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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21화 (321/371)

〈 321화 〉 파괴와 죽음의 마신

* * *

죽음의 마신이 지닌 힘에 대해서는 간파했다.

허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박우찬은 그 방법 또한 어느 정도 가정을 세우고 있었다.

방금 전 내던진 유리병은 순식간에 녹아내리거나 하는 대신 평범하게 깨져나갔다.

즉, 죽음의 마신이 발휘하는 권능이 작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생물 혹은 방어 능력에 대해서일 뿐.

정작 공격한 쪽의 무기가 박살이 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대책 또한 간단하다.

'한 대도 안 맞고 줘패면 그만!!'

……무슨 농담처럼 들리는 이야기였지만, 박우찬이 상대라면 다르다.

여하간, 박우찬은 평소부터 그런 식으로 싸우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건 무언가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몬스터랑 접촉하기 불쾌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다른 헌터들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당연히 정장의 방어력을 앞세운 전술 쪽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그 정도는 만회하고도 남을 여유가 있었다.

지금도 그의 뒤를 보조하고 있는 신서아의 사격 쪽이다.

신서아의 능력은 천리안.

당연히 방금 전 박우찬의 행동과 그 결과 또한 똑똑히 목격했으리라.

즉, 이 시점에서 신서아는 죽음의 마신이 가하는 공격이 박우찬에게 닿지 못하게 견제하는 데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허면, 남은 건 공격 뿐이다.

퉁 하고 칼 끝을 걷어차 회전을 실은 박우찬이, 전신을 날리며 대검을 휘둘렀다.

다만, 여전히 상대는 한 명이 아니다.

내지른 일격을 다시 한 번 육체를 내세워 받아내는 거인.

즉, 파괴의 마신이었다.

방금 전 공방으로 인해 팔뚝이 너덜너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다.

아니, 망설임만 없는 게 아니다.

부상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

혹은, 애초부터 파괴의 마신 본인부터가 육체적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 걸까.

한 합 한 합을 나눌 때마다, 마신의 팔뚝이 벗겨지고 뼈가 꺾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합을 나눌 때면 어느덧 마신의 팔에는 잔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그 사실에 박우찬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물론 재생력이 뛰어난 몬스터를 사냥하는 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약점을 공략한다.

'이건 힘들다.'

다른 게 아니라, 거인 뒤에 숨은 죽음의 마신 때문이다.

마신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하오마를 중화할 수 있는 힘.

때문에, 정작 오면서 참마를 빻아 만들어낸 즉석 성수가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물론 박우찬도 그걸 알고 놈을 먼저 죽이려 노력하곤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덩치를 앞세워 공세를 가로막는 괴물을 넘어 저 마신까지 한번에 참살하기엔 지금 컨디션이 너무 나빴다.

두 번째 방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즉, 재생이 완료되기 전에 적을 완전히 썰어버린다.

평소 박우찬이 애용하는 방법이지만, 지금은 힘들다.

저릿한 두통. 무뎌진 감각.

지금은 몸을 그 정도로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허니, 응당 이리 나올 수밖에.

내려친 대검을 막아선 거인을 짓누르듯 압박한다.

자신보다 더욱 거대한 거구를 상대로 근력을 앞세우는 듯한 우행.

잠시 밀어내는 힘에 주춤한 거인이, 곧 그 사실을 깨닫고 양 팔에 힘을 넣는다.

박우찬이 바란 그대로였다.

"흡!"

땅을 박차며, 검의 손잡이를 기준으로 몸을 회전.

거꾸로 공중제비를 도는 동작과 함께, 박우찬이 검 손잡이를 손에서 놓았다.

때문에.

다음 순간, 허공으로 몸을 날린 박우찬의 발이 자신의 칼등에 닿았다.

아니, 그 동작을 닿았다는 표현으로 서술할 수 있을까.

투웅!!

칼등을 박차며 그 충격으로 다시 한 번 거인을 밀어낸다.

숫제 걷어차다 못해 거인의 뼈를 파고드는 칼날.

거기에 맞추어, 칼날을 걷어찬 박우찬이 땅 위로 착지하며 다시 한 번 다리를 휘둘렀다.

아직도 팔뚝에 박힌 칼날의 손잡이를 박우찬의 발끝이 걷어찬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솟구치는 칼날.

칼끝이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드는 상황에, 거인조차 고개를 젖힐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박우찬으로서는 충분히 읽고도 남는 상황이다.

때문에.

팔을 휘두른다.

방금 전, 대검을 걷어찬 통에 풀려나온 쇠사슬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박우찬.

칼날에 베인 거인의 육체조차 딸려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격렬한 움직임 끝에, 남자의 손이 다시금 손잡이를 쥐었다.

동시에.

우두둑!!

한 순간, 몇 번이나 되는 흔들림에 시달린 마신의 육체가 크게 뒤틀린다.

날밑에 달린 톱날이 양 팔의 뼈를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

짐승의 비명이 메아리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력에 의한 재생도 치유하기 쉬운 상처가 있고 아닌 상처가 있다.

예를 들어, 환부가 넓으면 치료하기 힘들다.

반대로, 절단면이 예리하다면 역으로 이어붙이기는 쉽다.

허면?

절단면을 너덜너덜하게 물어뜯고, 계속해서 공세를 펼쳐 그 육체를 깎아낼수록 상처를 수복하는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단지.

"쯧!"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꼭 중간에 개입하는 죽음의 마신이다.

부웅!

뼈로 이루어진 손아귀가 박우찬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상체를 젖혀 피한 박우찬.

그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비가 다시 한 번 마신을 요격한다.

물론 서아는 아주 잘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상대는 해골.

피부도 없고 근육도 없고 장기도 없다.

화살로 저지하기엔 다소 버거움이 있는 상대인 게 사실.

때문에, 견제 속에서도 가끔씩 빈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틈 때마다, 박우찬은 공격의 맥이 끊기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이번엔 역으로 방패인 파괴의 마신을 깎아내고자 한 번 행동에 나선 참이지만…….

"묘한데."

손맛이 없다.

박우찬은 그렇게 평가했다.

물론 자신의 컨디션 악화는 알고 있다.

당장 저 두 마리 마신들을 도륙낼 수도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게다가, 전략이 잘못된 건 아니다.

실제로, 톱날을 사용한 공격엔 제대로 재생하지 못하는 모습도 눈 앞에 있고.

이대로 가면 이길 수 있다.

허나, 그런 점과는 별개로 박우찬은 방금 전부터 자신의 손속에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랬다고 해야 하겠지.

'애시당초 저 놈들은 어떻게 나를 기습한 거지?'

신서아가 특유의 천리안으로 공격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기습을 허용했을 정도로 절묘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평소 박우찬의 감각을 고려하면 그런 일은 있기 힘들다.

자연스레 넘어가긴 했지만, 그 시점부터 무언가 이상했던 게 사실.

직접적인 위화감은 없지만, 계속해서 코끝을 간질이는 듯한 위화감이 손끝에 맴돈다.

허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박우찬은, 곧 쯧 하고 혀를 차고 말았다.

파괴의 마신이라는 놈이 발휘하는 권능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이유가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현재 박우찬으로선 달리 대처할 만한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몬스터들의 무리는 남하를 계속하고 있으리라.

당연히 학생들과 몬스터들의 충돌 또한 점점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겠지.

즉, 박우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속전속결.

놈들을 재빠르게 처리하고 돌아가는 길 외에, 애시당초 다른 방안은 없으니까.

허면?

이런 컨디션 난조 속에서, 어떻게 놈들을 재빨리 처리할 수 있을까.

밀려드는 초조감을 삼키며, 다시 한 번 박우찬이 달려든다.

목표는 죽음의 마신.

그러나 그 앞을 다시 한 번 파괴의 마신이 가로막는다.

이 뒤도 마찬가지.

우회하려 해도, 보호에 전념하고 있는 거인을 넘어 마신을 타도하는 건 극히 어렵다.

때문에, 자연스레 박우찬의 공격은 파괴의 마신을 향하게 된다.

합을 나눈 결과, 우위를 차지하는 건 박우찬.

당연한 이야기다.

설령 컨디션 난조를 겪고 있다 해도, 상대는 몬스터.

상대가 마신이라 해도 틈을 찌르지 않으면 박우찬에게서 승리를 따낼 수는 없다.

때문에, 그 틈을 노리고 죽음의 마신이 달려든다.

부상을 입은 거인이 회복할 틈을 벌기 위해, 신서아의 공세를 무시하고 한 호흡.

그렇게 벌어들인 한 호흡 사이로, 파괴의 마신이 육체를 재생한다.

이 경우, 박우찬 측이 상대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는 정말로 극미.

잘 해야 박우찬이 입힌 몇 번의 자상에 더해, 신서아의 화살을 견디며 달려든 마신의부상 정도다.

여기에 두 마리 마신들의 회복력이 더해지면 십중팔구 장기전이 되겠지.

마치 배역과 역할이 정해진 프로레슬링이다.

교착 상태 가깝게 굳어버린 이 상태를 타파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극히 어려우니.

단순한 견제가 아닌 신서아의 저격 한 발.

혹은, 시그니처를 위시로 한 박우찬의 공격.

어느 쪽이든, 사용할 시간만 있다면 놈들의 방어를 꿰뚫고 그 모가지를 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행동하기엔 죽음의 마신이 지닌 공격력 쪽이 문제가 된다.

한 번이라도 닿으면 승리할 수 있다.

박우찬을 죽여버릴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죽음의 마신이 지닌 권능은 즉 그런 뜻이 된다.

자연스레 장기전이 되면 될수록 녀석들 또한 상처는 남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유리한 건 놈들 쪽이 될 수밖에.

여하간, 이 쪽과 달리 저 쪽은 장기전 중에서 단 한 번만 이기면 된다.

아니, 그조차 넘어 박우찬을 한 번만 건드릴 수 있으면 승리한다.

당연히 이런 전법을 내세울 수밖에.

마치 바닥 없는 늪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늪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마땅치 않다…….

그 사실에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대신, 박우찬은 눈을 굴렸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을 유지하면 패배는 면하기 어렵다.

착실하게 승리를 노릴 수야 있겠지만, 이런 컨디션 난조 속에서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승세를 굳힐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적어도 승산이 높지는 않으니, 잘 해야 도박이라 할 수 있겠지.

다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변수가 없다면 변수를 만들어낼 뿐.

그런 각오로 시선을 돌리던 박우찬의 눈동자가, 마침내 무언가를 포착했다.

'저거다.'

방금 전.

놈들이 기습을 위해 들이닥쳤을 때, 땅 위에 새겨진 싱크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딱 저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승기를 붙잡은 박우찬의 눈이, 묘한 열의에 차 번뜩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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