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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19화 (319/371)

〈 319화 〉 수학여행, 3일차

* * *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방독면 너머로 들이닥치는 몬스터의 기척과 감응해 검을 휘두른다.

넉넉한 가로 베기.

동시에, 그 움직임에 맞추어 마신들의 마력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니, 그 수준이 아니었다.

요동치는 건 마신들의 마력이 전부가 아니다.

족히 3일.

사방에 몬스터들이 넘실거리는 구 북한 지역에서, 족히 3일을 참고 있던 박우찬이다.

억눌린 감각은 미친 듯이 확장되어, 순식간에 이 주변 일대 전역을 장악했다.

때문에.

다음 순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남하하고 있던 몬스터 무리를 뒤쫓고 있던 아카데미 측.

혹은, 삼팔선 근처에서 그들을 관측하고 있던 병사들은 목격했다.

단 일격.

순식간에 군세를 이루고 있던 몬스터들의 무리의 목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족히 네 자릿수를 넘고, 어쩌면 다섯 자리 가깝지 않을까 하는 괴물들의 육체가 허물어진다.

말 그대로 시그니처.

S랭크 헌터 수준이 되어야 제대로 정립할 자격이 있다 일컬어지는 일격은, 틀림없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만.

그 사실에 감탄사를 토하기는 아직 이르다.

당연한 이야기.

현재 이 대한민국에는 최소 세 명의 S랭크 헌터가 있다.

이준구. 최승준. 박우찬.

각기 S랭크 중에서도 궤를 달리한다 일컬어지는 괴물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대침공 당시의 일을 괄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자신이라면 만일 대침공이 일어난다 해도 충분히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설령 대침공이 일어난다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자신만만하게 그리 단언하는 대신, 제 3차 대침공을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다음 순간.

툭 하고 바닥을 구르던 머리들이, 순식간에 뒤로 시간을 되감듯 되돌아간다.

떨어진 피륙이 다시금 날아들어, 그들의 목이 잘린 단면을 향해 흡수된다.

그리고.

무너지려던 몬스터들의 육체가, 쿵 하고 다시금 굳건히 대지를 딛는다.

부활.

아니, 애초부터 죽은 적 한 번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일어선 괴수들의 군세가 남진을 계속한다……!!

"또라이 새끼들인가."

박우찬으로서는 그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 있는 마신들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두동강이 난 채로 바닥을 구르던 괴물들이, 순식간에 회복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회복이라기보다는 소생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박우찬의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는 만만한 물건이 아니니까.

칼을 휘두르는 동작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트리거일 뿐.

그 본질은 상대방의 체내 마력과 대기 중의 마력을 일치시켜, 대기 중의 마력을 휘젓는 동작 그 자체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마력은 휘저어진 대기 중의 마력을 따라 멋대로 분열.

체내의 마력이 찢어진 결과 마력을 담고 있던 육체까지 분열되는 셈이다.

참격의 형태를 띄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그 때문.

딱히 칼을 사용해야 할 필요도 없고, 검압을 날리는 기술도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베기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박우찬의 시그니처다.

때문에, 그의 시그니처는 무작정 마력 따위를 퍼부어 치료하기도 힘들다.

치료에 사용된 마력이 제 자리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대신 멋대로 분열하려 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박우찬은 방금 전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회복이나 재생 따위가 아니다.

소생, 이라면 가능성은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진하고 있는 몬스터 전원이 소생 능력을 갖추고 있을 리는 없겠지.

허면, 생각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뿐이다.

일찍이 남해 지부에서 마주했던 구미호 등과 마찬가지.

자신의 피해를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부적, 저주술이다.

박우찬이 감탄과 동시에 욕지거리를 토해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신세계 질서는 놀고 있었던 게 아니다.

여태까지 박우찬이 몇 번이나 사용했던 시그니처.

그 대책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눈 앞에 있었다.

남하하고 있는 몬스터 군세는, 말하자면 그걸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제일 큰 문제는, 박우찬의 시그니처가 가진 그 무지막지한 위력이다.

고작해야 한두 명이 상대라면, 부적이나 방어 채로 베어넘길 수 있는 공격.

단, 그만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시종일관 이 기술만을 난사하며 싸움에 임하지는 않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 공격은 연사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신세계 질서는, 반대로 그 기술을 유도하기 위해 판을 짰다.

자신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시그니처를 유도해, 그 공격을 받아넘길 수 있도록.

그리고 계획대로 되었다.

수많은 대군.

갑작스레 나타난 두 마리 마신.

그 상황에 질린 박우찬은, 이번에야말로 시그니처를 해금했다.

그리고.

만 마리 이상.

어쩌면 수만 마리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몬스터 군세까지 대상에 넣고 휘두른 일격은, 당연히 평소보다 섬세함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조금.

하지만 그 자그마한 틈새야말로 박우찬의 시그니처를 공략할 열쇠였다.

몬스터들이 품 안에 넣어둔 자그마한 부적 하나하나까지 의식할 여유는 없다.

덕분에, 박우찬의 일격은 몬스터들의 목을 남김없이 잘라버리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부적이 작동, 그 피해를 예비한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전이하고 다시금 부활.

혹은, 처음부터 죽은 적 한 번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몸을 가눈 셈이다.

박우찬이 경악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단 일격에 모가지가 베여 날아간 상황을, 1회라고는 하나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 좋은 부적.

최소 A랭크 이상의 주술사가 하루를 꼬박 사용해야 만들 수 있을 법한 물건이다.

그런 게 족히 만 개 이상.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의 A랭크 이상 주술 헌터 특화를 모아도 감당할 수 없는 수량이다.

즉.

"씨발, 이거 하나 때문에 공장을 세웠다고……?"

신세계 질서가 이 한 순간을 위해 투자한 건 실로 간단했다.

시간과 자원.

요컨대, 현찰 박치기다.

A랭크 이상의 헌터가 가진 기술을 재현하기 위한 시설.

A랭크 이상의 헌터가 가진 마력을 재현하기 위한 마력 결정 구매.

단 한 번, 박우찬의 공세를 받아넘기기 위해 신세계 질서는 조직 각 부분에서 끌어모은 자금으로 공장을 세웠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생산 속도다.

가내 수공업으로는 작년 초,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업에 착수했다 해도 도저히 시간에 맞질 않으니까.

'미친 놈들인가, 이거……?!'

돈이 최고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돈을 쓰는 편이 간단하다.

박우찬의 철칙이고, 사냥에도 통용되는 법칙이다.

솔로 헌터인 박우찬에겐 더더욱 익숙한 방법이고.

고랭크 발화 능력자를 고용하는 대신, 마력 결정을 구매해 비축하는 그였으니까.

다만, 본인이 당하는 입장에 설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사부?!"

비틀, 하고 박우찬이 자신도 모르게 풀리는 다리에 힘을 넣고 섰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요 며칠 내내 방독면을 쓰고 있다가 순식간에 몇만 가까운 몬스터의 기척과 접촉했다.

여기에 더해, 시그니처를 사용하고자 놈들의 기척에 집중하기까지.

비유하자면 용의 비늘을 핥은 기분이다.

박우찬으로서는 전신 마비가 오는 듯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당했다.

그렇게 표현해야 할까?

시그니처를 유도당했고, 그대로 받아넘겨졌다.

여기에 놈들이 판을 흔들고자 준비한 몬스터 군세는 그대로 남았고, 하연이의 신병 또한 불안한 건 마찬가지.

컨디션이 최악인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눈 앞에는 마신이 두 마리.

평소와 반대로, 박우찬이 공략하는 게 아니라 공략당하는 측에 선 셈이다.

설령 S랭크 헌터라 해도 대침공을 앞두고 웃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시그니처라 해도, 공략법은 있다.

그리고 다양한 몬스터들 중에선 그 공략법을 터득하거나 숙지하고 있는 개체도 있다.

예를 들어, 이준구의 뇌신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재빠른 몬스터.

예를 들어, 최승준의 절대영도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냉기에 익숙한 몬스터.

마찬가지였다.

한없이 공략하기 어려운 시그니처.

자신만의 특징을 가공해 만들어낸 시그니처.

박우찬이 그런 목표를 잡아 만들어낸 기술조차, 정말로 무적은 아니다.

이처럼 압도적인 자원을 들인다면 그야 대처할 수도 있겠지.

때문에, 박우찬은 자신이 시그니처를 사용할 때마다 상대를 무조건 죽인다는 생각으로 행동했다.

그런 의미에서 따지자면, 일찍이 놓쳤던 신세계 질서 측의 헌터가 뼈아프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박우찬의 비틀거림도, 부적을 사용한 마신들의 소생도 시간으로 따지자면 한 순간.

솟구치는 구역질을 억누르면서도, 박우찬은 정면을 향해 턱짓했다.

그리고.

살의가 폭발한다.

신서아가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박우찬이 이를 악물고 무기를 치켜든다.

움직이는 해골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마신이 홍소를 터트린다.

괴상하게 생긴 마신이 꽈득 하고 주먹을 쥔다.

악마를 상대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적인 분위기 속.

박우찬이나 신서아는 물론이요, 마신들 또한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또한 작전 중 하나일까.

어느 쪽이든, 친절하게 물어볼 이유도 답해줄 리도 없으니.

다음 순간, 사냥꾼이 포효하고 괴물이 질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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