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화 〉 두 번째 겨울방학
* * *
"결론만 말하자면, 소재가 부족해."
가게 지하.
장인들에겐 본인들의 거점이나 다름없는 바로 그 장소에서, 형님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느슨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내게는 문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아니, 소재가 부족하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처구니없는 기분도 들었다.
소재가 부족하다니?
그야 지금 준비된 모습만 보아도 형님 쪽 문제는 아니겠지만.
슬쩍 시선을 돌린다.
족히 몇 달은 걸릴 작업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걸까.
지하실에 준비된 대장간은 한창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나조차 쉽게 거론하기 힘든 소재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게 눈에 밟힐 정도였으니까.
필시 장인 거리 중앙의 화로도 실컷 불을 토하고 있겠지.
헌데, 소재 부족이라니?
부족한 건가?
뭐가?
아니, 설령 비축분이 부족하다 치더라도 이 쪽은 창고까지 털겠다고 명언한 상황.
어지간한 소재라면 구매할 수 있을 텐데.
즉.
"가격 문제가 아니거든."
"뭐?"
"물량이 부족해."
그 말에 조금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물량 부족?
다른 물건도 아니고, 현역 S랭크 소재.
게다가 그 중에서도 최고급 소재들만 품귀 현상이라고?
그야 소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어쩔 수 없겠지.
여하간, 인류가 S랭크 몬스터를 토벌한 경력은 공식적으로 두 자릿수.
비공식적인 교전까지 합하면세 자릿수 가까운 숫자가 될지도 모르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네 자릿수는 버겁다.
당연히 소재 자체가 부족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나나 형님도 그런 문제는익히 알고 있었다.
요컨대, 내가 발주한 의뢰나 형님이 낸 견적서도 그런 사실은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소재가 동났다는 건 역시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최고급 소재라는 건 농담으로도 가성비가 좋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반대로 그 덕분에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될 정도니.
솔직히 말하자면, 최고급 소재가 바닥을 드러낸 건 살면서 처음 봤고.
요 최근 소재가 고갈될 만한 사안이 있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직후, 나는 무심결에 탄식을 토하고 말았다.
짐작 가는 사안이 있었던 탓이다.
무엇보다, 내게도 관련이 없진 않은 이야기였다.
"실화냐……."
즉, 이번에 있었던 몬스터들의 남하 사건.
소재 품귀 현상이 일어난 건 아마도 그 때문이겠지.
여하간, 대한민국 헌터와 몬스터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뻔했던 사건이니까.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 또한 범상치 않았다.
개중에서도 유달리 크게 반응한 건 바로 일찍이 은퇴한 퇴역 헌터들 쪽이었다.
제 2차 대침공이 끝난 직후, 온갖 문제로 말미암아 은퇴를결심한 헌터들.
헌데, 다짜고짜 저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으니.
헌터로서 활약했던 과거가 있는 만큼더더욱 불안할 수밖에.
만에 하나 본격적으로 저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국가에 의한 강제 징집 운운하는 수준이면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겠지.
설령 국가 쪽에서 그들을 강제로 동원할 여력이 없다 해도 마찬가지.
막말로, 몬스터들이 그들의 은퇴 여부를 두고 배려하며 침공할 리는 없지 않겠나.
자연스레 퇴역 헌터들 사이에서는 재무장 열풍이 불어닥쳤다.
창고에 박아두었던 장비를 일신하기 위해 소재를 구매한 헌터도 드물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는 전직 고랭크 헌터였을 테고.
최상급 소재란 고작해야 그 정도로도 매물이 동나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아니, 국가 쪽에서 만약을 대비해 구입한 물건도 없잖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내게는 때 아닌 날벼락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튼, 신세계 질서 새끼들.
내 인생엔 하등 도움이 되지를 않는단 말이야.
무심코 그런 투덜거림이 튀어나올 정도로.
"그, 그래서? 어떤 수준인데? 완전히 말도 안 나오는 상황까지 가진 않았을 거 아냐."
"뭐, 그렇지. 하지만, 문제가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 걸터앉은 형님은, 이윽고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주욱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시선은 새삼스레 생각해도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확보할 수 있는 소재도 목표치의 절반 정도가 고작일 거다."
"절반? 절반이라고?"
"그래."
애미.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만약 윗층에 형수님이 계시지만 않았더라면 실제로 내뱉었을 테지.
그 정도로 골치 아픈 상황이었으니까.
이번에 내가 형님에게 맡긴 의뢰는 단 하나.
내 애병과 장비.
즉, 대검과 정장 양 쪽을 최고 수준으로 보수 및 개량해달라는 쪽이었다.
그리고.
몬스터 소재를 사용할 수 없다는 특성 상,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소재도 어디까지나 광물 계통 뿐.
당연히 무기나 갑옷 또한 사용 소재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즉, 형님이 말하고자 하는 건…….
"보수 정도는 가능하겠지. 네 무기나 방비도 꽤 오래 썼으니까. 보수하기만 해도 체감 성능은 상당히 달라질 거다."
"다만, 개량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가 고작이라는 뜻이군."
"맞아."
형님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개량해야 할 장비는 두 개.
허나, 확보할 수 있는 소재는 목표치의 절반 뿐.
허면, 손을 댈 수 있는 장비도 절반이 될 수밖에 없다.
즉, 무기나 방어구.
어느 쪽이든, 장비 중 하나는 개량을 단념해야 할 테지.
'나 참.'
여기까지 와서 소재 부족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이었다.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괴물 새끼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발목을 붙잡은 문제가 시장 경제가 될 줄은.
몬스터 소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편하진 않다니까.
설마 이런 식으로 방해를 받게 될 줄이야.
내심 그런 감상이 들었다.
그러나.
품은 감상과 별개로, 대답은 명확했다.
"그럼 무기 쪽으로."
"……괜찮겠냐?"
형님이 의아하다는 듯 그렇게 되물었다.
이해할 수 있는 반문이었다.
여하간, 평소의 나라면 오히려 반대로 대답했을 테니까.
다만.
굳이 따지자면, 애초에 지금 이 주문부터 평소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소처럼 싸워선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는 제 3차 대침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괴물.
조로아스터 교의 마왕이라 불리는,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바와 달리 내 생존을 우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승산.
놈들을 상대로 승리를 손에 넣기 위한 준비다.
만에 하나 놈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넘길 수 있는 갑옷이 완성되더라도, 칼날 하나 박히지 않으면 패배는 피할 수 없으니.
당장은 무기를 확보하는 게 정답이리라.
말마따나 내게도 낯선 상황인 건 사실이지만.
그런 내심을 토로하자, 형님은 짧은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재 확보도 실패한 대장장이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냐."
"아니,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러쇼.사람 대답하기 힘들게."
"됐다. 알겠으니 올라가 봐. 나는 조금 더 살피고 있으마."
"엉. 아, 그래도 갑옷 쪽 수선은 부탁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재 확보에 실패했던 탓일까.
영 울적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형님을 뒤로하며, 나는 윗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박우찬이 1층으로 올라간 이후.
쾌운철은 자신도 모르게 푸욱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퍽 우스꽝스러운 꼴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소재 확보에 실패할 줄이야.
최대한 급하게 매물을 확보하려 들었건만,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니 후회가 남는 게 사실이었다.
동생이 창고까지 털겠다고 선언한 판국에, 정작 본인은 기초적인 일에서 실패한 셈이니.
평소부터 그런 소재도 비축해두는 편이 좋았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심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슬쩍, 남자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수상한 꾸러미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우찬은 이 지하실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꾸러미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쾌운철로서도 퍽 신기한 일이었다.
'이 소재를 맡긴 아가씨도 반신반의했었는데 말이지.'
일찍이 박우찬이 수학여행을 앞두고 제자들을 소개하던 당시.
마지막으로 박우찬의 의뢰를 받아 돌아가던 그를 불러세운 아가씨가 있었다.
분명히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직장 동료라고 했던가.
스스로를 중동 출신이라 소개한 탓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묘한 말투 탓에 잊어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니면 요즘 젊은 애들은 저런 말투를 쓰는 건지.
쾌운철은 알 수 없었다.
여하간, 그런 식으로 쾌운철에게 접근한 붉은 머리 아가씨는 곧 그에게 지금 이 물건을 맡겼다.
방금 전 이야기는 들었다.
혹시 녀석의 장비로 사용할 만한 소재를 찾고 있는 게냐?
허면, 본인이 이를 내려줄 터인즉.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거라…….
뭐, 그런 식이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도 참 수상쩍은 아가씨다.
아니, 혹여 거부 반응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사전에 확인하라던 말을 고려하면 동생과 아는 사이인 건 사실이겠지만.
'적어도 그 체질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실제로, 그 날 건네받은 물건엔 별다른 함정이나 저주 따위가 깃들지는 않았다.
대장장이로서 헌터들의 장비를 만들어야 하는 쾌운철에게, 그런 구분은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단지.
쾌운철로서는 순수하게 안심할 수도 없었다.
아니, 뭔가 수상쩍고.
달리 좋은 의도로 접근한 거라면 구태여 이런 식으로 물건을 전할 까닭이 없잖은가.
때문에, 여태까지 이 물건은 쾌운철의 가게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현대인인 쾌운철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 시절 여신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렇지만.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듯 소재를 구하는 데에 실패한 지금.
손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무엇보다, 박우찬의 반응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몬스터 소재도 아닌 모양이니.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소재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오히려 이만한 힘을 방출하고 있는데도 몬스터 관련 소재가 아니라니.
그 아가씨의 정체가 궁금할 따름이다.
다만, 쾌운철의 본직은 어디까지나 대장장이.
손님의 정체를 탐사하기 이전에, 장비를 만드는 게 일이다.
때문에.
스스로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대신,사내는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소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