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 겨울의 끝자락
* *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뭐가 어떻게 됐겠니, 그야 협력하기로 했지."
두 번째 겨울방학, 4주차.
마침내 일정 대다수를 소화하고 귀가한 나는, 다소 늘어지는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번 겨울방학 사이에 거둔 성과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제자들의 정비에 성공했고, 협회 쪽과 손을 잡게 되었으니까.
아니, 차분하게 설득했다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여신의 이름을 앞세워 윽박지르는 꼴이 되어버렸고.
반대로, 그런 만큼 섣불리 다른 생각을 품지는 못하리라.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염광훈 아저씨 본인은 딱히 의심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말단 공무원일 시절부터 지나칠 정도로 책임감이 넘쳤던 게 오히려 문제 아닐까 싶었던 양반이니.
다만.
정치라는 건 그리 생각하기도 쉽지 않겠지.
'본인 한 명이 실각하면 끝, 그렇게 말할 수도 없으니까.'
파벌이나 계파 문제도 있을 테고.
설령 아저씨가 우리 쪽에 협력을 약속한들,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각할 작자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다소 강압적인 수단이었지만 티아마트의 이름을 빌린 건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니까 정치는.'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니까 괜찮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까 경계해야 한다.
저런 식으로 대충 뭉게고 넘어갈 수가 없으니.
뭐, 그러니까 이런 쪽 이야기를 맡고 싶지 않았던 거지만.
심지어 이 쪽의 진짜 상대는 염광훈 아저씨가 아니라 신세계 질서 쪽이니까.
어느 쪽이든, 깔끔한 기분이 들긴 힘들었다.
다만, 이런 이야기도 슬슬 막바지.
정계에는 이준구. 재계에는 최승준.
마지막으로 듀얼계, 가 아니라 헌터 업계에서는 염광훈 아저씨와 협력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신세계 질서 쪽도 본격적인 포위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
만약 이대로 놈들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적어도 인간 쪽 끄나풀들은 대대적으로 소탕할 수 있으리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세계 질서를 둘러싼 포위망이 완전히 거리를 좁히기 전.
놈들도 장고를 끝내고 마지막 수를 두겠지.
말하자면, 지금 이 여유는 최후의 평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나 참."
하숙집 안에서, 나는 홀로 그런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작 질문을 던진 하연이조차 방금 전 대답에 별로 마음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보였던 탓이다.
뭐,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째 겨울 방학도 슬슬 끝이 다가온다.
어쩌면 그 덕분일까?
우리들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머잖아 끝나겠군.'
묘한 침묵 속.
하연이와 나의 만남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에,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
"준비는 끝났나, 사냥꾼."
"그야 끝났습니다만, 저는 사냥꾼이 아니라 군인인데요."
그 시각.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끝을 예감하고 있던 신세계 질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세계 질서 소속 헌터인 태시영은 짐짓 유쾌한 어조로 그렇게 화답했다.
"물론 군인이라 해도 전직이지만요."
시덥잖은 농담이었다.
애시당초, 태시영에게 군에 대한 소속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찍이 발을 담근 적 있던 장소일 뿐.
작금의 태시영에게 군부란 자신에게 기술을 제공한 장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작전을 위해 희생당한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태시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니까.
……그 사실에 내심 만족하는 스스로가 있다.
이제 와서 쓸데없는 애향심이나 애국심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걱정하고 있던 태시영으로서는 최선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허면, 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마찬가지로, 태시영과 대면하고 있던 그림자 괴인은 그렇게 말했다.
신세계 질서가 보유한 최후의 마신조차, 말마따나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따르기로 한 시점에서 더 이상 뒤는 없었으니까.
"다만, 실패하는 건 제발 용서해 줬으면 하는군. 그래서야 기껏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형제들을 볼 면목이 없지 않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현재 언론에서 실컷 떠들고 있는 삼팔선 이북의 몬스터들이 남하했을 당시.
신세계 질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파괴와 죽음의 마신이 죽음을 맞이한 이후로도.
애초에 그들의 죽음은 신세계 질서의 철저한 계획 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태시영은 말했다.
앞으로 신세계 질서가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번이 한계이리라고.
그 사이, 신세계 질서는 자하연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어떻게?
최종적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박우찬이라는 방해물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태시영은 관찰을 제시했다.
여하간, 적어도 그 시그니처를 방지하기 위한 수법이 효과를 보았던 건 확실했으니까.
허면?
무엇이든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은 기회를 위해, 태시영은 다른 마신들의 목숨을 요구했다.
파괴와 죽음의 마신은 확실한 성공을 위해 그 요구를 따랐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아카데미 쪽과 치러야 할 최종전.
바야흐로 마지막 전투에 앞서,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상책이 아니다.
뭐, 승산이 없지는 않겠지.
다만.
십중팔구 도박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으리라.
눈 앞에 있는 마신이 태시영의 제안에 따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하간, 대다수 마신들의 전력은 이 시점에선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적어도 한 순간에 자하연을 제압하고 납치할 만한 힘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나칠 정도로 가혹했던 상황 때문일까?
자하연을 비롯한 박우찬의 제자들은 지나치게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말하자면, 마신들의 가치가 추락한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태시영이 제시한 수가 효과적인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가치 없는 패를 소비해 필요한 요소를 확보한 셈이었으니까.
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속내를 드러내고 토로할 수는 없었다.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들은 거의 형제나 다름없는 관계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태시영 또한 말을 조심할 수밖에.
하물며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여하간, 형제들의 목숨을 필요하다며 헌납하라 권유한 셈이니까.
이번 작전에 목숨을 배팅한 사람은 마신들 뿐만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신들의 장자는 태시영의 장담에 별다른 추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최후의 전투를 앞둔 지금, 모든 준비가 끝났다.
폐하께서 처음에 안배한 계획은 더 이상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어그러지고 말았다.
인간들의 사회에서 촉매가 될 수 있을 법한 존재를 색출하고, 유효하게 활용한다.
이후, 촉매를 통해 소환된 존재들을 기점으로 삼아 인간 사회를 장악한다.
두 번의 대침공에 걸쳐 몬스터들이 경험한 패배를 참고로 삼아 준비한 전략이다.
하지만.
자하연은 탈출했고, 박우찬과 만났다.
거기에 상황이 여기까지 치달은 지금,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간 사회로 스며드는 건 불가능하겠지.
허면?
자하연을 비롯한 일련의 계획은 이제 가치가 없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촉매의 완성도는 실로 뛰어났으니까.
일찍이 초대형 게이트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나.
자하연의 절반 이하에 지나지 않는 촉매를 사용하고도, 마왕의 권속 된 거룡을 소환한 힘.
몬스터들의 세계 너머에서 마력을 통해 억지로 구멍을 뚫어야 할 필요가 없다.
게이트라는 전조 현상 없이 인간들의 세상에 강림할 수 있다는 메리트.
나아가서는, 인간 측 협력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듬은 소환 술식까지.
여태까지 그들이 쌓아올린 자산은 헛되지 않았다.
실제로, 마신들은 신세계 질서가 만들어낸 초대형 게이트를 통해 이 세상으로 넘어오지 않았던가.
몬스터들의 세상에서 일방적으로 구멍을 뚫고자 노력하는 대신, 인간들 쪽에서도 힘을 합쳐 길을 뚫는다.
현지 협력자들이 인공 게이트 기술 운운했던 마법은, 확실히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때문에.
현재 신세계 질서 측의 목적은 간단했다.
자하연의 신병을 확보한다.
이후, 다시금 게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도주한다.
현재 확보한 기술을 이용하면 충분히 두 세계를 왕래할 수 있겠지.
물론 크게 뚫린 게이트에 비하면 오갈 수 있는 건 정말로 일부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
소체가 되는 자하연.
이후, 의식을 집행할 한 명.
그 정도만 있으면 만마의 왕은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바로 이 세상에 강림할 수 있겠지.
허면, 그 시점에서 싸움은 끝이다.
대침공 내지 게이트라는 전조 현상이 있는데도 두 번의 싸움 끝에 파멸 직전까지 밀렸던 인류다.
오히려 이 쪽이 기습하는 상황이 된다면, 도저히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
……최후의 전력 보충도 끝났다.
이전에 열었던 초대형 게이트처럼 으리으리한 습격은 불가능하겠지.
그러나.
일찍이 소환되었던 마신들이 남기고 간 마력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최후의 작전을 실행할 여유는 있다.
게다가, 승산 또한 낮지는 않고.
오히려 지금 그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최선의 방법이라 단언할 수도 있겠지.
때문에 그들은 이 마지막 작전에몸을 맡겼다.
신세계 질서 최후의 싸움이, 그들의 승리로 이어지리라 믿으며.
*
그렇게.
두 번째 겨울 방학이 끝났다.
그리고.
봄이 다가오는 첫머리에서, 마침내 신세계 질서는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어지간히 아둔한 작자라 해도 마지막 여력까지 쥐어짰다 눈치챌 수 있을 공격.
아카데미와 신세계 질서를 둘러싼 최후의 싸움은, 그렇기에 퍽 인상적인 문구로 서막을 알렸다.
S랭크 이상의 마력을 방출하는 몬스터,2체 이상에 의한 신도심 타격.
요컨대, 아카데미 측의 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대도시는 문자 그대로 몬스터들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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