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 몽마의 요람
* * *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예."
"솔직히 말하자면, 꽤나 놀랐습니다. 이번 장례식도 그렇고, 응해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아, 예."
"저번에 있었던 일은 물론 놀랐습니다만……."
"아, 예."
결론만 말하자면,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이번에 나를 부른 류 씨 일가 쪽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희에게 있어선 숙부나 고모에 해당하는 항렬이었기 때문일까.
내게 전화를 건 류 씨 일가 사람들은 퍽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아니, 따지자면 류인형도 항렬은 이 양반들과 비슷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긴 힘들었다.
여하간.
이 양반들의 말에 의하면, 혼혈이나 몽마에 대해서 죽자사자 달려들던 건 어디까지나 아버지 뿐.
다시 말해 지희의 할아버지 뿐이었다고 한다.
상당히 엄격한 가풍이었던 걸까.
어디까지나 지금은 가고 없는 아버지 때문.
우리들은 아카데미와 그렇게 적대할 생각은 없다.
면피성 발언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그렇게 떠들던 류 씨 집안 사람들은, 곧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속삭였다.
"헌데,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소개해드리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만."
"아, 예."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럼, 부디."
성의없는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류 씨 집안 사람들은 우르르 자리를 비웠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을 거행하고 있던 건물 한켠.
장례식장이 아니라 건물을 통째로 빌리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이 건물 자체가 류 씨 일가의 가산인 건지.
어느 쪽이든, 보무도 당당한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웠다.
"서, 선생님?"
"왜?"
"괜찮은 거 맞나요? 저희……."
"아니."
"네?"
괜찮을 리가 있나.
나는 직감으로, 지희는 본능적으로 상황을 깨달은 모양이다.
정작 지희가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확실히 이상했다.
때문에.
"다시 보게 되는군요."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이 들어와 그런 말을 했을 때에도, 나와 지희는 놀라지 않았다.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넋이 나간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변을 감돌고 있는 진득한 마력.
방금 전과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
노골적일 정도로 짙은 몽마의 마력이 눈 앞의 사내를 감싸고 있었다.
그래.
방금 전 내게 전화를 건 류 씨 일가 사람들부터 지금 눈 앞의 양반까지.
우리들을 만나고 싶어했던 건 류 씨 일가 사람들이 아니다.
몽마 녀석들이지.
아무래도 나름 본인들 딴에는 정체를 위장하려 했던 모양인데…….
나는 물론이요, 여왕의 힘을 흡수한 지희에게 먹힐 만한 위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감탄을 터트린 건 다른 부분이었다.
몽마가 류 씨 일가의 장례식에 발을 들인 건 바로 얼마 전 이야기.
그 뒤, 헌터 협회는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헌터들을 파견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씨 일가는 이미 몽마들의 손에 떨어졌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헌터 협회의 무능함?
예상 이상으로 강력한 몽마들의 세력?
'그럴 리가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 밖의 결과인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몽마와 일반인들을 1대 1로 독방에 쳐박는다 한들 고작해야 반나절 사이에 이런 결과가 나올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즉.
'실화냐?'
류 씨 일가의 몽마에 대한 저항력은 가히 쓰레기 수준이었다.
혹시 가족력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나도 모르게 턱밑을 긁는다.
뭐, 그거야 어쨌든.
류 씨 일가가 협회로부터 몽마 운운하는 사실을 전해듣고 먼저 행동에 나선 건지, 아니면 몽마들이 접촉한 건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이야기다.
아니, 당장 반나절 전에 몽마들의 우두머리를 양단한 걸 생각하면 십중팔구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제 발목을 잡은 꼴이라고 해야 할지.
시원스레 일가친척 전원이 몽마들의 손아귀 안에 넘어간 류 씨 일가를 향해 마음 속으로 조의를 표한다.
동시에, 남은 의문을 품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역시 이 쪽이었기 때문이다.
몽마들 쪽에서 지희에게 접촉하려 한다는 건 별로 상관 없다.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반나절 전에 우두머리의 머리를 쪼개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접촉을 시도할 줄이야.
이 새끼들, 깡따구 한 번 좋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아니, 매료한 인간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걸 보면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모양이지만.
"시덥잖은 장난이군."
"하하, 양해해 주시지요. 우두머리가 죽어버린 덕택에 제가 우두머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만, 저도 죽기는 싫거든요."
퍽 악마다운 발언이었다.
무리 전체의 이득이야 어쨌든, 우두머리의 죽음은 자신에겐 상관 없다.
아니, 오히려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감사할 일이다.
참으로 솔직한 발언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하여튼, 대화 상대가 몽마 집단의 새로운 우두머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허면.
슬쩍, 지희의 안색을 살핀다.
방금 전 오간 대화 때문인지, 질색하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으음, 이런.'
아무래도 가족애가 샘솟진 않은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 거죽을 쓰고 있다 한들 상대는 몬스터.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라 적당히 떠맡길까 했지만, 저래서야 힘들겠지.
결국 이번 대화의 주체는 내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지? 죽고 싶어진 거라면 전원 자살해도 좋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저희가 용무를 가지고 있는 건 저희 아가씨 쪽입니다."
회심의 배려가 무시당했다.
역시 악마적인 새끼들이었다.
그렇지만, 저희 아가씨인가.
퍽 고풍스러운 표현인데.
내심 그런 감상을 살피며 턱밑을 쓰다듬는다.
그래서, 용무인가.
짐작 가는 요인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장난 아니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몽마의 무리들이 행동에 나설 만한 이유라고 하면…….
"저희도 놀랐습니다. 1년 전, 갑자기 여왕께서 죽음을 맞이하셨을 땐."
뭐, 역시 그 쪽이겠지.
슬쩍 지희를 살핀다.
동시에.
한껏 몸을 부풀린 감각이, 지희의 전신을 훑어내린다.
바로 작년.
지희는 자신의 어머니인 몽마의 여왕으로부터 그 힘을 인계받았다.
신세계 질서가 얽힌 사연 아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죽음을 맞이한 몽마의 여왕.
그녀가 남긴 힘을 받아들여, 지희는 자신의 힘으로 삼았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지희의 힘은 어느덧 A랭크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 최근 한층 더 격렬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예은이.
목숨을 건 싸움 덕분에 급격한 성장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윤하.
마지막으로, 명백히 이상한 성장의 계단을 밟고 있는 하연이까지.
현재 지희의 몸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마력은 다른 꼬마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 소화율인 건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지희가 소화할 수 있었던 여왕의 힘은 대충 절반 가량.
나머지 절반은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리고.
"허나, 이렇게 그 후계자를 찾게 되었으니. 저희로서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녀석들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도 바로 거기에 있겠지.
팍 하고 지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야 그렇겠지.
녀석들이 그 날 옥상에서 오갔던 대화 따위를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저렇게 대놓고 여왕의 후계자 운운할 수 있는 것이리라.
단지.
"그렇지만, 저희가 보기에 아직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이 완숙하지 못하신 바."
"흐음."
"주제넘게도, 저희가 그 부분에 있어 도움을 드려도 될런지요?"
지희의 반응과는 별개로, 놈들의 제안은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몇 번 정도 언급했듯이, 혼혈의 전법은 그 근간이 된 몬스터에게 귀속된다.
어느 정도 원본이 된 몬스터의 습성을 지닌 채, 인간의 전법을 구사하는 게 혼혈의 특징.
그리고.
현재 지희의 전법은 자신의 격투 능력을 살린 근접전.
그 정도로도 나쁘지 않지만, 몽마로서의 전법을 살릴 기회가 없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니, 혼인회에도 몽마 혼혈이 없더라고.
즉, 지희가 몽마로서 발휘하는 능력 대다수는 어디까지나 독학.
혹은, 몽마의 습성을 보고 스스로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릇 독학이란 좋지 않은 버릇이 배일 수도 있는 바.
지희의 습관 따위를 교정할 기회가 된다면 틀림없이 그녀에게도 나쁘지 않은 찬스였다.
"괜찮네."
"네? 선생님?"
당장이라도 쌍욕을 내뱉으려던 지희가 내 말에 덜컥 하고 멈춘다.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제정신인가 의심하는 듯한 시선이기도 했다.
뭐, 그야 그렇지.
말이야 저래도, 정말 지희를 훈련시켜주기 위해 일족 전체가 죽음을 감수하고 내 앞에 기웃거렸을 리도 없으니.
다만.
"지희야, 어떻게 생각하니?"
"네? 어, 글쎄요? 괜찮, 을까요?"
"그렇지?"
더듬더듬 대답하는 지희의 말에 따라, 한껏 기쁜 기색이 몽마의 마력 너머에서 전해진다.
거기에 맞추어,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런데."
예쁘게 베기.
손동작에 맞추어 작렬한 시그니처가, 이 건물 내부를 횡횡하고 있던 몽마들의 마력을 양단했다.
투둑, 하고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눈 앞의 사내가 쓰러진다.
몽마와의 연결이 모조리 끊긴 탓이었다.
아니, 단순한 연결 수준은 아니겠지.
적어도 방금 전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번째 몽마 대장은 그대로 목이 날아갔으리라.
"누구보고 계속 오라가라야."
짧은 투덜거림.
뭐, 어쨌든.
이걸로 조금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덕분에, 몽마 따위에게 들키는 일 없이 지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듯했다.
찾아냈다고 해야 할지,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듯한 지희의 표정을 살피며, 나는 잠시 이번 사태를 어떻게 활용할지 지희에게 설명하고자 머릿속으로 말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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