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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07화 (307/371)

〈 307화 〉 배수진

* * *

그렇게, 이번 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물론 마무리라 해도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하연이의 무의식으로부터 그녀의 몸을 탈환하는 데엔 성공했으니까.

문제는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이다.

마지막엔 거의 반칙 비슷한 기술까지 동원한 참이고.

나는 몬스터 비슷한 존재라면 일단 덮어놓고 싫어한다.

설령 혼혈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말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일까?

하연이의 무의식은 곧바로 몸의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결국 그녀는 하연이의 일부.

말하자면 하연이의 본심 가까운 무언가다.

본인의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연이 본인이 나설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

……하연이의 무의식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

예은이에게서 일부. 지희에게서 일부. 윤하에게서 일부.

심지어 티아마트나 서아에게서 조금씩 떼온 듯한 모습.

만약 그 모습이 정말로 하연이가 내심 쌓아두었던 초조함이 구현된 결과라면?

당연히 내 마지막 말도 효과를 발휘할 수밖에 없겠지.

적어도 내 앞에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을 테니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방금 전.

내 말 한 마디에 하연이의 무의식은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즉, 그녀의 정체는 말 그대로 하연이의 무의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허면?

이번에 있었던 일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신세계 질서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소환 의식의 잔재가 남긴 결과 탓에 다소 극적인 형태로 사건이 터지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하연이의 내심에 매일 쌓이고 있던 초조함과 스트레스.

다시 말해, 그 원인인 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만에 하나,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 속에 남긴 소환 의식의 잔재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이번 일보다는 잠잠한 형태가 되었겠지.

못해도 하연이가 갑작스레 가출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번 사건의 근간이 된 원인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즉, 만에 하나 소환 의식의 잔재 따위가 없었다 한들 결과 자체는 바뀌지 않았으리라.

물론 표리가 완전히 뒤집히다시피 한 이번 일보다는 나았겠지.

평소 하연이의 모습 너머로 속내가 살짝살짝 비추는 형태가 되었으리라.

허나, 이 시점에서 하연이의 스트레스가 폭발할 만큼 축적되었다는 건 변하지 않겠지.

요컨대, 신세계 질서 등의 외부 요인이 없었더라도 하연이의 인내심은 오늘이 한계였다는 뜻이다.

거기에 대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슬쩍 팔을 흔들어 미끄러지려 하는 하연이의 몸을 제대로 붙잡는다.

돌아가는 길.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하연이를 업은 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막말로,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해결할 수 있었으면 헌터가 아니라 심리 상담사가 되었겠지.

게다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반대로 무얼 해야 하는 상황이냐 묻는다면 솔직히 애매한 게 사실이다.

제자들은 내게 마음을 고백했다. 나는 그 마음을 거절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뭐, 거기까진 제자들의 자유다.

내가 다른 학생들보고 나를 포기하라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반대로, 제자들이 내게 누구 한 명을 정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법.

막말로 내가 끝까지 솔로를 관철하겠다면 감히 누가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나는 진즉부터 제자들의 마음을 거절했다.

그 결과, 제자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내게 간섭할 권리는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제자들의 자유니까.

당연히 내게 책임을 물 수도 없다.

내가 제자들에게 목에 칼을 들이밀고 나는 거절하겠지만 너희는 날 좋아하라며 협박한 것도 아니고.

물론 어디까지나 도의적으로 따졌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

내게 책임을 물을 수야 없을 테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있겠지.

허면?

정작 그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이번 일과 같은 경우를 마냥 내버려두고 싶은가?

그건 아니었다.

물론 담임으로서의 책임감도 있다.

다만, 이번 일은 시시콜콜한 책임감 따위로 발을 들일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건 나 또한 알고 있는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름 내키기도 했다.

나는 나름 제자들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제자들은 그조차 상관 없다며 화답했다.

헌데,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무어라 생각했던가.

'진짜로?'

처음에는 의심이다.

여하간, 나는 이런 놈이니까.

말이야 괜찮다 운운할 수 있겠지만, 말로야 누구든 무슨 말을 못 하겠나.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약 제자들의 말이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라면?

내겐 그렇게까지 제자들의 마음을 거부하고 밀어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없다!!

아니, 진짜로.

언제 한 번 날밤 까고 생각해 봤는데, 딱히 없더라.

무엇보다, 내 사람 보는 눈은 쓰레기 수준이니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적당히 귀엽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좋다.

마치 바람둥이 같은 발언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나는 적당히 괜찮은 얼굴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2초만에 반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정말로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뭐, 다시는 사람을 사랑 못할 가슴 절절한 과거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록 가정을 쌓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뿐.

그조차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내가 사양할 만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너무 쓰레기 같은 발언 투성이라 망설이긴 했지만, 이게 솔직한 내 본심이었다.

그러니만큼, 이번 일은 적당히 각오를 다지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는 적당히 둥실둥실하게 시간을 보낼 뿐이었으니까.

제자들의 마음을 거절하고, 그런데도 제자들이 열렬히 내게 구애하고.

까놓고 말해, 내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마치 남의 일처럼 구경하던 마음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겠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하연이의 때 아닌 일탈은 나로서도 등을 떠밀린 기분이 들었던 셈이다.

"하연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 사실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나는 공허한 발언을 이어갔다.

"미안해."

아니, 하연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내 기억 속에 비치는 하연이는 언제나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둥글둥글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몽롱한 듯 꿈에 빠진 듯한 그 분위기는, 적어도 내겐 다른 학생들의 고백과 달리 마음 편한 도피처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설마 정작 나 대신 하연이가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로서는 멋쩍을 따름이다.

때문에.

약간의 미안함, 그리고 그 이상의 고마움을 담아 나는 마치 넋두리처럼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주렴. 오빠도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 말을 듣자, 꿈틀 하고 하연이의 손이 움직였다.

느슨하게 어깨 너머로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이 비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흔들린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쩌면 그 덕분일까?

무심코 튀어나온 짧은 너털웃음과 함께, 나는 대답을 건넸다.

"적어도 너희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다.

나 또한 대답을 요구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나 자신부터 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하연이에게만 대답을 요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기다릴게요."

다시 한 번, 꿈틀.

대답을 꺼내기 위한 고민일까.

그렇지 않으면 짐짓 못들은 척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면구스러움일까.

아니면, 그런데도 마지막에 입을 열어버린 자신의 미숙함 때문일까.

하연이의 목소리는 묘한 부끄러움에 젖어 있었고, 초조한 듯 움직이는 손가락 또한 마찬가지였다.

십중팔구 지금 뒤를 돌아보면 하연이의 얼굴은 직시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일 테지.

그렇지만.

지금 와서 굳이 뒤를 돌아보는 대신, 나는 다시 한 번 어깨를 떨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연이는 느슨하게 풀고 있던 팔을 꽉 하고 단단하게 조였다.

억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자, 곧 화들짝 놀란 양 팔에서 힘을 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등에 달라붙듯 몸을 밀착시킨 하연이는 무어라 내게도 들리지 않게 웅얼거릴 뿐이었다.

물론 귀를 기울이면 충분히 들을 수 있겠지만, 하연이도 불평할 시간 정도는 필요하겠지.

적어도 이번 일처럼 갑작스레 본심을 강제로 털어놓게 된 이후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나는 마저 하숙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와 마찬가지로, 하연이가 정신을 차렸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듯한 발걸음으로.

과연 그 사실에 하연이가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없애버리는 건 힘들겠네.'

하연이의 마음 속에 있던 무의식은, 본디 이번 일이 끝나면 제거하거나 적출해버릴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그녀가 정말로 하연이의 무의식이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자신이 섣불리 손을 대기는 힘들 수밖에 없으리라.

결국 겉으로야 어쨌든, 실제로는 고민 상담같은 게 되어버렸나.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때 아닌 교사 노릇에 다시 한 번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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