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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18화 (318/371)

〈 318화 〉 수학여행, 3일차

* * *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이었다.

나와 서아는 밤하늘 아래를 질주하듯 내달리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 이 광경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퍽 기묘하다 평할 법한 모습이었다.

전력을 다해 뛰고 있건만,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 모습이라니.

물론 기척을 잠재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면 그토록 어리석은 질문은 던지지 않겠지만.

"사부, 어떻게 생각해?"

"뭐가?"

"이번 일. 역시 신세계 질서 놈들이 한 일이라고?"

"당연하지."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서아는 영 탐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북한 지역 몬스터의 남하.

이 즈음 되면 일개 비밀조직의 힘 운운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세계 질서가 평범한 비밀 조직은 아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들의 남침이라니.

정말로 나라를 말아먹을 생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말로는 들었지만, 서아도 믿지 못할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놈들 솜씨군.'

여하간, 대한민국 정부는 바보가 아니다.

머리 위에 언젠가 S랭크 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악조건 속.

대한민국 정부는 경제가 어느 정도 헌터들의 손에서 자립한 이후로도 끊임없이 토벌대를 보냈다.

목표는 하나.

북한의 몬스터들이 남한 영토까지 넘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물론 북한에 터를 잡은 몬스터들이 남한까지 내려오는 일은 드물었다.

설령 내려온다 해도 대침공 이후 한층 더 살벌해진 삼팔선의 화망 앞에 무릎을 꿇는 게 대부분이고.

그러나.

만약 북쪽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간, 그조차 먹히지 않을 때가 온다.

만에 하나 A랭크 이상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비록 내 앞에선 우후죽순 쓸려나가는 개잡졸 취급이라지만, A랭크 몬스터라면 절대로 약체가 아니다.

확실히 쓰러뜨리기 위해선 핵미사일이 필요하다 일컬어지는 놈들이니까.

설령 S랭크 헌터라 해도 준비된 A랭크 몬스터를 빈손으로 토벌하기는 버겁겠지.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북쪽에 파견된 헌터들이 맡는 일은 주로 갈라치기였다.

무리를 통합할 만한 우두머리가 있다면 머리를 딴다.

지나칠 정도로 부푼 게이트가 있으면 보고하고, 토벌도 계획한다.

그런 식으로 미봉책에 가까운 전법을 연신 동원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바로 현 대한민국의 분단선이었다.

즉, 지금과 같은 몬스터들의 무리 따위는 본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북쪽으로 파견되는 헌터들이 정신이 나간 탓에 작업을 대충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저만한 대규모 무리를 통합할 수 있는 거물이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고?'

뭐,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정말로 재수가 없어 하필이면 그런 괴물이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박우찬은 몇 가지 이유에서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첫째,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지나치게 절묘한 점.

둘째, 마찬가지로 그런 거물이 움직였다기엔 이번 행동이 지나치게 바보같다는 점이다.

곧바로 남침?

물론 그 수는 작금의 박우찬이 보기엔 퍽 치명적인 수였다.

이로 인해 아카데미 측 전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겠지.

신세계 질서의 목표인 하연이의 신병 또한, 그 틈을 노릴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만.

순수하게 몬스터 무리의 장으로서 판단하자면 어떨까?

'바보같은 선택이야.'

배후에 아카데미 전력을 둔 채삼팔선의 화망을 향해 전진하겠다고?

심지어 정부에서 지원을 요청한 바에 따르면 남하하는 몬스터 무리와 평양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허면?

이토록 용의주도하게 모습을 드러낸 괴물이 평양과 삼팔선으로 포위당한 지역으로 걸어들어간다는 말에 납득해야 할까.

아니면 신세계 질서 측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몬스터들을 움직였다 생각해야 할까.

박우찬이 생각하기엔 후자 쪽이 보다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보다, 놈들에겐 사용할 만한 수단도 있다.

몽마의 여왕이나 구미호 등으로 대표되는 매료 능력.

혹은, 남해에서 놈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던 귀수산.

전설에 의하면, 귀수산은 그 등 뒤에 나는 식물로 온갖 재해를 몰아내는 악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이게 바로 신라의 만파식적이다.

그리고 만파식적이 몰아낼 수 있다는 재해에는 타국의 군세 또한 포함되어 있다.

타국의 군세를 제어할 수 있다면, 그야 몬스터도 제어할 수 있겠지.

놈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단도 바로 이 쪽이리라.

목적은 십중팔구 흔들기.

그렇지만.

문제는 놈들이 선택한 방법 쪽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무시하기엔 걸린 판돈이 지나치게 컸다.

막말로, 정말 삼팔선이 뚫리기라도 하면?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삼팔선과 함께 놈들을 포위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런 만큼 놈들이 준비한 함정 또한 준비되어 있겠지만.

활로는 보인다.

단지.

그 활로 자체가 생문으로 가장한 사문이라는 생각만큼은 떨칠 수 없었다.

"준비해라, 서아야."

뭐, 어느 쪽이든.

당장 해야 할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억지로 머리를 환기한다.

이번에 나와 서아가 맡은 역할은 정찰 혹은 견제다.

최소한 맡은 역할은 다해야겠지.

'실질적으로는 정찰이 고작이겠지만.'

여하간, 나나 서아 중 어느 쪽도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엔 소질이 없다.

나는 그 단점을 시그니처로 극복했고, 서아는 저격이라는 전법과 함정을 통해 만회했지만.

적어도 화려하게 빔을 쏘며 전세를 순식간에 뒤엎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럴 때는 최승준의 능력 쪽이 부럽단 말이지.

그런 생각을 삼키며 무기를 꺼내든 다음 순간.

"……사부, 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리를 죽이고 있던 내 귓가를 서아의 목소리가 때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치다니 제정신이냐고 훈계를 할 여유는 없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서아의 목덜미를 움켜쥔 뒤, 뒤로 크게 도약한다.

동시에.

콰득, 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쿠웅 하고 무거운 물체가 내려앉는 듯한 굉음도, 천지가 떨리는 포효도 없었다.

단지.

쑤욱 하고 무언가 거대한 게 빠지는 듯한 감각.

대기의 흐름이 미친 듯이 뒤틀리는 가운데, 놈들은 그 앞에 나타났다.

하나, 도저히 이 북한 땅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물고기 대가리 인간.

범고래 비슷한 면상이 달린 이상한 새끼.

하나, 어떤 의미로는 이 북한 땅의 모습에 지나칠 정도로 어울리는 해골 인간.

말 그대로 내장이나 눈알 하나 남지 않은 채, 모조리 썩어 뼈만 남은 듯한 무언가.

'마신.'

순식간에 확신이 등골을 훑는 가운데.

그제서야 세상의 움직임이 놈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걸음에 10m 이상을 벌린 나는, 그조차도 부족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축지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100m?

1km?

글쎄, 이 정도 즈음 되면 거리 감각이 무너져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첫 걸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거리까지 간격을 벌린 내 앞.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가 푹 하고 꺼졌다.

싱크홀.

놈들이 밟은 땅을 중심으로 한 일대가, 원을 그리며 푹 하고 땅밑으로 꺼졌기 때문이다.

"뭐야?!"

서아가 그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짐작이 갔다.

눈 앞에서 벌어진 현상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놈들이 강력한 힘으로 지반을 내려쳤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는 있었겠지.

파괴의 규모 자체는 어디까지나 그럭저럭 대단한 정도였으니까.

다만.

저토록 가볍게 내려앉았는데 지반 전체가 붕괴한다?

마력이 물리법칙을 씹어먹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마력 또한 나름의 법칙 하에서 구동한다.

그리고 저 공격은 말 그대로 마력의 법칙조차 무시하고 있었다.

'권능.'

생각과 함께, 발바닥 또한 바닥에 닿았다.

그제서야 나는 서아의 목덜미를 놓았고, 서아도 제대로 착지했다.

동시에.

우리들은 반대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물론 저 쪽에 있는 새끼들은 도대체 뭐가 뭔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면상들이었지만.

적어도 놈들의 시선이 우리들을 훑고 있다는 정도야 눈치챌 수 있었다.

"사부, 저건?"

"마신이지."

"딱 봐도 알겠네, 그건."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서아.

거기에 비해, 나는 미간을 좁히는 게 고작이었다.

'뭐지?'

물론 눈 앞에 있는 녀석들은 퍽 범상찮은 와꾸를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지반이 싱크홀처럼 폭삭 주저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고.

이상한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림자 괴인이라던가.

다만, 놈들의 기괴함은 그 이상이었다.

여하간, 나로서는 당장 몬스터에게 기습당하는 일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뭐, 정말로 기습을 허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단지.

설령 그렇다 한들, 나는 놈들의 기습을 미리 찰지하고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속에 여유가 남지 않거나 하는 사정 때문에 시시콜콜하니 대응하는 게 어려웠을 뿐.

헌데, 놈들은 달랐다.

방금 전, 놈들의 기습은 나로서도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아의 말이 없었다면 눈치채는 게 늦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뭐지?'

내 감각에 간섭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이 감각이 그렇게 속 편한 녀석이었다면 마신 한 마리 잡고 평생 부려먹으며 살았겠지.

놈들의 권능조차 내 감각을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 정도야 이미 확인된 바 있다.

허면, 저번처럼 무언가 간접적인 간섭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평소라면 여기서 세세한 분석을 더했겠지.

그렇지만.

모습을 드러낸 마신이라고는 고작해야 둘.

거기에, 미심쩍기 그지없는 상황.

마치 발 밑의 함정을 못 보고 지나친 듯한 위화감 속에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이상 휘둘리는 건 위험하다.

때문에.

"너희는 뒈졌다."

탈칵, 선명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열렸다.

그리고.

방독면을 벗은 나는, 천천히 세상을 향해 호흡했다.

동시에.

다음 순간, 세상을 한 줄기 실금이 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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