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2화 (332/371)

〈 332화 〉 두 번째 마왕

* * *

허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작은 나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여하간, 처음에는 티아마트가 돌아버린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추측할 수는 있었다.

일단 내 감각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도시 한 가운데에 난데없이 어마어마한 거물급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자세한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십중팔구 두 가지 중 하나겠지.

일찍이 신세계 질서가 사용했던, 창고를 통한 이동.

혹은, 일전에 활약한 적 있는 소환 의식.

개중에서도,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여하간, 창고에 생명체를 넣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특히나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생명체라면 더더욱.

창고 내에 가득한 공간 제어용 능력과 당사자의 마력이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창고의 능력 자체에도 하자가 생기겠지.

다만, 더더욱 위험한 건 창고 속에 발을 들인 쪽이다.

소위 말하는 주화입마 비슷한 현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창고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다시 말해, A랭크 공간 조작 능력을 사용해 만들어진 창고라면 최대 A랭크 이하의 몬스터를 수용할 수 있다.

요컨대, 창고를 통해 등장했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반응이 큰 게 문제다.

최소 S랭크.

혹은 그 이상.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그만한 공간 조작 능력을 보유한 헌터는 이 대한민국에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이지.

전 세계를 뒤져도 그만한 힘을 지닌 공간 조작 능력 보유자는 단 한 명도 없을 테니까.

비유하자면, 최승준이 한기 제어가 아닌 공간 조작 능력을 각성했을 경우.

창고를 사용해 저 몬스터를 옮기려면 과장 없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달리 말하자면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었다.

허면?

남는 방법은 소환 뿐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일찍이 신세계 질서는 이번 일과 비슷한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초대형 게이트 발생 사태다.

그리고.

그 때, 신세계 질서가 사전에 준비한 요소는 실로 막대했다.

평소운 박사의 은폐 시설을 이용한 초대형 게이트.

마찬가지로, 연구 결과를 참조해보한 촉매.

요컨대 예은이까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작정 소환을 진행한다 해서 고랭크 몬스터를 불러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소운 박사가 다듬은 소환 의식과 거기에 걸맞는 촉매를 이용.

몬스터들이 오가는 길이라 할 수 있는 게이트까지 뚫은 끝에 간신히 불러낼 수 있었던 존재가 바로 그 거룡이니까.

문제는 지금 도시를 점거하고 있는 몬스터가 그 이상의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에는 평소운 박사의 시설을 통해 발생시킨 초대형 게이트와 예은이라는 일급 촉매가 있었다.

반면에, 이번 사태는 어떨까.

최소한 저번과 비등한, 현실적으로 보았을 경우 그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겠지.

여기서 한 가지는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즉, 소환을 성공시키기 위한 배경 요소.

저번 사태로 비유하자면, 초대형 게이트 역할을 할 무언가.

몬스터들의 세상과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관문.

혹은, 그조차 만회하고도 남을 동력원이다.

뭐, 십중팔구 후자겠지.

여하간, 신세계 질서 쪽에는 마신들이 있었으니까.

추정 초대형 게이트를 통해 이 쪽으로 건너왔던 일곱 마신.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대악마들이 남긴 마력이라면 게이트가 없어도 거물을 소환할 수 있었을 테고.

물론 일곱 대악마들 중 태반은 진즉에 뒈져 나자빠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찍이 나는 본 적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력 결정을 운용하던 신세계 질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끄나풀에 지나지 않는 몽마들의 모습을.

당연히 그 배후라 할 수 있는 신세계 질서는 그 이상의 물건을 확보할 수 있겠지.

즉, 현재 마신들이 부재하고 있다는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면?

남은 문제는 단 하나.

이번 소환을 가능케 할 촉매 뿐이다.

때문에.

"이번에 소환된 몬스터는 십중팔구두 번째 마왕일 거요."

"두 번째 마왕?"

……겨울의 끝과 함께 찾아온 봄은 어느덧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보냈던지 이제 와선 떠올리기조차 힘든 봄의 끝.

우리들은 도시 외곽에 따로 차린 지저분한 텐트를 지붕으로 삼아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개월 전, 갑작스레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몬스터 출몰 사태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대책을 수립한 끝에, 마침내 도시 탈환을 거론할 수 있게 된 지금까지.

이 후줄근한 텐트야말로 현재 신도시의 참모부나 마찬가지였다.

모여있는 면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수도권에서 일어난 변고로 군을 지휘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청준필 준장.

헌터 협회를 대표해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염광훈 협회장.

차세대 헌터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시설의 담당자 자격으로 입회한 최승준 교장.

신세계 질서 쪽 포위망을 지휘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이준구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각 계층의 거두들이 모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원 신세계 질서와 관련된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보를 공개했다 해야 하겠지만.

내가 뜬금없이 소환 운운하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덕분이었다.

"잠깐,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영 못마땅하다는 듯, 청준필 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튼 저 아저씨, FM 한 번 좋아한다니까.

아니, 그야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하간, 신도시 한 가운데에서 몬스터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는 말에 군을 몰고 내려와야 했던 양반이다.

무언가 누락된 정보가 있다 들으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다만.

내가 고의적으로 정보를 누락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나로서도 할 말은 많았으니.

애시당초 대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거니와, 진즉부터 언급한 이야기였던 탓이다.

"여기서 따로 쿠쉬나메를 조사한 적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주욱 하고 시선을 흘리자, 전원이 시선을 피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씨발."

"아니, 뭐냐. 그, 조금 바빠가지고."

"그냥 책에 눈이 안 갔다 하십쇼."

뭐, 그야 그렇겠지.

대침공 이후 군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화력을 주체로 한 섬멸전.

적의 약점을 조사해 공략하는 건 사냥꾼의 일이다.

탄환을 맞으면 오히려 강해지는 일부 개체 따위가 아니라면 굳이 조사하지도 않겠지.

아니, 그런 녀석들도 일부 담당자가 조사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리라.

요컨대, 준장 정도 되는 양반이 직접 전설을 조사하는 건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말했다시피, 신세계 질서가 하필이면 이 대한민국을 노리는 건쿠쉬나메라는 저서 때문입니다."

……티아마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의 신화나 전설은 일찍이 역사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세상에 괴물들이 활보하고, 성좌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을 모으던 신화 시대.

전설 속에 기입된 몬스터들의 약점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누구가 그 약점을 확인하고 기록한 셈이었으니까.

마찬가지였다.

만일 몬스터들이 생물의 일종이라면, 살아가는 데에 어울리는 생태계가 따로 있는 법.

적도 근처의 전승에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러시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신세계 질서의 주축인 조로아스터 교의 악신들이 대한민국에 나타난 이유 또한 간단했다.

첫째, 본래 거주지인 이란 고워 부근을 이슬람 광신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존나 세.

허면?

페르시아 출신 악마들이 하필이면 대한민국에 똬리를 튼 이유는?

당연히 경전 속에서 대한민국까지 도망쳤던 선한 진영의 왕자를 뒤쫓던 악마가 있었던 탓이다.

즉, 조로아스터 교의 악마들도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그래.

쿠쉬나메라는 이름을 직역하면, 쿠쉬의 서.

여기서 말하는 쿠쉬란 곧 저 왕자를 쫓아 이 대한민국까지 찾아온 마신.

조로아스터 교에 둘도 없을 대악마.

두 번째 마왕을 뜻한다.

"두 번째 마왕이라니,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마왕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지?"

"글쎄올시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왕의 정의같은 건 나도 잘 모른다.

대충 어마무지하게 강한 녀석이라고 짐작할 뿐이지.

다만.

추론할 수는 있다.

여하간, 왕이라는 이름이 범상찮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적 이야기니까.

요컨대, 마왕이라는 건 일종의 직위.

힘이 있기에 오를 수 있는 만마들의 장 비슷한 자리겠지.

그렇다면 이야기는 보다 간단해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쿠쉬가 마왕의 심복이라는 점."

말 그대로 마왕의 오른팔.

마왕의 직속이라 할 수 있는 일곱 마신들 이상으로 드높은 존재.

그게 바로 쿠쉬다.

이란에서 신라까지 도망친 적을 쫓아 그들을 도륙하고, 마왕의 명령 한 마디에 정령들을 몰살하는 마왕.

즉.

'뭐, 고대니까.'

대적자들의 혈통을 끊고자 했던 마왕이 그 임무를 믿고 맡길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

자신의 밑에 있는 수하가 아닌, 자신을 보좌하기 위한 누군가.

다시 말해,마왕의 혈육.

왕의 동생으로서, 마왕의 이름을 감히 참칭할 수 있는 자.

그게 바로 쿠쉬의 정체다.

내가 이번 사태의 주역으로 쿠쉬를 꼽은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막말로, 대한민국 영토에서 소환할 수 있는 페르시아 신화 속 마신이 또 누가 있겠나?

달리 더 있다면 오히려 내가 놀랄 지경이다.

요컨대, 상황은 간단하다.

평소운 박사의 시설을 마신들의 마력으로, 예은이 대신 대한민국 영토 자체를 촉매로 삼은 소환.

그 결과 소환된 두 번째 마왕이 저런 식으로 난동을 부렸을 테지.

현재의 이 참사 또한 쿠쉬라는 존재의 명성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두 번째 마왕의 이름값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

'최소 S랭크.'

여기에, 마신들과 마찬가지로 마왕의 권능이 더해졌다면?

지금 저 도시 최심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S랭크 이상의 마력 반응 또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현재 도시 전역을 점거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출처 또한 마찬가지.

만약 신세계 질서 측에서 소환한 게 정말로 두 번째 마왕이라면 그 부하들일 가능성이 높겠지.

문자 그대로, 두 번째 마왕이라는 건 본인만의 권속을 데리고 있을 테니까.

이번에 우리들이 시민들의 대피를 우선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초대형 게이트 때와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니까.

그 때는 장기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게이트를 닫을 필요가 있었고, 때문에 우두머리의 목을 딸 필요가 있었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따로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았고, 설령 우두머리의 목을 친다 해도 피해가 극적으로 줄어들지는 않겠지.

당연히 시민들의 안위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의 목적은 피해의 방지.

신세계 질서와 싸우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할 수는 없지.'

아니, 어느 쪽이든 정신없이 몬스터들을 도살하다가 서아에게 붙들려 강제로 이탈한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우리들은 시민들을 데리고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두 번의 대침공을 거치며 축적된 시가전 관련 메뉴얼대로.

그 과정과 고난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문제는 신세계 질서의 거점이 된 신도시를 탈환할 방법이다.

상황은 정리됐다.

어느 정도 피난민들을 수습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그 사이 신세계 질서가 방비를 다진 건 틀림없는 사실.

당장 저 안에서 느껴지는 두 번째 마력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최후의 마신.

일찍이 마주한 적 있던 그림자 괴인 또한 저 쪽에 합류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괴물들로부터 도시를 다시금 탈환하는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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