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10화 (310/371)

〈 310화 〉 그런 장비로 괜찮은가?

* * *

"너 진짜 미친 새끼냐?"

"아니, 또 왜."

그렇게.

대충 한 바퀴를 돌아보았을 때, 돌연 형님은 나를 향해 툭 하고 그리 내뱉었다.

어조는 마치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 얼굴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믿을 수 없는 걸 보았다는 듯 경악에 젖은 그 표정.

너무 격한 반응이라 나로서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이 형님 뭐하는 거야?

"온통 계집애들 뿐이잖아……."

"그야 여학생들만 봤으니까 그렇지."

거기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정말로 여학생들만 본 건 아니다.

정필연도 있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무구를 마력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무장 구현 능력자.

그들에게 있어, 따로 맞춰야 할 장비라는 건 곧 능력으로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닌 갑옷을 뜻했다.

아니, 반대로 갑옷을 만드는 무장 구현 능력 보유자라면 무기를 맞추겠지만.

어쨌든, 녀석이 갑옷을 맞출 생각이라는 모양이라 여러모로 조언해준 게 방금 전 이야기.

본디 적절한 몬스터 소재를 찾고 있던 녀석은 곧 내 말을 듣고 금속성 갑옷을 갖추기로 결정했다.

퍽 보람찬 일이었다.

뭐, 전적으로 내 취향에 맞춰서 한 이야기도 아니고.

담임 된 몸으로서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정필연은 십중팔구 추후 차세대 헌터 필두가 될 만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라면 사석에선 다소 눈에 띄는 가죽 장비보단 조금 수고가 들더라도 금속 실을 사용한 의류가 낫겠지.

아무리 그래도 녀석의 전법을 고려하면 지나칠 정도로 거추장스러운 중장갑은 방해밖에 안 될테고.

전법과 성능, 양 쪽을 양립하려면 나랑 비슷한 장비가 최선이라는 판단이 선 탓이다.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형님도 알고 있는 지희.

이전에 발주한 권갑이나 각반은 물론이요, 형님이 만든 가죽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 전신 슈트.

가죽 타이즈라는 이름이 어울릴 외설스러운 복장을 시착한 지희와 마주치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형님이지만, 지희와 마주친 건 전적으로 형님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저번에 지희 이름으로 발주를 넣었던 물건이 마침 완성되었다며 가져온 게 형님이었으니까.

뭐, 나름 이유가 없지는 않겠지만.

짐짓 시치미를 떼고는 있지만, 형님은 나름 장인 정신 비슷한 기준이 있는 사람이다.

양산품이나 공산품, 혹은 자신의 실력에 비해 뒤떨어지는 장비를 만드는 건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가 휘둘릴 만한 장비는 절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설령 발주에 따라 만들더라도 완성을 치일피일 미루며 태업할 정도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형님이 지희에게 장비를 제공한 건 지희의 실력이 나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기 때문이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형님이 지희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지희의 실력은 얼추 A­랭크 가량.

여기에 여왕의 마력을 온전히 흡수한 지금은 거의 A랭크.

그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되면 A+랭크 수준이 되겠지.

어떤 의미로는 가장 안정적인 성장세를 밟고 있는 친구다.

형님이 지희의 성장세를 어느 수준으로 잡았을진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높지는 않을 테고.

충분한 합격선일 수밖에.

덕분에 나는 영 남사스러운 모습에 시선을 돌리며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형님 쪽이 오히려 낄낄대며 나를 놀리는 축이었다.

아니, 당장 다음 사례까지만 해도 그랬지.

마찬가지로,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된 예은이.

내게 받은 투척용 단검 따위 덕에 무기를 볼 필요는 없었지만, 예은이는 우리들 중에선 제일 방어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여하간, 전법이 전법이니까.

순도 높은 금속은 마력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관념이 존재하는 이 업계다.

전신에 염력을 유동시키는 예은이의 전법이라면 평범한 금속과는 다른 소재가 필요한 법이다.

예를 들면 세라믹이라던가.

예은이의 전법을 고려하면, 거기에 마력 운용을 돕는 주각 따위를 새길 수도 있겠지.

그런 소재를 추천하며 낄낄대던 형님은, 적어도 내 옆구리를 찌르며 놀릴 만한 여유는 있었다.

이번에도 여제자냐? 쟤도 귀엽게 생겼네. 재주 좋은 새끼…….

허나, 그런 형님도 점차 말을 잊기 시작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예를 들어, 전갈의 소재 따위를 사용해 방어구를 보강하려 돌아다니고 있던 윤하.

혹은, 저번 대인 훈련 당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격투에도 사용할 수 있는 스태프를 찾고 있던 하연이.

나아가서는 겸사겸사 자신의 무기도 손을 보러 장인을 추천받고자 찾아온 서아까지.

더 이상 길드의 조력을 받을 수 없는 서아의 사연을 설명한 끝에 연락을 주고받은 형님은, 곧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동생이 장사 챙겨주니까 고마워서?"

"너 진짜 미친 새끼냐?"

뭐, 그렇게 되었다.

아니, 나도 바보는 아니고.

형님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고 있었다.

여하간, 저번에 하연이랑 그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때문에.

"아니, 우연히 여학생들을 만났을 뿐이라고."

"까고 있네. 내 눈이 옹이구멍인 줄 아냐?"

적당히 잡아떼려 했던 말이 순식간에 차단당했다.

역시 힘든가.

형님은 현역 헌터같은 건 아니다.

당연히 초인들의 무력을 감지할 만한 능력도 무엇도 없다.

단지, 장사에서 나오는 짬이라는 게 있다.

심심하면 도시를 무너뜨리고 그 이상의 괴물들을 상대로 잇속을 챙겨야 하는 게 바로 형님의 직업이다.

배짱이라던가, 말재주라던가.

그런 거 이전에,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 호객 행위 정도는 벌여야 하는 법.

덕분에 형님은 마력이나 걸음걸이 이전에 단순한 분위기로 타인의 실력을 간파하는 데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우리 꼬맹이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기 마련.

형님으로서는 아무래도 녀석들이 내 직계 제자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의심이고 뭐고 사실이지만.

게다가, 저번에 했던 말도 있다.

꽤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형님이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야 납득했겠지.

어째서 위험하다는 건지, 어떻게 이 단기간에 저토록 어마어마한 실력을 기른 건지.

덕분에 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어쩌다가 전원 여제자를 들인 거냐느니, 너 제정신인 거냐느니.

무슨 수다 떠는 아주머니 같아서 귀찮다.

이 양반, 이런 성격이었던가?

"애초에, 그런 관계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그 아가씨들, 기회만 오면 널 잡아먹을 기세던데."

"……아직은 아냐."

"아직은 이 지랄. 아니, 그런데 이러면 나만 미안하게 됐잖아."

"엉?"

"나야 예전에 만났던 그 아가씨 쪽을 밀어줄 생각이었지. 이게 하필이면 그렇게 됐네."

"이런 씨발, 어쩐지 지희가 갑자기 나서더라니!! 형님이 지랄했수?!"

"아, 염병!! 네가 아랫도리 간수만 잘 하고 다녔어도 내가 큐피드 소리나 들었어!!"

한동안 아저씨들 사이에 보기 추한 소래기가 오간 이후.

몇 번이나 호흡을 씨근거리던 우리는 결국 어깨를 털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이냐."

귀찮다는 듯 다시 한 번 머리를 터는 형님.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내 눈도 옹이구멍은 아니야."

뭐, 그렇지.

애초에 내가 형님에게 제자들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소개해줄 필요는 없다.

것보다, 애시당초 형님이라면 알고 있겠지.

예전에 지희 문제로 방문했을 적 몇몇 더 신세를 질 제자들이 있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형님이라 해도 지금 이렇게 몇 번 얼굴을 맞댄 수준만 가지고 제자들에게 필요한 장비를 마련할 수는 없다.

요컨대, 지금 만남과는 별개로 나 또한 따로 제자들을 데리고 형님을 방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허면, 내 뜻은 어디에 있을까.

형님은 그게 궁금한 거겠지.

"게다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네가 정말로 나한테 손님 소개나 해 주려고 시간을 낭비할 만한 녀석도 아닐 테지."

"너무하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하자면 이번 소개는 말 그대로 전채, 에피타이저다.

언젠가 형님을 방문할 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으니까.

허면,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거기에 대해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형님."

"옹야."

"내 무기는 기억하고 있지?"

"그 으리으리한 새끼를 어떻게 잊어버리냐."

"튠 업, 가능한가?"

"……뭐?"

그 말에 형님은 다소 얼떨떨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물론 나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 무기는 상당히 우수한 물건이다.

따로 해체 공구를 챙길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진 형태.

몬스터를 상대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완성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구조에도 불구하고, 거의 철괴나 다름없는 그 형태 덕에 내구성 또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무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다름 아닌 거기에 있었다.

이 무기는, 내 요구 사항에 맞추어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 무기는 어디까지나 소모품일 뿐.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이만한 무기를 몇 개나 쟁여두고 쓸 리는 없겠지.

애초에 그 경우 구태여 다른 해체용 공구를 가지고 다니고 싶지 않다는 내 뜻과 반대된다.

다만.

수리나 개량이라면 어떨까?

……그래.

이 무기는 틀림없이 절묘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으리으리한 무기들도 이러할까 싶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겠지.

대단한 특수 효과는 없지만, 애초부터 견실한 게 특징인 무기니까.

뛰어난 위력. 훌륭한 내구도.

그리고 이만한 스펙을 양립하기 위해선, 당연히 기본적으로 전제되는 점이 있다.

막말로, 최고의 위력과 최고의 내구성을 무조건 양립할 수 있다면 누구나 비슷비슷한 무기를 사용할 테니까.

즉.

이 무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성능에 타협한 면이 있었다.

아니, 의도적으로 다운그레이드했다고 해야 할까.

만에 하나 무기가 부러지거나 파손될 경우.

혹은, 무기를 상실했을 경우.

언제든 대체할 수 있도록.

오더 메이드이되, 장인이 만든 유일무이한 무기는 아니다.

실제로 지금도 파손될 경우 수리하기 위한 재료나 기술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형님에게 요구하는 건 바로 그런 부분에 있었다.

만약 분실하거나 파손된다면 두 번 다시는 수복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한 성능.

두 번 다시 보충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최고급 재료들을 아낌없이 사용한 마스터피스.

살면서 박우찬이라는 사냥꾼이 단 한 번도 요구한 적 없는 주문에, 형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곧 나지막이 탄식을 내쉬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