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 몽마의 요람
* * *
몽마는 꿈을 꾸지 않는다.
본디 사람들에게 꿈을 보여주는 일이 곧 몽마의 습성이니.
몽마에게 있어 꿈이란 능히 다룰 수 있는 도구일지언정 역으로 쩔쩔매며 휘둘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몽마들이 능력을 사용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그 방법 쪽…….
다시 말해,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닌 일생의 목표 등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개꿈이네.'
류지희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전자에 해당하는 바임을 익히 깨달을 수 있었다.
퍽 낯선 광경이었다.
달아오른 하늘. 요란스레 들썩이는 주변 상황.
거기에 귀를 찢는 짐승의 포효까지.
말마따나, 인세에 강림한 지옥도가 이러하랴 싶을 난리법석이었다.
허나, 류지희는 알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물으면 십중팔구 끔찍하기 짝이 없다 평할 지금 이 모습이야말로, 그녀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민낯.
고작해야 한 꺼풀 벗기면 나타날 헌터 사회의 최전선이었다.
대침공.
류지희는 바로 그 한복판에 있었다.
새삼스레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류지희의 입에서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그럴 법도 했다.
고작해야 이 반나절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처음엔 내심 켕기는 마음에 장례식장 근처만 기웃거릴 생각이었다.
여기에 그녀를 걱정한 담임이 동행했고, 정작 그렇게 말했던 당사자인 박우찬이 칼부림 사태를 벌였다.
헌데 알고 보니 그렇게 베어 죽인 사람이 몽마였고, 심지어 제 생물학적 모친의 부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추가로 그 몽마가 무언가를 알려주겠다며 자신에게 접촉하고, 담임은 또 그걸 수락.
겸사겸사 두 번째 우두머리의 모가지를 날려버리고 도착한 몽마들의 거점은 수상쩍기 그지없는 판국이니.
심사가 복잡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쪽이 이상한 일이리라.
물론 계획은 있었다.
여하간, 박우찬이나 류지희도 바보는 아니니까.
만에 하나 무언가 위험할 낌새가 있으면 판을 뒤엎어서라도 어떻게든 해 주겠다.
담임은 그렇게 말했고, 류지희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몽마들의 계획을 수긍하기 전, 박우찬은 명백히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때문에 그녀는 여기에 있었다.
몽마들의 거점을 향해 출발하기 전.
방독면을 챙기던 박우찬이 그렇게 말했던 탓이다.
"너무 긴장하지 마."
"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나절 사이에 우두머리를 두 마리나 날려버린 집단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다만, 박우찬의 태도 또한 단순한 빈말이나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공치사는 아니었다.
"너는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있으면 돼. 어차피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하렴."
……그래.
박우찬이 그녀에게 남긴 지령은 단 하나.
스스로의 능력 향상에 노력하라는 말 뿐이었다.
숫제 현장학습이라도 나가는 듯한 어투였다.
어쩌면 담임에게 있어 이번 일은 단순한 경험치 배율 상승 이벤트처럼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투덜거리고 말았다.
물론 그런 담임을 신뢰하기로 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지만.
딱히 실수가 있지도 않았다.
몽마들의 마력으로 가득찬 마력 결정.
거기에 접촉한 순간, 그녀의 내부에 남은 여왕급 몽마의 힘이 반응했다.
뒤이은 행동은 실로 자연스러웠다.
몽마들의 마력을 움직여, 내부에 남은 몽마의 의식을 들여다본다.
말하자면 다른 몽마들의 힘을 사용해 스스로의 내부로 몽마의 힘을 사용한 셈이었다.
필시 지금쯤 현실에 있는 자신의 육체는 실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겠지.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을 자고 있다 해야 할까.
'나, 잠버릇 나쁜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사실을 부정했다.
지금쯤 바깥은 목숨이 오가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담임인 박우찬이 자신의 잠버릇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리라.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오르는 듯한 감각을 억지로 쫓아낸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능력을 사용하는 데엔 실수가 없었다.
박우찬이 먼저 확인한 만큼 당연한 일이겠지만, 무언가 함정이 있지도 않았다.
덕분에 류지희는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몽마의 기억.
자신의 안에 남은 여왕급 몽마의 기억 안에 무의식만 날아든 것이리라.
즉, 지금 이 장소는 여왕의 기억 속에 남은 풍경일 테지.
류지희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여하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침공 당시, 이 몽마의 여왕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물론 지금부터 눈 앞에 나타날 건 단순한 기억.
혹은, 몽마의 여왕이나 자신의 인식에 따라 미화되거나 풍화된 기억에 불과할 뿐이리라.
때문에.
그녀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필요는 없다.
아니, 애시당초 기억 속인 이상 무언가 행동한들 바뀔 리도 없겠지.
요컨대, 그녀는 이 기억 속에서 여왕이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고 배워 익히면 그만이리라.
단지.
어떠한 책임도 책무도 없다.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는 마음, 감정만큼은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때문에.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애초에 뭐가 필요하다는 거야?'
몽마로서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지만, 류지희로서는 퍽 마음에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몽마의 능력이라 한들 결국 다른 사람을 매료시키는 게 고작 아닌가?
류지희에게 있어선 사용할 필요도 생각도 없는 힘이다.
현재까지 그녀가 자신의 특성을 사용하는 건 정말로 잠깐.
몽마로서 지니는 물리 내성을 앞세워 격투전에 돌입하거나, 날개를 사용해 공중전을 시도한다.
아니면 가끔씩 공격 사이에 마력을 섞어 넋을 빼놓거나.
고작해야 그 정도였고, 그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헌데도 박우찬은 자신에게 그런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어째서일까?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박우찬이 그런 말을 한 건 단순히 배워두면 어디선가 쓸 데가 있기는 하겠지 싶었을 뿐이라는 걸.
실제로도 그랬다.
막말로, 한 가지 기술이라 한들 알고도 쓰지 않는 것과 몰라서 쓸 수 없는 걸 비교하면 그야 전자가 낫지 않겠는가.
설령 지희가 몽마들의 능력을 사용하기 싫다 해도, 일단 알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을 뿐.
말하자면, 박우찬이 이번 몽마들에게 기대하는 건 딱 그 정도였다.
애초에 박우찬은 몬스터 따위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지희로서는 순순히 그리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뭐, 뭐야 그럼. 선생님은 내가 그런 기술을 배웠으면 하는 거야……?'
단순히 문자 그대로 따지자면 또 틀린 말은 아니었으리라.
물론 지금 류지희가 망상하고 있는 바와는 영 다른 의미였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럴 리 없건만,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귓가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몽마 혼혈답다 할 사고방식.
몽마란 이토록 슬픈 생물이었다.
물론 류지희는 몽마가 아닌 혼혈이었다.
설령 일반적인 몽마 이상의 힘을 다룰 수 있다 해도 그러한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곧이어 류지희는 추욱 하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갑자기 진이 푹 빠진 탓이다.
"하아."
바보 같아.
류지희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렇게 자평했다.
사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도 전에, 류지희는 차이고 말았다.
지금까지 애써 마음 속 깊은 장소에 묻어두었던 생각이 다시금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탓이었다.
짐짓 울적한 기분이 든다.
말 그대로 자신의 무의식이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훨씬 더 격정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의 풍랑은, 그녀 스스로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니, 그런데 내가 빠지는 데 어디 있다고……. 이 정도면 얼굴 괜찮고, 어?! 성격도, 어?!"
자신도 모르게 그런 투덜거림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건 실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몽마의 딸이라 해야 할까.
비록 자신이 몽마 혼혈이라는 사실에 낙담한 적 있는 류지희였지만, 내심 그런 마음을 품은 적 있는 게 사실이었다.
'솔직히 내가 제일 낫지 않나?'
박우찬 주변에 있는 여인들을 보면서 품은 속내다.
어? 이 정도면, 어? 얼굴 괜찮고. 성격 좋고. 몸매 좋고!
심지어 아직 여고생!!
파릇파릇한 나이에 더해 성장 가능성도 있음!!
이 정도면 1등 신붓감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애들이나 교사진도 만만친 않았지만, 적어도 몽마의 딸인 자신이 외모로 밀리진 않잖은가.
류지희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어쩌면 그 덕분일까?
자신이 차인 이후로 박우찬이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즉, 그 날 자신에게 했던 말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으리라.
……자신은 다른 사람과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내심 머릿속으로 축구팀을 꾸리고 있었던 류지희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던 박우찬의 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한 명 그 옆자리를 꿰차지 않았다는 건 자신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뜻이리라.
류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박우찬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겠다 했을 때도 내심 기뻐한 적이 있었다.
헌데 갑자기 분위기 몽마 여왕 계승식.
이래서야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렇게 한동안 불평을 늘어놓던 류지희는 곧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몽마들의 여왕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데에 있겠지.'
정확히는 남자가.
그런 사실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류지희는 머릿속으로 몽마들 특유의 종족적인 본능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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