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12화 (312/371)

〈 312화 〉 제일 좋은 장비로 부탁해

* * *

북한 지역.

대침공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한반도 북부 지역을 뜻한다.

뭐, 듣기로는 대침공 당시 북한이 내부에서부터 화려하게 붕괴.

이후 여차저차한 사정 끝에 대한민국 정부가 관리하게 되었다던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아니, 내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엔 반영되지 않은 이야기고.

무언가 정치적인 흐름이 있었겠지 어림짐작할 수밖에.

어느 쪽이든, 덕분에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 경제가 헌터들에게 의존하던 과거 최고의 사냥터 취급받기도 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비록 독재 국가였다고 한들, 한 나라가 붕괴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북한 일대의 사냥터를 경제 회복의 기틀로 잡은 건 좋았지만,정작 대한민국 정부에는 이 지역을 수복할 능력이 부족했다.

북한 지역을 수복하면 헌터들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대한민국 경제 자체가 폭삭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법한 대안이 있느냐.

그런 식으로 논쟁이 격해졌던 게 무색할 정도로.

당연한 일이다.

게이트라는 건 본디 그런 물건이니까.

한 번 열리고 나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하는 침략의 첨병.

허나,처음 북한이 붕괴했을 당시엔 중국과 서로 눈치를 보느라.

이후 대한민국 측이 구 북한 지역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때는 다른 지역을 수복하기도 바빠서.

여기에 경제적인 사정까지 곁들여진 탓에, 북한 지역의 수복은 한없이 뒤로 밀리고 말았다.

하물며 여기에 더해 정부가 북한 지역 공략을 결심한 직후 발생한 제 2차 대침공까지.

덕분에 현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 정부로서도 손을 댈 수 없는 비경, 몬스터들의 영토가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한반도 절반이 몬스터들의 손아귀 안에 떨어진 셈이다.

태백산맥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던전이라 일컬어지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북한 일대는 더 이상 게이트나 던전이라는 이름으로도 형언하기 힘들 정도니까.

저 머나먼 이북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몬스터들의 사회에 발을 들인 먹잇감에 불과할 뿐.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이후.

정부의 지휘 하에 구성된 새로운 삼팔선은 월남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충분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단지.

이 쪽에서 치고 들어가기엔 아직까지도 제 2차 대침공의 여파를 추스르지 못한 게 사실이니.

이야기만 들어도 위험할 법한 이북에 주기적으로 협회 소속 헌터들이 파견되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여하간, 현실적인 사정으로 공략이 어렵다는 말과 별개로 정부 또한 북한 지역이 탐탁찮은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바로 위에 언젠가 S랭크 게이트가 열리는 대참사 또한 달갑지 않을 테고.

말하자면 한반도 단위의 솎아내기인 셈이다.

지금 우리들이 북방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번 장인 거리 방문 이후,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사이 변한 건 무엇 하나 없었다.

어느 정도 견적만 나온 내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상황이 맞물린 결과 스스로의 장비를 발주할 수 있었던 학생들 또한 여전히 빈손이었으니까.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적당한 기성품도 아니고, 본인들의 맞춤 장비잖은가.

단골 손님이 아니라면 그야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어쩌면 그 때문일까?

장비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도 한층 식어가는 게 노골적으로 보이는 상황.

마침 아카데미는 새로운 행사에 착수했다.

즉, 수학여행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퍽 낯선 단어였지만.

아니, 소풍이랑 뭐가 다른 건데?

다른 교사들의 반응 또한 대동소이했다.

도대체 뭐가 좋아서 수학여행 동안 이북에 쳐박혀 있어야 하냐고 했던가.

정작 학생들 쪽에서는 썩 괜찮은 반응이 돌아왔지만.

뭐, 그야 그렇겠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이번 2학년들은 1학기 내내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스케줄을 보냈다.

학기 초부터 때 아닌 대인전 토너먼트 따위에 참가하지를 않나, 기말고사로 게이트 실습 보충을 하질 않나.

어쩌면 그 반동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2학기 커리큘럼은 유달리 심심한 수준이었다.

여하간, 화려한 계획같은 건 쉽사리 시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전 준비. 협상. 혹은 일정까지.

온갖 밑준비를 거듭해야 하는 법이다.

당연히 이토록 단기간에 연신 화려한 이벤트를 준비할 수도 없고.

결국 이번 학기 시험은 여태까지 배웠던 걸 총정리한다는 명분으로 필기 따위가 될 예정이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그럭저럭 즐거운 이벤트가 있었으니.

무엇을 숨기랴, 바로 이 수학여행이었다.

물론 소풍으로 이북 탐사는 어떨까 싶기도 한데…….

어쩔 수 없겠지.

결국 헌터 아카데미는 일종의 군사 훈련소다.

학생다운 시간을 보내는 건 상관 없지만, 커리큘럼에서 그런 시간을 보장하는 건 어렵다는 거겠지.

덕분에 이런 형태가 됐지만.

"2박 3일인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지?"

"뭐, 그렇네."

부드럽게 굴러가는 버스 안.

팜플렛을 살피던 나를 향해, 옆자리에 앉은 서아가 그리 말했다.

이번 수학여행을 위해 최승준이 대절한 버스.

그 안에 타고 우리 반과 함께 움직이기로 되어있는 건 서아 쪽이었다.

정일현 선생님은 필연이가 우리 반에 있으니 다른 반 사이에 신세를 지고 있고.

티아마트?

아니, 걔는 냄새나니까…….

다행히 최승준 쪽에서 미리 재주 좋게 다른 반 쪽으로 빼두었다.

물론 이후 일정을 보면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쪽에 합류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 사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는 셈이다.

"어째 불만이 많아 보인다, 사부."

"뭐,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일전에 장인 거리를 들렸던 이유 또한 바로 이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엔 본인들의 장비를 발주할 여유도 본격적인 관심도 없을 학생들.

하지만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로 이북 지역에서 놀고만 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당연히 몬스터들과 뒹굴어야 하는 일정 또한 준비되어 있는 바.

십중팔구 이번 수학여행이 끝나면 점잔 빼던 녀석들도 장비의 필요성을 격하게 체험할 테지.

일전처럼 단순한 흥미 본위로 나섰던 때에 비하면, 본격적으로 장비 갖추기를 시작할 거다.

여하간, 이 근처에 숙박 시설이 있을 리도 없고.

저번 학기 기말고사로 게이트 관련 탐사 정도야 해봤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험.

전교생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각 조당 시험 시간은 길어도 3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북쪽으로 향하는 첫날. 다시 귀환해야 하는 마지막 날.

이 사이에 낀 두 번째 날 대부분 시간을 이 곳에서 살아남는 데에 써야 할 테니까.

단순히 싸움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게이트 탐사 때도 그 정도는 실감했겠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심하겠지.

적어도 그 때는 몬스터 토벌을 목표로 삼는다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이번엔 전반적인 기술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여러모로 고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니.

낯선 상황.

최선의 상황에서 사냥을 시도할 수 있는 건 길어도 두 시간이나 되면 다행일 실전 속.

학생들은 평소라면 쉽사리 쓰러뜨릴 수 있는 몬스터를 상대로도 무기를 놓치거나 실수를 연발하게 될 테지.

어떤 의미로는 나름 훌륭한 실전 연습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나 또한 훈련 일정 자체엔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단지.

'씁.'

아무래도 불길한데.

그런 감상을 치울 수 없었다.

이번엔 최승준이 없다.

아니, 교장이 수학여행까지 따라오지는 않지.

게다가 아카데미를 비운 사이 놈들이 난리를 피우면 곤란하고.

이준구도 없다.

뭐, 국회의원이고.

애초에 학부모 동반도 아닌데 따라오면 오히려 내가 곤란할 따름이다.

즉.

신세계 질서 측에서 행동에 나서기엔 이번만큼 적절한 기회도 없었다.

나로서는 사실상 주변 전역을 경계해야 하는 셈이다.

아니, 애초에 솔로 헌터였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 참, 이래서 학사 일정은 은폐하는 게 좋다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투덜거림이 나오고 말았다.

물론 공허한 소리였다.

정말로 은폐했다간 무슨 비리 운운하는 소리까지 들으려고.

다만, 나로서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야 알겠지만, 비리 의혹 사기 싫어서 테러 의혹을 방치하는 꼴이니.

신세계 질서가 가진 제일 큰 무기는 놈들의 목표가 지나칠 정도로 어마무지하다는 게 아닐까.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사부, 되도 않는 거짓말은 그만둬."

"야, 되도 않는 거짓말이라니. 너무하네. 사부의 이 순수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거냐?"

"아니, 어차피 실제로는 몬스터 잡으러 못 가서 그러는 거잖아."

"젠장."

들켰나?

서아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정답에 가깝다.

정말로 신세계 질서가 올 거라면, 나로서는 전력을 비축하고 있어야 하니까.

당연히 주변 소탕에 나설 수도 없다.

주변에 몬스터가 널린 이북 지역에서도 말이지.

내게는 오히려 이 쪽이 고문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 처음 학사 일정을 봤을 땐 오랜만에 소탕이라고 좋아했었는데.

젠장, 이게 말이 돼?

"거기에, 너무 툴툴거리지 마. 마음 아프잖아."

"엉?"

"나는 사부랑 여행 떠나는 거 좋거든."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던 서아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애써 내 시선을 피하는 황금빛 눈동자가 보였다.

물론 그렇게 쓸모 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게 눈에 밟힐 정도였으니까.

이럴 거면 뭐하러 저런 말을 한 거야.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하긴, 여행인데 구질구질 떠드는 일도 멋없는 짓이지."

"그, 그렇지?"

"옹야. 거기에, 오랜만에 너랑 같이 가는 여행이기도 하니까."

쿵!

문득 바로 옆자리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시선을 돌리니,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어오른 서아가 천장에 머리를 박은 탓이었다.

아니, 뭐 하는 거야 얘는.

"그, 그런가?! 하긴, 오랜만이지?!"

"뭐, 거의 1년 가깝지."

작년 겨울, 던전 탐사는 여행이라 말하기엔 조금 그렇고.

비록 신세계 질서 탓에 이래저래 꼬이기는 했지만, 작년 여름이 가깝나.

그런 식으로 셈을 하고 있자니, 서아는 곧 제 풀에 겨운 듯 얼굴에 손부채를 파닥파닥 부치며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뭐, 뭐! 그렇지, 응. 그렇게 생각하면, 사부도 제자랑 떠나는 여행은 오랜만이구나!"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으, 으응! 알고 있어, 알고 있었어!"

"사부 말도 끝까지 들어라. 딱히 제자라서 하는 말 아니야."

"……응?"

"너랑 여행 오는 거라 즐겁다고."

사람이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있거나, 얼굴에 피가 몰리는 소리가 있다면 이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잔뜩 당황한 걸 빨개진 얼굴과 전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서아.

아니, 얘는 이렇게 당황할 거면 그 날엔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렇게 말한 거람.

행동도 그렇고.

문득 서아가 내 거절을 다시 한 번 거절했을 때가 떠올랐다.

"사, 사부? 그거 무슨 뜻?"

"네가 상상하는 그 뜻 맞으니까 조금 조용히 있어."

"테, 테에엥."

결국 서아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기성을 내지르며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로서는 조용히 시간을 떼울 수 있었으니, 서로에게 다행이라 할 법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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