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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22화 (322/371)

〈 322화 〉 파괴와 죽음의 마신

* * *

눈 앞의 사냥꾼이 죽음의 마신을 향해 공격을 내지른다.

그 앞을 방어에 전념하고 있는 파괴의 마신이 가로막는다.

몇 차례 이어지는 공방.

이윽고 그 빈틈을 노리고 죽음의 마신이 손을 뻗으면, 그 공세를 견제하기 위해 화살비가 쏟아진다.

허면 그들은 다시금 거리를 벌린 채 호흡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잘 짜맞추어진 공세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투라기보다는 차라리 무도회에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로.

박우찬의 입을 빌려 설명하자면, 각본이 준비된 프로레슬링.

조금이라도 교양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 곡의 왈츠를 연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파괴의 마신에게도 나쁠 게 하나 없었다.

여하간, 그들에게는 죽음의 마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병.

죽음의 마신이 지닌 권능은, 병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고 있되 실제로는 단순한 독 따위가 아니었다.

조로아스터 교의 성수, 하오마를 중화하고 온갖 죽음의 원인을 흩뿌릴 수 있는 힘.

생물을 사살하는 데에 있어 그들의 장자조차 능가하는 그 권능은, 바야흐로 절대적이다.

접촉과 동시에 즉사.

어떠한 방어나 축복, 회복 능력이나 부활의 은총조차 그 앞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방어력 따위에 의미는 없다. 접촉과 동시에 죽일 수 있으니까.

축복 또한 마찬가지다. 죽음이 존재하는 생명이라면, 이 권능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회복력 따위가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죽음의 마신이 내리는 질병은, 결단코 회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활이나 예비 목숨조차 마찬가지. 몇 개나 되는 목숨 또한, 그 횟수만큼 죽여버릴 뿐이다.

절대적인 사망 선고.

죽음의 마신에게 있어, 싸움이란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한 전투 행위 따위가 아니다.

자신의 손끝으로 상대방을 건드리기 위한 예비 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파괴의 마신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대로 장기전에 들어간다면 마신들 측이 유리할 뿐이다.

거기에 더해, 아직 그는 제대로 된 힘을 선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방어에 전념하며 시간을 벌 뿐.

그 사실에 초조해진 적이 빈틈을 보이면, 그 순간이 막을 내릴 때다.

파괴의 마신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하간, 죽음의 마신이 지닌 권능은 강렬하다.

다만, 무적은 아니다.

죽음의 마신이 지닌 권능이 효과를 발휘하는 건 어디까지나 생물체 뿐.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그들이 그러했듯이 수많은 적들을 보낸다던가.

혹은 생체 방패 따위를 들이미는 식이다.

죽음의 마신이 내리는 죽음 이상으로 많은 물량을 앞세워, 권능을 사용함과 동시에 찍어누른다.

아니면, 살아있는 생물체를 방패로 삼는다.

어떠한 갑옷이나 방패도 무시할 수 있는 마신의 권능조차, 그 한계는 극복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만일 상대에게 살아있는 방패 따위가 주어진다면?

상대는 방패를 희생함과 동시에 마신의 목을 쳐버릴 테지.

적어도 눈 앞에 있는 사냥꾼은 그럴 만한 실력이 있었다.

그걸 보완하는 게 바로 파괴의 마신이 지닌 역할이었다.

파괴의 마신이 지닌 분쇄의 권능은, 죽음의 마신이 지닌 힘과 비슷하되 완전히 상극이다.

어떠한 물질이나 개념도 순식간에 분해할 수 있는 힘.

바야흐로 파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능력이다.

때문에, 만일 저런 수단을 앞세우는 녀석들이 있다면 역으로 파괴의 마신이 나선다.

살아있는 방패나 숫자만 많은 잡졸들 따위, 장비를 분쇄하고 대지를 분쇄하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가면 상대방은 초조함이 앞서 실수를 연발할 뿐.

그 틈을 타, 자신이 처음으로 능력을 드러낸다.

방금 전부터 요란하게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무기도, 견제를 위한 화살비도.

이 권능 앞에서라면 순식간에 붕괴할 뿐.

그 때가 놈들의 최후다.

마신이 내지르는 손아귀는, 무기를 잃은 사냥꾼의 육체를 일격에 죽여 없애버릴 수 있겠지.

머지 않은 결말을 기다리며, 파괴의 마신은 내심 웃음을 지었다.

여하간, 그의 능력은 단순한 물질에 국한된 게 아니다.

조로아스터 교에 일컬어지는 완전함을 무너뜨리는 존재.

그게 바로 파괴의 마신이요, 그가 지닌 권능이다.

즉, 그의 권능은 단순한 사물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마력의 구성.

혹은 대상의 호흡이나 발재간까지.

고작해야 1%.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불길의 조성을 흐트러트리고, 호흡과 걸음걸이를 미끄러뜨린다.

하나하나 따지면 정말로 별 것 아닌 잔재주.

그러나.

이런 식으로 쌓이고 쌓인 게 축적될수록, 상대방은 평정심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평소처럼 호흡이 되질 않는다.

무언가 한 걸음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 불안감이 명확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 바로 죽음의 마신이 승리를 수확할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번에는 박우찬이 지닌 감각 쪽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당연히, 파괴의 마신이 발휘하는 저 힘은 상대방의 감각이나 마력 조성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예리하게 갈린 칼날일수록, 무뎌졌을 때 더욱 흠결이 두드러지는 법이니까.

박우찬 또한 그런 점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한 두통 이상으로 그의 발목을 붙잡는 무언가.

마신들에게 기습을 허용하고, 무언가 공세가 무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때문에.

다음 순간, 박우찬이 평소보다 유달리 강하게 걸음을 내딛었을 때.

두 마리 마신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다.

다만.

"……?!"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었다면, 박우찬은 단순한 싸움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사냥꾼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공격. 방어. 기습. 요격.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던 공세의 교환에, 갑작스레 변주가 끼어든다.

죽음의 마신을 노리고 휘두른 검을, 파괴의 마신이 막아선다.

그리고.

부웅, 하고 두 마신의 발이 하늘을 떠났다.

그 사실에 당황했을 때, 박우찬은 이미 다음 행동에 접어들고 있었다.

축지.

저릿저릿한 두통을 억지로 찍어누르며 강제로 밟은 축지가, 두 마리 마신들의 육체를 억지로 밀어붙인다.

물론 A+랭크 몬스터 두 마리를 상대로 작금의 축지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건 정말로 찰나.

한 호흡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제서야 두 마리 마신들은 의혹을 느꼈다.

내려치는 검과 동시에 발한 축지 끝에, 마신들의 육체가 하늘에 뜬 이후.

체공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신들의 발끝은 땅에 닿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이미 땅 밑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으니까.

싱크홀.

방금 전, 마신들이 이 장소에 등장할 당시 두 명의 사냥꾼을 노리고 만들어낸 장소.

파괴의 마신이 그 권능을 발휘한 흔적 위로, 박우찬은 두 마리 마신들을 몰아넣었다.

언제?

어느새 이런 밑준비를?

그런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물며, 여태까지 공세를 나누며 위치를 잡았다 한들 마신들로서는 납득할 수도 없겠지.

다만, 한 가지.

굳이 말하자면, 박우찬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여하간, 시그니처의 반동 탓에 방금 전부터 지끈거리는 머리는 물론이요 감각도 도저히 제 맛이 살질 않는다.

허면, 당연히 감각에 의존해서 승부를 벌이고자 고집하는 건 바보같은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

……파괴의 마신이 발휘한 권능은 틀림없이 크나큰 효과를 발휘했다.

박우찬으로서도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으니.

허나, 그렇다면 전법을 전환하면 될 뿐이다.

만약 평범한 사냥이었다면, 박우찬은 애시당초 자신의 감각이 무뎌질 만한 상황에선 철퇴를 선택한다.

단지.

세상에는 언제든지 철퇴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다.

허면?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무뎌진 손발을 믿는 대신 보다 확실한 전법을 궁리하면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놈들이 만든 싱크홀은 썩 나쁘지 않은 소재였다.

다시 한 번 눈 앞의 마신들의 외견을 살핀다.

한 놈은 물고기인지 범고래인지 하는 형상이 섞인 거인.

한 놈은 움직이는 해골.

어느 쪽도 날개는 없다.

물론 마력을 사용한 비행 정도는 가능하겠지.

방금 전, 싱크홀을 만들어냈을 때에도 그랬으니.

하지만.

박우찬은 알고 있다.

자신 또한 축지를 활용해 하늘을 밟으며 싸울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이 가능한 개체를 상대로는 공중전을 시도하지 않는다.

날개를 통한 비행과 축지를 활용한 기동 중 비행에 유리한 건 명백히 전자기 때문이다.

즉, 녀석들 또한 날개가 없는 이상 자유로운 비행은 불가능할 터.

박우찬이 승부를 던진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공방을 나누며 녀석들의 위치를 싱크홀 근처로 유도한다.

이후, 축지의 사거리 내에 들어왔을 때 곧바로 밀어붙인다.

덕분에 박우찬은 한 호흡만에 두 마리 마신들을 싱크홀 정 중앙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동시에.

촤르륵!!

박우찬이 손끝으로 튕긴 쇠구슬이 그 형태를 뒤바꾼다.

즉석 연금술.

마치 금속성 와이어처럼 변모한 투척 무기를, 싱크홀 외벽에 내던지는 박우찬.

그러자 날카롭게 다듬어진 그 칼끝이 퍽 하고 대지를 꿰뚫었다.

그 사실에 만족한 듯, 박우찬은 한 손으로 와이어를 붙잡았다.

직후.

"극락왕생하소서!!"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리벙벙한 놈들을 향해, 박우찬은 다리를 휘둘러 내려찍었다.

축지의 묘리를 담은 내려찍기가, 마신의 어깨를 내려앉힌다.

우두둑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파괴의 마신이 짐승 비슷한 비명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던 죽음의 마신과 함께, 축지의 속도 그대로 지하 100m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서아야!!"

당연히 그 목소리는 멀리까지 닿지도 않는다.

물론 이번 공격 또한 원거리에 있는 신서아와 상의한 바 하나 없다.

어쩌면 그녀로서는 잔뜩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자신의 입 모양을 읽었다면, 그녀는 해야 할 행동을 취하리라.

박우찬은 거기에 걸었다.

동시에, 축지의 힘을 담아 마신을 걷어찬 반동으로 날아오른 박우찬의 손끝이 창고 속으로 접속한다.

그 사실에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걸까.

어마어마한 속도로 추락하는 마신들의 마력이, 사방 팔방을 향해 뻗기 시작했다.

축지의 힘을 담아, 100m 이상의 고도에서 추락.

다만, A+랭크 몬스터라면 고작해야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박우찬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그가 해야 할 역할 또한 명백했다.

"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창고 속으로 접속하고 있던 팔이 재빠르게 궤적을 그린다.

동시에.

티티티티팅!!

싱크홀 밑으로 쏘아낸 쇠구슬이, 기묘한 소리를 울려 퍼트렸다.

마력을 담아 내던진 투척 무기가, 싱크홀의 벽면을 붙잡으려던 마신들의 마력을 요격했기 때문이다.

추락은 계속된다.

벽면을 붙잡지 못한 마신들은, 계속해서 허우적거리며 사방으로 마력을 흩뿌린다.

물론 박우찬은 그런 행동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축지에 의한 데미지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추락에 의한 피해 또한 마찬가지.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놈들이 허공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한 손으로 들고 있던 대검조차 내던지고, 남은 투사무기를 모조리 쏟아부을 기세로 팔을 움직이는 박우찬.

파괴의 마신이 흩뿌리는 마력이, 죽음의 마신이 내던지는 마력의 올가미가.

싱크홀의 어둠 너머에서 작렬하는 쇠구슬에 맞아 무산되고 튕겨져나간다.

그리고.

피이이이잉!!

저 하늘 너머, 새벽별이 솟구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다만.

마치 솟아오르는 별처럼 쏘아진 축포는, 그대로 새벽 하늘에 내걸리는 대신 천천히 낙하를 시작했다.

한 순간.

박우찬의 구명을 위해 죽음의 마신을 견제할 필요가 없다 깨달은 신서아가 쏘아낸 일격.

자신의 마력을 가득 눌러담은 곡사였다.

그 사실에 섬뜩함을 느낀 듯, 두 마리 마신들이 발작하며 마력을 뻗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그런 고생이 성과를 발휘한 것일까.

숫제 화망을 구성한 박우찬의 투척 무기 속, 마신들의 마력이 싱크홀로 이루어진 절벽 속 돌부리를 붙잡는다.

물론 거기까지였지만.

낯빛에 화색을 두를 시간조차 없었다.

마신들의 마력이 절벽을 붙잡은 그 순간.

천원??에 도달한 화살이, 추락을 개시한다.

숫제 별똥별처럼 느껴지는 은빛 섬광이, 그대로 싱크홀 한 가운데로 빨려든다.

그리고.

턱 하고 한 순간 절벽을 붙잡은 마력이, 그대로 무산된다.

당연한 일이었다.

박우찬조차 제대로 작렬하기만 한다면 이 싸움을 결정지을 수 있으리라 평했던 신서아의 사격이, 그들의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파괴의 마신의 흉곽을 꿰뚫고, 뒤이어 죽음의 마신의 척추를 두동강낸 화살.

두 마리 마신들의 육체를 꿰뚫으며 힘이 다한 탓일까.

턱 하고 힘없는 소리와 함께 싱크홀 바닥에 꽂힌 화살 너머로, 마신들의 유해가 육편의 비가 되어 내린다.

……확실히, 지금 박우찬의 몸상태로 그들에게 승부수를 던지는 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허면, 자신의 손재주와 관계 없는 방식으로 승부를 보면 될 뿐.

예를 들면 함정.

예를 들면 자신이 보조로 돌고, 다른 헌터를 앞세운 토벌.

어느 쪽이든, 박우찬은 자신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승부를 미룰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는 법.

그리고 박우찬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 또한 알고 있었다.

이윽고.

신서아의 마력을 머금은 화살이, 그녀의 마력으로 백열하기 시작한다.

직후, 확인 사살을 위해 폭발한 마력의 섬광이 싱크홀 내부를 가득 메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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