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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11화 (311/371)

〈 311화 〉 제일 좋은 장비로 부탁해

* * *

"진심이냐?"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형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절로 분위기가 가라앉는 듯한 음색이었다.

뭐, 그렇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런 요구는 처음이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 무기는 결국 연장으로서의 만듦새에 치중된 물건이니까.

칼에서 불이 나오지도 않는다.

능력을 보조할 만한 주각 따위를 새기지도 않았고.

하물며, 나로서는 불가능한 묘기 따위를 부릴 수도 없다.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무기 특유의 역할과 성능에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지금도 내 창고 안에는 언제든지 내 애병을 수리할 수 있을 만한 소재가 준비되어 있다.

막말로, 단순한 완성도랑 별개로 수리하는 데에 딱히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진 않고.

그야 S랭크 몬스터를 상대로도 통용될 정도니까 상당한 수준의 야금술이 요구되기는 하겠지.

다만, 딱 거기까지.

특수한 마력 회로를 새기거나 이을 필요도 없다.

무협지 속 일자전승되는 기예처럼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온갖 특수 능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고랭크 헌터들의 무기 치곤 평범한 수준이리라.

당연한 이야기였다.

마냥 도구의 성능에 의존하다 정작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작게는 스스로의 안위가, 크게는 가까운 거리의 안위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로 인한 빈틈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사이 얼마나 되는 피해가 발생하겠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영 내키지 않을 수밖에.

허면, 다름 아닌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데엔 얼마나 되는 각오가 필요한 일일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별다른 각오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각오 운운하기 이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무기의 성능에 의존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

막말로, 돈을 들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구태여 고집할 필요도 없다.

좋은 무기를 쓸 수 없는 이유나 신념 따위가 있는 건 아니고.

애시당초 지금 무기만 가지고도S랭크 몬스터 내지 마신들은 상대할 수 있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고.

예를 들어,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등장한 용과 같은 경우.

마왕의 가호를 받은 S랭크 몬스터가 상대라면?

'본격적으로 준비를 할 필요가 있겠지.'

나로서도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으니.

무엇보다, 저번 작전의 성과가 좋았던 점도 있다.

신세계 질서 측에 붙은 마신들 두 마리를 그 자리에서 회쳐버린 지금.

이전처럼 느긋한 태도로 바닥이나 다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 형님을 만난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고.

"네가 거기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대냐?"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솔직히 말하자면, 확신은 없다.

현재까지 우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앞으로 신세계 질서가 움직일 수 있는 건 많아야 한두 번.

즉, 신세계 질서도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상황.

어쩌면 무기의 성능 덕에 종이 한 장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일 또한 없지는 않으리라.

허나, 지금 내가 경계하고 있는 건 작금의 신세계 질서가 아니었다.

저번에 부딪힌 결과, 어느 정도 확신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 전력으로도 마신 두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다.

세 마리가 되면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그조차 저번처럼 따로 티아마트를 챙겨줄 필요가 없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남은 상대는 평범한 마신이 아니다.

자경단 활동 당시,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 기습당했는데도 별다른 내색 하나 하지 않았던 그림자.

신세계 질서 측에서 이반한 교주의 말에 따르면, 다른 마신을 일방적으로 숙청해버렸다는 괴인.

놈을 포함한 셋이라면, 적어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으리라.

무엇보다.

'거기서 끝이 아니야.'

만약 남은 마신들이 모조리 떨어져나갔을 경우.

신세계 질서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순순히 철퇴?

뭐,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우리들의 승리다.

그러나.

몬스터라면 몰라도, 신세계 질서 쪽에 붙은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은 순순히 물러서려 하지 않겠지.

놈들에게는 더 이상 뒤가 없는 상황이니까.

만약 몬스터 측이 먼저 발을 빼고 맨몸으로 허허벌판에 서야 할 상황이 닥친다면?

당연히 발악하려 들겠지.

우리가 역으로 놈들의 범행을 공개하기라도 하는 날엔 온갖 사업이 그대로 직격탄을 맞게 될 테니까.

즉, 어느 정도 지출을 감수하면서도몬스터들을 붙잡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몬스터들 또한 바보는 아니다.

다른 의식장을 알아봐야 할 상황에서 남은 인간 협력자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곧바로 돌을 던지는 대신 최소한 몇 수 정도는 더 궁리하려 들겠지.

그리고 그 과정 도중 자칭 마왕의 심복이라는 작자들이 몇 마리 더 모습을 드러낼 경우.

혹은…….

'제 3차 대침공이 발발할 경우.'

나로서는 그 가능성 또한 제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S랭크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도 부족함 없을 이 무기 또한, 놈을 상대로는 빛이 바래는 게 사실.

마왕.

산중 휴거.

규격 외 등급 몬스터.

제 3차 대침공의 원인.

조로아스터 교의 악신.

그 날, 초대형 게이트 너머에서 도사리고 있던 기척은 그만한 압박감을 두르고 있었다.

내가 때 아닌 검술 연습이나 마법 개량에 매달린 이유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으니까.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검술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평소운 박사의 술식을 토대로 개량한 마법도 점차 활용법을 습득하고 있다.

허면, 기초를 다졌으니 지금부터는 장비를 새롭게 일신할 때였다.

물론 이렇게 연마를 거듭한다 한들 그 날 느꼈던 위압감에 대적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손을 놓고 있는 쪽보다야 낫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유비무환.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다.

"허."

지금 나로서도 힘들지 모르는 상대가 있다.

그런 내 말에 형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나도 알아, 새끼야. ……그래서? 예산은 어디까지 알아보고 왔는데?"

"창고 바닥까지."

"와우."

다시 한 번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만큼 창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헌터도 드물다.

다른 녀석들의 창고는 말 그대로 비품 저장소에 불과하다지만, 내게는 사냥의 열쇠나 다름없는 물건이었으니까.

당연히 내 창고에는 온갖 사냥용 도구들이 한계까지 저장되어 있다.

심지어 지금 내 무기가 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해도 다시 한 번 제작할 수 있을 만한 자원까지 비축되어 있을 정도니.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나랑 다른 의미에서 창고를 활용하고 있는 제자, 서아는 거의 편집증적이라 평하기도 했다.

자기는 이렇게까진 죽어도 못 하겠다던가.

퍽 겸손한 녀석이었다.

즉, 내가 창고 바닥까지 드러내도 상관 없다 이야기한 건 예산 한계 따위고려할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형님도 이런 상황에서 내게 돈을 뜯으려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형님이야 어쨌든 다른 사람들까지 그러기는 힘들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형님 쪽 가게에 없는 물건은 따로 구해야 할 테니까.

"따로 요구 조건은 있고?"

"무기 형태는 변하지 않게. 화려한 기술보다는 보조 기능 쪽이 더 좋겠는데."

"요칸대, 추가 기능이랑 별개로 무게중심 따위는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 아니냐?"

"맞아. 쉽지?"

"지랄. 그런 주문이 제일 어려워."

투덜거리는 형님.

뭐, 나로서는 대장간 일은 모르니까.

다만, 이제 와서 새 무기를 다루는 건 어렵다.

그러니 형님에게 짐을 지울 수밖에.

"아, 가능하면 용이나 악마 따위를 죽이는 데에 도움 되는 기능도 부탁하고 싶은데."

"용이나 악마? 어디? 서양?"

"중동."

"이슬람?"

"페르시아."

"지랄 났네. 어디서 성스러운 불꽃이라도 구해야겠구만, 이거."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던 형님은 곧 생각에 잠겼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버거운 요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단지.

이런 식으로 선택지를 좁힐 경우, 형님의 판단 능력은 빠르다.

게다가 지금 내 무기를 만든 건 바로 이 형님이니까.

세세한 구상 따위는 내가 별첨할 필요도 없으리라.

"오케이, 대충 견적 나왔다."

실제로도 그랬다.

순식간에 사고를 끝낸 듯, 이윽고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돌아가면 화로 좀 달구고, 밑준비 끝나고 나서 연락하면 되지?"

"오, 감사."

"전혀 감사하지 않은 어조지만, 일단 받아두마. 그래서? 갑옷 쪽은?"

"그 쪽은 정말로 별 생각 없는데. 어, 이 쪽은 조금 화려한 기능이 달리면 좋겠다는 정도?"

"만에 하나 빈틈을 보였을 때 대처할 수 있을 만한 능력. 좋아, 이해했다."

참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방어구 쪽 문제까지 점검한 뒤, 형님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S랭크 수준의 소재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하는 대사업이다.

게다가 그 목표치는 S랭크 내에서도 최고급.

말만 하지 않았을 뿐, S랭크 이상이라 일컬어지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장비다.

하루아침에 준비가 끝날 리도 없겠지.

재료 견적도 내야 할 테고, 형님 쪽 창고에 없는 물건이 있다면 거래도 잡아야 한다.

이만한 소재들을 동네 뚜쟁이처럼 현찰 박치기로 구매할 수는 없으니.

하물며, 대규모 화로 예약까지 고려하면 족히 반 년은 걸리지 않을까.

'반 년이라.'

내심 추산한 끝에, 나는 무심코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반 년, 반 년이라.

물론 내가 부탁한 작업량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맥 좋다는 게 어디냐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앞으로 반 년은 지금 장비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번 작전으로 신세계 질서 측 마신 두 마리를 해치우고, 놈들의 반격을 본격적으로 예상해야 하는 지금.

이건 내게도 그렇게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여하간, 나를 비롯한 교사들이 다음으로 학생들을 데려가야 할 장소는 바로 저 북쪽 너머.

대한민국 내에서도 가장 넓게 분포한 몬스터 군락지.

요컨대, 구 북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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