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몽마의 요람
* * *
몽마들은 머저리다.
류지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하간,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우두머리를 죽여줘서 고맙다.
덕분에 내가 우두머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방금 전, 그런 속내를 숨기지도 않고 발산하던 몽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긋지긋하다.
악마들 특유의 무언가 엇나간 태도.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반나절 사이에 두 명이나 되는 우두머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절 개의치 않는 모습까지.
류지희로서는 도저히 이 축생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친 거 아냐?'
틀린 말도 아니리라.
대다수 인간들에게 악마의 발상은 미치광이의 망언에 지나지 않으니까.
거기에, 혼혈이라 한들 그 사고방식은 평범한 여고생과 다를 바 없는 류지희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겠지.
물론 이해하기 힘든 게 몽마들 뿐인 건 아니었다.
다짜고짜 몽마들에게도 배울 만한 재주가 있지 않겠느냐 되묻던 박우찬의 모습을 떠올린다.
평소 그의 모습을 고려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사전에 계획을 귀띔하기는 했다.
하지만.
일찍이 몬스터의 손아귀에 모든 걸 잃어버린 사내가 저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겪었을까.
그런 점을 생각하면 허투루 행동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박우찬은 몽마와 달리 믿을 수 있다.
능력에 따른 신용 따위가 아닌, 순수한 신뢰.
별다른 근거 하나 없는 믿음이다.
아니, 능력 쪽도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간단한 준비 끝에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몽마들의 아지트를 찾아낸 이 수완은 도저히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다.
뭐, 실제로는 단순히 직감에 의존한 결과였지만.
어느 쪽이든, 류지희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대신, 류지희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둣가 근처의 컨테이너.
몽마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던 건 바로 그런 장소였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들의 근거지를 알아낸 건지.
처음 그들의 도착을 눈치채고 마중 나온 세 번째 우두머리는, 이윽고 표정을 가다듬은 채 그들을 환영했다.
"이런, 여기까지 귀한 걸음을 옮기실 줄이야. 진즉에 연락이라도 주셨다면 사람들을 보냈을 텐데요."
짐짓 그런 말까지 하는 몰골이 퍽 우스꽝스러웠다.
물론 이해할 수는 있었다.
퍽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으니까.
하물며, 몽마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뜬금없이 양단당한 첫 번째 우두머리.
돌연히 참수당한 두 번째 우두머리.
허면, 세 번째 우두머리는 어떨까.
비록 악마들이라 하나 염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퍽 유쾌한 몰골이기도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몽마라는 족속이 곧 다른 사람 비위 맞추고 정기 훔치는 게 일이니.
광대 놀음도 익숙할 법했다.
거기에, 하필이면 '사람'을 보내겠다니.
오히려 박우찬이 별다른 말 하나 없이 잠잠한 게 어색할 지경이었다.
다만.
만일 허락한다면 몽마로서의 기술을 알려주겠다는 그 말은 단순한 거짓부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슬쩍 명치 위로 손을 얹는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꿀꺽 집어삼킨 여왕급 몽마의 힘은 아직도 그녀의 안에 잔존하고 있다.
대략 절반 이상.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1년 사이 고랭크 몬스터의 힘을 절반 가까이 소화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누군가는 자그마치 1년 가까운 시간을 소비하고도 절반이나 남았다며 타박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뱃속에 남은 힘이 웅웅 하고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컨테이너 너머.
거기에 무언가 있다.
확신에 가까운 본능으로, 류지희는 그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해서, 무슨 일로……?"
"도움이 필요하면 문을 두드리라 말한 건 너희들 아니었나?"
"아, 결심하신 모양이로군요!"
반색하며 그리 되묻는 몽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면 구태여 두 번째 우두머리를 참수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렇게 반문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물론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었다 한들 마찬가지였으리라.
당장 눈 앞에 있는 박우찬의 상태를 고려하면 감히 그런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을 테니까.
작전을 준비하겠다며 얼굴에 덮어쓴 방독면 너머로 넘실거리는 살의가 눈에 밟힐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몽마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짐짓 쾌활하게 박우찬이 던지는 질문을 대답하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우찬이 보기에도 이 컨테이너 안에 소위 말하는 운기조식을 도울 기구 따위가 있지는 않을 듯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여하간, 몽마들이 그런 기재에 의존할 리도 없으니까.
때문에.
박우찬이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단 하나.
방금 전, 류지희가 발견한 바와 같은 컨테이너 너머의 무언가.
거대한 마력 덩어리 뿐이었다.
"설마 시시콜콜하게 기술 연습 따위를 시키고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그리고.
실로 자연스럽게, 눈 앞의 몽마는 박우찬과 류지희를 앞두고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 그들의 시선이 향했던 컨테이너의 내벽.
거기에 달린 문 앞에서 멈춰서는 몽마.
"여왕의 힘을 인계하셨다면, 필시 그 기억 또한 계승하셨으리라 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여왕이 남긴 지식.
물론 지희가 쓸 일은 없겠지만, 여왕이 남긴 힘엔 틀림없이 그런 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몽마들이 노리는 비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즉, 그 내부에 있는 기억을 일깨우는 겁니다."
여왕급 몽마가 축적한 지식.
그 기억을 일깨워 지희가 흡수할 경우, 단번에 그 경험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물론 그런 경험을 스스로의 힘으로 체화시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된다는 건 틀림없으리라.
박우찬 또한 확신할 수 있었다.
허면?
어떻게 그 기억을 깨우겠다는 걸까?
저 거대한 마력 덩어리는 혹시 그걸 위해 준비된 물건일까?
"비슷하면서도 다르지요."
몽마는 그렇게 첨언했다.
동시에, 퍽 화려한 동작으로 문을 여는 몽마.
그러자 그 너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몽마는 꿈을 통해 사람의 욕망을 엿보는 생물이죠."
즉.
몽마의 마력을 통해 내부에 잠든 기억을 뽑아 추체험할 수 있다.
"저는 이걸 요람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의도를 담아 말하며, 몽마는 눈 앞의 물건을 소개했다.
거대한 마력 결정.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다만, 몽마들의 마력이 넘실대고 있는.
즉, 저 마력 결정을 통해 여왕의 힘과 접촉.
내부에 있는 기억을 깨우겠다는 뜻인가?
"정확합니다!"
퍽 쾌활한 어조였다.
동시에, 두 명의 시선이 맞부딪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심쩍은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컨테이너 너머에 자리한 거대한 마력 결정.
마치 안개 비슷한 마력에 뒤덮인 초대형 마력 결정은, 온갖 기구와 시설 등에 의해 조율되고 있었다.
숫제 자그마한 컨테이너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법한 크기와 마력.
평범한 사람이라면 냄새를 맡는 시점에서 넋이 나갈 듯한 몽마들 특유의 체취가 컨테이너 안을 가득 채웠다.
……저만한 마력을 한 사람에게 투사한다?
하물며 상대는 일찍이 그녀를 몽마로 타락시키고자 했던 여왕급 몽마의 종복들.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그녀의 정신에 간섭하고자 하는 수단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역정을 부렸겠지.
허나.
슬쩍, 둘의 시선이 맞부딪힌다.
그리고.
박우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류지희 또한 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끝이었다.
분명 이번 일에 가장 먼저 화를 내었어야 할 둘은, 그 한 번의 동작을 끝으로 더 이상 자세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몽마들 쪽에서 수상쩍게 여길 법한 행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안내하고 있던 세 번째 우두머리는 별로 개의치도 않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습니까?! 이 혁신적인 교육용 교재, 어린 몽마들도 순식간에……."
뭐, 확실히 대단한 규모이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왕급 몽마의 마력조차 넘어서는 규모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단순무식한 저장량.
이 정도라면 이만한 마력을 저장하기 위한 결정 자체도 거의 전략병기 수준일 터.
이런 물건을 구한 몽마들의 수완에 감탄해야 할까.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여왕님의 은덕이죠."
물론 몽마의 능청은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수준이었다.
동시에.
세심하게 가다듬은 능력으로 눈 앞의 마력 덩어리를 파악한다.
넘쳐흐를 듯한 살의를 강제로 억누르며 측정.
아주 잠깐 사이 이 컨테이너 일대를 훑은 능력이, 곧이어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이며, 박우찬은 어깨를 좁혔다.
"어떻게 쓰는 거지?"
"별다른 사용법은 없습니다. 몽마라면 모두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요."
과연, 실제로도 그런 듯했다.
천천히 그 앞으로 나아가는 지희.
어마어마하게 막대한 마력을 앞두고, 그 얼굴에 불안함이 스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윽고 류지희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마력 결정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지나칠 정도로 수상한 상황에, 그 이상으로 과감한 동작.
만일 누구가 보았다면 몽마들을 성토하다 못해 도리어 박우찬과 류지희가 흉중에 품은 생각을 의심할 만한 상황 속.
정작 당사자인 몽마들은 누구보다 류지희가 마력 결정에 손을 대는 일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치 그러기만 하면 된다는 듯 짐짓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달리 무어라 할 말도 없었다.
때문에.
다음 순간, 자신의 의식이 밑바닥 너머로 가라앉는 걸 느끼면서도 류지희는 몽마들의 어리석은 몰골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너무 멍청하잖아.
아이러니하게도, 일찍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담임이 생각했던 바와 같이.
류지희는 자신의 몸에 깃든 몬스터의 피를 향해 그런 소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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