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화 〉 몽마의 생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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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의 여왕이 남긴 기억은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족하지는 않겠지.
다만, 넉넉한 편도 아니다.
여하간, 여왕이 기억을 남긴 이유는 어디까지나 후계 교육을 위해서.
시시콜콜한 잡설까지 무작정 주워섬길 까닭은 없었다.
때문에.
여왕의 기억 속에서 박우찬이라는 이름은 지희의 담임이 아니라 자신을 죽인 사냥꾼을 뜻했다.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앞둔 탓에 허겁지겁 눌러담아 전송한 기억이다.
당연히 사망 당시의 기억은 다른 무엇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어째서?"
순수하게 궁금증도 일었다.
여하간, 그녀가 보기에 박우찬이라는 사냥꾼은 몬스터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를 품고 있던 인물이다.
몽마로서의 마력.
서로의 감정을 연결하는 힘이 없었다 한들 쉬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감정.
헌데, 그런 사냥꾼을 상대로 몽마의 딸이 연심을 품는다고?
여왕으로서는 가장 먼저 의문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서큐버스라는 건 그런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런 사람이니까……?"
반면, 서슬 퍼런 기색에 목을 움츠린 지희 또한 대답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지희는 바보가 아니다.
또한, 몽마로서의 마력 운운하기 이전에 눈치가 빠른 편이기도 했다.
박우찬은 나름 숨길 생각이었던 듯하지만, 자신이 다가갈 때마다 조금씩 움찔하는 모습은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말마따나, 몬스터에 대한 증오 때문이겠지.
부모를 잃은 슬픔인가, 가족을 잃은 원망인가.
어느덧 골수에 새겨지다 못해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증오심.
그 마음은 절반이나마 몽마의 피를 타고난 그녀를 볼 때마다 멋대로 반응하는 게 눈에 밟힐 정도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그러한 감상을 내색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그 뿐이었더라면, 류지희에게도 단순한 은사 중 한 명으로 끝났을 테지.
하지만.
류지희와 박우찬이 처음으로 본심을 드러냈던 혼인회의 아카데미 습격 당시.
처참하게 실패한 류지희는 마지막으로 박우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부탁이다.
상대는 실질 S랭크에 가까운 혼인회의 우두머리, 남상원.
게다가 그 힘은 몬스터로부터 받은 물건이다.
박우찬에게 있어선 분노의 대상일 뿐이었겠지.
아니, 애시당초 박우찬에겐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류지희가 박우찬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요, 달리 약속할 수 있는 물건도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별다른 성의 없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박우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절한 그 날.
류지희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말로 박우찬이 자신의 말을 듣고 남상원을 살려주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류지희로서는 의문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왜?
두 번이나 되는 대침공 끝에, 이 사회는 다시금 그럭저럭 번듯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류지희를 포함한 혼혈들이 설 자리는 없었던 게 사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 또한 자신이 혼혈이라는 걸 숨기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박우찬은 그런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이후 별다른 걸 요구하지도 않았다.
한때 자신의 몸이라도 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던 스스로가 무안해질 정도로.
그리고 얼마간 박우찬을 관찰하며 깨달은 바에 의하면, 박우찬이 그렇게 행동했던 건 정말로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류지희가 자신의 학생이었으니까.
하는 김에, 박우찬 본인에게 묻는다면 학부모를 죽이고 학생과 교실에서 얼굴 맞대기 멋쩍으니 그랬다 첨언할 테지.
무엇보다, 상대는 진짜배기 몬스터도 아니고.
진짜배기 몬스터 학부모를 참살한 당사자가 하는 말이니 퍽 설득력 있는 발언이리라.
다만, 그런 사정 모르는 류지희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필시 자신의 친지를 몬스터에게 잃었을 박우찬이, 몬스터의 힘을 좋다고 받아들인 남상원을 기꺼이 구명한 일.
게다가 다름 아닌 자신의 말을 듣고 그리 행동했다는 점에 대해, 류지희는 틀림없이 감흥을 느낀 것이다.
누구나 입으로는 그녀의 편을 들 수 있겠지.
혼혈을 탄압하는 건 나쁘다고,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몬스터가 싫다. 혼혈도 역겹다.
그런 태도를 차마 숨기지 못하는 박우찬이, 자신의 말을 듣고 쾌히 그렇게 행동했다는 점.
그 사실이 류지희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가슴 절절히 울리는 일이었다.
……류지희에게 있어,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상황은 언제나 그런 법이었다.
장남이 몬스터의 꼬드김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부정하고자, 혼혈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인하던 류 씨 일가.
그 반대급부로, 그녀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무조건 긍정하던 혼인회.
나아가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남상원의 캠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몽마의 핏줄까지.
류지희의 주변 환경은 그녀를 둘러싼 사실들을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박우찬은 그런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 본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이었다.
"진심이니?"
그 말을 들으니, 여왕으로서는 포옥 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퍽 콩깎지 씌인 발언이었으니까.
하긴, 사춘기 계집애에겐 딱 어울리는 발언일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자신을 봐줬다느니 뭐라느니.
다만, 몽마의 여왕으로서는 어중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우찬이 그녀의 말에 응했던 건 어디까지나 류지희가 자신의 학생이었기 때문.
달리 말하자면, 학생이라는 직분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박우찬은 류지희의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니다.
만약 그 자리에 있었던 게 류지희가 아니었다 한들 자신의 학생이었다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했을 테지.
그리고 여왕이 보기에 그건 연애 사업에 있어선 오히려 단점밖에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네가 혼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건 알고 있는 거니?"
서릿발같은 여왕의 말에, 류지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제일 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결국 류지희가 혼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박우찬이 류지희라는 개인과 친분을 쌓았다 한들, 이것과 저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막말로, 같은 학교 동창이라면 연락이야 주고받을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같은 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곧장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다.
박우찬이 류지희를 잘 대해주거나, 류지희가 박우찬에게 호감을 품을 수는 있겠지.
다만.
박우찬의 몬스터 혐오 증세를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실제로, 박우찬과 류지희가 상당히 친해졌다 자부할 수 있는 지금까지.
박우찬은 여전히 류지희를 대표로 한 혼혈들의 접근을 꺼리고 있었으니까.
저것만큼은 그녀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좋다고 해도, 박우찬이 자신을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 좋아 로맨스고 로미오와 줄리엣이지, 정녕 몬스터가 부모의 원수라면 그렇게 말하기도 힘든 법이다.
때문에.
대답에 앞서, 류지희는 언젠가 옥상에서 자신과 박우찬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대뜸 자신이 잘못되면 차라리 목을 베어달라 말하던 학생의 모습.
수많은 의혹이 샘솟을 상황 속에서도, 박우찬은 구구절절한 질문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진심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러니 류지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박우찬은 자신이 학생이라 잘 대해 주는 점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오로지 그 뿐만인 건 아니라고.
박우찬의 학생이라서가 아니라, 류지희라 잘 대해주는 면 또한 있으리라고.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남은 문제는 여전히 산재하고 있다.
결국 박우찬이 몬스터를 싫어하고, 그 탓에 혼혈들의 접근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자신 있어."
때문에.
모종의 불안감.
살짝 떨리는 목소리.
스스로 내뱉은 말과 다르게, 어쩌면 실패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속내.
모든 감상을 삼키고서, 류지희는 그렇게 내뱉었다.
퍽 함축적인 한 마디였다.
물론, 박우찬의 몬스터 혐오 증세가 그렇듯이 누구나 한 눈에 허세임을 알아볼 수 있는 발언이라.
몽마로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여왕 또한 마찬가지였다.
담임의 마음을 빼앗을 자신이 있다.
방금 전, 류지희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다르리라.
아마도 확신이 서지 않는 거겠지.
자신이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혹도 있으리라.
그야 당연한 일이다.
애시당초 이 기억 속 공간에서 배울 때까지, 몽마로서의 마음가짐은 무엇 하나 익히지 못했던 딸이니.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반한 사람의 마음을 빼앗겠다는 그 한 마디는 실로 몽마다운 발언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몽마의 여왕은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처음 그 남자의 이름을 들었을 땐 억지로 몸을 빼앗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왕은 결국 몽마들의 우두머리.
한 무리를 이끄는 장이니까.
그런 그녀가 보기에, 박우찬은 몽마 무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듯싶었다.
실로 탁월한 통찰력이었다.
만약 지금 밖에서 박우찬에게 도륙당하고 있는 몽마들이 들었다면 연신 고개를 끄덕였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마의 여왕은 결국 그런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여하간, 여왕 또한 그런 감정을 모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 앞에는 그런 감정의 결정체가 어엿한 모습으로 서 있었으니.
아무리 무리의 장이라 해도 쉽사리 반대하기 힘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퍽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어차피 이대로 밖으로 나간다 한들 이미 이끌 무리는 완전히 소멸한 상태였으니까.
허나, 그런 사실은 알지 못한 채.
몽마의 여왕은 순수한 인정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 말한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겠구나."
물론, 어떻게 할 수단이 정말로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사실상 자신을 죽인 게 박우찬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꺼냈을 경우.
류지희는 허둥지둥하며 때 아닌 고민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르지.
다만, 그렇다 한들 이득을 보는 건 류지희가 망설이는 틈에 치고 나올 딸의 라이벌들 뿐이니.
몽마의 여왕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박우찬이 그녀의 죽음을 적당히 미화했노라고 깨닫지 못한 점 또한 있었지만.
설령 알았다 한들 결론은 변하지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그녀는 몽마였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가족의 원수를 상대로 사랑에 빠졌다면?
평범한 인간이라면 고민하겠지.
바야흐로 옛날 이야기 속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복수냐 사랑이냐 곱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가족의 원수 따위 알 게 뭐람.
내가 좋으면 좋은 거지.
당연히, 몽마에게 있어선 가족의 원수라는 사실 따위보단 사랑이 우선이다.
그리고 몽마의 여왕은 자신의 딸 또한 그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이상 입방아를 찧을 일도 없겠지. 네가 좋을 대로 하렴."
"그럴 거야."
때문에.
딸의 심정을 지레짐작한 여왕은 그렇게 말했고,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채 류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악마, 개중에서도 몽마의 생태란 으레 이러한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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