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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3화 (333/371)

〈 333화 〉 두 번째 마왕

* * *

회의가 작파한 뒤, 나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

이미 꽃샘추위조차 기승을 부리기 힘든 봄의 끝자락.

오히려 살짝 무더운 낌새조차 감도는 가운데, 나는 무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회의의 결과와 별개로 작전은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수단이 제한된 탓이었다.

현재 도심지의 상황은 농담으로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중심지에서 군림하고 있는 S랭크 이상의 몬스터가 2체.

여기에 도시 각지를 제압하고 있는 몬스터들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도시를 밀어버리지 않는 한 군부가 활약하긴 어렵겠지.

대충 돈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한계는 있다.

예를 들어, 도시 하나를 새로 건설하는 수준까지 가면 힘이 부칠 수밖에.

결국 군부의 화력을 앞세워 도시를 제압하는 건 힘들다는 뜻이었다.

아니, 애시당초 그 이전에 군부는 움직이기 힘들다.

졸지에 난민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만에 하나 신도심 탈환 작전이 시작될 경우, 그 중심은 십중팔구 헌터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조차도 지금 이 도시에 모인 헌터들이 실질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전 병력이 되겠지.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신세계 질서는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으니까.

만일 다른 도시에서 전력을 빼왔다가 오히려 몬스터들이 그 쪽을 기습할 경우.

우리들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참사가 되리라.

그러므로.

처음부터 타 도시에서 지원이 오는 건 상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쪽에서 적극적으로 만류할 정도였으니.

증원을 기대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어느 정도 여유가 남는 길드 지부 정도가 한계겠지.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고.

남해 지부는 고작해야 1년 전 무시하지 못할 참사를 겪었다.

태백산맥 쪽 지부는 얼마 전 핵심 전력이 목숨을 잃었고.

북한 지역 담당 헌터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어쩌면 신세계 질서가 의도한 바 또한 이런 구도를 만드는 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의도했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과대망상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상황이 움직인 걸 보고 끼워맞추기는 했겠지.

우리들로서는 귀찮을 따름이다.

요컨대, 지금 여기 모인 전력들로 승부를 봐야 하는 셈이니까.

'나랑 이준구가 돌입해서 밀어버리기, 는 힘들겠지.'

여하간, 거물급 몬스터가 두 마리인 게 문제다.

우리들이 도심지로 진입한 시점, 놈들이 양동 작전을 시도한다면?

한 마리가 발을 묶는 사이, 남은 한 마리가 몬스터들을 이끌고 후방을 강습한다.

그 경우, 말 그대로 사달이 나고 말겠지.

최소한 나랑 이준구가 찢어져야 하는 이유다.

신세계 질서 쪽에서도 마음 놓고 후방을 교란할 수 없도록.

여기에 시민들을 보호하고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군부.

우두머리급 개체를 상대할 수 있는 고급 인력 이준구.

무엇보다, 도시 각지에서 몬스터들이 외부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 헌터들까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내세울 수 있는 작전은 단 하나 뿐이다.

'소수 인원에 따른 우두머리 공략.'

얄궂게도, 게이트가 없어 후퇴를 선택한 지금.

실질적으로 우리들에게 남은 건 게이트를 공략하는 방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그야 어쩔 수 없겠지만.

예로부터 소수 병력으로 용의 둥지를 공략하는 일화가 많았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까.

내심 그런 생각을 삼킨다.

뭐, 조금만 생각해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이고.

덕분에 회의는 도시 탈환을 위한 역할 분담의 장이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돌입조 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를 상대로 한 싸움은 나만큼 적격인 녀석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자원한 건 내가 유일하기도 했고.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여하간, 군부나 협회는 비교적 그 역할이 명확했던 탓이다.

문제는 거물급 전력의 배치 쪽이다.

방금 전 언급했던 이유로, 내가 진입하는 이상 이준구는 후방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놈들이 양동으로 나설 경우를 고려하면 최승준도 대기하는 게 좋겠지.

후방 교란을 방지하거나, 우리 쪽의 진입을 돕거나.

어느 쪽이든 활약할 수 있는 만능 선수니까.

마찬가지로, 후방에서 전선을 지원할 수 있는 서아 또한 후방에 남긴다.

티아마트도 비슷한 처지고.

'의료반이 필요한 건 후방이니까.'

무엇보다, 축복을 걸고 전선에 내보내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애시당초 축복이 필요하지 않은 내 쪽이야 둘째치더라도, 자연스레 후방 담당이 될 수밖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싸우는 데엔 방해만 되기도 하니까.

실수로 녀석의 목을 날려버리기라도 하면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닐 테지.

그런 이유로 후방이다.

때문에.

필요한 건 전방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누군가.

동시에, 따로 맡은 역할이 없는 실력자다.

뭐, 이렇게 형편 좋은 조건을 만족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있었네요."

"그러게 말이다."

임시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텐트 근처.

불평 비슷한 내 말을 받아넘기며, 하연이는 그렇게 답했다.

말마따나, 그런 조건을 갖춘 녀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숨기랴, 바로 우리 꼬마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아카데미는 일시적으로 휴교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아니, 설령 문을 열었다 한들 지금 이상으로 업계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겪기도 힘들겠지.

덕분에 우리 꼬마들도 지금은 이 텐트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대다수 아카데미 재학생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카데미 소년병 운운하던 매스컴과 여론.

혹은, 아카데미의 의의 때문이다.

비록 내가 소년병 운운했던 건 사실이지만, 정말로 아카데미가 소년병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준 군사기관에 가깝다는 특성 상, 아카데미의 목적은 장기적인 인적 자원 양성…….

다시 말해,헌터라는 인적 자원을 주먹구구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현 체제를 탈피하기 위한 포석이다.

즉, 이런 상황에서 생도들을 전선으로 내보내는 건 어디까지나 제 살 깎아먹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라는 소리다.

정말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덕분에 지금 아카데미 출신 학생들은 따로 역할을 맡기는 대신 각지에 배치.

일종의 사회 견학처럼 현역 헌터나 군부 쪽 일을 돕고 있었다.

뭐, 협회나 군인들 또한 예상 이상으로 실력 좋은 생도들의 모습에 놀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덕분에 이 쪽도 인원을 확충하기는 쉬웠다.

방패 역할을 맡을 윤하.

공격수 역할을 맡을 지희.

주포 역할을 맡을 예은이.

여기에 티아마트의 지원과 서아의 사격을 고려하면, 필요한 건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할 누군가겠지.

지금 내가 하연이를 방문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도시 탈환 작전에서 제일 높은 건 책임자인 나다.

인원 선정에 어느 정도 재량권이 주어진 이유 또한 바로 그 덕분이었다.

문제는 오히려 하연이의 반응 쪽이다.

평소라는 내가 제안하는 말엔 별다른 고민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하연이.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지나칠 정도로 줏대 없는 태도에 도리어 내 쪽이 더 걱정될 정도였던 과거와 달리, 맥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나로서도 무어라 섣불리 말을 붙이기는 어려울 정도였으니.

……물론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여하간, 하연이에겐 이번 사태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참사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다.

막말로, 신세계 질서가 지랄한 게 우리 잘못은 아니고.

그야 신세계 질서 쪽에서 하연이를 목적으로 삼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단지.

아무리 그래도 신세계 질서 이전에 스스로를 탓하는 건 조금 과한 자책이겠지.

무엇보다, 만일 그렇다면 하연이가 전방에서 활약하는 게 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놈들의 목표는 하연이의 신병 그 자체.

허나, 그렇다고 해서 하연이를 후방에 두고 가면?

하연이가 전방에 없는 걸 확인하고 순순히 포기할까?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십중팔구 후방 교란에 더 힘을 쏟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하연이가 전방에 있든 후방에 있든 달라질 건 없다.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의 위치를 알게 되면 곧바로 움직일 테니까.

전방에 없다면 후방으로.

전방에 있다면 대놓고 힘을 쓰겠지.

구태여 하연이가 염두할 필요는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힘든, 가.'

여하간, 상대는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두 번째 마왕.

밤하늘을 불사르는 악룡의 형제다.

하연이의 과거를 고려하면 그야 불안한 기분이 들 수밖에.

때문에, 하연이도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울 따름이겠지.

뭐, 지금 당장으로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여하간, 본격적으로 도시 탈환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건 보다 이후.

상황이 완전히 안정된 다음일 테니까.

그러므로.

작전을 짠다. 상황을 안정시킨다.

언젠가 진행할 작전을 위하여,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도심지를 정찰한다.

신세계 질서의 침공 이후, 도시 외곽에 선 피난민 캠프는 대략 이런 분위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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