정찰병들이 준비한 세이프 하우스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물론 세이프 하우스라 해도 그 실체는 단순히 방치된 가옥들 중 그나마 멀쩡한 물건들 뿐이었지만.
뭐, 사치를 부릴 상황도 아니고.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무엇보다, 내 창고에도 한계는 있다.
요컨대, 우리 꼬마들이 사용할 물건까지 전부 보관할 수는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물건들을 챙길 때마다 정작 내가 사용할 물건이 줄어드는 셈이었으니까.
당연히 협회로선 내키지 않는 상황일 테지.
때문에.
이번 작전이 입안된 이래 꾸준히 도시를 드나들던 정찰병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따로 마련된 세이프 하우스마다 별도로 보급품을 준비한다.
말하자면, 이 세이프 하우스는 우리들에겐 중간 거점이자 일종의 보급처이기도 했다.
"장비는 어때? 문제 없나?"
"네, 확인했어요."
처음부터 무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래서야 잠입을 수행하기는 힘들겠지.
특히 예은이처럼 장비가 자잘하게 많은 타입이라면.
덕분에 족히 몇 주에 걸쳐 무기를 반입하길 얼마간.
열한 번째 세이프 하우스에 도착했을 즈음, 우리들은 대다수 보급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일단 여기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자잘한 짐들을 사전에 맡겨둘 수 있었던 만큼, 행동이 가벼워진 덕이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모든 짐을 회수한 지금부터는 그런 요행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정도는 우리들도 알고 있었다.
즉, 당연히 대응하는 계획도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준비된 기구를 통해 차분히 옥상을 확인한다.
다행스럽게도, 비행형 몬스터들 또한 이 근처에 둥지를 틀진 않은 모양이었다.
장소 선정이 탁월했던 덕분일까.
몬스터들의 영역은 사람들처럼 자로 잰 듯 딱 떨어지지 않는다.
즉, 이처럼 같은 무리에 속한 몬스터들이라 해도 영역이 겹치는 부분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
허면?
서로의 영역이 겹쳤을 때, 몬스터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야 맞붙겠지만, 같은 무리라면 그럴 수도 없겠지.
십중팔구 겹치는 영역을 되도록이면 피하는 방향으로선회하기 마련이다.
협회가 마련한 세이프 하우스는 이런 겹치는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요컨대.
"알고 있겠지만, 우리들의 목적은 우두머리의 모가지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가리켰다.
비행형 몬스터의 출몰 이래, 모종의 사치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초고층 건물들 사이에서도 한층 눈에 띄는 물건.
다시 말해, 헌터 협회 본부였다.
진입 직전, 내 감각으로 살핀 바에 따르면 남은 한 명은 자리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놈은 언제나 일정한 장소에 자리를 잡는 대신 도시를 배회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연이가 없는 공략대에 두 마리가 동시에 발이 묶이는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겠지.
노골적으로 이 쪽의 진입을 예상하고 있는 움직임이다.
당연히 그런 만큼 대처도 철저했다.
빌딩 내부에 꽉 찬 몬스터들의 기척.
주기적으로 상공을 순찰하는 비행형 악마들.
순순히 접근했다간 소모전을 강요당할 뿐이리라.
아니, 오히려 이 쪽의 발을 묶은 사이 후방을 직접 타격하려는 건 아닐까 싶은 의혹도 있다.
내가 무턱대고 시그니처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하간, 일전에 놈들의 대책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이만한 숫자를 상대하려면 당연히 시그니처의 정밀도 또한 저하할 수밖에 없다.
즉, 저번에 보았던 부적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신세계 질서라 해도 다시 한 번 모든 병력에게 부적을 지급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허면?
반대로, 얼마나 되는 몬스터들이 부적을 지니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우두머리 두 명은 확보하고 있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시그니처로 승부를 보는 데에 실패할 경우.
역으로 우리들은 박우찬이라는 전력 없이 놈들을 요격해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
여하간,군대는 마신에게 대적할 수 없으니까.
애초에 단순한 A+랭크 몬스터조차 확실한 승리를 위해선 핵미사일을 동원해야 하는 판국이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군대의 화망을 끼고 우두머리 둘을 상대하는 건, 꽤나 힘들겠지.
다른 몬스터들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고.
일단 우두머리들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게 이준구 뿐이니까.
정체를 드러낸 티아마트가 최승준과 힘을 합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경우, 이 쪽에게 별로 좋은 전개는 아니다.
이 이후 신세계 질서를 완전히 뿌리뽑는 일에 차질이 생길 테니.
심지어 일전에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준구의 시그니처를 맞고도 멀쩡하던 마신의 모습을.
모종의 불사 능력.
화력을 앞세우는 군부의 전법을 고려하면 이번 전투에서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데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즉, 서로의 사정을 고려하면 여기까지는 비슷한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쪽에서 쳐들어가고, 놈들이 요격한다.
허면?
남는 건 힘의 논리 뿐이다.
때문에.
"신호를 보내면서 진입한다. 다들 마력 결정 챙겼지?"
지나칠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농축된 결정은 세이프 하우스 내에 숨길 수 없었다.
몬스터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이 너무 높으니까.
그러므로, 이번엔 내 창고를 조금 할애하기로 했다.
최승준의 비서 양반이 담은 바람의 마력 결정이 사람 수만큼 나열된 광경은 퍽 장관이었다.
여기에 신호탄을 준비한 뒤, 전원이 옥상으로 향한다.
신호탄이 빛을 발하는 건 작동 후 10초 뒤.
거기에 맞추어 전원이 빌딩을 향해 도약한다.
나는 축지를 사용해서.
윤하는 도약, 지희는 비행.
하연이는 예은이의 보조를 받아, 전원이 옥상까지 날아오르는 셈이다.
마력 결정의 바람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겠지.
시간으로 따지자면 채 1초도 되지 않는, 바야흐로 순식간이리라.
당연히 건물 도면 정도는 미리 확보한 바.
내 감각에 의존하는 이상, 우두머리의 위치를 헷갈릴 여지도 없다.
우리를 요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비행형 몬스터들은 서아에게 맡긴다.
신호탄을 확인한 서아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그대로 진입하고 나면, 내가 우두머리를.
학생들은 계단으로 달려가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견제하면 된다.
창가를 통해 난입하려는 악마들은 최승준과 서아가 담당할 테고.
몬스터들의 철저한 대비도 미치지 않는 중간 영역에서 단번에 목표지까지.
그게 바로 이번 작전의 골자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