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 때 아닌 겨울 휴가
* * *
그렇게 형님의 가게 어귀에서 장비 관련 상담을 마친 이후.
나는 따로 스키장 쪽을 예약했다.
뭐, 스키장이라고 해도 정말로 왕창 놀 생각인 건 아니고.
이래저래 분위기가 축 처진 면이 있으니 풀어줄 기회가 필요하겠지 싶었을 뿐이지만…….
"으랏차!!"
장대한 외침과 함께, 윤하가 내지른 일격이 설산을 강타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형님의 실력은 확실하다.
상재와 별개로 장인으로서의 실력에 흠결은 없음.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잠깐. 돌아온 이후 장비 정비를 위해 몇 번 정도 상의.
고작해야 그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윤하가 다루고 있는 장창은 마치 수족의 연장처럼 그녀의 손에 착 달라붙은 상태였다.
다른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퍽 단정한 옷차림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예은이의 드레스도, 실제로는 옷감으로 온갖 마력 회로가 새겨진 물건이고.
일찍이 지희가 요구했던 바와 같이, 마력을 폭발력으로 전환하는 권갑과 각반은 그녀의 화력을 보충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
하연이의 경우, 아예 저주의 성능 자체가 현격히 달라졌다.
지팡이 위에 달린 수정도 능력 행사 보조 이전에 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를 띄고 있었고.
제자들의 성장세를 보고 미리 견적을 낸 건지, 아니면 이번 사태로 달리 생각한 게 있었던 건지.
형님이 녀석들에게 내준 장비는, 현역 A+랭크 헌터조차 군침을 흘릴 만한 물건들 뿐이었다.
덕분에 아직은 장비의 성능을 앞세우고 있는 점도 눈에 밟혔지만, 곧 수정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예약한 장소는 정말로 스키장이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상황에서 평범하게 문을 여는 스키장이 드물었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 나라에서 으뜸 가는 스키장들이 포진한 강원도는 태백산맥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요컨대, 이 쪽에서 스키장을 빌리기 위해서는 태백산맥 쪽 몬스터들을 치워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그 일환이었다.
단지.
나로서는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의 부담을 풀어주기 위한 여행 계획이었는데.
정작 우리 꼬마들은 스키장이 아닌 몬스터 토벌 쪽에 역으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여하간, 바로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고.
삶의 체감.
헌터라는 직업이 가진 위험성.
혹은, 신세계 질서의 위협.
어느 쪽이든, 그런 기분을 실감하기엔 충분한 사건이었으니까.
뭐, 나로서는 장비 성능 테스트도 겸할 수 있으니 사양할 만한 일은 아니지.
다만.
"너무 흥분했는데."
"그래?"
"엉."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냥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런 만큼, 사냥 직전이나 직후.
헌터는 평소 이상의 긴장과 흥분에 휘감기게 된다.
사냥 당시엔 그래도 괜찮다.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본능에 맡긴 판단도 경시할 수 없으니까.
단지.
사냥의 열기에서 벗어나, 어중간하게 이성이 돌아온 시점.
흥분한 육체는 잘못된 선택을 야기하는 법이다.
짧게는 사냥 종료 직후 난입한 난입자의 기습.
넓게 보자면, 사냥의 흥분에 힘입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아이를 만들고 은퇴한 얼빠진 자식들도 있었다.
아니, 씨발.
지금 와서 생각하면 빡치는 사례일 뿐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런 식으로 들끓는 흥분을 진정시킬 나름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거나 루틴을 반복하는 식으로 의식을 갈아끼우기도 하고.
현역 시절에는 아예 기묘한 명상법 따위를 동원하던 녀석도 있었다.
나?
나야 뭐, 저런 수단은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 내가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죽이는 데에서 얻는 스트레스 해소가 말이지…….'
물론 다른 헌터들도 나름 성취감은 있겠지만.
나는 개중에서도 한층 더 특별한 부류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몬스터를 쳐죽이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스트레스 해소가 되므로 사냥만 반복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으음."
어쩐다.
보통 이럴 때 사용하는 방법은 술 아니면 담배.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학생들에겐 추천할 수 없는 방법이다.
아니, 헌터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헌터들의 육체나 마력이 술이나 담배의 악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건 사실이지만, 영향이 완전히 없지는 않고.
다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니 그런 쪽으로 대책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
그래도 학생들에게 술이나 담배를 권유할 수는 없으니까, 나로서는 고민이 됐다.
언제나 생각하는 점이지만, 이런 식으로 내 경험이 도움이 안 될 때가 제일 힘들다.
젠장, 왜 쟤들은 평범한 감수성을 지닌 거지…….
몬스터를 죽일 때마다 쾌감이 솟는 체질이었다면 모두 편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아야, 너는 저럴 때 어떻게 해결하고 있냐?"
"응?"
"아니, 뭐. 사냥 전후의 흥분 쪽 말이야."
"아아, 그거?"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해결 방법으로 학생들 앞에서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방법을 택하는 쪽도 있으니까.
애인이 있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서아는 그런 식의 수단을 고려한 적이 없던 모양이다.
무심코 입 밖에 내버렸다 나조차 당황한 점과 별개로, 서아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대답했기 때문이다.
"약초 씹는데."
"……응?"
그런데 정작 돌아온 대답이 이 꼴이니.
야, 약초?
나도 모르게 보다 흉흉한 쪽으로 생각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천리안을 지닌 서아 앞에서 표정을 관리하는 건 어려웠다.
"잠깐, 사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 했지?!"
"아,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냐!!"
나도 모르게 옥신각신하길 잠시.
이윽고 서아는 자기 제자를 어떻게 보는 거냐면서 짧은 투덜거림과 함께 내 의문에 답변했다.
"정신 확 드는 약초들 있잖아. 거기에 강장제 느낌으로 배합해서 씹어. 쓴 맛으로."
"아하."
확실히.
결국 흥분이라는 건 육체의 작용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육체의 반응을 통제하면 강제로 안정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냥을 통해 소비된 양분을 억지로 공급하고, 미각을 자극하는 식으로.
휴, 이상한 약물 따위에 손을 댄 건 아닌가.
사부 안심이야.
"나는 걱정이야, 우리 사부가 이렇게 제자들한테 신용이 없으니까."
"어허, 무슨 소리를."
어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열어두어야 하는 법.
나는 서아를 충분히 신뢰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서아가 악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계도할 의무가 있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댄 건 내가 아니라 사부 쪽이잖아."
"어허. 그건 불법이 아니라 면허가 없었을 뿐이지."
"그게 그거거든?"
나 참, 요즘 세상이 이렇다.
한 마디도 사부에게 지지 않으려고 따박따박 말대꾸라니.
'제자가…… 말대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가 비 합법 헌터였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자신이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장을 골라 싸우는 법.
바야흐로 전략적 철퇴였다.
"뭐, 어느 쪽이든. 슬슬 나도 한바탕 하고 올게."
"괜찮겠어?"
"정비한 무기도 손에 익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서아는 자신의 활을 들어보였다.
일찍이 길드에서 강판된 이후, 달리 장인과 개인적인 연이 없던 서아.
때문에 내게 장인 소개를 부탁했던 그녀에게, 나는 이번에도 형님 쪽 가게를 알려주었다.
바야흐로 정경유착이라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니, 서아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첫 번째 제자니까.
나로서는 제일 실력 좋은 장인을 알려주었을 뿐이지만.
어쨌든, 최근 정비를 맡긴 서아의 장비는 한층 더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분명히 정비만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희소한 소재가 사용되어 돌아온 무기.
그 모습을 보고도 서아는 별다른 말 하나 건네지 않았지만, 손에 익어야 한다 운운하는 걸 보면 일부러 운을 띄우지 않았을 뿐이겠지.
사부로서는 머쓱할 따름이다.
"혹시 애들이 헤멜 것 같으면 조금 도와주고 와."
"이제 와서? 쟤들, 성장세가 만만치 않던데."
서아는 퍽 탐탁치 않은 얼굴이었다.
뭐, 그렇겠지.
이 태백산맥 근처는 일전에 서아가 랭크에 맞지 않는 추태를 보였던 장소.
머쓱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단지.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한다더니."
"응?"
"너는 기억 안 날지 모르겠지만, 너도 비슷했어."
아니, 오히려 더했지.
다른 학생들과 달리,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날 각성했던 서아다.
상황적인 조건은 하연이랑 비슷한 셈이고, 거기에 이상할 정도로 폭증하는 마력도 없으니.
맨 투 맨으로 가르쳤다는 점이야 있지만, 서아의 향상세도 저기에 못지 않았다.
재능이라고 할지, 자질이라고 할지.
아니면 몬스터에 대한 복수심이라고 할지.
내 최근 경험에 미루어 보자면, 오히려 길드에 들어가 작업 비슷한 기분으로 사냥을 하니 성장도 정체되었던 느낌이다.
실제로 최근엔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A+ 수준이었던 과거와 달리, 마신들을 사살하는 성과도 올렸으니.
알게 모르게 서아도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S랭크는 조금 멀지만.'
어쩔 수 없지, 그건.
여하간, E랭크와 A+랭크의 차이보다 A+랭크와 S랭크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고 일컬어지는 판국이니.
어느 쪽이든, 아직 학생들 수준으로는 서아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뜻이다.
학생들의 성장세야 아직 빈 그릇이니 유달리 빠르게 실력이 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게다가, 쟤들 애들 운운하지만 서아도 비슷한 나이니까.
이제 와서 초조할 필요는 없으리라.
"헤헤."
"뭐야."
"아니, 그냥. 사부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다, 싶어서."
"에엥?"
무슨 소리를.
나만큼 칭찬으로 키우는 타입이 또 어디에 있다고?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서아를 돌아보자, 서아는 빼꼼 하고 혀를 내밀었다.
"사부, 모르지? 사부가 잘 한다 잘한다 할 때에도 정말로 감탄한 적은 없는 거?"
"아니, 그거야……."
비교 대상이 최승준 아니면 이준구인데 어떡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학생들에게 그런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아무래도 녀석들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던 걸까.
짐짓 쾌활한 어조로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킨 서아는, 곧 다녀오겠다며 팔랑팔랑 한층 가뿐한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적막하기 짝이 없는 설원.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겨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