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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30화 (330/371)

〈 330화 〉 협회의 가장 높은 자리

* * *

결론만 말하자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수월했다 칭해도 좋겠지.

아저씨가 주었던 초대장을 제출하고 안쪽을 향해 발을 들인다.

초대장이 들어있던 봉투와 달리, 정작 연회장의 모습은 영 실속이 없는 게 눈에 밟혔다.

뭐, 그야 그렇겠지.

현재 협회에 대한 대중적인 여론은 농담으로도 호의적인 편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화려하기 짝이 없는 파티를 연다?

십중팔구 언론의 뭇매를 맞게 될 터.

마찬가지였다.

이번 파티가 개최된 명분은 어디까지나 삼팔선 이북 몬스터들의 기묘한 동향에 대한 대책 회의.

하필이면 아저씨가 나를 초대한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리라.

'나쁘지는 않아.'

실제로도 썩 괜찮은 상황이었다.

아저씨가 따로 말을 해둔 걸까?

딸랑 초대장 하나만 들고 왔는데도 퍽 그럴듯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 대부분은 바로 이 녀석 덕분이겠지만.

외투를 받아드는 이로부터 눈을 돌린다.

마침 퍽 우수 어린 눈동자로 회장을 훑어보고 있던 티아마트가 보였다.

……만약 누군가 보았다면 때 아닌 열병에 시달릴 법한 모습이었다.

뭐, 내가 보기엔 어중간하게 힘을 낮춘 탓에반쯤 바퀴벌레 비슷한 무언가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저 머리 위에 돋은 더듬이는 실제로 난 걸까, 아니면 내 감각이 보여주고 있는 착시인 걸까?

내심 그런 감상을 삼키며 상황을 살핀다.

이런 자리에 티아마트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을 위해 나는 티아마트에게 딱 한 가지 요구를 더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라!

밖에서 보기에 그럴듯한 표정이나 짓고 있으면 된다!

마침 본인도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는 않았던 탓일까.

녀석은 그런 내 말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사색에 잠긴 저 표정이었다.

'졸린 모양인데.'

아니,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피곤한 모양이지만.

적어도 내 감각으로 살핀 결과는 저랬다.

대신, 효과는 탁월했다.

일단 가벼운 호기심에 접근하려던 녀석들을 쳐내는 효과야 확실했으니까.

으레 같은 노숙자라 해도 정장을 입은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있으면 전자를 우대하는 게 사람 심리라 하던가.

덕분에 주변에서 우리를 보고 괜히 입방아를 찧는 양반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들이 다수.

단순한 흥미나 티아마트의 외모를 보고 빠진 얼간이들은 아니다.

허면?

'티아마트의 정체 때문인가.'

이 자리에 있는 인간들 중 티아마트와 직접 얼굴을 맞댈 권한이 있는 건 염광훈 아저씨 정도겠지.

최승준조차 티아마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노골적인 반응이라니.

놈들의 얼굴과 이름을 머리에 새기며, 나는 슬쩍 주변을 훑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아, 잠깐. 거기서 정지. 미안한데, 우리 곧 떠날 거라서. 이야기 나눌 시간 없습니다."

"……불쾌하군. 내가 말을 걸었던 건 당신이 아니라 그녀 쪽인데."

"내 파트너잖수."

"게다가 말도 짧고. 도대체 어디 누구지?"

물론 이런 식으로 귀찮게 엉겨붙는 녀석들도 없잖아 있었지만.

단순한 매너를 두고 따져도, 티아마트는 내 파트너로서 파티에 참여한 몸.

내 쪽에서 가로막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건만, 그런데도 가끔씩 이렇게 얽히려 드는 녀석들이 있었다.

뭐,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개빡치네.'

이런 녀석들이 나올 때마다 뿌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티아마트 때문에 짜증이 치솟았다.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대다수 녀석들은 저런 식으로 적당히 윽박지르면 알아서 자리를 피했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막말로, 회사 이름 따위를 대는 녀석들을 상대로 무슨 영광을 누리겠나.

"예? 진심이십니까?"

나로서는 역으로 그렇게 되묻고 싶을 뿐이었다.

아니, 진심인가?

딱히 협박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순수한 의문이었다.

그야 여기 있는 양반들도 대부분 높은 사람들이겠지.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다.

고작해야 기업. 고작해야 직위.

그 정도로 나를 협박하려 한들 오히려 곤란할 뿐이니까.

막말로, 돈이나 권력 따위를 앞세운들 정말로 나보다 강할 리도 없고.

만약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양반들이 있다면 나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가 심하구나, 하고.

"잠깐, 저거 도축업자 아닌가?"

"뭐라고?"

"아니, 맞는 것 같은데? 잠깐, 누가 저 새끼 말려……!!"

여기에는 내 명성도 도움이 되었다.

여하간, 이전과는 달리 나 또한 지금은 정식 헌터니까.

그리고 내 사냥 기록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사기 충분할 정도였다.

물론 대다수는 신세계 질서와 맞붙은 결과물인 만큼, 정식으로 기록에 올릴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일부만으로도 충분할 지경이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내 과거사 또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아니, 애시당초 유명하지 않았을 뿐 딱히 정보 통제가 되어있던 건 아니니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덕분에, 회장 내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시작한 이후.

저렇게 접근하던 얼빠진 친구들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야, 이게 인망이라는 거구나……."

"응? 아니, 그보다는 두려워하는 듯한데……."

"어허."

질투심 때문일까?

지극히 주관적인 언론 호도를 일삼는 티아마트를 향해, 쯧 하고 혀를 찬다.

동시에, 내 팬들을 향해 살짝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내자 부끄러운 듯 조용히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내심 흐뭇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보며 좌우로 고개를 젓는 티아마트.

뭐. 왜. 뭐.

"이야, 여기 있었냐!"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사인횔르 벌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다.

여하간, 우리가 여기에 온 건 나름 용무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드디어 뒤늦게 나타난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다소 작위적인 언동.

방금 전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들볶였던 탓일까?

추레한 인상 가득한 중년 아저씨가 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아니, 괜찮수다. 나름 재밌었고."

"그러냐? 하긴, 아까부터 계속 네 이름이 들리더라. 혹시 난동이라도 피운 건 아니지?"

"설마!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너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뭐, 그냥 팬들하고 인사 좀 나눴지."

"팬? 너한테 팬이 있다고?"

시발, 존나 너무하네.

나도 모르게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방치하고서, 사람 좋게 웃던 아저씨는 이윽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야, 그렇기만 네가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데려올 줄은 몰랐다. 혹시 네……?"

그리고.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아저씨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동시에, 경악 가득한 시선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꽂혔다.

응?

뭐야, 저 반응은?

"그래. 오랜만이로구나, 광훈아."

그렇게 생각하던 내 뒤로, 티아마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치 속삭이는 듯한 그 어조에, 뒤늦게 생각이 닿는다.

'아, 맞다.'

이 녀석, 꼴에 여신이었지?

이윽고.

내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직후.

나는 이 아저씨에게 붙들려 별실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

"이런 미친."

별실.

티아마트의 모습을 보고 우리들을 별실까지 안내한 아저씨는, 마치 탄식하듯 그렇게 뇌까렸다.

뭐, 그렇겠지.

물론 이 아저씨도 티아마트가 분신을 통해 외유를 나서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겠지.

당장 티아마트가 아카데미 교사로서 부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덕분이었으니까.

애초에 내가 티아마트와 무제한 접촉할 수 있는 명분 또한 거기에 있었고.

민간 시찰을 나선 티아마트를 감시 및 보호하기 위한 인력.

현재 공식적으로 협회에서 인지하고 있는 내 역할은 딱 그 정도가 아닐까.

아니, 외유라고 한들 어디까지나 분신을 사용할 뿐.

그런 점을 제외하더라도, 하필이면 내게 몬스터의 호위라니.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 또 따로 있을까 싶기는 한데.

중요한 건 이 아저씨도 나와 티아마트 사이의 관계는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뭐, 이런 파티에 대동할 수 있을 만한 사이라는 건 몰랐겠지만.

오히려 짐작할 수 있다면 내 쪽이 더 놀랐으리라.

아니, 그야 나는 초면에 티아마트의 뿔까지 자르고 도망친 적 있었으니까.

비록 오월동주 가까운 협력 관계라고는 하나, 예상하기는 힘들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나부터 티아마트의 속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없잖아 있었고.

'부부는 뭐야, 부부는.'

잠시 솟구치는 미혹을 억누른다.

덕분에 상황을 설명하는 건 쉬웠지만.

신세계 질서라는 조직에 대해서.

놈들의 조직에 대해서.

그리고 이후의 처신에 대해서.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젖힌 채 이마 위로 손을 얹었다.

"그래. 왜 여태까지 너희들이 일언반구 없었는지 알겠다."

"아, 역시?"

가급적 그 쪽은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역시 눈치챈 모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북쪽에서 발생한 이상 사태만으로도 헌터 협회는 집중 포화당하고 있을 정도다.

헌데, 여기에 알고 보니 무언가 숨겨진 배후가 있다?

심지어 그 숨겨진 배후는 대한민국을 무대로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키려 하고 있고?

게다가 사회의 상층부마저 협력하고 있다니.

만약 이런 이야기가 유출되면 어떻게 될까?

몇 번이나 말했듯, 기본적으로는 헌터 협회에 대한 성토.

뒤이어 그 책임을 실감 운운하며 협회의 장인 아저씨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게 결과적인 흐름이 되리라.

이번 이야기를 듣고, 아저씨 또한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햐, 좆됐네……."

본래는 이번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적당한 안건을 색출하고 싶었던 거겠지.

지나칠 정도로 큼지막한 사태에 아저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굴을 푸르죽죽하게 물들였다.

뭐, 사태를 잠재우고자 뒤적거리던 풀숲 속에서 폭탄이 발견된 셈이니.

허면, 여기서 아저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어, 대놓고 그런 일은 없다며 잡아떼기.

혹은,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뒤에서 우리와 협력해 신세계 질서를 추적하기.

아니면 신세계 질서 쪽에 붙거나, 우리들을 적대하는 식으로 현실도피를 시도할 수도 있겠지.

다만.

슬쩍, 그 시선이 옆자리의 티아마트에게 닿는다.

그리고.

"너는 진짜 나쁜 새끼다."

푸욱 하는 한숨과 함께, 아저씨는 그리 말했다.

……인류를 돕기 위해 머나먼 동쪽까지 찾아왔다는 이국의 여신.

그녀를 앞에 두고 추레하게 권력 다툼이나 벌일 만큼,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은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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