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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09화 (309/371)

〈 309화 〉 그런 장비로 괜찮은가?

* * *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아카데미의 일정은 평상시처럼 흘러갈 뿐이었다.

헌터 아카데미, 2학년 2학기 중반.

아카데미는 현재 때 아닌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카데미 커리큘럼 측에서 요구하는 졸업 요건은 대략 B랭크 가량.

실제로, 교사들이 고안한 스케줄 또한 그 기준에 맞추어 작성되어 있다.

다만, 이 B랭크라는 기준은 이제 막 능력을 각성한 헌터가 입학했을 때 이야기.

처음으로 아카데미가 문을 열고, 학생들 또한 사전에 과외 비슷한 경위로 이래저래 선행 학습을 거듭한 지금.

학생들의 실력은 아카데미가 설정한 목표치에 거의 근접하거나 이미 달성한 상태였다.

뭐, 당연한 이야기.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이 경험 하나 없는 헌터 혹은 E랭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면?

최소한의 교육.

혹은, 어쩌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온 몬스터와 적대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대상이라면 어떨까.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기회만 있다면, 다소 높은 성과를 미리 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마찬가지였다.

얼추 D랭크 끝자락 되는 실력이나 경험을 가지고 입학한 학생들의 기초를 다진다면?

한 학년 당 1랭크, 목표치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일 시 지금 즈음이면 목표로 한 달성치를 달성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한한 이야기다.

사전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다고 반드시 그만한 성장이 동반된다고는 할 수 없다.

하물며, 오히려 밑바닥부터 배우기에 유리한 경우도 있으리라.

어느 쪽이든, 효력이 검증되지 않은 커리큘럼에 무조건 효과를 바라는 건 어렵겠지.

다만.

이번 학생들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도저히 긍정적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아직 어설픈 교육 이론을 보충할 실전 경험을 강제로 취득했기 때문이다.

그래.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일부 학생들은 구울들과 직접 맞서 싸우기도 했다.

때문에, 최고 성적을 거둔 일부 학생들은 이미 B랭크 끝자락에 가까운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동아리 애들이야 지나치게 바빴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틀림없이 훌륭한 성과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니,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고등학교 분위기는 반에 한 명이라도 조기 졸업자 비슷한 게 있으면 흐리멍텅해지기 마련인 모양이다.

즉, 현재 2학년 분위기는 말 그대로 씹창이 나버렸다는 뜻이다.

'애미.'

그야 욕이 나올 수밖에.

뭐,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단지, 헌터 랭크라는 건 문자 그대로 자격증일 뿐.

취업 전선과 달리, 자격증이 있으니 확실히 유리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말하자면, B랭크 헌터 자격이라는 건 C랭크 이하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필승을 장담할 수 있다는 건 아닌 셈이다.

그러니 교사들로서는 탐탁치 않을 수밖에.

무엇보다, 그 학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학생들은?

정작 비슷한 수준까지 오르지도 못했으면서 마음이 느슨해진 모습을 보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꼽다.

다른 교사들이야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너희들 훈련시키려고 얼마나 열심히 계획표를 짜는데……!!

"야, 이게 맞는 거냐?"

"뭐 어때."

때문에.

분위기도 환기할 겸,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외출을 나왔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 들뜬 녀석들을 달랠 만한 기술이 내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떡하라고 나보고.

진짜 교대 나온 사람들이라도 붙여주던가.

덕분에 우리 쾌운철 형님께서는 영 불안한 듯 내 주변을 쏘다니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왜 그래? 징그럽게."

"아니, 이거 정경유착 뭐 그런 걸로 날아가는 거 아니야?"

"설마."

물론 내가 하필이면 애들을 여기로 데려온 건 형님과 내가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라.

현재 아카데미 커리큘럼 대다수는 맨땅에 들이받는 수준인 바.

인맥 운운하기 이전에, 애초에 인맥이 없으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나는 당당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다!

만약 중앙에서 나오더라도 그렇게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제로, 애들의 반응 또한 다르진 않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소재 광택 봐라."

"하긴, 내 손으로 모은 재료로 만드는 무기는 뭔가 느낌이 다르잖아."

"아, 그런 거 있지. 어렸을 때부터 쓴 무기라던가."

"솔직히 그냥 오더 메이드라는 어감이 멋있어."

학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장인 거리.

개중에서도, 쾌운철 형님의 공방 근처.

우리 반은 현재 거기에 와 있었다.

이런 애송이들이라 해도 헌터는 헌터.

자신들의 장비가 만들어지는 장소를 쏘다니는 건 아무래도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내가 의도한 바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헌터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장비를 마련하거나 보수할 필요가 있다.

만약 본인이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허나, 대다수 헌터들은 그런 기술에 매진하는 사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기술에 매달리는 법이다.

나 또한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그런 만큼, 당연히 이런 문제에선 전문가들을 찾아야 하는 바.

이번 일은 그런 이유 또한 있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졸업 직후 대형 길드에 속하는 대신 개인 헌터로서 뛰어야 할 테니까.

헌터 아카데미의 유효성이 증명되지 않은 판국이니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녀석들은 더러 있겠지만, 적어도 얼마간은 홀로서기를 배워야 하겠지.

당연히 대형 길드에 부속된 전용 장인들의 손을 빌리는 일 따위, 상상할 수조차 없는 법.

때문에.

녀석들 또한 이런 장인 거리에서 직접 장비를 맞추는 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에도 나쁘지 않고.'

물론 아카데미 측에선 기본적으로 장비를 제공한다.

최승준이 힘내서 구한 특수 소재 교복.

거기에, 2학년 이후부터는 지급용 무기까지.

몇 번이나 말했듯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용하기에 나쁜 품질은 아니다.

다만.

언제까지나 이 장비만 쓸 수도 없는 법이니.

지금 시점에서 다음 장비를 마련하는 방법 또한 어느 정도 견적은 내어두는 게 좋겠지.

여하간, 지금은 아카데미 생도 입장이고.

만약 계약에 실수가 있었더라도 경미한 피해로 끝나거나, 아카데미 측에서 나서줄 수 있다.

솔로 헌터로 생활하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입장에 서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어설프게나마 경험을 쌓아두는 게 좋겠다는 내 판단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카데미는 개인 장비 사용을 꺼리지 않는다.

이전처럼 서로의 순수한 무기술 솜씨를 보기 위해 운운하며 장비를 통일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편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건 사전에 장비를 구비하는 수완 또한 사냥꾼으로서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만약 집안에서 장비나 재료를 몰래 후원한다면 그 정도는 걸러내겠지만, 그거야 여기가 아카데미.

다시 말해 학생들 사이의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기관이기 때문이고.

재력이나 인맥 또한 자원의 일부.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사용하는 게 좋다.

적어도 인류는 수단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니까.

그게 내 지론이다.

당장 본인의 손에 맞는 무기의 성능을 살릴 수 있는 재능 따위가 있다면, 당연히 질 좋은 무기를 쓸 수록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테니.

때문에, 학생들 또한 사방을 쏘다니며 자신의 관심이 가는 장비와 가게를 들쑤시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전에 연락을 넣은 덕분일까.

장인 거리 측에서도 이번 방문엔 흔쾌히 응해주시기도 했고.

실제로, 평소 외부인이 장인 거리를 들락날락거리면 자신도 모르게 주의를 곤두세우는 가게들.

좋게 말하자면 눈치를 잘 살피고, 나쁘게 말하면 경계심이 지나치다 말할 장인들도 이번엔 표정을 느슨하게 잡고 있었다.

"아니, 흔쾌히 응해준 게 아니거든?"

"물론 형님한텐 언제나 감사할 뿐이죠."

"아가리는."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키지도 않는 중개인 노릇을 하게 된 형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선다는 건 진심이었다.

그렇지만…….

"무기가 반 이상. 방어구 쪽을 살피는 건 3할도 안 되는구만."

"감사합니다."

슬쩍 내 눈치를 살핀 형님은, 내가 궁금해하던 점을 한 눈에 답변해주었다.

나로서는 놀라울 뿐이다.

아니, 내가 교사인데도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데 말이지.

다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무기가 반 이상이라."

"뭐, 일단 무기가 있으면 멋있으니까."

"별로 좋은 경향은 아닌데요."

물론 학생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좋은 무기가 있다는 건 더욱 빨리, 더욱 많은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다는 뜻.

반대로 말하자면, 더욱 많은 벌이를 챙길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다른 장비를 맞추는 속도도 현격히 달라지고.

초동 스타트업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고 할 수 있겠지.

다만, 이 업계의 판돈은 자신의 목숨이라는 점이 문제다.

차라리 조금 덜떨어지는 무기를 쓰더라도 방어구 쪽을 챙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러기도 쉽지 않아."

"하긴, 재료 문제도 있구요."

뭐,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예를 들어, 무기를 만드는 데에 드는 재료와 갑옷을 만드는 데에 드는 재료.

어느 쪽이 더 소비가 현격하냐 묻는다면, 그야 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창. 검. 활.

혹은 권갑까지.

어느 쪽이든, 전신을 감싸야 하는 의복에 비하면 아무래도 재료 소비량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문제라면 괜찮지만, 어째 무기가 멋있으니 무기 쪽을 고르는 녀석들이 많은 게 근심이다.

"굳이 따지자면 네 쪽이 별종이지."

"뭐, 요즘 애들은 무기에 이름도 붙인다지만."

내 개인적인 감상을 붙이자면, 미친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무기 따위는 소모품인데 말이지.

물론 그런 감상까지 포함해 형님은 저리 말한 거겠지만.

따로 해체 공구를 가지고 다니기는 귀찮다.

무기를 소모품처럼 다루자면 수리나 예비 무기를 갖추는 데에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통짜로 무기를 만들자, 다루기 어렵다.

허면 근력을 기르자.

애시당초 보관의 편의성 따위, 비 인가 헌터였던 내게는 상관 없으니.

내 무기는 대충 저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으니까.

단지.

"소비품 가게에 들리는 녀석들은 적네요."

"딱히 공략할 게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잖아."

"요즘 회복용 포션도 성능이 좋던데."

나 참.

나도 모르게 애늙은이같은 소리가 나오고 만다.

뭐,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쓰러뜨린 몬스터 사체가 있다면 그야 소비품 따위보다는 장비 견적을 먼저 내겠지.

자신이 처음으로 잡은 몬스터라는 건 나름대로 감개가 있는 법이니까.

참고로 나는 전 부위 매각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단순히 가게들을 들리며 안목을 기를 뿐.

만약 자신이 개인적으로 갈무리한 재료가 있다면, 방과 후에 따로 해체소에 들러 재료를 가공하고 가게에 들리면 된다.

그런 식으로 학생들의 동선을 구성하며,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같이 가실 거요? 나는 몇 명 살펴볼 애들이 있어서."

"엉?"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우리 꼬마들은 수급한 소재도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상당히 다양한 편이니까.

남부, 여우굴을 털며 얻은 소재.

던전 체험을 통해 획득한 용린.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채취한 물건.

혹은, 게이트 실습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지나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고생한 만큼 벌었다고 하면 할 말도 없지만.

"그래, 가자. 마침 나도 관심 생기는 게 있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형님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놀란 기분으로 내심 감탄을 토하고 있자니, 형님은 곧 어깨를 좁혔다.

"저번에 봤던 몽마 계집애도 있고. 뭐, 네가 관심 둔 애들이 얼마나 잘 배웠는지 볼까."

숫제 아직도 내가 교사라는 걸 믿지 못하는 듯한 어조였다.

하긴, 나만 해도 낯설 지경인데 형님이야 오죽할까.

그런 감상에, 나 또한 어깨를 좁히며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가 선도하듯 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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