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 수학여행, 1일차
* * *
처음 이북에 발을 들인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평하고는 한다.
이래서야 차라리 게이트 안쪽같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던전,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에 새로 둥지를 차린 장소는 사실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
말 그대로 둥지.
짐승들이 머무르기 위한 거처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나름대로 짐승들 특유의 조리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짐승들 특유의 조리라 하면 이른바 자연스럽다는 뜻이고, 자연스럽다는 건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막말로, 밖에서 보면 쉽게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수풀이 드리운 동굴 따위에서 생활하는 게 편할 리가 있나.
즉, 던전이란 무릇 몬스터의 집.
바야흐로 짐승의 거처다.
그리고 짐승의 둥지는 으레 지저분한 법이었다.
뭐, 게이트가 지나칠 정도로 확장되면 A랭크 몬스터가 던전까지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경우라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가면 던전은 패배자들의 쉼터가 아니라 게이트 측의 침공용 전진 기지가 될 테니까.
어쨌든.
여기에 비하면, 게이트 내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광경.
메마른 바다. 색깔이 다른 하늘. 쩍쩍 갈라지는 대지.
말 그대로 하나의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듯한 게이트 내부의 풍경은, 조금 나쁜 의미로 몽환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몬스터라고는 하나 이런 장소에서 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티아마트의 설명에 의하면, 게이트 내부의 세상은 사실상 종말을 맞이한 신화 속 세상이라고 했던가.
예를 들어 그리스라면 타르타로스. 북유럽이라면 불에 탄 세계수의 잿더미 속.
그런 풍경이라고 하니, 그야 세상이 멸망한 듯한 풍경이라는 설명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것보다, 비유가 아니라 단순한 묘사일 뿐이고 거기까지 가면.
새로운 삼팔선 이북 또한 마찬가지였다.
회반죽이 벗겨진 건물들.
단차를 밟을 때마다 삐걱이는 계단.
비록 잘 사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일개 국가가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시체.
그 위로 자연이 돌아오고 있는 풍경은, 퍽 을씨년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소위 말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어느 쪽이 더 가깝냐 물으면 던전보다는 게이트 내부 쪽이 더 엇비슷한 풍경이겠지.
지금 우리들이 발을 들인 장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평양이라고 불렸던 도시는, 더 이상 냉면 면발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인지 뭔지 하는 물건이 잘못되서 방치되었다는 도시가 이러할까 싶은 풍경이었으니까.
물론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대가리에 발굽 달린 기형 사슴 대신 몬스터들이 돌아다닌다는 점.
사진 속 도시의 풍경과 달리, 고층 건물이 옆으로 기울어 무너진 모습이 더러 보이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겠지.
그냥 좆같이 변한 사슴들과 달리, 몬스터는 힘이 셌다.
만약 몬스터들 중 대가리 역할을 맡을 놈들이 있었다면 야가다 김씨처럼 부하들을 모아 도시를 평지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 참."
방독면 속으로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 다른 건 다 좋지만…….
'냄새가 강해.'
조금이라도 의식을 빼놓으면 나도 모르게 도시 외부로 달려들지 않을까 싶은 기척.
비록 분신이라지만, 티아마트의 기척조차 흐릿해질 만큼 농밀한 몬스터 특유의 악취가 느껴졌다.
스스로도 참으로 우습게 느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수가 없으면 구 북한 지역에 투신할 생각도 했었는데.
위생 문제라던가, 절차 문제라던가.
이래저래 신경쓰이는 점이 많아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던 최종 수단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인 일이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못 돌아왔어, 이거.'
나는 최승준과 달리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타입의 헌터가 아니다.
당연히 나 혼자서 이 구 북한 지역을 일소할 수는 없겠지.
허면?
만약 내가 몇 년 전 홀로 이 구 북한 지역에 발을 들였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구태여 상상할 필요조차 없었다.
절대 못 돌아왔다, 이거.
처음으로 발을 들인 순간 곧바로 이성이 날아갔을 테고, 그대로 사냥만 반복했겠지.
여기에 내 처리 속도보다 구 북한 지역의 몬스터 출현률이 더 높으니 사냥은 끝이 나질 않았을 테고.
족히 1년 이상은 쉬지도 않고 사냥을 위해 달려들었겠지.
그리고?
뭐, 별 거 없다.
3년 안에 지성이 날아갔을 테지.
나는 알고 있다.
내 감각이라는 놈은 도저히 만만한 놈이 아니니까.
이런 환경에서 몇 년은 사냥 한 번 못한 상황이라면, 사냥에 방해되는 요소 따위는 멋대로 쳐내버렸을 테지.
예를 들어, 더 이상 만날 리도 없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이라던가.
언어 능력도 겸사겸사 날아가면, 짜잔.
타잔 혹은 모글리가 완성되는 건 한 순간이다.
십중팔구 5년 안에 뒈졌을 테고.
내 사냥법은 이런 대규모 수렵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솔로 헌터 출신이고 나.
무기의 정비도 안 되고,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무차별 수렵.
하물며 도구를 보충할 시간도 없다?
내 실력과 별개로, 5년 버티면 잘 버틴 거다.
실수 한 번 하면 S랭크 헌터도 훅 가는 게 이 업계니까.
그리고.
'우리 꼬마들도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데.'
소소한 기쁨을 삼키며, 나는 멍하니 평양 주변을 훑어보고 있는 꼬마들을 향해 헛기침했다.
그러자 곧 녀석들의 시선이 내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자, 집중!!"
*
저 앞에서 방독면을 쓰고 쩌렁쩌렁 목소리를 울리고 있는 오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하연은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방독면을 쓴 채 밖에서도 잘 들리도록 소리를 치는 저 재주는 언제 봐도 신기하긴 했다.
아니, 배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때문에.
자하연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있는 건 다른 이유 탓이 아니었다.
"야, 야. 하연이 한숨 쉰다."
"뭐, 버스에서 그런 모습도 있었고……."
주변에서 다른 애들이 쑥덕거리는 말 그대로였다.
이번 여행길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박우찬은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지만, 당시 박우찬이 앉아있던 건 버스 제일 앞자리 교사석.
다시 말해, 주변에 다른 학생들의 귀도 있었다는 뜻이다.
즉, 박우찬이 신서아에게 했던 말은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바로 그 때문에 그녀, 나아가서는 이예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같은 반 학생들은 대부분 이예은과 자하연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박우찬에게 배려받는 느낌이 좋아서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물론 자하연이나 이예은이 앞장서서 그런 말을 퍼트린 건 아니었다.
적어도 박우찬에게 폐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자하연의 본심이었으니까.
다만.
둘의 본심이 어쨌든, 한 명이 교실 한 가운데에서 담임에게 키스하고 다른 한 명이 그 뒤통수를 갈겨서 기절시킨다면.
소문의 동향과 별개로, 최소한의 눈치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 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당사자인 이예은부터 자신 쪽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니.
적어도 박우찬이 덤터기를 쓰는 일이야 없었지만, 덕분에 둘의 마음은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애시당초 그 날 입을 맞춘 건 박우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예은 쪽이었으니.
그나마 박우찬과 이예은의 수상쩍은 관계 운운하는 소문이 퍼지게 된 건 크게 두 가지.
첫째로는 둘의 신분 때문이요, 둘째로는 그런 일에 연관이 없을 듯한 이예은의 분위기 때문이었으니.
즉, 제대로 된 근거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박우찬의 악평을 벗기기 위해 직접 해명했으니.
둘의 속내가 밝혀지는 건 바야흐로 순식간이었다.
물론 정작 당사자인 박우찬은 그 최소한의 눈치도 없는 사람인 만큼 교실 내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으나…….
이번엔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뭐지?'
자하연으로서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을 때, 박우찬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내년까지 마음을 정리하고 알려주겠다고.
아니, 일단 그 때 그녀는 기절한 상태였지만 아무튼 그렇다.
실제로 그녀 또한 알겠다고 대답, 이 아니고 잠꼬대를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그런 분위기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자하연은 저번 사건 시점에서 박우찬의 마음을 얻은 건 십중팔구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직접 그런 말까지 들었고?
오히려 다른 대답을 생각하는 게 이상한 쪽 아닐까?
자하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마음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이런 식으로 꼬리를 칠 줄이야.
신서아, 무서운 여자였다.
'역시 경계해야 할 건 그 여자인가…….'
자신도 모르게 잘근잘근 손톱을 씹는다.
내년까지 마음을 정리하겠다는 박우찬의 말이, 이제는 완연히 다른 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때, 자하연은 생각했다.
앞으로 1년 내에 다른 관계를 전부 정리하고 그녀에게 대답을 주겠다는 박우찬의 뜻이리라고.
그러나.
허면, 이번 일은 어떻게 된 걸까?
어쩌면 앞으로 1년 사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전부 정리하고 신서아와 허니문을 떠나겠다는 뜻이었던 걸까?
'가능성이, 있어……!!'
박우찬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때문에.
저 앞에서 박우찬이 설명하는 말을 흘려 들으며, 자하연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년.
즉, 설령 박우찬이 정말로 마음을 정했다 한들 앞으로 그 마음을 돌릴 기간이 1년은 더 남은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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