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파괴와 죽음의 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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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찬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과 반대로, 신서아는 크게 뒤로 뛰었다.
구태여 포지션을 나누고자 상의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이번 정찰을 위해 나서기 전 상의한 바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신서아의 전법은 박우찬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쌓아올린 기술.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취해야 할 행동 또한 정해져 있었다.
창고를 열어젖혀 무기를 쥠과 동시에, 화살의 시위를 매긴다.
상대는 둘. 이 쪽도 둘.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정직하게 1대 1로 나누어 싸울 필요는 없다.
노리는 건 한 마리.
남은 쪽은 방치하며 몰아붙인다.
허면?
가장 먼저 노리는 건 어느 쪽인가.
신서아의 눈이 전황을 파악한다.
눈 앞에 있는 마신은 두 마리.
그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하간, 여태까지 쓰러뜨린 마신들만 네 마리.
여기에 남은 마신이라면 이제 고작해야 세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사전에 조사해 대책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이번에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 마리 마신은 더더욱 특징적인 존재였으니까.
타루비와 자리체.
악신 앙그라마이뉴가 잉태한 쌍둥이.
언제나 함께 행동한다 일컬어지는 한 쌍의 대악마들이다.
개중에서도, 거인 혹은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바로 파괴의 마신 타루비.
여인 혹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죽음의 마신 자리체라고 하니.
남은 마신이라고는 고작해야 셋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상황.
두 마리 마신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면 십중팔구 저 둘이 되리라.
전자가 상징하는 건 파괴, 다시 말해 완전성에 대응하는 불완전함.
후자가 상징하는 건 죽음, 다시 말해 불멸성에 대응하는 필멸성 일체.
허면, 박우찬이 노리는 건 어느 쪽이 먼저인가?
'저 쪽!'
혜성과 같은 궤도를 그리며, 별조차 흐릿한 새벽 하늘 아래를 화살이 질주한다.
신서아의 화살이 노리는 건 두 마리 마신 중에서도 후자 쪽.
즉, 죽음의 마신이라는 이름을 걸머진 해골바가지였다.
박우찬의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눈 앞의 해골이 가진 성질이다.
조로아스터 교의 전설에 의하면, 눈 앞의 괴물은 사람들에게 열병과 질병을 흩뿌리고 다닌다고 한다.
허면, 그 권능은 무엇일까.
하연이와 마찬가지로 저주 비슷한 힘일까?
'아니.'
박우찬은 아니라고 보았다.
애초에 눈 앞의 마신은 열병의 악마가 아닌 죽음의 악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 교에서 저 마신이 상징하는 건 단순한 병이 아니다.
병은 어디까지나 겉보기일 뿐.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죽이는 요인 일체를 다룬다는 점에 있다.
그 강맹함은, 하오마에 의한 축복조차 중화하고 불멸의 존재들에게 죽음을 안겨줄 수 있다고 할 정도.
즉, 눈 앞의 마신이 지닌 권능은 십중팔구 단 하나.
'방어 무시다……!!'
말이 방어 무시지, 실제로는 보다 복합적인 힘이겠지.
대상의 온갖 방어력을 무시하는 능력.
거기에 재생은 물론이요, 부활이나 모종의 축복까지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다른 한 명을 집중 공격하며 몸으로 받아내기엔 버겁겠지.
거기까지 판단이 섰다면 이야기는 빠르다.
땅을 밟으며 질주.
동시에, 그 힘을 살려 낮고 길게 도약한다.
축지를 활용한 도약과는 달리, 비상이라기보다는 쇄도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 힘을 살려, 허공에서 몸을 반회전.
결과적으로 말해, 접근과 동시에 대검 끝으로 힘을 실은 박우찬의 참격이 그대로 턱끝을 노리며 작렬했다.
상반신을 지면과 수평에 가까운 형태로 뉘이며 발휘한 올려베기.
대지를 퍼올리는 듯한 일격이, 재주도 좋게 땅끝 하나 스치지 않고 작렬한다.
하지만.
우드득!!
끔찍한 뼛소리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한 이야기.
상대의 숫자와 별개로 행동 방침을 세우는 건 저 쪽 또한 마찬가지다.
때문에.
박우찬의 참격에 턱주가리를 내준 건 죽음의 마신이 아닌 그 반대.
파괴의 마신 쪽이었다.
게다가, 턱에 직격하지도 않았다.
마치 방패처럼 내민 양 팔 사이에 낀 대검이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순식간에 근육을 꿰뚫고 뼈까지 맞닿은 대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치명상이었다.
단지.
"……칫!"
"사부!!"
외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화살비가 쏘아졌다.
눈 앞에 있는 거구도 그 공세에는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어깨. 쇄골. 목덜미.
속사를 중심으로 쏘아낸 화살조차, 상반신을 단번에 화살꽂이로 만들 만한 힘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박우찬과 신서아의 머릿속엔 비슷한 생각이 들이닥쳤다.
'역시……!!'
'염병.'
현재 박우찬은 제 컨디션이 아니다.
시그니처의 부작용.
평소 이상으로 혹사한 덕분에 한층 뻐근해진 감각 때문이었다.
여전히 몬스터를 보면 지나칠 정도로 날뛰는 건 변하지 않는다.
다만, 평소의 경우가 예리하게 날이 선 도검이라면 지금은 숫제 눈이 먼 몽둥이 수준.
한계까지 가다듬었던 감각은, 그 뒤의 현기증과 뒤섞여 평소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효과밖에 내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속도를 중심으로 한 사격에도 온 몸의 근육이 꿰뚫릴 정도다.
즉, 모종의 방어 능력 따위는 없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의 공격은 마신의 팔을 취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깔끔하게 양 팔을 도려내고 추가타로 참수.
이런 상황이라면 순식간에 결판을 낼 수 있었겠지.
박우찬 본인이 몇 번이나 언급하며 경계했던 시그니처의 부작용.
시그니처를 남용해선 안 되는 이유가 이제 와서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신서아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호흡을 맞추기 쉬워.'
그 사실에 혀를 찬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신서아는 현역 헌터들 중에서도 필두.
제 3차 대침공이 일어난다면 필시 차세대 헌터들 중에서 첫손에 꼽히리라 각광받는 인재이기도 하다.
협회 기준으로 매기자면 A+랭크.
박우찬의 기준으로 셈하더라도, 지금은 충실한 경험 덕에 실제로 A+랭크 가까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라면 특히.
신서아가 한 가지 대책을 생각할 때, 박우찬은 백 가지 수를 내세울 수 있다.
마음 속으로 기각한 가능성까지 합치면 족히 만 개의 수를 생각하고 있겠지.
때문에, 박우찬과 신서아가 합을 맞춘다면 겉보기와는 별개로 실제로는 박우찬 쪽에서 신서아에게 맞추는 게 대부분이었다.
먼저 박우찬이 튀어나가고, 신서아가 거기에 맞추어 화살을 쏜다.
그리고 신서아의 사격을 통해 의도를 파악한 박우찬이 곧 그녀의 목적을 중심으로 행동을 정해 유도한다.
당연히 신서아로서는 최선을 다해 박우찬을 보조해도, 정작 자신이 보조받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단지.
지금은 다르다.
싸우기 쉽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즉, 박우찬의 현 상태가 신서아로서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한 수준까지 열화되었다는 뜻이니까.
그 사실에 혀를 차면서도 시위를 당긴다.
예상 외의 고전이 되겠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평이나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속사가 쏟아진다.
역겨운 감정을 참으며, 뒤로 물러서던 거인을 걷어차는 박우찬.
그대로 대검을 회수한 박우찬을 향해, 거인의 등 뒤에 숨어있던 해골이 손을 뻗는다.
동시에.
꿈틀거리는 마력.
그 사실에 혀를 차며, 박우찬은 슬쩍 손가락으로 해골이 서 있던 땅을 겨누었다.
그리고.
푹석!!
방금 전,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발생한 싱크홀.
지금도 마신들의 뒤편에 있는 거대한 구멍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작은 홈이 패였다.
박우찬이 학습하고 있는 마법들 중 하나.
상대방의 영역을 강탈하는 평소운 박사의 마법을 개량한, 지형 왜곡의 마법이었다.
한 순간 비틀거리는 해골.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박우찬의 어깨를 노리던 손아귀가 그대로 허공을 가른다.
그리고.
창고를 조작해 그 안으로 손을 넣은 박우찬이, 마신을 향해 작은 병을 던졌다.
마신이 그 동작에 반응하지 않은 건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저 안에 든 게 마신들에게 특히나 치명적인 하오마 따위라 해도 마찬가지.
죽음의 마신은 그조차 중화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병 안에 든 물건은, 마신에게 어떠한 해도 입히지 못했다.
거기에 담긴 건 진귀한 실을 뽑는다는 벌레 따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우찬이 노린 건 마신에 대한 공격 따위가 아니었다.
즉, 확인.
일종의 검증이다.
그리고.
쨍그랑!
선명한 소리와 함께, 뼈밖에 남지 않은 손과 부딪힌 유리병이 깨져 흩날린다.
동시에, 병 안의 벌레가 마신의 손과 접촉한 순간.
"끼에에에엑────!!"
이 세상의 존재가 내는 소리라고는 차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끔찍한, 절규.
생명을 빼앗기는 존재가 내지르는 단말마가 그 귓가를 채웠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이전에, 생명이 빼앗긴다.
박우찬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저 손과 접촉한 순간, 눈 앞의 벌레가 죽음을 맞이했다.
해골의 손아귀에 붙잡혀 죽거나 마법적인 피해를 입은 게 아니다.
마치 자연사라도 한 듯, 그러나 노화의 징조조차 없이.
흔히 이야기하듯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체력이 최대치인 상태에서 사망 판정에 돌입한 느낌이다.
저게 추정 죽음의 마신이 지닌 권능.
방어 무시. 재생 무시. 축복 무시. 부활이나 소생 무시.
거기에 접촉 즉사.
'레벨이나 강약, 판정 없는 데스 터치냐.'
자신도 모르게 게임 비슷한 비유를 하며, 박우찬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즐겁다고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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