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수학여행,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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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1일차는 예상보다 쉽게 마무리되었다.
비교적 뒤늦게 돌아온 예은이와 하연이 조를 보며, 나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뭐, 결과 자체는 신기한 일이 아니었지만.
예은이의 경우, 본인의 전투 능력은 탁월해도 탐색 능력은 뒤떨어지는 편이니까.
주변에 염력을 뿌려 몬스터의 기척을 읽어낼 수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
독초와 약초를 구분하거나, 안정적인 거점을 색출하는 일엔 재주가 없다.
하연이는 딱 평균 수준이고.
달리 말하자면, 한 명이 평균 이하고 다른 한 명이 평균인 상황에서 남은 한 명이 구멍을 메꿔야 한다는 뜻인데…….
뭐, 힘들겠지.
거기에, 이번 수학여행의 조건은 더더욱 까다롭다.
아니, 애시당초 몬스터에게 완전히 넘어간 땅을 별다른 보조 하나 없이 탐사해야 할 상황 쪽이 드물고.
여기에 교사들의 텐트로부터 일정 거리 내에 거점을 잡아야 하고, 지붕과 식량도 확보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만한 악조건에서 활동해야 할 일 따위는 최전선에서도 드물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엔 몬스터가 아닌 짐승들도 그럭저럭 있는 모양이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어느 쪽이든, 쉽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내가 놀란 건 다른 조 녀석들의 행동이었다.
하필이면 제비뽑기로 뽑힌 팀이었기 때문일까.
당연히 능력이나 조합이 영 마뜩찮은 녀석들도 있다.
나로서는 현장에선 언제나 최고 효율인 조합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즉, 그런 불리함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살필 생각이었지만…….
'설마 협력할 줄이야.'
대충 그런 상황에 처한 조 다섯 정도를 모아 연합한 녀석이 나왔을 때는 과연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그야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보통 따로 조까지 나눴는데 저런 발상을 하나?
현장에서의 사령탑이 아니라, 후방에서 전선을 보고 조정하는 쪽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예 대놓고 허름하지만 형체가 남은 아파트를 몬스터들로부터 탈환할 줄이야.
새삼스레 발견한 학생들의 자질을 정리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솔로 헌터 지상주의였던 나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발상이었다.
덕분에 1일차는 정말로 무난하게 지나갔지만, 2일차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여하간, 개인 장구로 삽 몇 개 챙겼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즉, 2일차부터는 다소 전통적인 방법.
사냥 실력을 측정하게 된다.
교사들이 지정한 몬스터를 제한 시간 내에 사냥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니, 이번엔 협력도 힘들겠지.
다른 게 아니라, 다섯 조 분량의 사냥감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사냥하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테니까.
난이도. 그 몬스터의 위치. 분포도.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거리 등.
세상 만사 손을 잡아야 할 땐 잡아도 좋지만, 반대로 스스로의 힘 외에 믿을 수 없는 국면도 있다.
헌터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것보다, 1일차 때 너무 그럴듯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조금 골탕먹었으면 싶은 선생님의 깊은 배려심이다.
'보통 웹소설을 보면 이 때 즈음에 배틀로얄 비슷한 종목이 나오던가.'
혹시라도 참조가 될 게 있을까 싶어 둘러본 웹소설은, 안타깝게도 별로 참조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의 주적은 능력을 악용하는 빌런이 아니라 몬스터였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대인전 능력 따위는 어디까지나 덤.
챙길 수 있으면 챙기는 추가 파츠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안 그래도 1학기 당시 체육대회로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이상 대인전 관련으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흠, 꽤나 고생하고 있구나."
"엉?"
그런 식으로 시간을 떼우고 있자니, 문득 내게 그리 말을 거는 어투가 있었다.
물론 저 맛이 간 어투에서부터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티아마트였다.
이 년은 왜 나한테만 저런 말투를 쓰는 걸까?
다른 교사들 앞에서는 커리어우먼같은 말투로 일관하던데…….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려면 어떨까 싶었다.
혹시 지금 움직이면 눈을 뽑을 수 있을까 싶은 기대에 조금 표정을 살피니, 어쩐지 의아한 사실이 눈에 밟혔다.
"못 잤냐?"
"으응?"
거뭇거뭇한 기미.
거기에 피곤한 듯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행동거지까지.
아무래도 녀석은 하루 내내 잠을 못 잔 모양이었다.
설마 이제 와서 수학여행이 기대되서 잠을 못 잔 건 아닐 테고.
"만약 그랬으면 학생으로 입학했겠지."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뭐, 뭐가 끔찍한 소리라는 게냐? 본인은 응당 소녀의 모습 또한 취할 수 있느니라!"
아니, 그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슬쩍 위아래로 녀석을 훑는다.
뭐, 지금 모습으로 학생이라 주장하기엔 일정 부분에서 다소 지나치리만큼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혹이 있긴 한데.
말마따나 육체적 나이를 조정할 수 있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하다못해 그런 분신을 만들어도 좋을 테고.
단지.
"아니, 애엄마가 그러고 싶냐?"
"애, 애엄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쳤다는 듯 경악하는 표정이 달린다.
나 참, 틀린 말도 아닌데 무슨.
"배, 배움에는 끝이 없느니라."
"뭐, 그건 그렇지."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은 없다만.
확실히, 부모님 세대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는 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라고 했던가.
대침공 이전 사회를 조명하던 프로그램 따위에서 그런 내용을 들었던 기분도 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중졸인 내가 이 녀석보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굳이 그런 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본인은 아주 파릇파릇하지 않더냐. 지모신이라는 이름도 어디까지나 계승했을 뿐이고."
"아, 그래?"
"그렇다. 파릇파릇한 신생 여신이다, 파릇파릇한."
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스스로를 파릇파릇하다 주장하는 녀석 중 정말로 파릇파릇한 녀석은 없다.
것보다, 파릇파릇하다는 어휘 자체가 노쇠한 기분이 든다.
다만, 구태여 그런 점을 지적하는 대신 나는 어깨를 좁혔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이런 일까지 내가 담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녀석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중요 전력이다.
나조차 상시 방독면을 지참하며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데, 본인은 컨디션 관리를 망친다?
아주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녀석 또한 탐탁치 않은 듯 팔짱을 끼며 조금 앓는 소리를 냈다.
"뭐, 이 쪽은 치료 담당이지 않느냐."
"그렇지."
만에 하나, 정말로 큰 부상을 입은 학생이 발생했을 경우.
말이야 별다른 지원 하나 없다고는 했지만, 당연히 교사들 쪽도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티아마트는 그런 치료반 중에서도 제일 실력 좋은 회복역이었고.
설마 그거 때문에 새벽 내내 잠을 못 잤다는 건가?
누가 실려올지도 모르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에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곧 녀석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니. 다만,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만약 녀석들이라면 십중팔구 본인을 먼저 노리겠지 싶더구나."
"아."
과연.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여하간, 지금 이 상황이 신세계 질서 측에서 행동에 나서기 지나칠 정도로 쉬운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거니.
허면?
지금 이 상황 속, 신세계 질서가 시도하기에 가장 유력한 공격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도시 공략전.
둘째로는 요인 암살이다.
그리고 그 경우, 녀석들이 가장 먼저 노릴 만한 건 당연히 회복역.
동시에, 일찍이 그 정체가 들통난 티아마트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분신이니 직접적인 전력에 타격은 줄 수 없겠지만, 반대로 분신이니 구태여 호위를 할애할 리도 없고.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존나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네."
"뭐, 뭣이?"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
"내가 있는데 무슨 되도 않을 걱정이야. 됐으니까 돌아가서 자라."
농담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신세계 질서가 삼팔선을 무력으로 뚫거나, 본인들의 흔적을 남길 게 아니라면.
평양에서 날뛸 신세계 질서 측 병력은 십중팔구 몬스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니, 내가 몬스터한테 뚫리겠냐?'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어처구니 없는 기분에 허 하고 한숨을 토하고 있자니, 곧 녀석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다 웃음을 지었다.
"하긴, 본인이 괜한 걱정을 했구나."
"이제 알았냐?"
"그래. 허면, 본인은 돌아가서 수면을 취하도록 하마. 괜찮겠지?"
"엥?"
지금 이 새끼, 대놓고 땡땡이치겠다 선언하는 건가?
너무나도 당당한 그 말에 조금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자니, 녀석은 곧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농담이다. 애초에, 본인에게 하루 수면을 취하지 않은 게 그토록 그리 큰 일이리라 보느냐?"
"……뭐, 그건 상관 없는데. 그래도 오늘은 자라.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느니라."
후후, 짧게 웃음을 터트리는 티아마트.
어째 전보다 기분이 좋아진 듯한 녀석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짧게 고개를 저었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긴다 한들, 네 녀석이 본인을 지켜줄 테지?"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서, 티아마트는 그런 말을 남기고 곧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어.
예전에 그런 말도 했었고,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단순한 전력 상으로도 보호할 필요는 있을 테고.
단지, 나로서는 녀석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아, 맞다.'
방금 전 이야기를 해서 떠오른 셈이지만, 물어볼 게 있었는데.
녀석이 갑자기 나를 부부 운운하던 게 무슨 뜻이었던 건지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스친 탓이었다.
뭐, 시간은 많고.
굳이 붙잡을 정도는 아니겠지 싶어 어깨를 좁히며 손을 내렸다.
무엇보다.
'몬스터잖아.'
만약 티아마트가 무언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오해를 하고 있다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막말로, 앞으로 1년 내에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하겠다 말했던 내게서티아마트의 이름이 나오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아니, 최소한 손은 잡을 수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때문에, 지금 내게 남은 건 앞으로 티아마트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는 고민 뿐.
그런 감상을 삼키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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