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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4화 (334/371)

〈 334화 〉 누구나 작전은 있다

* * *

박우찬을 내보내고 난 뒤,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물론 박우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헌터들도 얼마 되지 않는 지금, 그녀의 힘은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겠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자하연의 실력은 이미 일개 학생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현역 헌터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활약하고도 남을 정도니.

자하연 또한 알고 있었다.

머잖아 박우찬이 출발하는 날이 오면 자신 또한 그 뒤를 따라야 하리라.

자신이 손을 놀릴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있다.

애시당초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닥친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있다.

혹은, 박우찬의부탁이라는 명분을 들 수도 있겠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연은 내심 솟구치는 불안감을 달랠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말마따나, 이번 사태가 신세계 질서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마치 연극의 최종장을 맞이한 관객처럼, 마침내 다가온 결말을 앞두니 긴장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묘한 술렁임 속, 언젠가 이 피난민 텐트 근처에서 마주쳤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동아리 친구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그녀들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으니까.

저번 '수학여행' 이후, 잔뜩 풀이 죽은 친구.

속으로 자퇴를 결심하고 있던 친구.

그런데도 갑자기 이런 상황이 닥친 탓에 어쩔 수 없이 차출된 친구…….

다양하기 짝이 없는 혼란과 절망이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동시에.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 아니, 누가 알았겠어?"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던 정필연의 모습을 떠올린다.

박우찬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제안을 건넸을 당시.

그 사실을 부담스럽게 여긴 그녀는 스스로를 대신해 추천할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정필연을 만나게 된 건 바로 그 일환이었다.

수학여행 이후, 보다 울적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던 정필연은 작금의 상황을 두고 문득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

다만.

불현듯 정필연이 흘린 그 말은, 그녀의 마음에 지나칠 정도로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틀린 말은 아니리라.

하지만.

대침공을 겪었던 세대는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

우리들만 여태까지 자각하지 못했을 뿐.

헌터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일.

설령 옆사람이 죽어나가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손 쓸 도리 하나 없는 일이리라고.

그렇게 말하던 정필연에게, 자하연은 결국 무엇 하나 말하지 못했다.

"……그래."

새삼스레 마음을 다잡는다.

끝을 봐야겠지.

그리고 그 끝을 보는 자리에, 당사자인 자신이 빠질 수도 없으리라.

손가락 끝으로 조용히 마력을 일으킨다.

지나칠 정도로 격렬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박우찬조차 놀라움을 표하던 마력.

그 마력이, 어느덧 한 단계 더 성장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두 번째 마왕, 혹은 마신들의 장자와 비견해도 부족함 없을 힘.

용솟음치는 마력을 실감하며, 자하연은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다른 무언가로 전락하는 듯한 감각.

지금 이 비정상적인 마력은, 마치 그런 결말을 암시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단순한 착각이리라.

정말로 몬스터가 되었다면 또 모를까, 지금의 그녀에게 예지 능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때문에.

단순히 불안할 뿐.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며, 자하연은 훅 하고 손가락 끝에 맺힌 마력을 불어서 꺼트렸다.

*

놀라울 만큼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통칭 그림자 괴인.

박우찬을 비롯한 일부 헌터들에게 그리 불리는 마신들의 장자도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회의적인 생각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여하간, 이번 작전을 입안한 건 신세계 질서 소속이던 일개 헌터였으니까.

물론 그 실력은 만만치 않지만, 작전을 입안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니까.

마신들과 같은 권능도 없다. 마왕의 은혜를 입지도 못했다.

그런 자가 정말로 계획에 필요한 작전을 짜낼 수 있을까?

틀림없이 마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실상은 어떠한가?

현대까지 오면서 발전한 작전 입안 계획과 수칙.

사내가 군에서 배웠다고 자칭하던 온갖 원리는, 퍽 절묘한 심모원려와 함께 마신들의 눈을 현혹했다.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군을 물릴 게 자명하다, 라.'

예를 들어, 태시영이 언급한 이번 작전의 근간.

헌터를 비롯한 인간들의 행동 원리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하간, 그는 용사와 악마가 마주치면 단박에 사생결단을 벌이던 시대의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설령 우두머리를 쓰러뜨린다 해도 남은 몬스터들을 퇴거시킬 수 없다.

즉, 장기적인 피해 방지 입장에서 볼 경우 오히려 시민들의 대피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자연스레 적 쪽에서도 즉각 몬스터들과 충돌하는 대신 도시를 사이에 두고 시민들을 소개시켰으니까.

물론 현대전의 원리는 여전히 와닿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들의 행동을 예측한 건지, 어째서 인간들은 저렇게 행동한 건지.

마신들의 장자는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태시영의 예상대로 상황이 움직였다는 점이다.

이번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될 경우, 폐하께 진언하여 그를 참모로 삼는 건 어떨까.

내심 그런 평가를 매기며, 마신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지루하군."

동시에, 방금 전까지 현실도피를 거듭하던 마신의 정신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여하간, 비교적 빠르게 이 세상과 접촉한 그조차 현대의 개념을 온전히 파악하기엔 버거울 지경이니.

당연히 눈 앞의 존재 또한 이토록 단기간에 현대의 작전 개념안 따위를 체화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즉, 대다수 악마들은 태시영의 작전이 빚은 결과를 보고도 역으로 판단했다.

지금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는 거 아냐?

뭐, 그런 식이다.

마찬가지로 고대의 존재인 악마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세계 질서의 참모가 신묘한 재주를 부려 적들이 도망치고 있다.

고작해야 그 정도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전략 개념이 없던 시대의 주민들이 보기엔 곧바로 뒤를 노려야 할 상황이다.

……틀림없이 악마들은 교활하다.

사람을 속여넘기는 데에 악마들 이상인 몬스터도 없겠지.

다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악마로서 지닌 습성.

생물학적인 본능일 뿐이다.

거기에 비해,작전 계획이나 전략 입안은 여태까지 인류 사회가 쌓아올린 기술과 경험의 총체였다.

즉, 조금 교활하다는 이유로 현대적인 전술안을 발휘하긴 힘들다는 뜻이다.

따로 기술을 배운다면 또 모를까.

그리고 그런 악마들을 설득하고 억제하는 건 바로 마신인 그의 역할이었다.

"부디 진정해주시길. 지금은 인내가 필요할 때입니다."

"퍽 태연자약한 발언이로군."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눈 앞의 상대는 마신으로서도 퍽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물론 태시영이 요구한 조건에 부족함은 없다.

탁월한 힘.

여태까지 소진된 신세계 질서 측 병력을 보충할 만한 수단.

그 조건을 만족할 대악마는, 조로아스터 교의 역사에서도 눈 앞의 존재 정도였다.

두 번째 마왕.

이 땅까지 전파된 쿠쉬의 서에 이르는, 어금니의 왕.

대악마 쿠쉬.

박우찬을 비롯한 헌터들이 예상했던 거악巨?의 이름은, 지금도 그 존재감을 형형히 드러내고 있었다.

분명히 저 끝 모를 힘은 이번 작전에서도 크나큰 도움이 될 테지.

솔직히 말하자면, 마신으로서도 회심의 한 수였다.

태시영의 요구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길 반 년.

모든 조건을 절묘하게 만족하는 대악마를 떠올린 당시엔 내심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악마는 오만한 법.'

오만이란 곧 사악한 감정이라고 인류가 정의한 이래, 교만은 강대한 악마들의 특권이 되었다.

즉, 인간의 작전에 의지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지금.

눈 앞의 대악마는 지극히도 설득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무엇보다.

"네 녀석도 동의했다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흠."

이런 작전이라면 더더욱.

여하간, 신화 시대에서 통용될 법한 작전은 아니다.

조로아스터 교의 전장에 있어, 각 진영의 장수란 곧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선신의 선택을 받은 대전사.

악신의 선택을 받은 대악마.

어느 쪽이든, 쉽게 쓰다 버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오히려 장수의 숫자가 곧 승패를 가르는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당연히 이런 작전을 입안하는 참모도 없었다.

그런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신은 두 번째 마왕의 반응을 보고도 거듭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만약 네 이름이 없었다면, 이런 작전을 입안한 놈은 그 즉시 사지를 찢어 거열형에 처했을 터."

"감읍할 따름입니다."

마왕의 불만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여하간, 현재 그는 악신의 진영에 있어 명실상부한 2인자였으니까.

오히려 이런 진언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그들이 짊어진 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도대체 어느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 작전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다.

패배해도 된다.

신세계 질서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자하연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이니까.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지.

"허면, 피해는 어디까지 감수하실 수 있습니까?"

"음?"

"한 마디로 말해서, 작전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누가 죽어도 상관 없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작전만 완수할 수 있다면 너희가 죽어도 괜찮겠느냐 면전에서물을 줄이야.

그러므로.

두 번째 마왕이 경거망동하지 않는 건 정말로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말마따나, 자하연의 신병이 마왕의 목숨보다도 중했던 탓이다.

……이번 작전은 마왕과 그 권속들의 승리를 위해 준비된 책략이 아니다.

두 번째 마왕과 최후의 마신.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대악마들의 목숨조차 희생해, 자하연의 신병을탈환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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