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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23화 (323/371)

〈 323화 〉 모루와 망치

* * *

"아이고, 죽겠다."

싱크홀 내부에서 범람하듯 폭발한 광채가 사그라든 직후.

나는 혀를 내두르며 적당히 주변에 걸터앉았다.

……더 이상 마신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층 무뎌진 감각이었지만, 그 정도는 능히 확신할 수 있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여하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데에 소비한 심력도 만만찮았으니까.

내가 사용하는 기술 대다수는 어디까지나 육감, 말로 하기 힘든 직감에 의존하고 있다.

몬스터를 앞두고 증폭된 감각에 힘입어, 평소라면 생각하기도 힘들 만큼 세밀한 마력 조작을 펼친 결과물이니까.

시그니처나 축지 또한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미 한 번 시그니처를 사용하고 헛물을 켠 그 상황에서, 억지로 밀어붙이기 위한 축지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무리한 게 사실이다.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시그니처는커녕 더 이상 축지도 밟기 힘들겠지.

만약 서아가 이 쪽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억지로 시그니처를 써야 했을 거고.

그 경우, 십중팔구 혼절하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해도 퍽 우스꽝스러운 꼴이다.

몬스터에게 당해서 혼절한다면 또 모를까, 단순히 역겨운 기분에 구역질이 들어 혼절한다니.

이토록 우스운 꼴이 또 있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있자니, 뒤이어 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부!"

"왔냐."

서아의 능력은 천리안.

저 멀리 거리를 벌리고 있어도 놈들의 죽음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겠지.

서아가 뻗은 손을 붙잡아 몸을 일으킨다.

설마 정찰 한 번에 마신 두 마리랑 격돌하게 될 줄이야.

덤터기를 써도 이런 덤터기가 없다.

뭐,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사부, 일단 귀환하자. 괜찮지?"

"뭐, 그래야겠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아무래도 방금 전부터 현기증이 들기 시작한 탓이다.

물론 방금 전처럼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내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전법.

예를 들면, 함정 따위를 앞세워 싸울 수는 있겠지.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종의 미봉책.

최선의 수를 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궁리한 차선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오래 잠복했다거나, 혹은 피로가 눈에 밟힐 정도가 됐다거나.

이런 상황이라면 철퇴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뭐,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를 너무 많이 봐서 역겨운 탓에 철퇴해야 하는 건 나 정도 뿐이겠지만.

게다가 아직도 끝난 건 아니다.

어찌저찌 마신들을 쳐내는 건 성공했지만, 몰려들던 몬스터들은 아직도 남았으니까.

그리고.

'이런.'

그제서야 거기에 생각이 닿았다.

쯧, 하고 혀를 차기도 잠시.

"서아야. 너, 대침공 당시 최전선에서 싸운 경험은 없었던가?"

"응? 뭐, 그렇지?"

서아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힘이 쭉 빠졌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태도일 수 있겠지.

그 사실을 곱씹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 상황도 마뜩치 않았고.

어쩔 수 없겠지.

다만, 앞으로 우리가 눈에 담아야 할 상황이 영 내키질 않았다.

그 사실을 감추며, 나는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왜, 사부?"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슬슬 돌아갈까?"

"응? 그래, 뭐."

시시한 질문이라도 된다는 듯, 서아는 그렇게 어깨를 좁혔다.

그리고.

우리들은 천천히 귀로에 올랐다.

*

허면, 그 뒤의 정산에 대해서.

먼저 남하하고 있던 몬스터 무리를 정찰할 생각으로 접근했던 우리들.

거기에 앞서, 우리들은 신세계 질서에서 파견한 마신들에게 영격당하고 말았다.

덕분에 이번 사건 또한 신세계 질서의 소행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이윽고 두 마리 마신들을 격퇴한 우리는 곧바로 퇴각을 선택.

이후 후방의 아카데미 캠프와 합류했다.

마신 운운하는 이야기는 제쳐두더라도, 졸지에 A+랭크 몬스터 두 마리에게 기습당하고 시작한 셈이다.

당연히 다른 교사들 측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한 사발이었다.

거기에, 나나 서아의 입장이야 둘째로 치더라도 사전에 고랭크 몬스터들을 제거할 수 있었던 건 큰 공이다.

때문에, 교사나 학생들도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현재 저 무리에 우두머리는 없다.

만에 하나 세 번째 A+랭크 몬스터가 출몰하지라도 않는 한.

교사들은 그렇게 판단했고, 나나 서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여하간, 국가 측에서 사전 작업을 게을리한 게 아니라면 놈들이 뭉친 건 전적으로 신세계 질서 때문이겠지.

저기에 마신 이상 가는 중심축이 있지는 않을 거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무리가 해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직도 따로 놈들을 유도하고 있는 신세계 질서의 술책이 작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신세계 질서가 한 일은 단순히 남하할 마음이 들게 하는 것 뿐.

세세하게 무리 하나하나를 통솔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놈들의 남하는 멈추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이라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저 멀리 삼팔선 앞에 구성되어 있는 화망.

여기에, 삼팔선과 함께 몬스터 무리를 포위하고 있는 아카데미 측 전력.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남하하던 몬스터들을 가로막은 건, 이번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방으로 동원된 추가 화포.

여기에 더해, 남한 측에서 준비하고 있던 헌터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쪽에도 증원이 있었다.

주변에 손이 남는 헌터들. 북한 지역에 발을 들이고 있던 헌터들.

그들에게 연락이 간 덕분이었다.

그렇게, 삼팔선 지역의 군 부대를 모루로 삼고 아카데미를 망치로 삼은 결과.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이후, 남한 지역의 최대 위기라 할 수 있었을 몬스터들의 남하는 성공적으로 저지되었다.

총 작전 기간 7일.

아카데미 측 전력 손실 3할.

대승이었다.

*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땅이 그럭저럭 여유로운 상황이었다는 점이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교장실.

그 날, 이북에서 있었던 작전 이후 오랜만에 귀환한 나는 최승준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이야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게이트 관련으로 피해를 입었다 운운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3할에 지나지 않아."

"뭐, 그렇지."

너무 과격한 말이지 싶기도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여하간, 대한민국은 멸망하진 않았잖은가.

그 시점에서 두 번의 대침공을 겪은 국가들 중에선 그럭저럭 나은 편이다.

대민 피해가 3할도 아니고, 피해 관련인이 3할인 시점에서 대처는 훌륭한 편일 테고.

제 1차 대침공 이후, 제 2차 대침공에 대비하고 있던 국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최고 수준의 결과라 말할 수 있으리라.

때문에, 나 또한 최승준이 말하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다들 실감이 없는 거야."

툭, 그렇게 말하며 최승준은 탁자 위로 신문을 던졌다.

흘끔 거기에 놓인 신문을 살피자, 퍽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적인 대승? 학생들의 피 위에서 군인들이 할 말인가?]

[청준필 준장, 대국민 사과……. 경솔한 발언 죄송.]

[헌터 아카데미, 현대의 소년병 제도? 인권 침해 고려해야.]

우스꽝스러운 문장들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이번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여하간, 몬스터들이 남한 지역에 발을 들이는 걸 저지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한 사건이었다.

일개 헌터 운운하기 이전에, 국가의 존망이 먼저 언급될 만한 대사건.

비유하자면, 몬스터와 헌터 사이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교전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 되면, 설령 최승준이라 해도 전선의 모든 피해를 무마할 수는 없는 법이다.

최승준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고.

피해 3할.

학생과 교사를 가리지 않고.

이게 바로 몬스터들에 의한 대한민국 남침을 방지한 대가로 헌터 아카데미가 입은 피해였다.

다만, 언론들은 그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이제 와서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물론 나도 여러모로 생각하는 건 있다.

다만, 자극적인 헤드라인들은 정말로 이제 와서라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헌터 아카데미가 이름만 바꾼 소년병 제도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던 사실 아닌가.

나 또한 내키지 않는 점과는 별개로, 그 정도는 처음부터 주지하고 있었건만.

환각제라도 한 사발 한 건가.

아니면, 고작해야 4년 사이 다들 잊어버린 걸까.

고작해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

아니, 인류는 몬스터를 상대로 종족의 명운을 건 멸종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긴, 다들 제 정신이 아니더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차세대 헌터 필두니 뭐니 하는 서아만 해도 정말로 현장에서 구른 적은 드물다.

당연히 자신들이 아는 사람이 눈 앞에서 죽어나가는 건 더더욱 보기 드문 일이었을 테지.

하물며.

힘이 부족한 게 아니다.

무언가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니다.

다들 열심히 했고, 나름 최선의 결과를 거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이상 나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3할이 증발했다.

이런 경험은 역시 처음이었으리라.

덕분에 더 이상 수업이니 수학여행이니 하는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학습, 면학 분위기…….

그런 이야기는 더더욱.

보나마나 이번 학기 후반은 이런 식으로 쥐죽은 듯 지나가게 되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우리 애들은 괜찮지만."

"음?"

"사전에 예습을 했거든."

"……아아, 작년 남해 지부 일인가. 나 참, 세상 만사 모를 일이군. 그 때는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새옹지마라는 건가, 그런 식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놈에게 중지를 치켜올린다.

시시콜콜하게 말꼬리를 잡으며 다툴 기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다른 애들에 비해 경험이 많다고는 해도 이런 상황은 역시 기분 좋은 게 아니니까.

익숙해졌다, 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아니, 애시당초 이런 일에 익숙해질 수나 있는 걸까.

혹은, 익숙해져도 좋은 걸까.

대다수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뭐, 그거야 어쨌든. 다른 작자들도 고민할 수 있는 일이겠지. 우리는 우리가 고민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최승준은 손으로 깍지를 꼈다.

"그래서?"

"음?"

"시치미 떼지 마라. ……이번 일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본격적인 공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내가 이북에서 최승준에게 보냈던 메세지를 다시 한 번 읊는 녀석.

깊은 한숨과 함께, 녀석은 곧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그건 무슨 소리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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