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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17화 (317/371)

〈 317화 〉 수학여행, 2일차

* * *

'묘한데.'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감상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오늘 일정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예은이와 하연이가 속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예은이의 색출 능력은 평균 이하.

여기에 하연이의 탐지 능력은 딱 평균 수준이다.

때문에, 십중팔구 좋은 결과는 거두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남은 한 명이 그 쪽에 특화된 타입이었나?

아니면 운이 좋았던가.

어느 쪽이든, 결과랑 별개로 저게 오늘 있었던 사건들 중 제일 예상 밖의 일이었을 정도니.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다는 평가도 틀리진 않았으리라.

물론 나라고 해서 학생들이 지정된 몬스터를 사냥하다 사달이 나는 꼴을 바라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고생했으면 하는 마음이야 들어도, 그 이상 가는 피해라면 단순한 농담 삼을 수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말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여하간, 오늘 내내 나는 말 그대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수학여행 2일차.

신세계 질서가 개입하기엔 퍽 적절한 타이밍이었으니까.

하필이면 과제로 몬스터 사냥 따위가 뽑힌 점도 그렇고.

만에 하나 주변에 널린 몬스터 사이에 숨어 신세계 질서가 난입했다면?

못해도 어마어마한 혼란이 일어나겠지.

물론 하연이는 이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예은이도 있고.

단순한 무력이라면 A+랭크 가까운 마신들에게 순식간에 패배하는 일은 없겠지.

적어도 내가 가는 시간까지는 버틸 수 있으리라.

당장 나부터가 하연이 쪽에 능력을 할애하고 있었으니.

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학생들까지 전원 비슷하게 감시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 대한 감시는 다른 교사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약 몬스터를 사냥하다 탈이 나진 않을까 처음부터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거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나는 어떤 조나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마신들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있어도 놀랍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화는 났을 테고, 곧바로 놈들의 모가지를 따기 위해 움직였겠지만.

당연한 이야기.

놈들은 마신, 다시 말해 악마다.

그리고 악마의 힘은 지금 하연이와 예은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수준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인질로 잡는다. 원하는 바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

악마들 특유의 사고방식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다.

막말로, 인질로 잡을 만한 학생들은 여럿 있고.

어쩌면 다른 학생들을 인질로 잡아 하연이의 신병을 확보하려 들지는 않을까.

나로서는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다만.

이제 와서 순식간에 하연이를 제압해 끌고간다는 건 다소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 된지 오래다.

적어도 마신들로서는 하연이를 일격에 제압하기 힘들다.

놈들은 근본적으로 어디까지나 A+랭크 몬스터였으니까.

비록 마신의 가호가 있다고는 해도 마찬가지.

놈들이 지닌 권능은 말 그대로 특별한 힘.

단순히 전투력으로 치환하기 어려운 법칙성에 가까운 부류였다.

여태까지 상대한 마신들만 해도 그랬고.

적어도 단순한 힘, 체급이나 스펙 따위로 치환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대상의 강함과 별개로 그 정신을 장악하는 능력.

사회의 규모와 별개로 특정 조직을 붕괴시키는 능력.

접촉한 이의 의욕을 말소시키는 능력.

여기에 더해, 모종의 저주 비슷한 능력까지.

어느 쪽이든, 랭크와 관계 없이 나나 최승준에게도 효력을 발휘하던 권능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며, 하늘로 던진 사과가 땅을 향해 떨어지듯이.

말하자면 일종의 법칙에 가까운 힘.

A+랭크 몬스터의 실력으로도 S랭크 헌터를 사냥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법칙성이다.

때문에.

놈들의 권능은 전체적으로 자이언트 킬링.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조차 물어뜯을 수 있는 부류였다.

반대로, A+랭크 몬스터에게 마신의 권능이 더해졌다고 해서 순수하게 그 전투력이 S랭크에 필적한다…….

그런 느낌은 없었고.

굳이 예외를 들자면 그 그림자 괴인 정도겠지만.

뭐, 말이야 길었지만 요컨대 마신들이 하연이와 접촉한다 해서 순식간에 납치할 수 있는 상황은 옛저녁에 지나갔다는 뜻이다.

신세계 질서와 관련된 다른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조성하고자 동아리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꺼내들었던 거니.

드디어 성과를 보았다고 해야 할까.

단지.

"이상하단 말이지."

나로서는 그리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수학여행 두 번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런 여행이 으레 그렇듯 캠프파이어였다.

학생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교사들이 준비한 장작으로 쌓아올린 불꽃.

여기에,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면 식량이나 식수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사냥한 몬스터의 시체를 먹을 걸로 교환해주는 시스템이다.

물론 이렇게 교환한 몬스터의 소재는 이후 학생들에게 분배될 테고.

여기서 획득한 소재를 잘만 활용하면 학생들도 장비를 갖출 수 있을 테지.

내가 생각해도 잘 짜인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작 저 캠프파이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빈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

수학여행, 2일차 밤.

신세계 질서는 여태까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실화냐?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다시금 체제를 다잡은 신세계 질서가 움직이려면 이만한 기회도 없다.

때문에 나 또한 바짝 긴장하고, 티아마트나 서아의 엉덩이를 걷어찼을 정도.

헌데도 여태까지 움직임 하나 없다니?

물론 녀석들이 지금 상황에서 움직였다 한들 변변찮은 결과는 거두지 못했으리라.

말했다시피 더 이상 하연이는 녀석들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할 만큼 나약하지 않았으니까.

허면?

거기에 맞추어 무언가 행동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말마따나 인질을 잡는다던가.

그러나 녀석들은 시원하게 행동을 포기했다.

더 이상 하연이를 노리는 건 포기할 속셈인가?

예상보다 강해진 하연이를 확인한 탓에 급하게 철수?

만약 그렇다면 나로서는 다행이지만, 도저히 그렇게 안심할 수 없는 게 또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갑갑하네.'

씁 하는 소리가 절로 샜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서 달리 반응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캠프파이어의 명물,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훌쩍훌쩍 울먹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탓이다.

심지어 교사들 중에서도 그러는 양반들이 있었을 정도니.

물론 나는 딱히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내가 다른 교사들보다 쿨한 성격이라 그렇다면 멋있기라도 했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딱히 별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가지를 보냈던데.

가지 특유의 식감만 생각하면 나오던 눈물도 도망치기 마련이었다.

"하이고, 어쩌다 이런 꼴이 되선."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우스꽝스러운 기분에 헛웃음이 나왔다.

숫제 사고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던 탓이다.

이런 것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진절머리나는 기분이 들어, 짧게 고개를 젓는다.

하긴, 구태여 우울한 생각만 나서서 할 필요는 없겠지.

안 그래도 우울한 일이 많은 직종이다.

게다가, 내게는 안 그래도 더 우울한 일이 있었지.

'씨발, 그 양반들한텐 뭐라고 소개하지.'

중졸 이후 몬스터 죽이겠답시고 뛰쳐나간 자식 새끼가 신부랍시고 자기 학생을 데려왔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거야, 이거?

심지어 서아를 데려간다 쳐도 마찬가지.

결국 서아가 내 제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티아마트는…….

'아니, 미쳤나.'

확실히 내가 피곤하긴 한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몬스터의 이름을 떠올리다니.

아니면, 저번에 마취제를 맞았을 당시 상황이 기억에 남았거나.

불꽃처럼 흐드러지던 붉은 머리칼을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뭐, 결국 몬스터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런 장면에서 녀석의 이름을 떠올릴 필요는 없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안 그래도 한 번 꼬였던 사고가 끊어진 고무줄처럼 바닥을 나뒹군다.

"에라, 모르겠다."

모르는 일까지 대처할 수는 없는 법.

이렇게 불안해한다고 한들 마땅한 대책이 있지도 않으니.

무언가 반응이 있을 때까지 늘어져서 쉬고, 그 다음은 사후 처리로 진행하자.

깔끔하게 결론을 낸 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듯 그 자리에 누웠다.

등 너머로 느껴지는 멸망한 도시의 잔해가 깔린 진흙이 퍽 불편했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세계 질서가 정말로 행동에 나서지 않은 건 아니었다.

수학여행 2일차가 끝나고, 시간이 열 두 시를 넘어 3일차에 접어드는 그 시간.

하루 내내 온갖 밑준비에 동원된 교사들의 정신적 피로도, 몬스터를 사냥해야 했던 학생들의 육체적 피로도 최고에 달한 그 시기.

평양에 잔류하고 있던 아카데미 교사들 및 2학년 학생들에게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 구 북한 지역으로부터 몬스터 무리들이 남하 중.

­ 삼팔선 지역을 중심으로 한 포격에도 위축되는 기색 없음.

­ 현재 가까운 지역에 존재하는 길드 등의 조력이 마땅치 않은 바.

­ 설립 목적에 따라, 헌터 아카데미의 지원을 요청.

……신세계 질서의 술책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박우찬과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꾸준하고도 확실히.

그렇게.

헌터 아카데미, 개교로부터 2년차.

학생들은 때 아닌 몬스터들의 남침을 눈 앞에서 목도하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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