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 모루와 망치
* * *
"딱히 근거가 있는 건 아닌데."
먼저 그렇게 전제를 깔았지만, 최승준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퉁명스레 그리 되받아칠 정도였다.
"알고 있다."
"엉?"
"애초에 너한테서 논리적인 설명을 기대할 만큼 한가한 건 아니니까."
"호로 새끼."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고 말았다.
뭐,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일단, 이번 작전 자체는 성공적이었어. 그건 알고 있지?"
"여기서 내가 대답하면 내일 아침 뉴스 1면은 내 차지가 될 기분인데."
"그럼 그냥 듣고만 있던가."
확실하게 말하건데, 작전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다만, 사건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보니 거기에 맞추어 피해가 발생했을 뿐.
말하자면, 이번 피해는 딱 그 정도였다.
내키지 않는 기분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는.
허면, 신세계 질서의 목적은 무엇인가?
"문제는, 신세계 질서 측에서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는 거야."
"……흠?"
완고하게 침묵을 지키던 최승준도 의아한 듯 말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이 교장실에서 건너건너 소식을 듣고 있던 녀석으로서는 의아할 따름이겠지.
이번 남하 작전 자체가 신세계 질서의 술책이었다는 건 녀석도 들었으니까.
다만.
이번 작전은 틀림없는 대성공, 두말할 필요 없는 대승이었다.
몬스터들의 남하 저지는 물론이요, 신세계 질서 또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으니까.
즉.
"그 놈들, 후방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어."
최승준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야 그렇겠지.
노골적으로 수상한 이야기다.
수학여행 3일차를 맞춰, 갑자기 남하하기 시작한 무리.
거기에 섞여 있던 신세계 질서 측의 마신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전을 진행하던 일주일 내내, 신세계 질서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후방을 강습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붕괴하는 전선을 지탱할 때도.
몬스터들을 교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을 때도.
심지어 지나친 연전 끝에 대다수 학생들이 혼절하듯 쓰러졌을 때도.
놈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도 의외였다.
여하간, 나는 나랑 서아가 마신들과 맞부딪힌 시점에서 누군가 하연이를 노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당장 저번에 두 마리 마신, 냉혹과 억압의 대악마들을 쓰러뜨린 참이다.
헌데, 이제 와서 구태여 두 마리 마신을 보내다니.
도저히 납득 가는 조치가 아니다.
게다가, 실제로 그렇게 보낸 파괴와 죽음의 마신들이 쓰러진 지금.
놈들이 가용할 수 있는 마신은 단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십중팔구 놈들이 세 마리 전원을 동원해 덤빌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소한 같은 작전에 세 마리 마신들이 참여하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으니까.
허나, 놈들은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정작 결과적으로는 마신 두 마리를 우리 앞에 던져준 셈이 되었건만.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포기한 거라면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기는 힘들겠지.
허면?
무언가 문제가 있었으리라.
예를 들어, 나나 서아가 쌍둥이 대악마들을 처리한 게 너무 빨라서 손을 댈 수 있을 만한 여지가 없었다거나.
때문에, 뒤늦게라도 손을 대는 대신 일찍부터 손을 떼고 빠져나갔다…….
만약 그렇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하간, 당시 후방에는 아카데미의 전력이 밀집되어 있었으니까.
만약 남은 마신 한 마리가 후방에 들이닥쳤을 경우, 역으로교사들을 중심으로 삼아 마신을 격퇴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격퇴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 사이에서 하연이를 데리고 사라지는 건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다만,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힘든 점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쪽의 정찰을 눈치채고 역으로 요격에 나섰던 마신들이라던가.
뭐, 놈들도 처음부터 질 생각은 아니었을 테고.
어쩌면 우리들을 먼저 제거하고 이후 후방을 교란, 하연이를 납치할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단지, 그 경우 세 마리 마신들이 협공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내분이 있었다던가, 계획이 어긋났다거나.
적당히 말이 될 만한 핑계야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엉성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삼팔선 이북의 몬스터들을 이용한 남하.
아카데미 쪽 인원을 강제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두 마리 마신.
이런 조건들을 모조리 내걸고, 정작 싸움이 격화되었을 땐 모습 하나 드러내지 않다니.
물론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몬스터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연신 싸움을 거듭한 직후.
혹은 그 외에도 몇몇 타이밍이라면, 하연이를 납치할 만한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뭐, 반대로 그 때문에 나도 역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조금도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허면?
신세계 질서의 꼴사나운 패배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가?"
"그렇지."
신세계 질서는 무언가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는 맞는다.
아니, 지나치게 건성인 대답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무엇보다, 말이야 저렇게 했어도 나 또한 달리 짐작 가는 건 없다.
말마따나 음모론 수준에 지나지 않겠지.
그렇지만.
어차피 놈들이 쌍수를 들고 항복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놈들과 끝장을 봐야 한다.
그런 만큼, 단단히 대비를 해 두면 적어도 손해를 볼 일이야 없지 않겠는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엥?"
나로서는 그리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녀석은 다른 모양이다.
조금 성가시다는 듯, 진절머리를 내는 최승준.
"물론 여태까지는 그런 방침도 나쁘지 않았지. 우리 쪽에도 여력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카데미에도 여유는 없다.
당장 최승준은 이번에 날아간 교사들을 보충할 방도도 생각해야 하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죽었다.
그 가족을 찾아간다거나, 혹은 달리 보상한다거나.
여기에 물어뜯는 매스컴까지 고려하면, 우리 쪽도 여력이 남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적어도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뜻이었다.
나로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세계 질서가 바란 게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 아무리 그래도 지나칠 정도로 과대 망상이다.
단순한 떠보기.
혹은, 아카데미를 압박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기엔 이번에 내건 카드가 지나칠 정도로 크니까.
몬스터 무리를 남하시킬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여기에, 마신 두 마리의 목숨까지.
우리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지만, 신세계 질서 입장에서는 어떨까.
'수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힘이 들어갔다.
뒤이어, 억지로 호흡을 가라앉힌다.
……뭐, 어느 쪽이든.
놈들이 단순히 어리석은 수를 둔 거라면 괜찮다.
당분간 우리 쪽이 쩔쩔매면 그만이니까.
실제로, 이만한 패를 내놓은 이상 신세계 질서 측에도 부담이 없지는 않을 테고.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 신세계 질서 측에서 본 이번 작전의 결과 그 자체다.
단순한 실수, 혹은 우리들에게 수를 빼앗겼을 뿐이라면 괜찮다.
허나.
이번에 있었던 신세계 질서의 행동이, 무언가 우리들로서는 알 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만한 기회를 방치하고도 남을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어쩌면 놈들의 이번 공격 자체가 일종의 포석일지도 모른다.
모루와 망치처럼.
삼팔선 부근에 준비되어 있던 군부대가 모루, 아카데미 쪽 전력이 망치.
그렇게 우리들은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허면.
신세계 질서의 이번 공세가, 우리들을 몰아넣기 위한 모루가 아니라고 감히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놈들이 내놓은 패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이번 작전이 객관적으로는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아카데미 인원 중 3할이 날아간 이번 사태마냥, 놈들에게는 감수할 수 있을 만한 피해.
더욱 나은 결과를 위한 지출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는 셈이다.
적어도 이번 공격에서 마신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그 그림자 괴인은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허면, 놈들도 한 번은 힘을 비축하고 있다 생각할 수밖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곧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의욕 한 번 안 나네.'
당연한 이야기였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피해는 최소한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은, 우리 애들이라면 아직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우리 꼬마들 중 심각한 부상을 입은 녀석들은 없다.
그런 식으로 속내를 달래려 해도, 영 내키지 않는 마음이 드는 건 변함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동안 이 울적한 분위기도 가시기는 힘들 듯하다.
적어도 올해는 무리겠지.
다음 년도까지는 끌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랄 뿐.
진절머리나는 기분에, 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여기서 한 번 더 공세를 끊을 줄은 몰랐지만, 남은 마신도 이제는 고작해야 한 마리.
한두 번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다음 교전으로 정말 끝을 볼 수 있겠지.
그 사실만을 되새기며,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억지로 눌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