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화 〉 수학여행, 1일차
* * *
이번 수학 여행이 평범한 탐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뭐, 오히려 비슷한 점을 세는 게 빠르긴 하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역시 이 쪽이리라.
지금 평양엔 냉면집 하나 없는 상황이라는 점.
아니, 냉면집은커녕 숙소 하나 없는 상황이라는 점.
다시 말해 의식주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의. 제대로 된 장비라고는 아카데미 보급품 뿐.
식. 당연히 식사할 가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 이슬 피할 장소도 변변치 않으니.
이 정도면 퍽 훌륭한 훈련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적당히 팀을 나눴지만…….
"어, 얘들아? 어디서 오늘 일정표 들었니?"
"아뇨."
"이게 하루 이틀 일도 게 아닌데, 보나마나 이런 일 시키실 생각 아니셨어요?"
"으, 으응.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인데……."
숙련된 조교의 시험을 보이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아, 학생들도 이제 짬이 찼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나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학생들이 진흙탕을 구르는 모습을 보면서 맥주 한 캔 따고 싶었는데.
슬쩍 시선을 살피자, 다른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저저저!'
'이 놈들이 경우가 없어서, 에잉! 내가 저 나이 때까지만 해도 저러지 않았는데!'
'아니, 그 때는 아카데미가 없었잖수.'
'게이트도 없었는데.'
'아하.'
뭐 대충 그런 시선이 오가는 게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배운 게 있다면 오히려 칭찬을 해야겠지.
헌터는 언제라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언제나 만전의 상황에서, 확실한 백업을 뒤에 업고 사냥에 돌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를 비롯한 교사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제나 강조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식 교직 자격증을 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실 교사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옆에서 훈수 두는 아저씨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아저씨들은 정말로 훈수 듣는 대상이 실력을 발휘하게 되면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드는 법이다.
우리들이 딱 그런 꼴이었다.
잘하는 건 맞는데, 조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잘 하는 건 상관 없어.
졸업하고 나서 특기를 살려도 좋아.
하지만 우리 앞에선 조금 실수도 해 줘……!!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심산도 들었다.
허나, 거의 1년 반을 구른 학생들은 이젠 어엿한 헌터 티가 났다.
3인 1조로 나누어진 팀 내에서 역할을 나누고, 의식주 중에서 보급할 수 없는 장비 쪽을 제외.
거처 탐색이 한 명, 식수와 식량 확보에 각기 한 명씩.
체력과 시간을 온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씁쓸함이 느껴졌다.
물론 학생들의 솜씨가 완벽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러나.
상세한 스케줄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퍽 훌륭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니.
여기서 흠을 잡으면 선생이라는 명함을 방패로 삼을 수 없을 정도로 꼰대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실에 우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힘 빠지네."
"쌤, 또 왜 그래요?"
나도 모르게 축 늘어진 목소리로 입을 떼자, 그런 말이 곧바로 뒤에 따라붙었다.
이 평양 일대에 임시로 설치한 캠프.
방금 전, 이 평양 폐허 속에서 거점을 잡는 게 너희들이 할 일이다!!
자신만만하게 그리 선언한 이후 교사들이 사전에 준비한 텐트 밑에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노가리를 깔 수 있는 건 교사들.
혹은 이미 할 일을 마친 조 뿐이었다.
그리고.
윤하와 지희의 경우는 바로 후자에 속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하간, 윤하는 우리 꼬마들 중에서도 단순한 상황 파악 능력은 제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찰병 역할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행히 중간에 궤도를 잘 튼 덕분에 사령탑으로서의 판단력을 기르게 된 느낌이지만.
어느 쪽이든, 동년배 정찰병 역할을 맡은 학생들보다 우위에 있을 정도니 말은 다 했겠지.
심지어 능력이 단순한 방어 계통이 아닌 신체 강화 계통의 파생이기 때문에, 공격력도 나쁘지 않다.
전법의 완성도야 예은이나 하연이가 높겠지.
그렇지만, 단독으로 전투를 치를 경우 총합치가 제일 높은 건 윤하다.
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래부터 몸이 가볍고 날랜 지희.
여기에 몽마의 날개를 이용한 공중 기동 능력이나 그림자를 다루는 힘은 지희의 정찰병으로서의 능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몬스터의 흔적을 파악하는 기술이야 없지만, 애시당초 몬스터 혼혈이기 때문일까.
정찰병으로서는 우리 꼬마들 중에서도 지희가 제일이었다.
뭐, 발이 가볍고 발디딤이 탄탄하니 어떤 험지에서도 문제 없이 움직일 수 있고.
비행을 통한 공중은 물론이요, 수영도 잘 하더라.
말 그대로 육해공 전부를 대응할 수 있는 셈이다.
거기에 흔적이 남은 장소의 사념을 읽어 정찰병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만큼, 빈틈을 잡힐 여지도 없다.
나로서는 능력에 의존하는 대신 기술도 배웠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적어도 결과를 두고 흠을 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둘이 같은 조가 된 시점에서, 1등이 그녀들이 되리라는 건 사실상 따놓은 당상이었다.
딱히 중요한 시험 따위를 보는 건 아니니까 제비뽑기로 대충 정하자는 발상은 도대체 누가 정해서…….
"응? 박우찬 선생이 제안한 거잖아?"
"예? 누명 아닙니까?"
"오늘도 헛소리 한 번 제격이네."
지나가던 선생님 한 분이 그런 말을 던지며 호호 하고 사라지신다.
아니, 그런데 저 아줌마가 진짜.
"뭐, 어쨌든. 내 말은, 너희가 생각보다 아카데미 수업에 잘 적응하고 있다 이거지."
"아아."
내 말에 지희 또한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여하간, 처음엔 칼 한 자루로 몬스터를 썰어제낀 정필연과 같은 사례만 유명하던 이 아카데미다.
헌데, 고작해야 1년 사이 그 정필연도 칼밥보다 지형과 흔적 추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니.
물론 본업인 칼질 또한 빼놓는 건 아니지만, 이전까지 학생들이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초능력자.
게다가 그조차 자기 능력만 믿고 날뛰는 바보들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정련된 헌터 느낌도 들었다.
"히야, 이 병아리들이 이제는 어느덧 1인분을 하려고 한단 말이지."
"왜요? 단순한 제자처럼 안 보여서요?"
"응."
"어븟?!"
뭐, 확실히.
애시당초 단순한 제자처럼 여기기에는 지나치게 사이에 낀 일이 많았지.
그런 생각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정작 지희는 혀 씹은 소리를 냈다.
여기에는 과연 나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너희들 말야. 이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그렇게 기겁을 하면서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그, 그거야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죠!!"
아니, 이게 내 탓이야?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조금 이상하지 않냐? 객관적으로 따지면, 매번 성희롱 비슷한 걸 당한 건 내 쪽 아니야?"
"그, 그건 뭐. 쌔, 쌤한테도 나쁜 일은 아니었을 거고? 응?"
"지희야,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선 이 계집애들과 나 사이의 관계를 들려주면 보통 내가 욕을 먹기 마련이다.
다만, 지희는 달랐다.
"어디 가서 몽마 대가리라는 소리 듣기 딱 좋으니까."
"갸아악!!"
발작하는 지희.
그 옆에서 간신히 얼굴을 진정시키고 있던 윤하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듣는 사람 민망할 정도로 목소리가 떨려서 별다른 효과는 없었지만.
"어, 그래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대요? 워,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기분이……?"
"뭐긴 뭐야, 너희 행동 때문에 그러지."
"네?"
"생각 좀 해보라며."
생각 좀 했다.
그렇게 말하며 톡톡 관자놀이를 두드리자, 영 멍한 표정이 퍽 인상적이었다.
하긴, 생각 좀 하라고 정말로 할 줄은 몰랐던 거겠지.
게다가 그 생각이라는 게 자기들을 여자로 좀 봐달라는 소리였으니.
당연히 요 맹랑한 꼬맹이들처럼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로서는 이제 와서라는 기분이 들긴 했다.
아니, 너희가 나한테 한 행동들이 더 심각하지 않았냐?
'좀 생겼으니까 봐준다.'
무엇을 숨기랴, 나는 사실 얼빠였다.
보는 눈은 낮지만.
아카데미 개교로부터 지금까지, 웹소설로 따지면 자그마치 300화 가까운 시간이 지난 끝에 밝혀진 비밀이었다.
"뭐, 그래서 너희 얘기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려고."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선언이었다.
앞으로 1년 후까지 적당히 생각은 해 보겠다.
실제로 그 때가 오면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겠다.
그 때까지 어떻게 할 건지 알아서 생각해 봐라.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이 마음을 바꾸는 학생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말이야 좋지, 실제로는 단순히 대놓고 품평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네, 넵."
"뭐, 뭐 그 정도야. 기다리죠 뭐!"
짐짓 태연한 척 잔뜩 얼어붙어 그리 답하는 녀석들의 태도를 보건대, 아무래도 퍽 요원할 듯 싶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히려 다 떨어지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도 했는데 말이지.
아니, 선택하기 어려워졌으니 오히려 힘들어졌다고 해야 하나?
조금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이며, 나는 그대로 턱짓했다.
"그러니 괜히 애 타서 여기까지 오지 말고, 다른 애들이나 도와줘. 삽 퍼는 거 불쌍하다."
"네, 넷!!"
벽력같은 대답과 함께, 쪼르르 도망치는 계집애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나 참, 활기차기도 하지.
좋을 때다, 좋을 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