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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96화 (296/371)

〈 296화 〉 사룡들의 어머니

* * *

예를 들어, 바빌론의 탕녀.

성모 마리아의 별빛으로 이루어진 면류관에 대응하는 온갖 상징을 걸친 채, 짐승을 부리는 사악의 권화.

혹은, 적그리스도.

거짓으로 구세주를 참칭하며 온갖 기적을 위장하는 가짜 예언자.

만에 하나 그런 자들을 촉매로 삼는다면 성좌나 악마에게 통하는 바도 있겠지.

아니, 그 뿐이랴?

소위 말하는 묵시록의 짐승 따위를 불러낼 수도 있으리라.

마찬가지였다.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조로아스터 교의 대탕녀.

사악하기 짝이 없는 마신의 일종이라면, 놈들이 그토록 열중하는 이유 또한 알 수 있다.

허면?

이 예상대로, 하연이가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여하간, 몬스터로 변모하는 데에도 재능이나 자질이라는 게 있다.

당장 티아마트만 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다른 이를 자신의 권속으로 삼는 권능엔 여러모로 제약이 있다고.

일전, 길드 측 연구자가 남긴 괴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신의 권능에 비하면 훨씬 일천한 실력이었기 때문일까.

녀석들이 손을 댈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한층 몬스터에 가까운 부류…….

다시 말해, 변신 능력에 각성한 헌터들 쪽이었다.

그러니만큼, 당연히 몬스터에 가까운 체질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겠지.

개중에서도 늑대인간에 가까운 체질이 있을 테고, 흡혈귀에 가까운 체질도 있을 테지.

예를 들어, 흡혈귀가 흐르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습성은 광견병 특유의 공수증으로부터 유래했다던가.

그런 식이다.

당연히 놈들이 바라는 체질을 타고난 애들 또한 있겠지.

일찍이 보육원에서 들었던 하연이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추정 신세계 질서 측에서 아이를 맡기고 사라졌다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나름의 노림수가 있었으리라.

여하간, 이번 일만 해도 그렇고.

사회에서 발 붙이고 살 자리 하나 없어 신세계 질서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몽마들의 집단.

거기에 드는 수고를 생각하면, 좌충우돌 몬스터를 무작정 현실로 보내 토벌당하는 쪽보단 인간을 몬스터로 변화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거의 16년 내내 고아원에서 성장한 하연이가 이상할 정도로 당찬 성격이었다는 점일까.

하연이를 다시금 데려가 몬스터로 승화시키고, 대침공을 일으키려 했던 그 날.

무언가 수상쩍은 사실을 깨달은 하연이가 무작정 도망치고, 나를 만났다.

내가 추론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였다.

만약 그렇다면,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의 신병 확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유도 알 법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물급 몬스터는 사회로 넘어오는 데에 상당한 공정을 거쳐야만 한다.

먼저 자그마한 게이트를 만든다.

이 게이트가 들키지 않도록 은폐한다.

어찌저찌 계속해서 성장을 반복시킨 끝에 거물급 몬스터를 소환하게 한다.

이후 충분한 마력을 들여 세력을 꾸리고 게이트 외부로 진출한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토벌당할 가능성이 있으니.

헌터들 입장이야 어쨌든, 몬스터들이 한 발만 맞으면 그만이라는 양 게이트를 흩뿌리고 다니는 이유 또한 알 법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만 개의 게이트를 뿌리면 S랭크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을 만한 게이트는 하나가 될까 말까.

어느 쪽이든, 성에 차지는 않겠지.

헌데, 만약 하연이가 있다면?

협회 입장에서는 어떠한 전조 하나 없이 맨 땅에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 내려앉는 셈이다.

안 그래도 인류 사회의 총력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괴물이다.

헌데, 거기에 마력의 밀집도 등 제대로 대처할 시간 하나 주어지지 않는다?

나라 하나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겠지.

비유가 아니다.

그 날.

초대형 게이트 너머에서 언뜻 느껴졌던 힘.

그만한 힘을 지닌 괴물이 난데없이 뚝 하고 떨어진다면?

적어도 한중일 세 나라는 멸망이다.

'나라 하나 당 브레스 하나 쏘면 딱이겠네.'

설화 속 규격 외 등급 몬스터, 아지 다하카도 마침 머리가 세 개인 용이라던데.

브레스 장전으로부터 소사까지 1초.

깔끔하게 소멸하리라.

거기에, 만약 하연이가 단순한 촉매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면?

티아마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리가 빈 신격을 후발 주자가 대체하는 경우 또한 없지는 않다.

만에 하나, 놈들이 노리고 있는 게 바로 그런 부류의 힘이라면.

티아마트가 선보인 적 있던 권속화.

혹은, 마왕의 군세를 부르는 최소한의 능력이라도.

어느 쪽이든, 나라 하나 말아먹기엔 어렵지도 않은 힘이다.

……미련할 정도로 신세계 질서가 하연이에게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여태까지 우리와 신세계 질서 사이에서 이루어진 힘싸움.

비교적 우리가 유리한 편인 스코어 따위, 하연이를 손에 넣으면 한 번에 뒤엎을 수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녀석들의 목표는 퍽 합리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하연이가 넋 놓고 당해주지는 않겠지만…….

몽마. 만파식적. 그 외에도 몇 가지.

만에 하나, 정말로 하연이가 몬스터가 되어버린다면.

여태까지 놈들이 비축한 몬스터 제어 수단을 모조리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퍽 회의적이었다.

하연이를 얕보는 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지나친 기대를 품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그러니, 조심하세요. 신세계 질서 쪽에서도 더 이상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한 가지, 확실해진 점은 있다.

평소운 박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게는 오히려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들은 막연히 신세계 질서 측의 공세를 막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세계 질서가 이 쪽 세상에서 준비한 전력은 거의 박살났다.

정계와 재계에선 끊임없이 견제가 들어가고 있다.

헌터 협회 또한 잠식하기엔 멀었고.

제 3차 대침공이라는 공수표를 팔아 끌어모은 몬스터들 또한 거의 박살이 났다.

초대형 게이트를 틈타 불러낸 몬스터나 마왕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일곱 마신들 또한 어느덧 절반 이상 반파.

이제 남은 전력이라고는 고작해야 세 마리 마신에 인간 쪽 전력 몇 명이다.

그조차 두 마리 마신이 일거에 쓸려나간 걸 생각하면 그 이상 자잘하게 나눠서 오지는 않을 테고.

요컨대, 앞으로 두세 번.

신세계 질서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수만 있다면, 놈들로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여단이 그렇듯이, S랭크 헌터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전력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마왕 본인을 제외한 모든 수족이 잘려나간 상태라면, 놈들도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마련.

어느덧 신세계 질서와 우리들 사이의 싸움에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던 셈이다.

그것도 예상보다 빠르게.

그 사실에 무심코 헛웃음을 터트린다.

동시에, 평소운 박사의 말 또한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예컨대, 우리들은 이겨도 너무 이겼다.

내분을 일으킨 사이 두 마리 마신이 멋대로 나가 뒈져버린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후, 두 마리나 되는 마신을 추가로 척결한 건 녀석들에게도 위기를 알리는 경종이 되었겠지.

헌데, 만일 상황이 지금 우리가 예상한 바대로 생각보다 훨씬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었다면?

당연히 놈들 또한 한층 몸가짐을 바로 하겠지.

적어도 내분에 의해 신세계 질서가 쩔쩔매는 꼴을 기대하긴 힘들 게 뻔했다.

외부의 적이란 언제나 단합을 이끄는 법이니까.

건곤일척.

머잖아 놈들은 승부수를 던지리라.

말하자면, 지금 이 시점이 바로 승부의 갈림길이었다.

한 가지 공교로운 점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가 바닥났다는 점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수를 뒀으니 이런 상황이 됐다고 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이 없잖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바닥난 수가 갑자기 바닥을 뚫고 솟구칠 리도 없으니.

최승준도 이준구도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일단 지금은 관망.

놈들이 공세로 나왔을 때 요격한다.

하필이면 최후의 반면에서 수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안타까운 바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수비라도 확실하게 굳힐 수밖에.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녀석들 뿐.

내게는 조금 다른 의무가 있었다.

"오빠?"

……그래.

여태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지.

실제로, 굳이 무리해서 기억을 되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건 여전히 변함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신세계 질서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들은 협력자들에게 작전의 진행 상황을 성실히 설명하곤 했다.

투명한 운영을 목표로 했던 건 아니고, 오히려 진행 상황을 숨기거나 모른다는 이유로 튀어나가는 쪽이 훨씬 더 불안했던 탓이다.

때문에.

실제로 우리들 사이에선 각자의 개인 정보 부분만 제외하면 거의 대다수 사정이 공유되고 있었다.

이번 추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시당초, 숨길 이유가 없다.

머잖아 신세계 질서의 공세에도 끝이 보인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광고해 사기를 올리면 올릴 일이지.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하연이에게 이번 일을 숨길 여지도 없다.

오히려 놈들의 최종 공세를 앞둔 지금 이 상황.

무언가 힌트가 될지도 모르는 하연이의 기억은 우리들에게도 귀중한 정보였다.

문제는 단 하나.

막말로, 몽마의 여왕이 남긴 기억을 이용해 놈들은 지희의 몸을 빼앗고자 획책했다.

허면, 모종의 의식.

나아가서는, 몬스터로 각성하던 도중 뛰쳐나왔을 하연이에게 그 영향이 남아있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었다.

막말로, 갑자기 하연이가 몬스터 특유의 충동 따위에 잠식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학을 앞둔 어느 날, 나는 그런 점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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