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사룡들의 어머니
* * *
"저는 상관 없어요."
내가 이번 일에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연이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연이의 기억에는 문제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세계 질서 측에서 하연이와 접촉하고 나와 만날 때까지 잠깐.
시간으로 따지자면 대략 반나절 남짓한 정도일까?
하연이는 그 사이 고아원을 떠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뒷골목을 달리고 있었다 설명했다.
그리고.
신세계 질서의 윤곽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들은 하연이에게 혹시 떠오르는 게 있냐고 묻곤 했다.
물론 대다수 경우 별로 시원찮은 대답이 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하연이가 미안하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나 또한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로서는 이번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하연이가 선보일 반응 또한 선명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하연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짚고 말았다.
"아니, 하연아. 오빠 말 이해한 거 맞아?"
"네, 전부 이해했어요."
시원스러운 대답이었다.
물론 내 머리가 아픈 건 바로 그 대답 때문이었지만.
하연이에게도 설명했듯이, 이번 기억 문제는 평소처럼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 하연이의 무의식 밑바닥에 파묻힌 기억이 무엇일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저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넘어갈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
최승준이나 이준구가 은연중에 기대하듯이, 배후에 남은 문제는 없다고 바닥을 다지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 정도라면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만약 하연이의 기억 속에 파묻힌 무언가가, 단순한 기억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면?
만에 하나 여왕의 기억처럼 무언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
나로서는 그런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하간, 하연이는 지희랑 다르게 정신 간섭 능력을 보유한 게 아니다.
정신 쪽 문제엔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 불길한 점도 있다.
현재 하연이의 실력은 얼추 A랭크 헌터 끝자락에 가까운 수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작해야 1년 사이에 이룬 성취라고는 말도 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성장 뒤에는, 기형적인 하연이의 성장세 또한 관련되어 있었다.
물론 성장 방향이 적절하게 다잡힌 덕도 있겠지.
하연이에게 최적인 전술을 구해, 최고의 환경 속에서 가르칠 수 있었던 점도 있다.
허나.
거기에는 명백히 이상한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하연이의 마력.
하연이의 전술면을 가다듬기 위해 어느 정도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능력 쪽이다.
만에 하나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하연이는 먼저 무기술 쪽을 완성하고 능력 쪽은 방치하게 됐겠지.
그 경우, 하연이의 실력은 대략 B랭크 가량.
무기술 쪽은 지금과 같다 쳐도, 마력은 잘 해야 C랭크 수준이나 되면 다행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하연이의 마력은 이상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멋대로 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A랭크 가까운 수준까지 향상되었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폭발적인 성장 뒤에는, 언제나 묘한 점이 있었다.
초대형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난 용의 존재감.
혹은,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던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힘.
나아가서는, 마신과 조우하기까지.
하연이의 힘은 그럴 때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억눌린 상태였던 힘이 해금되고 있다.
그런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까.
차례차례 한 단계씩 상승하고 있는 하연이의 힘을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거기에, 예전에는 그 이유도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느 정도 신세계 질서의 목적이 밝혀진 지금.
하연이의 능력이 해금되는 조건도 얼추 짐작이 갔다.
십중팔구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힘과 접촉할 때가 조건이겠지.
초대형 게이트의 우두머리였던 용을 통해 슬쩍 힘을 발휘한 규격 외 등급 몬스터.
혹은, 그 권능의 편린을 지닌 마신들까지.
하연이의 힘이 성장하는 건 언제나 그럴 때였다.
즉, 하연이의 능력에 신세계 질서가 관련되어 있다는 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애시당초 하연이가 헌터라는 점만 해도 그렇다.
나와 마주치기 전까지만 해도 게이트 운운하는 일에 말려든 적 없다 증언한 하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연이는 처음부터 헌터로서 각성한 상태였다.
물론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로서는 애시당초 하연이가 헌터로서 각성한 이유 또한 신세계 질서의 수작.
나아가서는,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에게 손을 쓴 결과 헌터로서의 능력이 각성한 게 아닐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헌터로서 각성하는 방법은 고농도의 마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만에 하나 놈들이 하연이를 통해 만들어내려는 몬스터가 그토록 강력한 거물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자연스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실제로, 불안한 점은 없잖아 있다.
만약 하연이의 기억 속에 신세계 질서가 들어두었던 보험 따위가 있다면?
우리로서는 거하게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되겠지.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위험하다.
혹은 하연이가 내키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그 둘을 설득할 생각도 있었다.
것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둘도 별로 내키는 건 아닐 테니, 하연이가 거절하면 굳이 더 일을 키우진 않겠지.
문제는 정작 하연이가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하연아,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너무 부주의한 거 아니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태까지 하연이에게 직접 질문을 던져도 신통찮은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에 하연이의 기억을 조사한다는 건, 당연히 평범한 질문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 간섭 능력을 통해 무의식을 뒤적이는 수준까지 가겠지.
여태까지 별다른 말 하나 없다가 이제서야 기억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신세계 질서와 아카데미 사이의 싸움은 섣불리 공개할 수 없는 사정이기 때문이다.
입이 무겁다는 이유로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정이 아니니까.
즉, 이번에 지희가 대대적으로 능력을 개발한 덕분에 취할 수 있는 선택지다.
그리고.
저번처럼 지희가 능력을 사용해 하연이의 기억 속을 파고든다고 가정할 경우.
능력에 집중하는 지희와 별도로, 하연이의 기억을 관찰할 사람이 필요하다.
즉, 나다.
물론 단순한 관찰이라면 나보다 나은 녀석들도 여럿 있겠지.
그렇지만, 사람의 정신이란 섬세하다.
무엇보다, 하연이도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을 파고드는 작업이라면 더더욱.
당연히 당사자인 하연이의 거부감이 제일 적은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건 곧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뭐, 거기까지는 상관 없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보다 이준구나 최승준한테 더 마음을 열고 있었다면 살짝 상처가 됐겠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여고생 나이에 아저씨를 상대로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아요."
"응?"
"오빠라면."
……그게 바로 개학 당일 우리들이 동아리에 다시 모인 이유이기도 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이런저런 일이 있어 한때 얼어붙었던 동아리 속 분위기에도 다시 활기가 돌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래서 전원이 불린 거네요."
예은이의 말에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 동아리실에 모인 건 나를 포함해 동아리에 속한 학생들 네 명.
개중에서도, 나와 지희가 하연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면 남는 게 두 명이다.
그리고 이 두 명, 다시 말해 예은이와 윤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무력 진압반이었다.
막말로, 하연이의 기억 속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갑자기 날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전위 담당과 염동력자의 조합은 퍽 잘 들어맞는 면이 있었다.
"아니, 근데 기억상실이라고? 나 참, 별 게 다 있네. 병원은 가 봤냐?"
"반나절 기억으로 무슨 병원까지 가. 윤하 너는 1년 전 점심으로 뭐 먹었는지 기억해?"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지."
짐짓 태연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툭툭 어깨를 치는 윤하.
그런 윤하를 향해, 하연이는 정말로 담담한 어조로 그리 설파했다.
물론 정말로 저렇게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연이가 긴장하고 있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그 점만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 탐탁치 않은 기분에 목덜미를 긁적이고 있자니, 마저 커튼을 친 지희가 다가왔다.
"준비 끝났음!!"
"어, 그런데 꼭 커튼까지 쳐야 되는 거니?"
무슨 사교도 의식 같네.
아니, 몽마의 힘을 빌릴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하필이면 커튼을 치는 이유가 뭘까.
꿈을 통해 잠입하는 악마니까 밤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라도 있는 걸까.
"아뇨, 여고생이랑 같이 누워있는 꼴 보이면 곤란하실까봐."
"……그래. 고맙다."
마음 속에 스며드는 배려였다.
뭐, 동아리실이라고 말은 했지만 뭔가 첨단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적당히 책상 이어붙여 자리 만드는 게 고작이니.
거기에, 말했다시피 이번에 의지할 지희의 능력은 몽마로서의 힘이다.
다시 말해, 저번 지희처럼 거의 곯아떨어지듯 잠에 빠질 게 거의 확실한 상황.
나로서는 여고생들 사이에서 뒹구는 남교사 운운하는 소리 듣지 않는 점만 해도 어디냐 싶을 수밖에.
그렇게.
마지막까지 탐탁치 않은 기분을 품은 채, 나는 천천히 의식을 이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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