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 두 번째 겨울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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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수학여행의 여파는 고작해야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밖에서는 매스컴이 좋을대로 입방아를 찧고 있으며, 안에서는 울적한 분위기가 감도는 나날.
자연스레 기말고사 운운할 분위기도 아니라, 남은 학기는 어영부영 있는 듯 없는 듯 흘러가게 되었다.
뭐,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결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화살과 같이, 그러나 마치 쥐죽은 듯 지나갔다.
마침내 찾아든 겨울방학 또한, 덕분에 활기와는 거리가 먼 싸늘함으로 점철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바야흐로 표정의 겨울이라 할 법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이야기하고 떠들던 친구가 육편이 되어버린 판국이다.
그런 와중에,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이 작전은 성공적이라 떠드는 군부나 협회.
혹은, 소년병 노릇이나 다름없다 떠드는 매스컴을 보고 있으면 그야 진절머리도 나겠지.
이게 성공이라고?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내 친구가 죽었어.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제정신이냐?
그런 마음이 솟구칠 수밖에.
후자 또한 마찬가지다.
소년병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헌터 업계의 희망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떠들고 있던 게 바로 매스컴이다.
물론 지금 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기자들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리 보이겠지.
당연히 불만도 쌓일 수밖에.
'양호실 쪽도 고생이겠구만.'
저런 학생들의 정신 상담까지 진행하려면 꽤나 고생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 탓이었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헌터 아카데미, 2년차 겨울 방학.
그 첫 날부터 내가 애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온 이유 또한 거기에 있었으니까.
"자, 자. 주목!"
한 번 목소리를 크게 울리자, 녀석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꽂힌다.
평소보다 울적하게 가라앉은 예은이의 시선.
애써 태연한 척 반짝이는 지희의 눈동자.
내심 마음을 정리한 윤하의 담담함.
여기에, 조금 진이 빠진 하연이의 표정까지.
다행스럽게도, 그 날 있었던 작전 중에서도 우리 꼬마들은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고 귀환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 한 단계는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녀석들이니까.
물론 그런 녀석들이라 해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게 바로 이 업계다.
다만.
실력이 없다면 설령 방심하지 않는다 해도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이번 사례는 바로 그런 경우였다.
방심하기는 어렵고, 결과 또한 실력에 직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
덕분에 녀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사실에 안도할지언정 진심으로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이 죽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녀석은 없었지만.
살아남은 데에 감사하기도 힘들다니, 참 팍팍한 시대다.
"이번 방문은 어디까지나 너희들이 발주한 장비를 수주하기 위한 거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에이, 애들도 아니고."
평소처럼 따라붙는 핀잔 또한, 생각 이상으로 기세가 없다.
다만, 나로서는 이 정도만 되도 감지덕지지 싶었다.
적어도 평소와 같은 태도를 가장할 만한 여유는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태도까지 다듬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지나치게 가혹하겠지.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녀석은 죽는다.
단지, 마음에 여유가 없는 녀석도 죽는다.
그게 바로 이 업계다.
때문에.
나로서는 이 꼬마들이 농담을 던질 만한 여유를 되찾았다는 건 솔직히 그럭저럭 안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선생님은요?"
"응?"
"저희가 발주한 장비, 때문이라는 건 알겠지만. 선생님이 따라오실 필요는 없잖아요?"
"이야, 예은이. 무섭네, 무서워. 선생님은 방해니까 꺼지라 이거지?"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다행스럽게도, 말을 주고받은 보람이 있는 걸까.
금새 활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뭐, 확실히.
장비를 발주했다. 그래서 받으러 간다.
그런 건 알겠지만, 여기에 담임인 내가 끼어있을 이유는 없다.
세세한 조언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딱 거기까지고.
그런 만큼, 예은이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물론 내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즉.
"……응?"
"선생님?"
장인 거리 끝자락.
내가 녀석들에게 소개했던 형님의 가게에서, 물건을 수주하겠다고 따라들어간 꼬마들은 곧 의아한 얼굴을 우리들에게 보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녀석들이 의뢰했던 건 고작해야 장비 한 두개.
소재나 자금, 어느 쪽이든.
녀석들도 벌써부터 장비 전반을 갖추기엔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녀석들의 주문에 따라 나온 장비들은 달랐다.
본디 창만을 주문했던 윤하에게는 잘 다듬어진 방패와 더불어 잘 만들어진 갑옷 일체가.
마찬가지로, 급소를 보호하는 보호대를 발주했던 예은이는 전신을 감싸는 형식의 드레스가.
하연이는 지팡이 위에 달린 마력 결정의 질은 물론이요, 다른 가죽 갑옷까지 별첨되어 있었다.
심지어 미리 가게를 방문해 전신에 사용할 장비를 사전에 발주했던 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눈에 보더라도 보다 질 좋은 소재가 사용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완성도.
그 사실에, 녀석들은 단체로 의아한 듯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 그렇겠지.
설마 난생 처음 보는 대장장이 양반이 서비스를 넣은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테고.
"방학 기념 선물."
덕분에 나도 멋쩍은 기분으로 시선을 돌리며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살짝 어색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정직하게 살아돌아온 기념이라 말하기는 힘들고.
표현도 표현이지만, 학생들 또한 순수하게 기뻐하기는 힘들 테지.
물론, 그렇게 말하는 점과 별개로 내가 뵈기에도 잘 숨긴 듯 보이지는 않았다.
"뭐에요, 그게."
"그냥 선물이라고 하지."
내 말에 뒤따르듯 금새 그런 투덜거림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단지.
"살아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고, 살아남아줘서 고맙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틀림없는 진심이었다.
툭 하고 내뱉은 내 발언에, 분위기가 한 순간 가라앉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허나, 이 또한 틀림없는 내 본심이었다.
이윽고 녀석들은 그렇게 굳은 분위기 속에서 애써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입어보고 와도 돼요?"
"엉."
무어라 말하려는 듯 한동안 입을 달싹이던 학생들 사이로, 곧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들은 형수님께서 학생들을 피팅 룸까지 안내하기도 잠시.
이윽고 그 뒤를 따르듯 다가온 형님이 슬쩍 운을 띄웠다.
"괜찮겠냐?"
"뭐가."
"아니, 뭐. 여러가지로."
"그러는 형님은?"
물론 생각하는 건 여럿 있었다.
개중에서도, 내가 이번 사건을 겪은 뒤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점은 하나.
신세계 질서는 또라이들이 맞다는 점이다.
세상에, 학생 한 명 납치하려고 몬스터들을 숫제 전쟁 직전 상황까지 움직일 줄이야.
매번 생각하는 점이지만, 이 놈들의 맛이 간 스케일은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
그리고.
덕분에 정말로 아카데미 쪽에서도 사상자가 나왔다.
신세계 질서는 위험하다.
상대는 강력하다.
진심으로 너희를 위협하려 들 거다.
내가 몇 번이나 학생들에게 말했던 점이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 놈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더 이상 학생들의 실력에 따른 수업이라느니, 강함이라느니.
여유로운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평소의 지침을 내버리고, 창고를 털어 녀석들의 장비를 맞추는 데에 할애한 건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녀석들은 여태까지 내 수업에도 잘 따라와주었다.
덕분에 고작해야 2년 사이 현역 헌터라 하기에 부족함 없는 실력을 쌓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녀석들의 재능에 더해, 퍽 험난했던 경험도 한 몫 단단히 챙기고 있겠지만.
실제로 다른 학생들은 저 수준까지 실력을 쌓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는 풋내 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아니, 현실적인 사정은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러는 형님은?"
"나야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가장 먼저 걱정한 건 형님이 내 의뢰를 받아줄까 하는 점이었다.
여하간, 형님은 착용자가 장비에 휘둘릴 만한 작업은 대놓고 강짜를 놓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걱정과 달리 형님은 별다른 말 없이 내 의뢰를 받아 녀석들의 맞춤 장비를 제작해주었다.
그게 내 얼굴을 보고 대충 넘어간 일일지, 아니면 녀석들의 실력을 보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덕분인지.
어느 쪽이든, 우리 꼬마들도 현역 A랭크 수준의 장비를 맞추게 된 데에는 형님의 조력이 있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지만, 정작 형님은 애매하게 말을 흐릴 뿐이었다.
그리고.
"잠깐 시간 있냐?"
"엉?"
"쟤들 갈아입을 동안 시간 좀 내라."
그렇게 말하며, 작업장 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형님.
그 말에 나 또한 어느 정도 형님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짐작이 갔다.
"네 장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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