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몽마의 생태에 관하여
* * *
"으, 으읏……."
바닥에 쓰러진 지희의 입술로부터 달뜬 신음이 흘렀다.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짐짓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반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나 여유도 없었다.
고작해야 쓰러질 때 외투를 담요 대신 깔아주는 게 고작이었으니.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마침 그 원인 되는 녀석들이 보였다.
지희가 마력 결정에 손을 올린 직후.
지희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뭐, 여기까지는 예상하고 있었던 점이니 괜찮지만.
문제는 그 직후.
컨테이너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몽마들이 나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모양이군."
우발적인 사태, 라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겠지.
어딜 어떻게 봐도 미리 인원들을 매복시키고 있던 모양새다.
실제로, 우두머리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마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닐 테지?"
"글쎄. 그래도 굳이 묻자면 궁금하긴 해.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내가 딱히 이 녀석들 섭섭하게 한 건 없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턱밑을 쓰다듬고 있자니, 녀석은 곧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모양새로 외쳤다.
"뻔뻔하긴!! 그게 하루만에 두 명의 우두머리를 죽여버린 놈이 할 말인가?!"
"오버하지 마, 고작 두 마리밖에 안 죽였잖아……."
"뭐라고?!"
화가 많은 친구인 모양이다.
고개를 젓는다.
뭐,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지 못할 건 없지만.
단지.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이 녀석들이 어떻게 나오든 그건 내 알바 아니다.
다만, 이 녀석들이 그 사전 준비를 위해 취한 행동 쪽이 의아했다.
여하간, 눈 앞의 마력 결정에 별다른 함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허면?
놈들은 어째서 굳이 지희를 핑계로 댄 걸까?
나를 이 장소까지 유도하기 위해서?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
당장 장례식장에서 마주칠 때까지 내가 있다는 건 눈치채지도 못한 모양새였는데.
녀석들의 행동은 도리어 지희와 접촉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를 노리는 건 그 와중 겸사겸사.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장례식 문제로 지희랑 붙어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느낌에 가깝고.
허면?
놈들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잠시 그런 점을 생각하고 있자니, 녀석은 곧 한껏 들뜬 어조로 외쳤다.
"그래! 이 마력 결정에 함정은 없다. 너 또한 눈치챈 모양이군!"
"어, 뭐야. 그럼 정말로 적선이냐?"
"하! 설마! 우리가 한 일은 어디까지나 그 분의 것을 다시금 돌려드렸을 뿐이다!"
"그 분?"
말이야 그렇게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여하간, 눈 앞에 있는 이 녀석들은 지희의 모친.
언젠가 내가 죽여버린 여왕급 몽마의 부하들인 모양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몽마의 여왕은 지희를 몽마로 변생시키려 접근한 정황이 있다.
허면?
놈들이 노리는 건 그와 마찬가지.
나아가서는, 그 심화판에 가깝겠지.
즉.
"지희를 몽마로 만들거나, 지희 안에 여왕의 정신을 되살릴 생각인 모양이군."
녀석은 답하지 않았지만, 이 쯤 되면 대답이 없어도 거의 확실한 수준이었다.
동시에, 턱밑을 긁적인다.
'나 참.'
설마 계획이라는 물건이 그렇게 허술한 수준이었을 줄이야.
괜히 경계해서 손해 봤다.
그런 생각이 앞섰던 탓이다.
"……뭐지, 그 여유로운 태도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놈은 나를 향해 그리 되물었다.
확실히, 녀석으로서는 조금 얼떨떨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
갑자기 쓰러진 지희.
거기에 맞추어 모습을 드러낸 몽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황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 거겠지.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허나.
반대로, 구태여 긴장할 정도도 아니었다.
여하간, 몇 가지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있었으니까.
눈 앞에 있는 거대한 마력 결정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분명히 눈 앞의 몽마는 그렇게 말했지.
여왕님의 은덕이라고.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눈 앞에 있는 물건이 여왕이 남긴 마력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놈들 또한 그런 사고를 유도한 걸테고.
그렇지만.
당시 여왕은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조차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남은 힘을 넘기고 죽어버린 걸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
헌데, 그런 녀석이 이런 물건을 남길 만한 여유가 있었을까?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퍽 회의적이다.
때문에.
방금 전, 녀석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여왕이 죽고 나서 1년.
자그마치 1년이나 지난 뒤에 움직이기 시작한 이 녀석들은, 그럼 그 공백 기간동안 무얼 하고 있었을까?
그 해답이 눈 앞에 있었다.
즉.
여왕급 몽마의 힘, 여왕의 안배라는 걸 위장하기 위해 녀석들은 1년 내내 이 마력 결정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노가다로군.'
물론 여왕이 살아있었다면 나 또한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뒈진 몬스터의 마력 따위는 기억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나 또한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눈 앞에 있는 이 마력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몽마의 여왕을 부활시키기 위한 나름의 획책이었다는 소리다.
내가 놀란 건 딱 거기까지였다.
아니, 그럴 만도 하지?
까놓고 말해, 주변에 매복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여왕급 몽마조차 내 앞에서는 완전히 도망칠 수 없으니.
고작해야 여왕급 미만의 몽마들이 몸을 숨긴 걸 눈치채지 못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등신 같은 놈들이군."
"뭐?"
애초부터, 그 계획에는 한 가지 하자가 있었다.
즉.
"너희는 눈치가 없냐?"
그 1년 사이, 지희는 이미 여왕급 몽마라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렸다.
요컨대, 지금 이 상황.
놈들의 생각과 달리, 놈들의 마력이 지희의 정신을 제압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애시당초 그런 확신이 있으니까 놈들의 수작에 한 발 걸쳐도 괜찮겠다 판단한 거였고.
'상대를 잘못 봐도 유분수지.'
만약 놈들이 정말로 여왕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었다면, 보다 교활하게 나섰어야 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지희에게 주도권을 준 상황에서 정면으로 몸을 빼앗으려 하다니.
마신조차 정신계 능력자도 아닌 류인형을 상대로 그러기는 힘들었건만.
어지간히도 급하게 움직였다 해야 할지, 지희를 얕보고 있었다 해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장례식장에서 마주쳐버린 탓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건지.
어느 쪽이든,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거기에 맞추어, 방독면 너머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이, 이 새끼가……!!"
아직 어린 몽마였던 듯, 우두머리는 다시 한 번 핏대를 올렸다.
하긴, 여왕이 죽고 나서 1년.
벌써부터 두 번이나 우두머리가 교체된 상황이니, 침착함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
다만.
"쳐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내가 건드리지 않았어도 결과는 변함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두 번째 우두머리는 조금 악마다운 면모가 있었는데 말이지.
동시에.
녀석의 호령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적막만이 컨테이너 내부를 감싼다.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듯,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는 녀석.
그 너머.
터덕.
터덕.
터더더덕!!
흉측한 소리와 함께, 육편이 된 몽마들이 나뒹굴었다.
"흐, 흐어어어억!!"
경악한 목소리와 함께, 놈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그야 놈으로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여기는 우리들의 둥지다.
설마 그 사이 함정이라도 설치한 건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공격?
그런 식의 생각이 교차하고 있으리라.
물론, 정답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놈들의 둥지를 빼앗고 함정을 설치할 여력은 없다.
아니, 마법을 동원하면 또 모르겠지만.
때문에.
"시간 벌이 고맙다, 친구야."
내가 취한 행동은 실로 정직했다.
정면에서 쳐죽인다.
예쁘게 베기.
눈 앞에 있는 몽마와 대화를 나누며, 그대로 정신을 집중.
늘어지는 대화에 비례해 감각을 갈고닦을 시간이 주어진 덕분에, 범위에서 지희와 눈 앞의 몽마를 빼놓는 일도 퍽 용이했다.
그리고.
내 시그니처는, 상대를 포착하기만 하면 굳이 무기도 필요 없다.
칼을 휘두르는 대신 손을 저어도 되고,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발로 사용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만큼 여유가 주어지면, 앞머리 한 번 흔드는 걸로 사용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수많은 앞머리가 흔들리는 궤적에 따라 갈가리 찢겨져나간 몽마들의 혈향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역겨운 혈취였다.
"도, 도대체 뭐야!!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거야!!"
"엉?"
"제, 제기랄!! 애초에 처음부터 그랬어. 갑자기 우리 대장을 죽인 이유가 뭐야!! 두 번째 대장은 갑자기 연락 중에 목이 잘렸다고!!"
이렇게 나오는 게 어딨냐.
아무리 그래도 대화 중에 상대 목을 자르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니냐.
숫제 그렇게 따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물론 이게 인간 사이의 교섭이었다면 그런 말도 참으로 지당하다 하겠지만, 몬스터가 말하니까 우스울 뿐이었다.
"애초에 너희들은 그 인간 집안이랑 사이도 나쁘잖아!! 고작, 고작 그 놈들 때문에 그러는 거냐?!"
"아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야 나나 지희가 류 씨 일가와 사이가 나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히 놈 말마따나 그런 이유로 대우에 차등을 두진 않았겠지.
류 씨 일가가 놈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고 해서 쌤통이라는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
다만.
한 가지, 이 녀석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뭐, 뭐라고?"
"딱히 너희가 류 씨 일가를 건드리지 않았어도 죽였을 테니까……."
그래.
왜 류 씨 일가한테 손을 대서 죽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만에 하나 놈들이 정말로 류 씨 일가 고인 가는 길에 잠깐 들렀을 뿐이라 해도 나는 놈들을 몰살했을 것이다.
나름 사돈이니까 절을 할 시간 정도는 주었겠지만, 그래도 장례식장 밖에서는 망설임 없이 놈들을 도륙했을 테지.
설령 놈들이 정말 순수한 선의로 지희를 도우려 했다 한들 마찬가지.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을 편하게 먹는 건 어떨까?
마지막 가는 길에 류 씨 일가만 안 건드렸어도, 하는 식으로 착각해도 억울할 뿐이리라.
"이런 씹──."
공교롭게도, 이 세 번째 우두머리는 그런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안타깝지만, 이 시대는 이런 식으로 의견이 갈리면 서로의 폭력에 호소하는 법이었으니.
다음 순간.
지희의 외가라 할 수 있는 몽마 집단의 마지막 생존자 겸 최후의 우두머리가, 그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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