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화 〉 마왕의 반려
* * *
묘한 기분이었다.
박우찬의 감각은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원리 하에 작동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박우찬 본인이 보기에도 의아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바로 이 헌터 사회.
수많은 첨단 기술과 마력 공학 이론이 날뛰고 있는 이 시대에서도, 가장 정확한 건 그의 감각이라는 점이다.
여하간, 완전히 동일한 성분의 물건조차 몬스터에게서 나온 건지 따로 만들어낸 건지 분간할 수 있는 감각이다.
몬스터를 구분하는 일에 있어선 한없이 정답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몬스터라는 생물군이 따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기존의 생물들이 마력을 과다 흡입한 결과가 몬스터인지.
수많은 학자들이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박우찬은 너무나도 손쉽게 정답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눈 앞에 있는 여자의 모습은 퍽 이상한 게 사실이었다.
너무나도 정밀한 감각 때문일까.
마력을 사용해몬스터 비슷한 형태로 성장시킨 돼지의 죽음은 상관 없다.
다만, 실제 몬스터의 모습을 담은 영상엔 발작하는 게 바로 박우찬의 감각이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자하연 비슷한 외견의 누군가는, 박우찬의 기준으로 볼 땐 몬스터가 아니었다.
머리에 돋은 뿔이나 날개, 혹은 꼬리까지.
몬스터 비슷한 기관은 더러 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밀한 모방품에 가까운 감각이라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변태같은 옷을 입은 하연이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시당초 신세계 질서의 계획은 실패했다.
자하연은 몬스터가 되지 않았고, 덕분에 지금까지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바.
눈 앞의 존재 또한 자하연의 일부라면, 몬스터 특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하리라.
애초에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면 박우찬이 눈치채지 못할 리도 없고.
요컨대, 눈 앞에 있는 건 신세계 질서의 목적인 완성품.
마왕의 반려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
자하연을 몬스터로 각성시키고자 노력한 끝에 발생한 실패작.
중간에 실험이 실패한 결과 발생한 부산물이라는 표현 쪽이 정확하겠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하연의 능력 자체가 이런 형태로 드러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자하연이 헌터로서 각성한 건 몬스터로 변모하는 과정이 중단된 여파.
다시 말해, 체내에 마력이 깃들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필이면 저주 능력이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전설에 전하는 마왕의 특기.
다른 자들을 해하기 위한 천 가지 마법.
혹은, 그런 기술에 한없이 가까운 하연이의 체질이 능력으로 발아한 거겠지.
어느 쪽이든,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라 할 법했다.
만약 쓰러진 하연이의 목을 자신의 몸이 무심코 날려버렸다고 하면 농담할 거리도 안 될 테니까.
적어도 이 기억 속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학생들이 잘 막았거나.
뭐, 전자겠지.
아무리 그래도 박우찬에게 머잖아 몬스터가 될 사람을 간파하는 재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체내에 심어져 있는 경우라면 또 모를까.
거기까지 가면 미래시라도 필요하겠지.
"우와, 진심?"
그런 박우찬의 사고를 읽은 탓일까.
눈 앞의 여자는 다소 질린 듯한 얼굴을 했다.
하연이의 얼굴로 취하는 색다른 표정이 무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말하지 마. 굳이 따지자면 나도 자하연이니까."
"동의하기 힘든 발언인데."
"에이, 왜 그래.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박우찬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감각이 고하는 바에 따르면, 자하연이 몬스터가 되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허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여자의 모습도 말하자면 하연이의 일부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평소의 감각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박우찬은 그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하연이의 몸을 가지고 조종하는 듯한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너무 환상을 가지는 거 아니야?"
"환상이라니."
"그렇잖아? 요컨대, 말이야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자하연은 이렇지 않다! 그 소리 아니야."
"아니, 그렇게 말하면……."
순식간에 칠칠맞은 어른이 되어버리는 요약에, 박우찬이 쩔쩔맨다.
물론 박우찬이 정말로 그런 속내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일부는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그거야. 어차피 근거라고 해도, 내 태도 때문이잖아?"
"단순히 그게 전부는 아닌데."
"그럼? 아, 내가 자하연이 알지 못하는 일까지 알고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풍경.
거기에, 방금 전 그녀가 떠든 말까지.
어느 쪽이든, 자하연이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말에, 여자는 파핫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단순히 그 계집애가 숨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곧 손을 휘휘 하고 내젓는다.
평소와 다른 호방한 태도.
언제나 주눅이 들어있는 듯 조용한 자하연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거야 내가 그 아가씨의 전부가 아닌 일부, 무의식이기 때문이고."
"무의식."
"당연하잖아? 애초에 무의식을 파고들 생각이었으면서."
"음."
"그런 거야."
무의식 속에 잠든 이야기.
무의식 속에 파묻혀 있던 정보.
지금 이 눈 앞의 모습은 바로 그 일환이라는 소리인가.
"정답!"
"그럼 여기는……."
"뭐, 말하자면 그 아가씨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억. 최초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즉.
"탄생의 순간이야."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도저히 그런 단어가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아니, 고아원 운운하는 출생만 해도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요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은 아니지 않은가.
"설마 이제 와서 자하연 그 계집애가 평범한 출생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런 박우찬의 속내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박우찬도 그렇게 순진한 성격은 아니었다.
마왕의 반려에 어울리는 성질, 속성을 지닌 아이.
신세계 질서가 선별한 생명.
그 출생에 적잖은 피 냄새가 감돌고 있으리라는 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글쎄. 호문쿨루스라던가, 아니면 마력을 사용한 실험이라던가? 어느 쪽이든, 정상적으로 태어난 건 아니겠지."
"……굳이 따지면, 고아들을 모아 실험한 쪽이겠지."
"오호."
넉살 좋은 추임새였다.
다만, 신세계 질서가 인간 사회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첨병으로서 하연이를 바란 거라면.
불안정한 인공 생명 따위보다는 차라리 고아들을 모아 적성도를 측정했으리라.
퍽 으리으리한 집안에 들여보내는 건 안 된다.
관리하기는 쉽겠지만, 어중간하니까.
갑자기 집안 사람이 사라진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자아가 싹틀 가능성도 있겠지.
때문에.
이 시대라면 그렇게 드물지도 않은 고아 쪽이 최선이다.
박우찬은 그런 판단을 내렸다.
물론 내키지 않는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뭐, 그런 식이겠지."
눈 앞의 여자 또한 순순히 인정했다.
애시당초 신세계 질서의 근간을 되짚으면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은 어째 대기업 연맹체처럼 굴러가고 있긴 했지만, 그 근간은 마왕의 부하들이 만든 제 3차 대침공 향우회.
처음부터 일국의 상층부 전원을 포섭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연이가 자란 보육원 쪽에 주었다는 보수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연줄은 있었겠지만.
애시당초 마법을 동원해 태아를 만드는 일 따위, 당연히 불법이다.
설령 관련된 법이 없던 시대라 해도 사람들의 거부감은 어찌할 수 없는 바.
그런 계획이었다면 애초에 놈들에게 협력할 인간도 별로 없었겠지.
만에 하나 계획이 중간에 엎어지고 들킬 경우,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연이의 부모가 누구였다던지, 신세계 질서가 어떤 식으로 하연이를 손에 넣었다던지.
이 시대에선 지나칠 정도로 흔한 이야기였고, 스스로의 뿌리를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단순히 신세계 질서 측에서 운이 좋았던 건지 뭔지, 어쨌든 중요한 건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를 손에 넣었다는 점이지.
"쌀쌀맞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신세계 질서는 우연히 하연이라는 최고의 샘플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신세계 질서의 계획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하연이가 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신세계 질서는 체급을 불렸고, 그 때까지 수많은 준비를 다지며 기다렸다.
방금 전, 눈 앞에 있던 풍경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간다.
16년.
자하연이 보냈던 삶이 스르륵 지나가며, 박우찬이 그녀와 만난 시간대까지 옮겨가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박우찬은 어깨를 움츠렸다.
……도저히 내키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눈 앞의 여자는 단순한 방해꾼 따위가 아닌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박우찬에게 지금 이 기억 속의 풍경을 해설해주는 기미까지 보였다.
'내게 협력할 생각인 건가?'
왜?
박우찬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희가 설명했던 경우와도 조금 다른 듯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말하자면 눈 앞의 존재는 아직 발아하지 못한 꽃봉오리다.
완전히 꽃피는 게 본인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까?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신세계 질서의 손에 완전히 각성하게 되면 지금 그녀를 이루고 있는 자아가 사라진다던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리라.
여하간, 인간과 몬스터의 사고방식 차이는 말해도 입만 아플 뿐이니까.
자신의 사고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 완전히 뒤틀린다.
일종의 사고, 정신 덩어리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리라.
다만.
어느 쪽이든, 확실한 대답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박우찬은 내부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의문을 갈무리하며, 일단 시간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느슨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는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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