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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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면, 그 뒤의 이야기.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몽마들을 암매장한 일 때문에 이래저래 불려 다닌 게 전부일까.
물론 협회 쪽에서 갑자기 몽마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며 나선 건 아니고.
오히려 정 반대였다.
여하간, 협회 입장에서 보자면 난데없이 장례식 도중 몽마들이 난입한 상황이다.
다른 몽마들도 마저 소탕했다 말을 꺼낸들, 혹시라도 남은 몽마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내심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점과 별개로 퍽 합리적인 판단이기는 했다.
덕분에 남은 여름방학 거의 전부를 헌납하긴 했지만.
한 가지 안심할 수 있는 점을 들자면, 지희가 이번 일에 참고인으로 불려다니지는 않았단 점이다.
아니, 그야 그럴 법도 하겠지만.
창고 안에서 있었던 일을 제외하면, 지희에게 몽마들과 접촉한 정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날 있었던 사건은 다른 데에서 떳떳하게 말하고 다니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어쩌면 A랭크 이상의 몽마가 탄생할지도 모르는 사건이었으니.
자연스레 지희에게 쏠리는 시선도 더 무거워지겠지.
나로서는 딱히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때문에, 컨테이너 근처에서 있었던 일은 적당히 함구하고 넘어가기로 결정했으니.
그러자 지희에게 남은 몽마 접촉 근황은 단 하나, 류 씨 일가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 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평범한 하객 수준이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딱히 알아낼 만한 정보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
하객들과 몽마들이 조우한 건 고작해야 2초 남짓.
여기에 우두머리의 머리통이 쪼개지고 혼비백산하던 시간을 제외하면 1초나 되면 다행이다.
협회 쪽에서도 그런 하객들 한 명 한명을 전부 조사하지는 않겠지.
물론 지희는 평범한 하객이 아니다.
장례식이 있었던 류 씨 일가의 사람이며, 몽마의 피를 이은 반인반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희가 필요 이상으로 협회에게 들볶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법정 공방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희의 할아버지.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례식의 주인 되는 양반이 지희 앞으로 남겨둔 유산.
류 씨 일가의 노림수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상속법이라는 게 드라마랑 달리 유언장에 한 줄 언급됐다고 유효한 게 아니라는 모양이라서.
지희 몫으로 할당된 지분을 노리는 자들.
반대로, 지희를 끌어들여 실질적인 지분을 높이려는 자들.
현재 류 씨 일가는 두 패로 나뉘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 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몽마들한테 본인들 전원이 넘어갔다는 건 알고 있는 건지.
퍽 쾌활한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지희는 현재 법정 쪽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류 씨 일가의 악의로부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만한 사람.
거기에 더해 그럭저럭 이름 있는 단체의 장이며, 류 씨 일가를 물어뜯을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사람도 있었다.
최근 남상원이 휴가를 받은 데에는 바로 그런 사정이 있었다.
물론 그런 사정이 있다 해도 언젠가 조사는 받아야 하겠지만, 그 때가 되면 협회의 관심도 식었을 테지.
애시당초 지희가 숨기고 있는 일 따위는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염려했던 점도 지희에게 괜한 오명이 날아드는 문제였고.
실제로, 지희는 지나칠 정도로 오명을 쓰기 적합한 인재이기도 했다.
이번 일이 있었던 류 씨 일가의 당사자들 중 한 명이며, 몽마 혼혈.
어쩌면 그녀가 몽마들을 장례식장까지 끌어냈다는 유언비어 따위가 나돌지도 모른다.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음모론이란 으레 그런 법이니.
실제로 류 씨 일가 쪽에서도 그런 시도가 있었던 모양이고.
물론 그 경우 류 씨 일가가 몽마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 되겠지만.
게다가, 류 씨 일가도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기는 매한가지.
폭로하려 들어도 별다른 근거나 달리 알고 있는 사실도 없으니, 구태여 견제할 필요는 없겠지.
때문에.
견제해야 할 건 류 씨 일가가 아니다.
이번 사건 뒤에 도사리고 있는 녀석들.
즉, 신세계 질서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일에 신세계 질서가 얽혔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어요."
"반대로, 전혀 관련 없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야 그렇죠."
당연한 이야기다.
본디 몽마의 여왕은 신세계 질서의 끄나풀이었다.
허면?
고작해야 1년 사이 우두머리를 잃고 약화된 몽마들이 따로 정착할 장소를 찾아냈을 가능성.
아니면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신세계 질서 측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을 가능성.
어느 쪽이 더 가망 있는 이야기냐 묻는다면 그야 후자 쪽이겠지.
물론 이번 일이 신세계 질서 측에서 보낸 지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겠지.
신세계 질서 측은 현재 여유가 없다.
내부의 항쟁에 더해 추가로 두 마리나 되는 마신들을 잃은 셈이었으니까.
말하자면, 몽마들의 이번 계획은 그런 식으로 제약할 세력 하나 없는 틈을 타 벌인 돌발 행동이었으리라.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지."
"흐음?"
"놈들의 이번 행동은 명백히 이상하거든."
아니, 비단 이번 행동만 말하는 게 아니다.
여태까지 신세계 질서의 행동은 그들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즉, 제 3차 대침공이다.
놈들은 오로지 그걸 위해 행동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제 3차 대침공을 위해 준비한 하연이를 노린다.
나아가서는, 대침공을 일으키기 위해 몬스터를 제어하는 수단 따위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나를 먼저 노린다거나, 혹은 게이트를 연다거나 하는 행동은 오로지 그 부산물일 뿐.
놈들의 목적은 어떤 의미로 말하자면 일관성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놈들이 목적과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행동을 저지른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은이를 납치했던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번 일.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희를 데려가려 한 일이겠지.
물론 일전에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지희가 가지고 있는 몽마의 힘 또한 몬스터를 제어할 수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즉, 몽마의 여왕이 지희를 타락시키려 한 건 어디까지나 그 일환이 아닐까 생각했었던 건데.
문제는 이번에 몽마들이 벌인 일이다.
까놓고 말해, 지희를 타락시키는 건 놈들의 우두머리인 몽마의 여왕조차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도 놈들은 다시 한 번 지희에게 접촉했다.
만약 단순히 몬스터를 제어할 수단이 필요했던 거라면,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다시 손을 뻗지는 않을 듯 싶었다.
적어도 녀석들은 한 번 실패한 일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손을 떼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녀석들이 그러지 않은 사례는 단 두 가지.
하나는 하연이의 신병 확보요, 둘은 그걸 위해 방해가 되는 나를 치우고자 하는 일이었다.
즉.
어쩌면 지희는 단순히 몬스터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 따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신세계 질서가 지희와 접촉했던 건 예상보다 계획의 중심에 가까운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이 들었던 탓이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놈들의 계획 또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게 사실이었다.
"아하, 그래서?"
내 말을 듣고, 평소운 박사는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승준이 마련한 거처 중 하나.
평소운 박사는 여전히 거기에 머무르고 있었다.
물론 나로서는 영 달갑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두뇌를 빌릴 필요가 있었다.
여하간, 계획과 관계 없는 일이라 말은 했지만 정말로 놈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졌을 리는 없다.
예를 들어, 예은이를 납치했던 일만 해도 그렇다.
언뜻 보면 뜬금없기 짝이 없는 이야기.
그러나,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네. 제 연구를 통해, 필수 소체를 대체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거겠죠."
소체 운운하는 말투야 어쨌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일찍이 평소운 박사가 남긴 연구 중엔 그런 게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세계 질서는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키는 데에 하연이가 필요하다 판단하고 있다.
평소운 박사의 연구는 우리들에게서 탈환하기 힘든 하연이 대신 다른 누군가를 '사용'하자는 데에 주안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기반이 된 게 바로 예은이가 지닌 특이성.
연구소 시절, 평소운 박사가 성좌의 은총이 발산하는 마력 파장을 기반으로 능력을 각성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했었지.
즉, 신세계 질서 상층부에서는 하연이가 지닌 '소체'로서의 특성이 성좌와도 일부 통하는 점이 있다 여겼다는 뜻이다.
거기에 이번 일을 근거로 삼아 한층 더 추론을 더하면?
"성좌와 몽마. 신과 악마."
똑, 똑.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평소운 박사는 마저 입을 열었다.
"꽤나 흔한 성질이로군요."
"그렇지?"
악마나 괴물 가까운 성질을 지닌 신격은 꽤나 많다.
당장 신세계 질서 측에 있는 마신들만 해도 그렇고.
그리고.
만약 놈들이 지희를 데려가려 한 이유가 예은이 때와 마찬가지였다면?
하연이의 성질은 단순한 성좌 뿐만이 아닌, 몽마를 비롯한 악마들에게도 통한다는 뜻이다.
허면?
놈들의 목적은 제 3차 대침공이다.
그걸 위해서 하연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신세계 질서 상층부의 반응에 따르면, 그런 하연이의 위치를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대체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건 성좌나 몽마에 가까운 습성을 지닌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보육원에서 들었던 하연이를 맡겼던 누군가까지.
여기까지 종합하면 나오는 결론은 단 하나 뿐이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하기 힘든 발상.
그렇지만.
나는 그 사례를 몇 번이나 보았다.
처음엔 여신의 권능으로.
나아가서는, 신세계 질서 측에서 후원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로부터.
즉.
"평소운 박사."
"왜 그러시죠?"
"너, 성좌의 마력 파장을 참고해서 능력을 각성시키려고 한 적이 있다 그랬었지."
"네. 꽤 예전 일이지만."
"그럼, 반대는 어떻지?"
"반대?"
"그래."
신세계 질서에 발을 들여, 성좌라는 게 사실 몬스터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성좌라 불리는 몬스터의 마력 파장을 참고해 헌터를 만들어내려 했던 연구자라면, 이 질문에도 답할 수 있으리라.
"어때.인간을 신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고 보나?"
"사례가 없지는 않네요. 전설 속 얘기지만."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대해, 마치 꽃피는 듯한 웃음으로 평소운 박사는 그리 답했다.
일절의 망설임 하나 없이.
짐짓 즐겁다는 듯한 그 태도는, 내가 던질 의문을 얼추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 시점에서, 신세계 질서의 의도도 대략 손에 잡혔다.
성좌와 비슷한 마력 파장을 지닌 예은이.
몽마의 딸인 지희.
그 둘과 닮은 점이 있는 하연이를 통해, 신세계 질서는 무엇을 획책하고 있는가.
아니, 애초에 고랭크 몬스터와 협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몬스터 제어 수단을 확보하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답은 하나였다.
녀석들은 그런 수단을 사용해, 하연이를 마신 비슷한 무언가로 승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제 3차 대침공 시, 이 세상을 무너뜨릴 쐐기이자 폭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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