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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02화 (302/371)

〈 302화 〉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 * *

이번 학기에 들어 학생들에게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대형 몬스터 사냥법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크기란 곧 질량이요 질량이란즉 힘이었다.

물론 마력을 사용하면 크기와 질량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힘을 낼 때도 순전히 마력에 의지해야 하는 쪽.

혹은, 질량으로 어느 정도 마력 소비를 대체할 수 있는 쪽.

누가 우위에 있느냐 묻는다면 그야 후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

뭐,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체급이 마냥 무적인 건 아니다.

상응하는 약점도 있다.

예를 들어, 대형 몬스터라면 필연적으로 둔해질 수밖에 없다.

근육량 운운하기 이전의 문제.

생물이라기보단 차라리 환경에 가까운 거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다.

여하간, 생물의 한계를 마력으로 무시하고 있는 셈이니까.

신경 전달 속도를 가속하기 위한 마력. 육체의 말단부까지 혈액을 공급하기 위한 마력.

그런 만큼,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로 선수를 쥐는 건 십중팔구 헌터 쪽이 되기 마련이었다.

설령 감지 능력이 동등한 수준이라 해도 마찬가지.

때문에.

초대형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바로 기습과 화력.

즉, 폭격이었다.

막대한 질량 덕분에 어지간한 피해를 무시할 수 있는 대신 유달리 아둔한 놈들이니까.

일격 필살.

초대형 몬스터 사냥의 성공률을 좌우하는 건 다름 아닌 전장의 첫 포화였다.

뭐, 요컨대 최대한 마력 그러모은 일격으로 방심하고 있을 때 급소를 노려야 한다는 소리다.

비슷한 체격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달리, 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필요한 건 빈틈 없는 연격이 아니다.

설령 빈틈을 드러내는 꼴이 되더라도 확실한 위력을 보장할 수 있는 공격.

평범한 사냥과 반대되는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

덕분에 이런 식으로 때 아닌 특강 비슷한 물건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었지만.

슬쩍 교실 내부를 둘러본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전법을 배운다는 흥분 때문인지 대다수 학생들도 눈을 빛내며 경청하고 있었다.

아니, 고마울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초대형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전술 이전에 전략 문제니까.

성실하게 준비하면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죽일 수 없다.

초대형 몬스터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대침공 초기, 초대형 몬스터들로인한 피해가 유달리 컸던 건 질량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런 이유도 있다던가.

뭐, 이런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공유하자는 게 아카데미가 창설된 이유기도 하고.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민인 건 내년에 가르쳐야 할 과목 쪽이다.

아카데미 측에서 제시하는 가이드 라인이야 있지만, 실질적인 수업 내용은 내가 맡아야 하니까.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고민은 거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슬쩍, 그 시선이 학급 구석에 있는 하연이에게 닿았다.

퍽 쾌활한 얼굴로 수업 사이의 빈틈을 이용해 수다를 떠는 하연이.

거기까지만 보면 딱히 특별할 건 없다.

도리어 평범하다 해도 좋겠지.

허나.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나로서는 그런 생각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멋쩍은 발언이긴 했다.

막말로, 하연이가 활발하게 굴면 좋을 일 아니겠는가.

활기 넘치는 하연이의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이유를 찾으며,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건 너무한 처사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묘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연이는 본디 저런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는 내 쪽이 걱정될 정도로 침착했던 하연이가 고작해야 며칠 사이 저런 모습을 비추다니.

하연이의 보호자인 내 입장에선 무언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 날.

무의식을 건드린 이후 갑자기 하연이의 태도가돌변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충분히 의심할 법했다.

역시 행동에 나서야 할까.

내심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

무언가 꼬여도 단단히 꼬여버렸다.

요 최근, 자하연은 줄곧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친구들이 전원 박우찬에게 고백하고 차인 그 날.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자하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간, 자하연은 알고 있었다.

저래뵈도 박우찬은 나름 제대로 된 어른이라는 사실을.

적어도 학생들의 고백을 받아줄 만한 사람은 아니다.

자하연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덕분에 자하연은 박우찬에게 직접 거절당하지 않은 유일한 주변 인물이 되었다.

고백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덕분에, 박우찬을 중심으로 한 연애 사업에서 최전선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물론 말이 고백하지 않은 거지 실제로는 노골적일 정도로 스스로의 마음을 어필하고 있었지만.

툭 터놓고 말하자면, 박우찬 또한 그녀의 마음 정도는 진즉부터 눈치채고 있었을 테니까.

문자 그대로 고백만 하지 않았을 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거절당한 쪽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으리라.

적어도 자하연은 그렇게 믿었다.

하물며, 다른 애들이 차인 건 틀림없는 사실.

안타깝긴 했지만,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은 그녀에게 있어선 기회이기도 했다.

뭐, 연애라는 게 본디 그런 법 아니겠는가?

미안한 소리긴 해도, 덕분에 지금은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으니.

일단 숨을 죽이고 기회를 기다리자.

지금은 인내심이 필요할 때였다.

그리고.

다른 애들이 실연의 슬픔에 비틀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열매를 수확하면 된다.

다소 방자한 이야기지만, 자하연은 내심 그런 대계를 꾸미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다른 학생들 이상으로 많은 기회가 있었다.

설령 신서아라 해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그럴듯한 명분이 존재하는 덕이었다.

신세계 질서가 습격할 위험이 있는 이상,박우찬은 필연적으로 자하연 옆에 붙어있는 꼴이 될 테니.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자하연에게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던 일은 총 두 가지.

첫째는 박우찬에게 거절당한 여자들 중에서 정말로 마음을 접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 뿐이랴?

심지어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차례차례 본래의 살가운 태도를 되찾기도 했으니.

자하연이 보기에 개중에서 마음을 정리했답시고 정말로 박우찬을 단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로서는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무엇보다.

둘째로, 신세계 질서와의 싸움 또한 어느덧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쓸모없어……!!'

자하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신세계 질서는 가볍게 생각할 대상이 아니다.

자그마치 제 3차 대침공을 획책하고 있는 악당들.

일국의 정계와 재계 전반에 뿌리를 뻗은, 비밀 조직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완 좋은 작자들이다.

실제로 그녀 또한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으니까.

아니, 지금도 위협받고 있다.

그렇지만.

박우찬 옆에서 생활하길 어언 1년 반.

신세계 질서의 위험성을 잊어버리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기간이었다.

게다가, 자하연이 알고 있는 박우찬은 그런 사람이었다.

설령 그녀와 정이 들었다 해도.

어쩌면 내심 그녀를 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꼈다 해도.

학생을 상대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점잖지 못하다 생각해 감추려 해도.

심지어 자하연이 그런 박우찬의 태도를 이미 눈치채고 있다 해도.

만약 신세계 질서가 쓰러진다면, 박우찬은 자하연과 연을 끊으리라.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관계가 되겠지.

자하연은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바라는 건 박우찬한테 일방적으로 기생하는 게 아닌, 대등한 관계다.

때문에.

만일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당장 그녀 자신부터 독립하려 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이란 실로 복잡한 법이라.

스스로가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에 몸부림치는 결단 또한 있는 법이었다.

지금 그녀의 상황이 그랬다.

박우찬조차 꺼림칙하다 평했던 작업.

무의식 속에 다른 사람을 들여놓는 일에도 그녀가 동의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묘한 초조함.

연애 전선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생각했던 자신이, 사실 고백이라는 한 바퀴 분량만큼 뒤쳐져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

다시 말해, 자하연은 어떻게든 자신의 초조함을 불식시키고 싶었다.

자신의 능력 부족에서 오는 불안함과는 다르다.

스스로의 실력을 갈고닦으며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던 불안감이 색다른 모습으로 고개를 쳐든 셈이다.

한 마디로, 자하연은 박우찬이 가져온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박우찬과 사이가 벌어지는 일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신세계 질서의 술책을 경계하는 마음 따위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퍽 치기어린 발상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 발상이 성과를 거둔 걸까?

그 날 이후, 자하연은 이전까지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던 묘한 초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무의식을 직접 들쑤신 탓일까?

내심 켜켜이 쌓여 있던 악감정이 쓸려내려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박우찬조차 꺼림칙하게 여기던 일을 완수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혹은 신세계 질서의 함정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망설임이 사라졌을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자하연은 요 근래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며칠 후.

머뭇거리는 태도로 다시 한 번 그녀의 속내를 살펴도 되겠느냐 묻던 박우찬.

썩 무례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그녀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그런 이유도 있었으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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