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28화 (328/371)

〈 328화 〉 때 아닌 겨울 휴가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토록 사냥에 열중한 이상 본래 목적대로 스키를 즐기는 건 퍽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껏 사냥한 끝에 정작 스키장을 빌릴 수 있는 시간이 되니 뻗어버린 제자들.

그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나는 이윽고 투숙을 위해 빌린 호텔 1층 플로어로 걸음을 옮겼다.

뭐, 쟤들이 즐겼으면 된 거지…….

응, 괜찮아…….

따로 챙겨두었던 스키 강습용 팜플렛을 뒤적거리며 설경을 살피기도 잠시.

피식피식 웃으며 커피나 홀짝이던 내게 예상 밖의 만남이 찾아온 건 바로 그 때였다.

"아, 여기 있었군!!"

"엉?"

불현듯 그런 소리가 들리는 때에 맞추어 고개를 돌리니, 어쩐지 눈에 익은 아저씨가 거기에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말하고 넘어가기도 힘들었다.

아니, 아재가 왜 거기서 나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건 그런 소리가 나올 법한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엥? 댁이 왜 여기 있수?"

"아니, 그야 네가 자리를 비웠으니까 그렇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투실투실한 중년남 양반은 고개를 저으며 허락도 없이 내 앞에 앉았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건 그렇다 쳐도, 이런 데에서 만날 줄은 정말로 몰랐던 인선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런 때에 협회장이 자리를 비워도 되나?'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양반은 바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염광훈.

말했다시피, 현재 대한민국 헌터 협회를 담당하고 있는 양반이다.

즉, 직함을 따질 때 헌터 업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실제로, 현역 시절엔 나 또한 눈 앞의 아저씨한테 이래저래 신세를 진 적 또한 있었다.

여하간, 제 2차 대침공 당시 전선에서 벌였던 활동 덕분에 협회장 자리에 오른 양반이니까.

정부와 헌터들 사이에 서서 거간꾼 노릇에 충실하던 일개 공무원이 그 자리에 오른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시 고조되어가던 헌터들의 불만을 재빨리 캐치해 정부 쪽에 전달했다던가.

혹은 정부 쪽에서 간과하고 있던 헌터들의 권리를 공무원 입장으로 정리해 발표, 통과시킨다던가…….

덕분에 별다른 대책 하나 없던 정부와 그 사실에 불만을 품던 헌터들이 힘을 합칠 수 있었던 완충재.

일찍이 대한민국 정부 부처의 일부였던 협회가 명목상으로나마 독립하게 된 건 바로 이 아저씨의 공이 상당히 컸다.

당장 나만 해도 현역 시절엔 이 아저씨한테 신세를 진 적도 있고.

비 인가 헌터라는 이유로 미덥지 못하다는 시선을 보내던 이들의 입을 닥치게 하고 협력을 제안한 게 바로 이 아저씨였으니까.

현재는 각종 매스컴에게 망발 문제로 집중 포격받고 있는 군부의 영웅 청준필 준장.

민간인들에게 있어 가장 알기 쉬운 영웅인 이준구.

여기에 더해, 헌터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는 게 바로 염광훈 헌터 협회장이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 아저씨가 조금 껄끄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딱히 이 아저씨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찍이 최승준과 함께 이 양반의 실각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야 핑계는 있지만.

여하간, 만에 하나 제 3차 대침공이 일어난다면 헌터 협회의 머리는 책임을 지고 내려와야 한다.

허면, 최소한 그 직후 신세계 질서의 공작에 대처할 수 있도록 괜찮은 인원을 미리 물색해두도록 하자.

우리들의 계획은 딱 그 정도였으니.

뭐, 만약 정말로 일이 급하게 흘러가면 제 3차 대침공에 대한 대책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했겠지만.

그 경우, 마찬가지로 아저씨는 실각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런 위험 분자들을 알아내지 못하고 무얼 하고 있었느냐는 힐난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실각하는 사태를 피하고 싶기 마련.

우리들로서는 신세계 질서 쪽을 막고자 최선을 다하되, 후일을 안배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우리들 사정이고.

아저씨 입장에서 보자면 한때 알고 지내던 꼬마들이 지금은 자신의 뒤를 찌르고자 한다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법.

당장 나부터 어떻게 포장하든 실제로는 그런 꼴이라는 걸 부정하기 힘들 정도니.

자연스레 협회에 가입한 이후로도 이 아저씨를 찾아가는 건 다소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헌데.

"도대체 무슨 일이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직접 축객령을 내리기엔 미묘한 사이다.

거기에, 문제가 생길 경우 따로 나를 부르면 불렀지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으니까.

다소 어안이 벙벙한 느낌으로, 일단 나는 그리 물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웬 스키장이냐?"

"아니, 나도 지금 휴가거든?"

마치 내가 여행을 갈 줄은 몰랐다는 듯 그리 묻는 아저씨의 말에 무심코 울컥해 그리 답한다.

뭐, 이 양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아, 맞다. 교사 됐다며? 듣기야 들었지, 깜짝 놀랐지만."

"나 참, 보는 양반들마다 매번 놀랍다 뭐다 운운하니 원."

"흐하하. 그래, 미안하다. 어쨌든, 용건이 있어서 찾았는데 네가 여행을 떠났대지 뭐냐."

다시 한 번 그런 말을 반복하는 아저씨.

그러니까 협회장이라는 양반이 그렇게 경거망동해도 되는 건가.

무심코 그런 말이 나올 뻔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관계에 구태여 그런 말을 하긴 조금 그렇겠지 싶어 억눌렀다.

단지.

나로서는 그 용건이 짐작도 가질 않았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현재 협회장인 이 아저씨가 몸이 달아오를 만한 사건은 하나 뿐이다.

저번에 있었던 몬스터들의 남하.

그에 따른 정치적 공세.

허나,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방송국을 무력 점거하는 정도겠지.

내게 정치적 능력을 기대해도 곤란할 따름이라는 소리다.

때문에.

요 아저씨가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휴가 떠난 사람까지 뒤따라왔나 기대하던 나는, 곧 예상 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신세계 질서인가 뭔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다며?"

"엥?"

아니, 그 새끼들 이름이 왜 댁한테서 나와?

무심코 그리 반문하려던 나는, 내 행선지를 이 양반한테 알려줄 만한 양반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최승준이요, 이준구요?"

"야, 걔들한테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라. 내가 억지로 캐물은 거야."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그리 묻는 내게, 아저씨는 손사래를 쳤다.

물론 나로서는 어색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말했듯이, 나는 놈들 관련 문제로 이 아저씨를 끌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아저씨를 끌어내리는 게 이 양반 정치 인생엔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핑계는 있지만, 말마따나 명분 정도고.

당사자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 생각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니, 나로서도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조금 조사했지. 요 최근, 북쪽에서 있었던 일은 너도 알고 있을 거 아니냐."

"그야 알고 있지. 나도 거기에 있었는데."

"뭐, 진짜?"

"댁은 조금 알고 있으쇼."

그야 기사에서 교사들 이름까지 하나하나 불러주지는 않지만.

단지,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알 법도 했다.

여하간, 요 최근에 있었던 신세계 질서의 공세.

즉, 이북의 몬스터들을 움직이는 공격은 지나칠 정도로 과격했으니까.

……북부 지역은 헌터 협회가 눈독을 들이며 감시하고 있는 장소다.

당연한 이야기.

현재 헌터 협회가 가상의 공략지로 삼고 있는 게 바로 태백산맥과 북쪽이기 때문이다.

헌데, 그 근처에서 명백히 이상한 집단 행동이 발견되었다?

당연히 헌터 협회도 조사에 나서겠지.

허면, 신세계 질서의 꼬리도 붙잡힐 수밖에 없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누군가 힘을 써 감시를 무마했든, 아니면 북쪽에 대놓고 터를 잡고 있었든.

협회장인 아저씨는 그 사실을 눈치챘을 거고, 알 만한 사람들을 조지기 시작했겠지.

신세계 질서의 세력도 끝물이라 말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물리적인 전력 이전에 최근 신세계 질서가 벌이는 행동은 지나치게 스케일이 컸으니까.

정말로 마왕의 부하들 측에서 발을 빼면 곤란해지는 건 자신들 뿐이다.

그런 이유로 아우성친 결과다.

필시 머잖아 그 끄나풀 대다수는 감옥에 쳐박히게 될 테지.

마찬가지로, 그러니 신세계 질서가 행동에 나선다면 머잖아 곧.

아직 여력이 남아있을 때, 라고 예상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만.

"어디까지 알고 오셨수?"

"모르긴 몰라도, 미친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지."

"흠."

"나 참, 북쪽 놈들을 움직일 줄은 또 몰랐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는 이마에 땀을 닦았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뭐, 그렇겠지.

만약 아저씨가 그런 식으로 무언가 수상한 점을 깨달아 최승준이나 이준구 쪽을 들볶았다면?

그리고 무언가 합의가 있어 아저씨에게도 어느 정도 사실을 공개하기로 했다면?

아마도 놈들은 신세계 질서라 불리는 비밀 조직이리라.

놈들에 대해서는 박우찬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말했으리라.

씨발 놈들, 이런 일을 짬때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

왜냐하면 먼저 짬을 때린 게 나였기 때문이다.

현재 최승준은 아카데미 관련 수습으로, 이준구는 신세계 질서 끄나풀 탐방으로 시간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 멘탈 케어 명목으로 먼저 스키장을 예약한 건 바로 나였다.

"미친 새끼!! 이런 개 호로 새끼!!"

내게 맡겼던 서류 대신 휴가 신청서를 내밀자 최승준이 그리 외치던 게 아직도 눈에 선했다.

사람, 적재적소라는 게 있는 법.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게 지금은 내게로 돌아왔으니, 바야흐로 인과응보라 할 법했다.

단지.

'흐음.'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런 설명을 맡긴 걸까?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다.

설명 자체야 내가 적임이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승준은 바쁘다.

그리고 자기 주변머리 외에는 어둡다.

이준구는 빡대가리고.

이제 와서 놈들의 신화적 기원이나 세세한 설명 따위를 풀어 설명해줄 만한 언변이 있을까?

글쎄, 나는 퍽 회의적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지금 나는 이번 일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면 되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부분이 조금 곤란했다.

물론 설명 자체야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을런지.

이 아저씨를 실각시킬 예정이었던 계획까지?

아니면 어디까지?

아니, 애초에…….

'남해 지부 일도 있고.'

신세계 질서가 헌터 협회에 어깃장을 놓은 건 사실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헌터 협회 전체가 깨끗한 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즉.

눈 앞의 이 양반이 신세계 질서와 연관이 없다던가, 혹은 내 말을 듣고 연을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던가.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그리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이 양반은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겠지.

다만.

'내 안목이 그렇게 믿을만한가?'

훗, 그럴 리가 없지.

게다가 권력이라는 게 또 모르는 법 아닌가.

무엇보다, 이 양반은 꽤 겁 많은 성격이고.

제 3차 대침공 운운하는 말을 들으면 지레 겁을 집어먹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측근 쪽으로 정보가 샐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지금으로서는 썩 곤란했다.

아니, 최승준이나 이준구도 명확한 해답은 없으니 내게 맡긴 거겠지만.

"뭐, 여기서 대답을 듣고자 하는 건 아니야."

다행스럽게도, 내가 무어라 말하기 전 아저씨는 먼저 그렇게 입을 열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지금 이 시국에 협회장이 강원도 스키장 기웃거리고 있는 게 어디 찍히기라도 해 봐라.

심지어 상대는 아카데미 교사 중 한 명.

대형 스캔들 감이다.

때문에.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스윽 하고 내게 고급스러운 편지봉투 하나를 밀어 건네줄 뿐이었다.

"그럼, 장차 생각이 정리되면 대답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는 슬쩍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 찾아온 목적은 정말로 나를 찾는 것 뿐이었던 모양이다.

뭐, 적어도 부하를 시켜 나를 찾았다가 일이 새면 곤란할 거라는 정도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니.

어쩌면 주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태연한 척 봉투를 챙기며 슬쩍 그 표면을 훑었다.

그리고.

'파티 초대장?'

봉투 표면에 쓰인 그 글자를 확인하며, 내심 피식 하고 웃었다.

퍽 고풍스러운 수법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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